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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곡의 랩 명곡 모음집 (Rap All Stars: 60 Ultimate Party Anth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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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곡의 랩 명곡 모음집 (Rap All Stars: 60 Ultimate Party Anthems)

[ 3CD / 디지팩 ]
MC Hammer, Vanilla Ice, Run DMC, Kris Kross,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노래 외 4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Universal | 2022년 06월 09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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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곡의 랩 명곡 모음집 (Rap All Stars: 60 Ultimate Party Anthem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2년 06월 09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디스크

Disc1
  • 08 Arrested Development - People Everyday [Metamorphosis Mix (7" Edit)]
  • 09 Warren G Ft. Nate Dogg - Regulate
  • 10 Luniz - I Got 5 On It
  • 11 Snoop Doggwho Am I (What's My Name)?
  • 12 The Sugarhill Gang - Rapper's Delight
  • 13 Eric B. Ft.Rakim - I Know You Got Soul
  • 14 Monie Love - It's A Shame
  • 15 Jungle Brothers - What U Waitin' 4
  • 16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 The Message
  • 17 N.W.A. - Express Yourself [remix]
  • 18 Public Enemy - Don't Believe The Hype
  • 19 Beastie Boys - (You Gotta )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
Disc2
  • 01 Notorious B.I.G. - Hypnotize
  • 02 Missy Elliot - Get Ur Freak On
  • 03 Ll Cool J - Ain't Nobody
  • 04 Skee Lo - I Wish [radio Edit]0
  • 05 Mase - Feel So Good
  • 06 Ice Cube Ft. Mack 10 & Ms. Toi - You Can Do It
  • 07 Ol' Dirty Bastard - Got Your Money (Feat. Kelis)
  • 08 Ja Rule Ft. Case - Livin' It Up
  • 09 50 Cent - In Da Club
  • 10 . Nelly - Hot In Herre
  • 11 . Eve - Who's That Girl?
  • 12 . Chamillionaire Ft. Krayzie Bone - Ridin'
  • 13 . Busta Rhymes - Touch It
  • 14 . DMX - X Gon' Give It To Ya
  • 15 . N.O.R.E. - Nothin'
  • 16 . Bubba Sparxxx - Ugly
  • 17 . Cam'ron Ft. Laron James - Oh Boy
  • 18 . Joe Budden - Pump It Up
  • 19 . Fatman Scoop Ft. Crooklyn Clan - Be Faithful
  • 20 . MC A Lot - Baby Got Back
Disc3
  • 01 Outkast - Hey Ya!
  • 02 The Black Eyed Peas - I Gotta Feeling
  • 03 Dizzee Rascal Ft. Calvin Harris & Chrome - Dance Wiv Me
  • 04 Tinie Tempah - Pass Out
  • 05 Flo Rida Ft. T Pain - Low
  • 06 Nicki Minaj - Super Bass
  • 07 Iggy Azalea Ft. Charli XCX - Fancy
  • 08 Krept & Konan Ft. Jeremih - Freak Of The Week
  • 09 Will Smith - Switch
  • 10 Far East Movement Ft. The Cataracs & Dev - Like A G6
  • 11 Kid Cudi - Day 'N' Nite [crookers Remix / Radio Version]
  • 12 The Game Ft. 50 Cent - Hate It Or Love It
  • 13 Ludacris Ft. Shawnna - Stand Up
  • 14 Chingy - Right Thurr
  • 15 Tinchy Stryder Ft. Amelle - Never Leave You
  • 16 Professor Green Ft. Emeli Sande - Read All About It
  • 17 Diddy Dirty Money Ft. Skylar Grey - Coming Home
  • 18 Lupe Fiasco - Superstar (Feat. Matthew Santos)
  • 19 D12 Ft. Eminem - Purple Pills
  • 20 Rae Sremmurd Ft. Gucci Mane - Black Beatles
  • 21 Kendrick Lamar - Swimming Pools (Drank)

아티스트 소개 (46명)

1980년대 후반부터 흑인 음악에는 새로운 흐름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었다. 랩 음악의 급성장이었다. 런 디엠씨(Run DMC)나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와 같은 랩 음악의 선구자들은 랩이라는 생소한 음악 형태에 흑인의 생각과 느낌을 과격하고 시원하게 담아냈고, 이에 힘입어 1980년대 말 랩 음악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음악의 한 장르로 당당하게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랩 음악은 확연한 한계를... 1980년대 후반부터 흑인 음악에는 새로운 흐름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었다. 랩 음악의 급성장이었다. 런 디엠씨(Run DMC)나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와 같은 랩 음악의 선구자들은 랩이라는 생소한 음악 형태에 흑인의 생각과 느낌을 과격하고 시원하게 담아냈고, 이에 힘입어 1980년대 말 랩 음악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음악의 한 장르로 당당하게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랩 음악은 확연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며 백인들을 그 음악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랩 음악이 ‘갱스터’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진 것만 보더라도 당시 흑인 래퍼들이 얼마나 과격하게 노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엠씨 해머는 1990년대 초반 흑인의 전유물이던 랩을 인종과 세대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해머는 강력한 리듬만으로 전개되는 랩 음악에 멜로디를 추가했고, 팝 음악의 테두리 안으로 랩을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의 완화된 가사를 선택하면서 랩 음악에 상업성을 부여했다. 