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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과 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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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 문학동네 | 2022년 07월 29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4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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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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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페이지 수 약 5.5만자, 약 1.9만 단어, A4 약 35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87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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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시인.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인.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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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우린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슬픈 걸 쓰기로 했지”

‘너’의 등을 바라보는 ‘홀로’들의 열심과 숭배
작은 진심이 모여 이루는 ‘우리’의 목소리와 이야기


문학동네시인선 173번으로 이원석 시인의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패기와 스케일”이 돋보이는 장시를 선보여 “현실과 꿈과 무의식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어떤 새로운 모험의 결과물들을 우리 앞에 부려 놓을지 기대를 갖게”(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한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한 시인은 이번 첫 시집에서 그에게 주어진 기대에 적극 부응하여 목소리를 잃은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펼쳐 보인다. 긴 여정 가운데서 홀로된 이들의 “구원 없는 고통”과 “부지런히 제 할일을” 하는 “희망”(「로제타(Rosetta)」)을 직시하며 결국 시를 읽는 우리 모두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성장사(史)를 써내려간다.

오늘은 볼트를 천사백 개밖에 못 조였어
H빔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지
이천 개 이상을 조여야 할당량을 채우는 거야
내일을 생각하면 잠이 오는 날이 드물어
하지만 그전에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우주 밤을 하고 잘 거야
왜 꿈을 꾸지? 맘에 드는 현실 따위는 없으니까
우주 밤은 무슨 꿈을 꾸게 하지?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미 생이 끝나서
도돌이표처럼 인생을 살고 싶어해
볼트를 조이는 것보다 나은 일이라면 뭐든 꾸고 싶다고
설정 따위는 그만두고 다이얼을 돌려
아무 날에나 가닿자고
_「우주 밤」 부분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을 반복 작업으로 몰아넣어 자아와 의식을 박탈하는 현실이 시집의 전제이자 배경이다. 시집의 첫 시 「서로의 것이 아닌」은 구리관이 자라난 숲을 잘라내는 노동으로 시작된다. “잘린 구리관을 들어올리는 일은/ 쓰러진 사람의 겨드랑이를 받쳐내듯 힘겨”(「서로의 것이 아닌」)운 것으로, 일상 속 버거운 노동이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옮아버리고 마는 양상을 시인은 날카롭게 감각한다. 모진 현실에서 사람 간의 만남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 1부에서 3부에 걸쳐 시인은 사람들이 “서로의 손익을 하나하나 비난하듯 복기”(「우주 밤」)하고, “물질에 초연한 사람이 가난 때문에/ 침착하던 마음이 집착 때문에 버림받”(「당신만의 것」)게 되는 상황을 짚어낸다.
그러한 현실에서도 이원석의 화자들은 “열렬함 아니 절박과 두려움”(「리부트」)을 지니고, “열심과 숭배”(「오백 개의 볼트와 오백 개의 너트를 조여야 해」)로 ‘너’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나를 사랑하고/ 내 얘기를 듣지 않”을 때 그들이 잡은 손은 “손등과 손등이 만나 각자의 검정을 쥐는/ 가장 외로운 방식의 악수”(「한번은 그게 나라고」)일 것이다.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나의 수치”(「자기장 위의 발굽소리」)를 당신이 알아채줄 기대 없이 홀로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사랑은 상처만을 남기고 ‘서로’라는 모습과 ‘관계’라는 개념은 우리로선 도무지 도달할 수 없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밤의 끝에선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고
밤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며
둥근 잠을 보게 되는 것, 잠 속의 꿈을 보게 되는 것, 꿈속의 너를 보게 되는 것, 네 속의 나를 보게 되는 것, 내 속의 밤을 보게 되는 것 그리고 밤 속의 둥근 잠
_「Long Walk」 부분

동명의 장시로 이루어진 4부 ‘Long Walk’는 오늘날의 미국이 성립하기 위해 벌여나간 원주민 섬멸 작전에 의해 터전을 잃고 강제이주를 떠난 원주민들의 행렬을 함께하는 ‘머나먼 여정’(Long Walk)으로, 역사로부터 잊힌 이들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집 전반에 자리한 미래들은 지금 이대로의 현재가 계속된다면 들이닥칠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미리 상영한다. 2039년 개발된 기억 재생 장치는 오남용되고(「우주 밤」), 2050년대에는 인간의 뇌 정보가 컴퓨터에 업로드되며, 2067년에는 황폐화된 초원에 마지막 코끼리를 풀어줄 수밖에 없고, 2076년에 떨어진 마지막 핵무기는 인류의 종말을 암시한다. 멸망으로 다가가는 미래를 멈추기 위해 시인은 과거를 반복한다. 나바호족 원주민과 언어능력 연구를 위해 갇혀 살아야 했던 오랑우탄 ‘찬텍’, 그리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히로시마 핵폭탄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미래를 바꿀 수도 있었을 분기점이다. ‘머나먼 여정’을 떠난 홀로된 이들은 “멸절된 존재의 하루”들을 돌아보다 비로소 “네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가 된다는 전환을 깨닫는다. 잊힌 자들은 이 ‘머나먼 여정’을 통해 한데 모여 새로운 역사를 개시한다. 오만하게 나아갔던 역사가 ‘나’와 ‘너’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간 역사 속 주체가 되지 못했던 우리들의 역사를 새로이 시작하겠다고.
물론 의지만으로 현실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5부 ‘엔딩과 랜딩’에서는 ‘당신’이 전한 임무를 짊어진 스파이가 침묵과 배반, 그로 인한 슬픔을 아직도 감당하고 있지만,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실패가 예정된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다. “엔딩과 랜딩은 한끝 차이”라고, “첫 줄을 고칠 때 이미 엔딩은 바뀌었다”(「고쳐쓰는 SPY의 밤」)는 것을 알고 바뀔 미래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홀로’들이 ‘서로’가 되기 위해 펼치는 손길을 끝끝내 바라본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옭아매는 실패를 절절하게 감내하면서도 이륙을 준비한다. 엔딩은 끝만이 아니라 시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랜딩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이 모든 활동을 이원석의 시는 떨면서 한다. 우리는 시의 목소리가 ‘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시는 긴 세기 동안 이어진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그리고 거기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이 다시 긴 세기의 이야기를 새로 쓰고자 하는 속에서 개시된 시이기 때문. 긴 세기가 성스러움을 위장하여 많은 살아 있는 목소리를 배제하고자 할 때, 배제된 이들은 긴 세기가 결코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른 역사를 개시한다. 다른 처음을 개시한다. 처음부터 다시 ‘처음’을 새기려는 이가 가진 감정은 떨림, 그러니까 폭발이 내장된 열정임은 당연하다. 우리의 응원은 그 떨림에, 떨면서도 그치지 않는 열정에 바쳐져야 할 것이다.
_평론가 양경언, 해설에서


■ 시인의 말

전자식 자연 관찰소에서 처음
한 줌의 양털을 받아왔을 때
그게 전기양으로 자라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처음으로 그게 네 다리로 일어섰을 때
조금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부드러운 양털을 쓰다듬으며 네가
흰 털이 피로 물들 때까지 부드러운 양털을 쓰다듬으며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나는
목에 단 종을 흔들며 비뚤어진 웃음을 웃었지

나의 치욕은 나의 것일 뿐
파랗게 빛을 내는 질문지에 네 이름을 써

2022년 6월
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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