음악과 과학의 가깝고도 먼 관계
이 책의 문제의식
오늘날 음악은 주관적 원리에 근거하는 미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수학적 합리성에 입각하는 과학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음악은 오랫동안 자연철학의 중요한 주제였을 뿐 아니라, 근대과학의 주요 탐구영역 가운데 하나였다. 예컨대 케플러(J. Kepler), 메르센(M. Mersenne), 호이겐스(C. Huyghens) 같은 이들은 중요한 음악논문들을 썼으며, 갈릴레오(G. Galilei)와 뉴턴(I. Newton) 등은 과학적 주제를 논하는 자신의 저술에서 음악 문제들을 다루기도 했다. 이처럼 근대과학자들이 음악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음악은 오랫동안 자연의 원리를 담지하고 있는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과학혁명이 한창이던 17세기까지도 산술 · 기하 · 천문과 함께 과학의 한 분과로서 4과(quadrivium)에 속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음악에 대한 근대과학의 관심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음악과 과학의 관계 그 자체는 오랫동안 음악사와 과학사 양쪽 모두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8세기 이후 예술과 과학이 서로 독립된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 · 인식되면서 심화되었고,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더욱 고도화되는 학문 영역들의 분과화도 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보니 음악과 과학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를 지나 조금씩 진행되다가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적잖은 연구 성과들이 축적된 상태다. 예컨대 이들 연구는 주로 빈센초 갈릴레이(V. Galilei)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메르센 등의 작업에서 협화음이론이나 음계의 구성문제(D. P. Walker, 1978; H. F. Cohen, 1984 등), 케플러의 천체음악론(B. Stephenson, 1994), 뉴턴과학의 음악적 유비(P. Gouk, 1986; 1999) 등을 다루거나, 이들 사례를 통해 근대과학과 음악의 상호 영향관계를 추적하기도 한다(C. V. Palisca, 1961; S. Drake, 1970).
이렇게 기존 연구들이 음악과 과학의 관계와 관련한 여러 논의를 진척시켰지만, 이를 종합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그 총체적인 관계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결과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은 이를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서사의 큰 줄기 상에 음악과 과학을 처음으로 결합시킨 피타고라스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의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에 전해졌으며, 나아가 근대과학에 어떤 식으로 수용되고 분화되었는지 음악사와 과학사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되짚어나가고자 한다.
고대에서 근대 과학혁명까지
음악과 과학의 역사적 관계 변화
―피타고라스로부터
음악과 과학의 만남은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시작된다. 현의 길이와 음높이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들의 발견은 음악과 과학을 연관시킨 최초의 사례였다. 이에 따르면, 진동하는 현의 길이와 그로부터 산출되는 소리의 음높이 사이에는 일정한 수학적 관계가 존재하고, 특히 협화음정의 경우 그 관계가 간단한 수적 비율로 표현된다. 이때 그 비율을 구성하는 수들은 자연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신성한 수로 간주되는데, 이처럼 수-신비주의(number-mysticism)와 결합된 과학적 발견이 서양 음악이론의 출발점을 구성한다.
나아가 그들은 이 발견을 천체의 운동에 적용했다. 익히 알려진 ‘천구들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이라는 개념 속에는 천체가 완벽한 수학적 비례를 이루면서 운동하고, 그것이 음악적 하모니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천체가 조화롭게 운동한다는 막연한 진술을 넘어, 실제적인 음악적 연관을 가정한 것이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천체의 속력과 간격들(intervals)이 음악적 음정들(musical intervals)과 동일한 비례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그 운동이 지상의 음악과 동일한 하모니를 산출한다는 내용이다. 천구들의 음악 교리에 구체화되어 있는 이러한 음악적 이론화는 일종의 원형적 과학(proto-science)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음악이론의 출발점인 동시에 천문학의 출발점이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뉴턴까지
피타고라스의 음악이론은 플라톤에 의해 재해석되어 후대에 전해졌고, 키케로와 마크로비우스, 프톨레마이오스 등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되어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다가 17세기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용되었다. 무엇보다 음악사와 과학사의 ‘근대적’ 전망 속에서 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즉, 피타고라스의 이론은 한편으로는 과학으로서의 음악과 수학적 우주의 이념을 내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를 음악과 우주의 하모니의 근원으로 절대화하는 수-신비주의를 드러내는데, 이 두 가지 특성이 근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17세기 과학자들은 과학사의 새로운 지평 위에 서 있었고, 새로운 과학적 정신과 방법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은 새로운 과학적 탐구와 결합되었고, 음악사와 과학사에서 전과 다른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시대적 흐름인 과학적 사고의 세례와 함께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해 있던 케플러는 천구들의 음악 교리가 지닌 신비주의를 과학적 관측결과로 뒷받침하면서, 다성음악의 등장이라는 음악사적 상황과 태양중심설이라는 과학사적 전환에 맞게 그 교리를 재구성했다. 그런 점에서 케플러는 피타고라스를 근대의 음악사적 · 과학사적 좌표에 따라 충실하게 재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사고의 세례는 물론, 새로운 시대의 실험적 정신까지 부여받은 갈릴레이 부자와 메르센 등은 피타고라스의 음악이론에서 천구들의 음악 교리를 제외하는 한편, 협화음에 대한 실험적 접근을 통해 피타고라스 음악이론의 수-신비주의를 해체하고 합리적인 음향과학의 길로 나아갔다. 그 결과 음악이 갖고 있던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퇴색하면서, 음악과 과학의 전통적인 관계도 점차 와해되어가기 시작했다.
뉴턴은 피타고라스의 음악이론을 만유인력 법칙의 알레고리로 해석했는데, 이런 해석의 근저에도 자연의 통합적 성격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함께 음악이 우주의 통합적 특징인 하모니를 구현하고 있다는 피타고라스적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 그는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음파의 진동수와 빛 입자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수를 연계시켜, 색채 스펙트럼과 음계 사이의 유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음악과 과학은 여전히
‘보편적 하모니’의 이념을 공유한다
음악과 과학의 관계는 18세기 이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근저에는 음악사의 변화와 함께 음악적 경험에 근거하는 미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과학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근대과학의 성과와 방법론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이제 음악과 천문학의 기본 전제로서 오랫동안 음악과 과학의 관계를 규정해온 ‘신성한 수’나 ‘천구들의 음악’은 허무맹랑한 낡은 관념이 되어버렸다. 과학의 시대에 그런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이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념들이 음악사와 과학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쉽게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다.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보편적 하모니’의 이념은 음악과 과학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세계관이었다. 예술이 세계를 표현하고 과학이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양자 모두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전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피타고라스적 전통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질서 지워진 조화로운 세계라는 전제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설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에 음악사와 과학사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추상적인 사변을 넘어 실제 음악적 경험이나 과학적 탐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와 전망은 오늘날 예술과 과학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