또한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랩 음악을 흥겨운 댄스 음악의 느낌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랩이라는 장르를 음악적으로 다듬어가면서 백인들도 좋아할 만 한 세련된 느낌을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엠씨 해머(본명: Stanley Kirk Burrell)는 1962년 3월 30일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흑인 빈민가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 팀인 오클랜드 애스레틱스(Oakland Athletics)의 속칭 볼 보이(Ball Boy)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연명하기 위해 선택한 볼 보이는 그에게 당대 최고의 래퍼로 성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클랜드 야구 팀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미국의 야구 영웅인 행크 아론(Hank Aaron)을 닮았다고 하여 아론의 애칭인 ‘해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그는 뛰어난 춤 실력으로 팀의 선수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결국 타고난 춤 꾼 엠씨 해머는 야구 선수들의 독려와 지원에 힘입어 1987년 데뷔 앨범 < Feel My Power >를 제작하게 된다. DIY 정신에 입각하여 만든 1집은 열악한 환경에서 발매된 음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댄스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 소문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결국 그는 1988년 < 캐피톨(Capitol) >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행운을 얻었고, 같은 해 소포모어 음반 < Let’s Get It Stated >를 내놓았다. 음반은 1집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뤄냈고, 이는 1990년 블록버스터 음반 < Please Hammer, Don’t Hurt ‘Em >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다. 엠씨 해머는 < Please Hammer, Don’t Hurt ‘Em >을 통해 팝 음악이 랩 음악으로 얼마나 멋지게 바뀌어 질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최대 히트 곡인 ‘You can’t touch this’는 릭 제임스(Rick James)의 곡인 ‘Superfreak’의 부분을 차용하고 있으며, 다른 히트 곡들 역시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Pray’는 프린스(Prince)의 ‘When doves cry’를 차용하고 있으며, ‘Have you seen her’역시 치 라이츠(The Chi-Lites)의 곡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당시 그의 인기는 영,미권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흑인 래퍼로서 흔치 않게 내한 공연을 성공리에 치렀으며, 이후 서태지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가요에 랩을 접목시키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어지기도 했다. 래퍼로서 팝 음악의 정상에 올라선 그는 1991년 작품 < Too Legit To Quit >부터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어 있던 M.C.를 떼어버리고 ‘Hammer’라는 이름만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앨범에서는 동명 타이틀 곡인 ‘Too Legit To Quit’가 기대했던 만큼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해머는 휴지기에 들어갔다. 복싱 프로모터와 같은 음악과 관계 없는 일에도 손을 대며 3년 여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1994년 그 동안의 휴식이 새로운 음악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며 컴백 음반 < The Funky Headhunter >를 발표했다. 갱스터 랩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여 내놓은 음반은 이전 해머의 스타일과 반대되는 강한 스타일의 음악이었고,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하지만 흥겨운 해머를 원했던 대중은 이 앨범부터 그를 외면했다. 1995년 그는 다시 이전의 팝적인 스타일로 돌아가 < Inside Out >을 발매하였지만 이전의 명성을 재현하지는 못했고, 급기야 1997년에는 파산 선고를 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해머는 < Family Affair >(1998년), < Active Duty >(2001년)를 내놓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래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
힙합 듀오 힙합 듀오
노래 : A Tribe Called Quest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드라 소울(De La Soul)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로 대표되는 하드코어 랩의 대척점에 서있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들은 마초적인 갱스터 래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흑인 영혼들을 선동할 때, 오히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힙 합의 예술화에 집착했다. 부모님들이 즐겨듣던 올드 록을 무궁무진하게 샘플링하였으며, 스피드한 비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드라 소울(De La Soul)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로 대표되는 하드코어 랩의 대척점에 서있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들은 마초적인 갱스터 래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흑인 영혼들을 선동할 때, 오히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힙 합의 예술화에 집착했다. 부모님들이 즐겨듣던 올드 록을 무궁무진하게 샘플링하였으며, 스피드한 비트를 오히려 느슨하게 몰고 갔다. 여기에 재즈를 결합시켜 힙 합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한 단계 넓혀놨다. 메시지도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여성 비하, 욕설, 성적 농담 대신 불행한 흑인들의 삶에서 벗어나자는 긍정적인 노랫말을 들려준다. 그래서 컨셔스 랩이라고 칭한다. 밴드는 뉴욕의 퀸스에서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래퍼 큐 팁(Q-Tip)과 파이프(Phife)가 고등학교 때 디제이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ad Muhammad)를 만나 1988년 조직됐다. 트리오는 1990년 데뷔작 <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 >, 1991년 2집 < The Low End Theory >를 내놓으며 얼터너티브 랩의 강자로 급 부상했다. 특히 두 번째 앨범은 힙 합 역사상 최고의 음반 중 하나로 꼽히는 걸작으로 1970년대 록과 재즈가 랩과 한데 어울리며 기막힌 크로스오버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때문에 다른 랩 가수들의 음악과 달리 높은 몰입도를 요구한다. 진보적인 음악이란 말이다. ‘Excursions’, ‘ Verses from the abstract’, ‘Show business’, ‘Jazz (we''ve got)’ 등의 트랙들이 잘 말해준다. 2년 뒤인 1993년 발표한 < Midnight Marauders > 역시 전작의 뛰어난 음악성을 고스란히 갈무리하며 플래티넘을 따내는 성공을 거뒀다. ‘Award tour''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창작력 부재 탓일까, 아니면 타성에 젖은 탓일까. < The Low End Theory >, < Midnight Marauders >에서 재즈 랩의 완벽한 구조를 확립한 삼인조는 이후 < Beats, Rhymes & Life >(1996년), < The Love Movement >(1998 >를 들고 나왔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음악성으로 이전에 비해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곧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퇴진을 의미했다. 더 이상 재즈 랩의 카테고리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트리오는 1998년 명예롭게 은퇴했다. 멋진 결정이었다.
