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원하는 ‘우리’와 대중이 느끼는 ‘우리’가 과연 같은 ‘우리’였을까?
재건의 시대, 영화로 읽는 네에션에 대한 감성적 기원
정부가 수립된 1948년 3이후 남한의 대중들은 과연 ‘대한민국’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재건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현실 속에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정말 자랑스럽고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존경할 만한 존재였을까?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기구를 운용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과 지배 세력이 오랜 세월 국민들로부터 진실한 존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존경받지 못하는 국가를 국민들은 어떻게 끝까지 지킬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떤 국민들은 아직 이루지 못한 또다른 상상의 공동체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리는 왜, 언제 일어나기 시작했는가? 왜 ‘대한민국’은 단일한 ‘대한민국’이 되지 못했을까? 어쩌면 논리와 이성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이러한 질문의 단초를 대중들의 감수성이 녹아 있는 대중문화, 특히 ‘영화’에서 찾고 있는 책 ≪‘대한민국’, 재건의 시대(1948~1968)≫(푸른역사)가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이하나(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감성의 측면에서 규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현재 한국인들의 감수성 속에 존재하는 복수의 네이션들에 대한 역사적 연원을 추적한다. 또한 분단의 내면화 과정이란 결국 ‘우리’라는 개념이 분리되는 과정임을 밝히고, 오늘날 남남갈등의 뿌리가 되는 상반된 상상적 네이션을 구성하는 키워드들을 정리하고 성찰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나 ‘애국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심성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 풍경은 한국인들의 ‘국가에 대한 생각과 정서’에 연동되어 있었고, 이는 왜 한국인의 그것이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보여주는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지 하는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은 모두 자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높지만,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부에 충성을 표하는 반면, 한국인들이 충성을 표하는 대상은 항상 ‘우리’라는 공동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의 마음속에 ‘우리나라’, 혹은 ‘대한민국’은 통합되고 일치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갈등하고 교섭하는 복수의 상이한 공동체적 네이션nation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복수의 네이션은 경우에 따라, 또 상상력의 폭과 한계에 따라 여러 층위로 존재한다. 예컨대 우리가 보통 ‘우리나라’라고 부를 때, 이 ‘우리나라’는 남한=‘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지칭할 때도 있고 남한과 북한을 통합한 민족 공동체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네이션에는 ‘대한민국’ 출범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북한과 대립되는 고정된 실체로 생각하는 네이션도 있고, ‘대한민국’의 출범에 비판적 의문을 가지면서 분단의 내면화를 강요한 억압적 정권에 저항해온 네이션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가졌던 이상을 긍정하면서도 이를 편의적으로 수정하거나 왜곡하려는 현실의 권력층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네이션도 있다. 대중의 심성에 은밀히 내재한 이들 네이션들은 반드시 서로 정합적으로 포개어지거나 이분법적으로 양분되어 대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어긋나고 혼재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개인의 마음속에서도 결합과 갈등과 분리를 반복하며 역동적으로 존재한다.
-“글을 시작하며” 중에서
영화를 철저히 ‘사료’적 관점에서 접근한 역사학계 최초의 책
이 책은 영화를 사료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으로 시작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네 개의 키워드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곧 영화의 플롯을 통해 국가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과 그 추이를 읽어내는 감수성의 역사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그 시대의 감성과 정서를 반영하는 독특한 플롯을 낳는데, 1950~60년대에 생산된 영화의 플롯은 ‘대한민국’에 갈등하고 교섭하는 상이한 네이션들이 창출되는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네이션’이란 대중의 감성 속에 창출된 심성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민족’이나 ‘국가’와는 또다른 결을 가진다. 곧 한국인들은 정부에 의해 대표되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충성심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민족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심성이 민족주의로 단일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 정권에 의해 운용된 국가가 요구하는 공동체와 대중들의 희구하는 공동체의 상(=정체성) 사이에는 균열과 간극이 있었다. 이러한 간극이 오늘날 좌우 갈등과 이념 대립의 감성적 기원을 이룬다. 이 책은 그러한 균열과 간극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를 시대를 대표하며 생산된 플롯의 미묘한 변화상을 추적해 살피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영화가 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변하는 데에 있지는 않다. 그보다 이 책은 한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감수성이 녹아있는 특정한 플롯을 낳는다는 것을 한국적 맥락에서 드러내고, 그러한 플롯이 표상하는 시대의 의미를 추적하는 데 관심을 둔다. 곧 시대의 플롯을 드러내는 대중적 매체로서의 영화가 대중의 정서와 감수성을 어떻게 표현해 왔는지에 주목하면서 이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머리말” 중에서
영화는 그러한 플롯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영화적으로 구현한 역사극은 ‘민족’이 어떠한 영광과 굴욕과 수난의 역사를 밟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역사극은 북한이나 공산주의자를 적대시하는 배제의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반공’을 접목시킨다. 반공영화들은 네거티브 전략인 ‘반공’을 키워드로 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오히려 북한을 동포로 끌어안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 반공주의의 내면화는 따라서 일방적인 현상이 아니라 두 개의 네이션이 분리되어 가는 징후의 일단을 의미한다. 서민의 일상을 다룬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과 계급상승의 욕망을 표출함과 동시에 지나친 배금주의에의 경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이중적이다. 세계사적인 격변의 시기인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오히려 퇴행적인 징후들을 보여준다. 반공영화들은 반북영화들로 예각화되고 풍속극은 가부장제를 강화시키며, ‘모범적 국민’은 더욱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국가가 제시한 ‘바람직한 국민상’과는 다른 방황하는 시민들이 이시기 모더니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것은 국가가 제시하는 국가의 정체성에 완전히 동의하거나 일치할 수 없는 존재들을 암시한다. 결국 이 시기 대중들의 심성에는 서로 갈등하고 경합하는 복수의 네이션이 형성되고 있었으며, 이들 복수의 네이션들은 결국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네이션으로 수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의 심성에 자리 잡은 복수 네이션의 분열과 투쟁의 과정에 주목하다
영화의 플롯은 대중의 감수성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반영하며 시기별로 상이한 형태를 띠고 만들어져왔다. 따라서 플롯의 생성과 변화를 살피는 것은 대중의 심성의 변화상을 살피는 것과 같다. 대중들의 심성에 형성되는 국가에 대한 상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권장되는 국가에 대한 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대한민국’에 서로 갈등하는 두 개의 네이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첨예한 남남갈등의 심각성이 극에 달하고 있는 오늘날 그 시사점을 더하고 있다. ‘역사 내전’이라 불릴 만큼 큰 간극을 가진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평행선 위에 있으며, 이는 감성의 차원에서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네이션은 우리 마음속에 논리화되지 못한 채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가지며 더욱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성찰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재건의 완성이 곧 대중/민중들로부터 유리된 고착되고 경직된 국가로 나아감을 의미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사람들의 심성에 두 개의 다층적인 네이션이 형성되어감을 의미했다.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하나는 남한 정권 차원에서 구축하는 네이션으로서 한반도 이남의 영토와 국민을 완성태로 하는 극우반공적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대중들이 열망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북한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네이션이다. 박정희 정권 시기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독재와 근대화라는 키워드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이제 더 이상 남북한을 합쳐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선포한 시기라는 것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분단을 내면화하고자 했던 정권의 의도가 이 시기에는 아직 완전히 성공적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네이션이 원래 존재했고, 이에 저항/반대하는 네이션이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을 끌어안은 가변적이고 실험적인 네이션이 존재했는데 이를 이승만과 박정희의 네이션이 동결 건조시키고자 한 것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글을 마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