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박람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산소가 없는 시절부터 지구에 살았던 그들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빚어냈을까?일상이 새롭게 보이는 세균 이야기『한국 괴물 백과』,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지상 최대의 내기』 등 SF 소설, 글쓰기, 과학 논픽션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는 ‘괴물 작가’ 곽재식의 신간.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 인류가 등장하기 한참 전인 40억 년 전부터 지구에 나타나 지금 우리가 사는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세계를 만들어온 세균을 소개한다. 세균에 관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지식을 가득 담고 있지만, 상상력이 가득한 작가의 서술은 한국사, 우주, 먼 미래를 종횡무진 오간다. 되도록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조명하고 연구자들의 애환을 담으려 한 것도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지구에서 우주까지, 40억 년 전부터 먼 미래까지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는 그들을 만나다세균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우리의 생존을 돕거나 해치는 존재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물, 음식, 의약품 등)을 만들어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자이며,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존재했던 우리의 뿌리이고, 자신 외에는 아무 존재가 없던 때부터 지구를 만들어온 창조자이다. 이 책은 그런 세균과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자들은 세균에 관해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학적 관점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가상의 박람회장 형태를 띠고 있으며, 과거관·현재관·미래관·우주관의 네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과거관에서는 지금의 지구 생태계를 만들어온 세균을 만난다. 세균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핵이 없는 세균은 어떻게 핵이 있는 생물로 진화했는지 알아본다. 2부 현재관에서는 인류의 역사와 우리의 일상을 만들어온 온갖 세균들을 만난다. 표피포도상구균, 고초균, 탄저균을 비롯한 여러 균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만들고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3부 미래관에서는 실험동물 대신에 세균을 쓸 수 있을지, 세균이 바이러스, 곰팡이, 효모와 싸우는 방법을 우리가 응용할 수 있을지, 세균으로 환경 문제나 범죄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본다. 4부 우주관에서는 우주 개발에 세균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세균을 통해 다른 행성에 사는 생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지, 인간이 우주에 갈 때 세균이 도움을 주는 방법은 없을지, 세균 연구 결과가 악용되지 않게 하는 제도적인 방법은 없을지 알아본다. 이야기에서 시작해 상상으로 끝나는 과학책과학 지식은 늘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탁월한 이야기꾼인 저자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여실히 드러나는 과학책이라는 점이다. 많은 경우에 과학 지식을 본격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이들은 ‘객관성’이 강조된 과학 서술에서 그것이 우리 삶과 밀접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워하고, 그래서 그 내용들이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느끼곤 한다. 이 책은 이런 독자들을 고려하여 쓰였다. 저자는 여러 전설, 일화, 비유, 의인화 등을 활용해 멀게 느껴지는 세균에 관한 지식을 독자들에게 더욱 인상 깊게 전달한다. "이러한 신화에 따르면 핵을 가진 복잡한 생물이 되어 여러 세포 덩어리로 자라나고 그 결과 다양한 생활을 하며 깊은 고민을 하면서 사는 다채로운 삶이, 바로 세균 같은 생물이 누리는 영원한 젊음을 포기한 대가인 셈이다."_139쪽 "옛 전설에서 땅속에 흐르는 피라고 이야기됐던 레그헤모글로빈은 대지의 여신이나 땅의 신령이 흘린 피가 아니라 바로 세균들을 위해 만들어진 물질이다."_209쪽 “불경기가 계속되어 취업이 어려운 시대를 생각해보자. 혹은 내가 어느 나라의 언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나라와 내가 사는 나라의 관계가 갑자기 악화되어 내가 배운 언어가 쓸모없어진 때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럴 때 어느 깊은 산속 동굴로 들어가 침낭 안에 몸을 욱여넣고, 몇 년이고 쿨쿨 자면서 다시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내가 배운 능력이 필요한 곳이 많아져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이고 버티는 수법을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내생포자로 변신하는 세균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_142~143쪽이뿐 아니라 이 책에는 작가의 SF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 과학 지식은 늘 그 과학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특히 3부와 4부에서 작가는 세균 활용법에 관하여 여러 사고 실험을 벌인다. 시시각각 전국 곳곳의 흙 상태가 자동으로 조사되어 만들어지는 전국 세균 지도, 세균이 움직이는 법을 응용하여 만드는 몸속을 다니는 로봇부터 우주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세균이나 외계 세균 방어법처럼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거기까지 가면 매일 혹은 매 시간마다 전국 천여 곳에서 세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일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자동 세균 분석 로봇을 전국에 수천 대 설치해두고 매 시간 계속 세균들이 사는 모습을 집계해본다는 생각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알파벳 약자로 RAMSAS(Robotic Automated Metagenome Sequencing and Analysis System)라고 로봇에 붙일 별명도 지어놓았다. “그러한 자료를 갖고 있으면 단순하게는 그 동네 땅이 얼마나 비옥해졌는지를 알아보는 문제에서부터 멀게는 날씨를 예측하는 일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습기에 민감한 세균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철저히 움직이는 세균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기록해놓으면 이는 기압이나 강수량 못지않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비가 오기 전에 갑자기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 세균이 지금 전라남도 쪽에서 경상남도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면, 내일 오전에 남부지방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가 지나갈 거라는 식으로 날씨를 추측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전국의 세균 분포를 시간 변화에 따라 살펴보면 그 결과가 어떻든 세균의 특성상 날씨와의 관계는 뚜렷할 것이다.”_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