노래 : Notorious B.I.G.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원래 폴리스의 오리지널로 유명한 ‘Every breath you take’가 1997년 여름, 랩 프로듀서 퍼프 대디에 의해 ‘I’ll be missing you’라는 제목의 힙합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곡은 나오자마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불과 3개월 전에 사망한 절친한 친구에게 그가 바치는 추모곡이라 전해지면서 그 열기가 더해져갔다. 그 배경이 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동부 힙합의 간판 랩 가수 ... 원래 폴리스의 오리지널로 유명한 ‘Every breath you take’가 1997년 여름, 랩 프로듀서 퍼프 대디에 의해 ‘I’ll be missing you’라는 제목의 힙합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곡은 나오자마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불과 3개월 전에 사망한 절친한 친구에게 그가 바치는 추모곡이라 전해지면서 그 열기가 더해져갔다. 그 배경이 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동부 힙합의 간판 랩 가수 노토리어스 B.I.G.이며, 그의 소속사 < 배드 보이 >의 수뇌인 퍼프 대디는 그 슬픈 사연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팝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퍼프 대디는 바로 여가수 메리 제이 블라이지 등 < 배드 보이 > 소속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하며 흑인음악 전문가로 비상하던 인물. 그가 노토리어스 B.I.G.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는 그 둘간의 우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 둘의 인연은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 < 업타운 >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일하던 퍼프 대디는 노토리어스 B.I.G의 데모를 우연찮게 듣게 되고, 이후 새 둥지 < 배드 보이 >를 창단하면서 자신의 보배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로 노토리어스 B.I.G를 점찍는다. 어릴 적부터 랩에 빠져버린 그의 탁월한 랩 스킬에 퍼프 대디가 완전히 녹아난 격이랄까. 총격에 의해 한순간 비운의 희생양이 된 노토리어스 B.I.G.의 죽음은 1996년 9월, 그러니까 정확히 6개월 전에 숨진 투팍 샤커와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1997년 3월 9일 소울 트레인 시상식 참석을 위해 LA를 방문했던 당시 24세의 노토리어스 B.I.G.가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쏜 총탄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그 무렵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 힙합 간의 냉전 기류는 노토리어스 B.I.G.와는 살벌한 랩 전쟁을 치른 바 있는 라이벌 투팍을 통해 널리 소개된 적 있다. 투팍에 연이은 비기의 총격 사망은 상대 진영을 헐뜯고 비방하던 랩 특유의 폭력 문화가 그 수위를 넘어서면서 급기야 죽음까지 이르게 한 치명적 상처로 남았다. 이 사건은 동서로 양분된 힙합 세계의 표면적 마찰이 그간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변질됐는지 그 심각성을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소외당한 하류층 미국 흑인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1972년 5월 21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크리스토퍼 월리스(Christopher Wallace)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노토리어스 B.I.G.는 비기 스몰스(Biggie Smalls)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음반에 표기될 때만 노토리어스 B.I.G.를 쓰며 그 외 평상시에는 비기 스몰스로 통한다. 투팍이 음반을 통해 ‘2Pac’이라는 기호로 이름을 대신하는 것과 똑같은 격이다. 험악한 인상뿐 아니라 190cm에 달하는 큰 키와 140kg 가량의 거구의 몸집을 달고 다닌 비기 스몰스는 외형상으로 전형적인 조폭 스타일의 남성이었다. 유년시절을 가난하고 불운하게 보냈고, 청소년 땐 거리의 마약 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또한 랩 가수로 성공한 뒤에도 강도 행각과 총기 소지 등 일탈 행위로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비기가 왜 갱스터 세계에서 죽어갔는지 그의 인생 스토리를 알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투팍이 늘 그랬듯이 비기 역시 폭력이 동반된 과격하고 거친 암흑 벌판에서 성장한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사실 투팍과 비교한다면 스타덤은 오히려 비기가 빨랐다. 투팍이 월드 스타로 부상하게 되는 시기가 정확히 1995년 차트 정상에 오른 4집 < Me Against The World >에 의해 시작되는데 반해, 비기는 1994년 데뷔 앨범 < Ready To Die >의 성공과 동시에 동부 힙합의 거물로 등극한다. 그 무렵 그는 고작 21세였다. 퍼프 대디가 프로듀싱한 비기의 데뷔작은 톱 40 히트를 기록한 첫 싱글 ‘Juicy’를 위시해 차트 톱 텐에 오른 ‘Big Poppa’(6위), ‘One more chance’(2위) 등 대박 싱글을 터트리며 이듬해까지 줄곧 성공가도를 내달린다. 그 결과 비기는 1995년 연말 빌보드 결산 차트에서 ’최우수 남자 가수’로 명실공히 우뚝 솟는다. 결국 비기의 흥행 실적은 마이클 잭슨의 회심작 < History >와 알 켈리의 음반에 초빙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의 친구들로 결성된 주니어 마피아(Junior M.A.F.I.A.)와 거기 출신인 여가수 릴 킴(Lil’ Kim), 그 외 여성 3인조 힙합 팀 토탈(Total)과 4인조 보컬그룹 112 등 < 배드 보이 > 패밀리의 음반 제작에 그의 랩이 종종 출연하게 됐다. 비기의 미망인이 R&B 여가수 페이스 에반스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생존 당시 투팍과 ‘악랄한 입 싸움’으로 치닫게 된 결정적 상황이 바로 투팍이 자신의 곡 ‘Hit ’em up’에서 사그리 내뱉은 “니 마누라와 잠자리를 가졌다”라는 모욕적인 발언 때문이다. 종국에 가서 그 둘은 핏물 튀기는 처절한 죽음을 맛보게 된다. 생존 당시 단 한 장의 데뷔 음반만 남기고 떠났으나 사망 직후에 유작 < Life After Death >가 출시돼 1위에 올랐고, 수록곡 ‘Mo money mo problems’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주간 정상을 지켰다. 1999년에는 미발표 트랙만 모은 < Born Again >이 발매됐고, 사후 앨범 < Life After Death >는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천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1997년 음악 잡지 < 스핀 >은 노토리어스 B.I.G.를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했고, 그 후로도 그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각종 매체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2003년 11월 음악 잡지 < 롤링스톤 >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장의 앨범’ 순위에 < Ready To Die >는 133위에 랭크됐고, 같은 해 VH 1이 선정한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 50인’ 중에 그의 위상은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렇듯 현재 그의 존재가치는 1990년대를 주름잡던 갱스터 랩의 상징적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그릴 울 때면 이제는 폴리스의 곡보다 더욱 친숙해져 버린 ‘I’ll be missing you’를 살포시 떠올리게 된다.
버지니아 태생의 미시 엘리어트는 3장의 독집 앨범을 발표한 실력파 래퍼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명성이 드높은 캐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예측불허의 펑키 리듬 위에서 느릿하게 펼쳐내는 래핑으로 독특함을 인정받고 있다. ''The rain(Supa dupa fly)'', ''Hit'' ''em wit da hee'', ''Get ur freak on'' 등의 히트곡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또한 휘트니 휴스턴(Wh... 버지니아 태생의 미시 엘리어트는 3장의 독집 앨범을 발표한 실력파 래퍼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명성이 드높은 캐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예측불허의 펑키 리듬 위에서 느릿하게 펼쳐내는 래핑으로 독특함을 인정받고 있다. ''The rain(Supa dupa fly)'', ''Hit'' ''em wit da hee'', ''Get ur freak on'' 등의 히트곡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또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iuston),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지누와인(ginuwine), 알리야(Aaliyah), 702, 릴 킴(Lil Kim), 다 브랫(Da Brat) 등의 앨범에서 곡을 쓰거나 프로듀서를 맡아 히트를 기록하며 흑인 음악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1971년 태어난 미시 엘리어트는 어머니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불행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부모님의 싸움하는 소리를 듣기 않기 위해 홀로 방안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쌓여진 노래실력은 학창시절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시스타(Sista)라는 팀에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비록 시스타에 재직하면서 앨범을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이 당시 팀발랜드(Timbaland)라는 훌륭한 프로듀서 겸 작곡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팀발랜드와 함께 엘리어트는 상기한 여러 아티스트의 프로듀싱 작업과 작곡에만 몰두하며 히트 메이커로 거듭났다. 이를 밑천으로 미시 엘리어트은 1996년 자신의 레이블 < 골드 마인드(The Gold Mind) >를 설립했고, 1년 뒤인 1997년 데뷔작 < Supa Dupa Fly >를 발표했다. 파트너 팀발랜드와 함께 완성한 음반은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풀한 감각이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끈적끈적한 느낌을 부각시켰다. ''Hit'' ''em wit da hee'', ''The rain(Supa dupa fly), ''Beep me 911'' 등의 트랙들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접할 수 있다. 이어 1999년에는 에미넴(Eminem), 아웃캐스트(Outkast), 레드맨(Redman), 릴 킴 등의 초호화 게스트가 참여한 두 번째 앨범 < Da Real World >를 내놓았고, 예의 많은 뮤지션들과 음악적 교류도 병행했다. 올해 5월 선보인 신작 < Missy E... So Addictive >에서도 미시 엘리어트의 독창적인 래핑과 힙 합 스타들의 피처링은 빛을 발한다. 인도 악기 타블라를 도입한 첫 싱글 ''Get ur freak on'', ''메소드맨과 레드맨이 협연한 ''Dog in heat'', 디스코 사운드의 ''Old school joint'' 등 색다른 시도와 미시 엘리어트 본연의 자세가 모두 담겨져 있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리듬 앤 블루스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싱글 ''Get ur freak on''도 톱 텐에 진입하는 등 순항을 하고 있다. 작곡, 작사, 프로듀서, 편곡, 싱어, 래퍼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만능 탤런트 미시 엘리어트는 분명 힙 합 신의 걸출한 스타임이 틀림없다.
노래 : Ice Cube (아이스 큐브 (힙합),O'Shea Jackson)
아이스 큐브는 영화계와 음악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뉴라인 시네마가 제작한 <프라이데이> 시리즈를 통해 시나리오, 제작, 주연을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더 플레이어스 클럽>을 통해서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첫 영화 출연작인 <보이즈 앤 후드>, 조지 클루니, 마크 윌버그와 함께 출연한 <쓰리킹즈>를 통해 타임지와 뉴스위크 등 각종 비평가 들... 아이스 큐브는 영화계와 음악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뉴라인 시네마가 제작한 <프라이데이> 시리즈를 통해 시나리오, 제작, 주연을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더 플레이어스 클럽>을 통해서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첫 영화 출연작인 <보이즈 앤 후드>, 조지 클루니, 마크 윌버그와 함께 출연한 <쓰리킹즈>를 통해 타임지와 뉴스위크 등 각종 비평가 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은 바 있으며, 2002년에는 2주연속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MGM 사의 휴먼 코미디인 <이발소>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이스 큐브는 음반업계에서도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합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는 앨범“War and Peace"로 더블 플래티넘(200만장 이상 판매), Mack-10, WC와 함께 만든 앨범인 "Bow Down"으로 플래티넘 앨범(100만장 이상판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벤자민 프로젝트>에서 제작, 시나리오, 주연의 1인 3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었다는 평을 얻었다.

[필모그래피]

트리플 X 2: 넥스트 레벨()|다리우스 스톤
쓰리킹즈(1999)|주연배우
화성의 유령들(2001)|주연배우
벤자민 프로젝트(2002)|주연배우
우리 아직도 하고 있니?(2007)|주연배우
더 롱샷(2008)|주연배우
퍼스트 선데이(2008)|주연배우
노래 : 50 Cent (피프티 센트,Curtis James Jackson III)
새 천년 갱스터 랩 씬은 불세출의 신인 래퍼 50센트(커티스 잭슨)에 의해 실로 오랜만에 전성시대를 구축했다. 투팍(2Pac)과 비기(Biggie) 사후, 사양 산업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하드코어 갱스터 힙합의 재건은 닥터 드레와 에미넴의 막강 브랜드가 발굴한 50센트로부터 나왔다.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정상에 우뚝 선 1집 앨범 < Get Rich Or Die Tryin’ >(2003)은 그 해 가장 많은 판... 새 천년 갱스터 랩 씬은 불세출의 신인 래퍼 50센트(커티스 잭슨)에 의해 실로 오랜만에 전성시대를 구축했다. 투팍(2Pac)과 비기(Biggie) 사후, 사양 산업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하드코어 갱스터 힙합의 재건은 닥터 드레와 에미넴의 막강 브랜드가 발굴한 50센트로부터 나왔다.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정상에 우뚝 선 1집 앨범 < Get Rich Or Die Tryin’ >(2003)은 그 해 가장 많은 판매량을 거뒀고, 유수의 음악 매체로부터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100만 장 넘게 팔려나간 수치만 봐도 현지에서 50센트의 광풍이 폭발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무렵 미국 언론은 “노토리어스 BIG의 성공(1994년 여름 차트 석권) 이래, 10년 만에 등장한 가장 투쟁적인 갱스터 랩 신병”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올해 초 출시된 2집 < The Massacre >는 차트 정상에 등극, 그에게 상반기 최고의 팝 스타덤을 안겨다줬다. 또 얼마 전에는 넘버원 싱글 ‘Candy shop’ 등 무려 4곡을 동시 빌보드 차트 톱 10에 올려놓으며 기염을 토했다. 그것은 비틀스 이후 무려 40년만의 기록으로 50센트는 이제 힙합 역사를 다시 쓴 새로운 랩 영웅이 됐다. 힙합 크루 지 유닛(G-Unit)의 리더이기도 한 50센트는 전직 마약상(Hustler)에서 래퍼로 변신해 기적과 같은 성공신화를 창조했다. 1976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고 세상에 나올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는 없었다. 그가 여덟 살 때 마약상으로 일하던 23세 어머니마저 거리에서 죽어갔다. 그 후 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했고, 청소년 시절엔 가업을 이어받아 그 역시 마약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와중에 동네에선 그의 랩 스킬을 모를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마 래퍼’로 유명세를 탔다고 전해진다. 한때 거리의 불량청년이던 50센트가 불행했던 운명을 뒤바꾸고 백만장자 랩 가수로 성공한 이 수수께끼 같은 실화를 믿어도 될까. 시사주간지 는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고등학교 학력인정시험을 통과했고, 아들을 얻었으며, 래퍼가 되리라 결심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그는 케이알에스-원(래퍼)의 재치있는 정치적 가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데뷔 직전에는 2002년 사망한 DJ 잼 마스터 제이로부터 랩 트레이닝을 익혔다. 1999년 콜롬비아 레코드와 극적으로 계약을 따냈고, 이후 무려 9발의 총상(9mm 총탄이 얼굴과 손에 한발, 7발은 다리를 관통)을 당했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당시 병상 신세를 져 사는 앨범 발매를 취소하기도 했다. 험악한 인상(조폭 수준)과 단단한 근육질은 그가 스타덤을 만끽하기 이전까지의 이력을 잘 말해준다. 그것은 유년시절부터 배운 것이라곤 ‘약질’과 ‘총질’ 밖에 없던 그가 왜 공격적인 갱스터 랩을 노래하는지에 관한 답변이다. 그의 노래에는 도심부 빈민가의 욕망과 폭력, 복수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사건으로 한동한 살벌한 랩 전쟁을 치른 바 있는 자 룰(Ja Rule)과의 불화를 빼놓을 수 없다. 거칠고 과격한 갱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50센트의 음악이 수백만 미국인에게 환영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 자신의 인생 경험을 소재로 쓴 랩 가사는 미국사회의 소외 계층과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방법론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사실 50센트에겐 여성 팬들이 의외로 많다. 갱스터 이미지를 구사하면서도 이와는 상반대는 달콤한 사랑(여성 취향)을 속삭이는 노랫말이 주류를 이룬 까닭이다. 뮤직비디오만 봐도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흑인 글래머 여성들이 그를 둘러싸고는 로맨틱 무드를 연출한다. 50센트의 삶과 음악이 지닌 양면성이랄까. 지난 한해 동안 50센트는 2490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여 전체 팝 아티스트 소득 순위에서 19위에 랭크됐다. 이는 랩 가수 중 제이 지(20위)와 에미넴(30위), 퍼프 대디(41위), 닥터 드레(44위), 아웃캐스트(47위)를 따돌린 최고 순위였다. 단돈 50센트의 가치가 수천만 달러는 족히 넘는다는 이 아이러니가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이제 그는 ‘남성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노래 : DMX (디엠엑스)
노래 : Nelly (넬리 (힙합 보컬, 랩))
< 새로운 랩 스타 넬리 > 백인 래퍼 에미넴에게 눌린 흑인 랩 진영이 넬리(Nelly)라는 새 얼굴로부터 주도권 탈환의 돌파구를 찾는다. 대중적 스타가 절실한 상황에서 유쾌한 랩을 구사하는 넬리는 실로 흑인 랩의 희망이다. 올 21살로 갓 데뷔한 신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재 히트퍼레이드는 찬란하다. 앨범은 순식간에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R&B 힙합 차트는 이미 정복했으며... < 새로운 랩 스타 넬리 > 백인 래퍼 에미넴에게 눌린 흑인 랩 진영이 넬리(Nelly)라는 새 얼굴로부터 주도권 탈환의 돌파구를 찾는다. 대중적 스타가 절실한 상황에서 유쾌한 랩을 구사하는 넬리는 실로 흑인 랩의 희망이다. 올 21살로 갓 데뷔한 신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재 히트퍼레이드는 찬란하다. 앨범은 순식간에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R&B 힙합 차트는 이미 정복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매력적인 곡 ''Country grammar''은 팝 싱글로도 맹위를 떨쳐 막 톱10에 진입했다. 특히 이 곡의 ''다운다운 베이비, 붕붕 베이비''하는 부분은 마치 자장가처럼 귀에 잘 들어와 미국 전역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는 소식. 라디오와 뮤직비디오의 힘을 빌기 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히트한 자생적 스매시 히트곡은 ''Country grammar''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Ride with it'' 그리고 ''E.I.''와 같은 곡도 근래 하드코어 랩이 판치는 상황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재미와 친근함을 내뿜고있다. 하지만 넬리는 "갱스타 랩이 아닌 듯 하지만 그러나 분명 갱스타 랩이다. 팝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난 어려운 스타일도 하지 않는다"며 ''중도노선''을 확실히 하고 있다. 뉴욕이나 LA가 아닌 미국 남부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란 것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스스로도 세인트루이스 사람임을 자랑스레 내세워 현재 몸담고 있는 그룹명도 세인트 루내틱(내년에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함)이며 앨범에는 ''St. Louie''란 제목의 곡도 수록되어있다. 언어 역시 세인트루이스 방언을 고집해 지방색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지역문화창달''의 선봉인 셈이다. 넬리가 과연 타이틀처럼 ''시골문법''으로 에미넴 파고를 넘을지 관심을 모은다.
노래 : Outkast (아웃캐스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드레(Dre)와 빅 보이(Big Boi)에 의해 탄생된 팀. 그들은 그룹을 결성하기 전부터 서로 랩 배틀을 벌이며 차곡차곡 실력을 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듀오의 잠재력은 TLC와 엔 보그(En Vogue)의 프로듀서로 명망이 드높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se)의 눈에 띠게 됐고,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 에이 리드(L.A. Reid)가 세운 < 라페이스(LaFace) > 레이블과의 앨범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친구의 승승장구는 시작됐다. 1994년 그들의 데뷔 싱글 ''Player''s Ball''은 빌보드 랩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해 공개된 데뷔작 <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도 플래티넘을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1996년 소포모어 앨범 < ATLiens >, 1998년 3집 < Aquemini > 역시 모두 사이좋게 차트 2위에 랭크되었고, 당연하게 백 만장을 돌파했다. ''Elevators (me and you)'', ''Two dope boyz (in a cadillac)'', ''Atliens'', ''Rosa parks'', ''Chonkyfire'' 등이 히트 행진을 벌였다. 아웃캐스트는 지난해 내놓은 네 번째 음반 < Stankonia >을 또다시 앨범 차트 2위에 올려놓으며 힙 합 팬들의 끊임없는 애정에 화답했다. 아직도 차트에 머물려 삼 백 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은 듀오의 실험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속사포처럼 매우 빠르게 내리꽂는 그들의 래핑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B.O.B.'',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신선하고 독특한 ''So fresh, so clean'' 등이 대표적이다.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Ms. Jackson''은 아웃캐스트의 음악 본령이다. 단지 힙 합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2000년에 발표된 모든 팝 앨범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요즘 백인 악동 에미넴(Eminem)이 힙 합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지만, 힙 합의 주인은 역시 흑인이라는 것을 아웃캐스트는 뛰어난 음악으로서 증명하고 있다.
노래 : The Black Eyed Peas (블랙 아이드 피스)
노래 : Dizzee Rascal (디지 라스칼,Dylan Kwabena Mills)
노래 : Nicki Minaj (니키 미나즈,Onika Tanya Maraj)
노래 : Iggy Azalea (이기 아젤리아)
Iggy Azalea는 제2의 레이디 가가, 백인 니키 미나즈, 그웬 스테파니의 래퍼 버전 등 각종 수식어와 함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호주 출신 여성 랩퍼 겸 모델이다. Iggy Azalea는 제2의 레이디 가가, 백인 니키 미나즈, 그웬 스테파니의 래퍼 버전 등 각종 수식어와 함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호주 출신 여성 랩퍼 겸 모델이다.
노래 : Arrested Development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을 세상에 던져 놓고 전설이 된 애틀랜타 출신의 인텔리전트 랩 그룹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를 언급하기에 앞서 이들의 데뷔 시점인 1992년 미국의 힙 합 필드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92년 랩 계는 ‘갱스터 패러다이스’였다. 왜 흑인들은 백인보다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흑인 래퍼들은 강경한 어조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리로 나와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친구들을...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을 세상에 던져 놓고 전설이 된 애틀랜타 출신의 인텔리전트 랩 그룹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를 언급하기에 앞서 이들의 데뷔 시점인 1992년 미국의 힙 합 필드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92년 랩 계는 ‘갱스터 패러다이스’였다. 왜 흑인들은 백인보다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흑인 래퍼들은 강경한 어조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리로 나와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친구들을 선동했고, 백인들에 대한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래퍼 스스로가 갱스터였고, 갱스터는 래퍼가 되었다. 닥터 드레(Dr Dre)의 < The Chronic >를 비롯하여, 아이티 티(Ice T)의 < Body Count >, 게토 보이스(Geto Boys)의 < Uncut Dope: Geto Boys'' Best >, 아이스 큐브(Ice Cube)의 < The Predator > 등 화약 냄새와 욕설로 무장한 갱스터 랩 음반들이 1992년 게토의 무거운 풍경을 대변해줬다. 하지만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갱스터 랩의 홍수 속에서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는 ‘평화의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그들은 아프로 아메리칸의 장점을 이야기했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 영혼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위로하며 보듬었다. 희망과 용기의 울림이었다. 음악 역시 소울, 리듬 앤 블루스, 펑크(Funk), 그리고 심지어 컨트리까지 흡수하여 부드럽고 깨끗한 랩 스타일을 선보였다. 당시 무섭게 내뱉는 주류 랩 스타일이었던 갱스터 랩의 얼터너티브였다.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는 1988년 애틀랜타 예술 학교에 다니던 보컬리스트 스피치(Speech)와 디제이 헤드라이너(DJ Headliner)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특히 스피치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 밀워키 커뮤니티 저널(Milwaukee Community Journal) >이라는 지역 신문을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흑인들의 미래와 자주권에 관한 칼럼을 쓰던 인물로 그룹의 이데올로기를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듀오는 곧 얼 태리(Aerle Taree, 보컬, 의상 디자이너), 몽쇼 에쉐(Montsho Eshe, 댄서), 라사 돈(Rasa Don, 드럼), 디온 페리스(Dionne Farris, 보컬)를 맞아들여 완벽한 짜임새를 갖췄다. 그들은 또한 희망의 날갯짓이 도중에 꺾이지 않도록 뒤에서 힘을 실어줄 정신적 지도자인 예순 두 살의 바바 오제(Baba Oje)를 초빙하여 사상적으로 안정감을 뿌리내렸다. 바바 오제는 스피치가 마련한 이론적 토대 위에 흑인들의 혼을 심는 주술사 역할을 했다. 이런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애티튜드는 1992년에 발표된 데뷔작 < 3 Years, 5 Months And 2 Days In The Life Of...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룹 결성 후 3년 5개월 2일 만에 음반을 발표한다는 뜻의 타이틀을 가진 이 작품은 길거리 노숙자에 대한 ‘Mr. wendal'', 여자 없이는 혁명도 없다며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Mama''s always on stage'' 등 흑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빈부 격차, 여성 비하 등을 꼬집었다. 이는 갱스터 랩과의 차별화를 가져오며 400만장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했다. ‘Tennessee''(6위), ‘Mr. wendal''(6위), ‘People everyday''(8위) 등의 히트곡을 토해낸 이 앨범으로 그들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랩 듀오/그룹 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이 같은 인기의 바람을 타고 그룹은 1993년 랩 아티스트 최초로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펼쳤고, < Unplugged >라는 제목으로 음반도 공개했다. 멤버들 서로가 ‘패밀리’로 묶여져있던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는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서서히 추락했다. 1994년 보컬리스트 디온 페리스가 독립선언을 하며 틈이 생겼고, 그 해 나디라(Nadriah, 보컬)를 포함한 새 구성원들을 맞아들여 내놓은 두 번째 작품 < Zingalamaduni >이 부진을 겪으며 완전히 갈라졌다. 결국 1996년 프론트 맨 스피치가 희망을 저버리고 솔로로 나서며 밴드는 날개를 접었다. 비록 어레스티브 디벨롭먼트는 ‘패밀리 비즈니스’에 실패하여 몰락했지만, 그들이 갱스터들의 무법 천지 속에서 쏘아 올린 희망의 빛은 3년 5개월 2일이 아니라 영원토록 게토를 환하게 비출 것이다.
워렌 지는 미국 서부 갱스터(gangsta) 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드레의 이복 동생이기도 한 그는 닥터 드레, 스눕 독을 도와 ‘지 펑크(G-Funk)’라는 혁신적인 랩 스타일을 완성시켰으며, 지 펑크 시대를 열게 한 일등공신이다. 1992년 닥터 드레의 기념비적 앨범 < The Chronic >과 함께 탄생한 지 펑크는 느릿느릿한 래핑에 부드러운 그루브와 신서사이저, 둔중한 베이스 연주... 워렌 지는 미국 서부 갱스터(gangsta) 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드레의 이복 동생이기도 한 그는 닥터 드레, 스눕 독을 도와 ‘지 펑크(G-Funk)’라는 혁신적인 랩 스타일을 완성시켰으며, 지 펑크 시대를 열게 한 일등공신이다. 1992년 닥터 드레의 기념비적 앨범 < The Chronic >과 함께 탄생한 지 펑크는 느릿느릿한 래핑에 부드러운 그루브와 신서사이저, 둔중한 베이스 연주를 특징으로 한 랩 스타일. 조지 클린턴의 팔러먼트와 펑카델릭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지 펑크는 90년대 내내 랩 진영에서 물결쳤다. 그러한 지 펑크 군단의 창단멤버 격인 워렌 지(Warren Griffin III)는 닥터 드레의 앨범 < The Chronic >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닥터 드레에게 스눕 독을 소개시켜줘서 스눕 독을 먼저 데뷔시켰다. 얼마 후 워렌 지 역시 자신의 데뷔작을 내놓았고, 계속해서 래퍼와 프로듀서로서 수준급의 앨범을 발표하며 모범적인 음악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1971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서 태어난 워렌 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소유했던 재즈, 소울, 펑크 음반들을 들으며 자랐다. 그가 랩을 시작한 건 10대 중반. 친구였던 네이트 독, 스눕 독과 함께 그는 213이란 랩 그룹을 조직해 < V.I.P. >레코드 가게 등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 셋은 모두 감방에 가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감옥 안에서 음악 을 직업으로 삼기로 정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워렌 지는 스눕 독과 닥터 드레의 역사적 만남을 성사시킨다. 이로써 이 세 명의 래퍼는 지 펑크 탄생의 산 증인이자 창시자가 된다. 닥터 드레와 스눕 독의 데뷔 앨범에 곡을 써서 주목받게 된 워렌 지는 이후에도 미스터 그림의 ‘Indo smoke’, 투팍(2Pac)의 ‘Definition of a thug’ 같은 곡을 쓰고 프로듀스했다. 남의 앨범만 도와주던 그는 1994년에야 겨우 자신의 데뷔앨범 < Regulate...G Funk Era >를 발표했다. 시종일관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전하는 이 앨범에서는 ‘Regulate’와 ‘This DJ’가 크게 히트했다. 앨범은 4백만 장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고, 워렌 지는 이듬해 < 그래미 >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3년 뒤 1997년에는 두 번째 앨범 < Take A Look Over Your Shoulder >을 발표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하여 그리 점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밥 말리의 명곡이며 에릭 클랩튼의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I shot the sheriff’가 그나마 그의 존재를 유지시켰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던 워렌 지는 1999년 3집 < I Want It All >으로 돌아왔다. < 지 펑크 뮤직 >였던 자신의 레이블 이름을 < 지 펑크 밀레니엄 2000 >으로 개명한 후 발표한 그 앨범은 그의 모든 재능을 유감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톱 텐 히트를 기록한 ‘I want it all’을 비롯해, 베스트 프렌드 스눕 독이 우정출연한 ‘You never know’, 네이트 독과 커럽트, RBX가 피처링한 ‘Gangsta love’ 등에서 보여주는 멜로딕한 진행과 나른한 래핑, 진한 그루브, 감미로운 하모니는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워렌 지만이 할 수 있는 고급의 능력이었으며, 그는 그 앨범으로 전작의 실패를 가뿐히 만회했다. 비록 워낙 거물인 닥터 드레와 스눕 독 때문에 다소 빛이 가린 듯한 느낌이지만, 워렌 지는 갱스터 랩계에서 아니 미국 힙합 진영을 모두를 포함해서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대표급 뮤지션이다. 래퍼이자 프로듀서, 또 음반사 대표로 활동중인 그는 갱스터 래퍼 중에서는 드물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노래 : Snoop Lion (Snoop Dogg) (스눕 라이언 (스눕 독),Snoop Doggy Dogg / Snoopzilla)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의 부활을 위한 ''최후의 만찬'' 한동안 물밑으로 잠행했던 미국 서부의 랩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선봉은 닥터 드레. 웨스트 코스트 랩의 대부 격인 그는 1999년말 < Chronic 2001 >을 출시하며 명가 재건에 앞장섰다. 또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에미넴(Eminem)이 ''카메오''로 초빙되어 효과만점의 홍보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덕분에 잊혀질 뻔했...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의 부활을 위한 ''최후의 만찬'' 한동안 물밑으로 잠행했던 미국 서부의 랩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선봉은 닥터 드레. 웨스트 코스트 랩의 대부 격인 그는 1999년말 < Chronic 2001 >을 출시하며 명가 재건에 앞장섰다. 또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에미넴(Eminem)이 ''카메오''로 초빙되어 효과만점의 홍보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덕분에 잊혀질 뻔했던 서부 진영의 랩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여기에 ''돌아온 탕아'' 스눕 도기 독이 가세했다. 한때 닥터 드레의 보호 밖에 있었던 스눕 독은 다시 드레와의 찰떡궁합을 이루며 자존심 회복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스눕 도기 독의 느릿느릿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라이밍은 확실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특히 대선배인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속사포 같은 강성 랩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동·서부의 스타일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스눕 독은 그 스타일을 좀더 발전시켜 닥터 드레와 함께 독특한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Gangsta) 랩의 형식을 완성시켰다. 또한 그는 ''갱스터''라는 본래의 의미를 직접 실천(?)해서 더욱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이론과 실재를 겸비한 이상(理想)적 래퍼. 본명이 캘빈 브로더스(Calvin Broadus)인 스눕 독은 1972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장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자라면서 그는 종종 말썽을 일으켰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급기야 코카인 소지죄로 체포되었다. 결국 감옥을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지만 바로 거기서 스눕 독은 음악의 꿈을 키웠다. 전화위복이라고 감옥 안에서의 음악은 그의 삶을 바꿨다. 출소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와 함께 한 친구가 닥터 드레의 이복동생인 워렌 지(Warren G)였다. 워렌 지는 스눕 독의 테이프를 드레에게 추천했고, 서로에게 감명 받은 그 둘은 함께 이른바 지-펑크(G-Funk)이라는 신기원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1992년 ''Deep Cover''가 그들의 첫 협연작으로 발표되어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얼마 후 스눕 독은 닥터 드레의 기념비적 앨범 < The Chronic >(1992)을 통해 음악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앨범의 최대히트곡 ''Nuthin'' But A ''G'' Thang''을 작곡했던 스눕 독은 자신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전에 이미 스타가 되었다. 닥터 드레가 프로듀서로 총지휘한 스눕 독의 데뷔앨범 < Doggystyle >은 이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대중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이 데뷔작의 발매 직전, 극적이게도 스눕 독이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탄 그의 보디가드가 갱단의 일원을 쐈다는 것. 그 때문에 앨범은 한참 뒤 출시되었고, 예상대로 차트정상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스눕 독은 살인혐의로 3년 동안 괴로운 법정공방을 감수해야했다. 스눕 독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갱스터 랩 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살벌한 동네다. 이 곳은 단순히 음악이라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아니다. 레이블마다 범죄조직들과의 검은 커넥션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총격전''도 불사하는 데가 바로 이 집단이다. 그 대표적 레이블이 닥터 드레, 스눕 독, 투팍(2Pac) 등이 소속돼 있던 < 데쓰 로(Death Row) >다. 이 레이블의 사장인 서지 나이트(Suge Knight)는 ''폭력경영''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 잔인성은 백인 래퍼 바닐라 아이스와의 계약협상과정에서 확인된다. 바닐라 아이스는 서지 나이트 일파에게 옥상 밖으로 거꾸로 발목이 매달린 채 계약을 강요당했다. 이처럼 서지 나이트는 레이블 산하의 뮤지션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다른 레이블에도 추악한 짓을 했다. 투팍과 노토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죽음을 몰고 왔던, 그 유명한 이스트 코스트 대 웨스트 코스트 전쟁도 그가 주도적으로 개입한 사건이었다. 이러니 소속 뮤지션들이 견뎌낼 리 없다. 결국 < 데쓰 로 >의 주력스타였던 닥터 드레가 레이블을 떠났고, 뒤이어 ''갱스터'' 스눕 독마저 ''안전''을 찾아 또 다른 실력자 마스터 피(Master P)의 < 노 리미트(No Limit) > 레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들이 확립한 지-펑크도 하향길로 접어들게 된다. 웨스트 코스트의 환상적 드림팀 - 닥터 드레, 스눕 독 그리고 에미넴 닥터 드레와 스눕 독의 콤비플레이는 각자가 딴살림을 차리자 중지되었다. 드레는 자신의 레이블 < 애프터매쓰(Aftermath) >를 차렸지만 자신의 솔로활동에는 신중을 기했다. 스눕 독은 < 노 리미트 >에서 2장의 앨범을 연속적으로 출시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옛 공적에 흠집만 남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생관계였던 것이다. 자연히 관계가 단절되자 힘을 잃어갔다. 서부 진영의 두 거목이 주춤하는 사이 무척이나 버릇없고 불량해 보이는 한 백인 래퍼가 막강한 신진세력으로 등장했다. 바로 닥터 드레가 발굴해낸 에미넴이었다. 백인 랩의 희망으로 떠오른 에미넴은 다소 의기소침해진 그들에게 소생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결국 닥터 드레는 < Chronic 2001 > 앨범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엔 스눕 독 차례다. 작년 12월에 출시된 스눕 독의 < Tha Last Meal >은 드레와 스눕 독이 부분적으로 재결합한 앨범이다. 드레가 프로듀스를 맡은 세 곡 ''Hennesey n Buddah'', ''True lies'', ''Lay low''는 단번에 그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베이스의 그루브가 탁월하다. 신진 프로듀서들이 제작한 나머지 곡들도 드레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긴 하지만 근래에 듣기 힘든 수작들이다. 스눕 독은 에미넴의 공헌을 인정하고, 그에게도 형제애를 느끼는 것 같다. 최근 록 잡지 < 롤링스톤 >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드레와 에미넴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그는 자신들을 농구팀에 빗대면서, "우리는 힙합계의 LA 레이커스다. 닥터 드레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센터이며, 샤킬 오닐로 통한다. 난 코비 브라이언트 역할을 한다. 에미넴은 파워 포워드다. … 그가 파워 포워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파워풀한 래퍼이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히 파워 포워드"라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했다. 스눕 독은 이번 앨범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것 같다. 앨범도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는 이 앨범을 끝으로 < 노 리미트 > 레이블과도 결별한다. 그래서 제목도 < Tha Last Meal >이다. 그의 종착역은 닥터 드레의 < 애프터매쓰 >가 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래야 그 둘이 연정이 아니라 완전한 공조를 이루는 완벽한 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새로운 시작은 충분히 기대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신보는 결별과 동시에 새로운 부흥을 위한 ''최후의 만찬''이다.
노래 : Public Enemy (퍼블릭 에너미)
지난 91년 11월 한 흑인이 한국교포를 경멸하는 노래를 발표했다해서 커다란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랩 가수 아이스 큐브의 노래 ‘블랙 코리아’가 문제의 곡이었는데, 우리 언론은 분노와 원색적인 규탄으로 그와 흑인 랩 뮤직 풍토를 공격했다. 언론의 애국적 시각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랩과 관련한 흑인 정서의 본질이나 랩 자체의 성격은 다소 접어둔 채 흥분된 논조로 일관해 씁쓸한 맛도 없지 않았다. ‘블랙 코리아’... 지난 91년 11월 한 흑인이 한국교포를 경멸하는 노래를 발표했다해서 커다란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랩 가수 아이스 큐브의 노래 ‘블랙 코리아’가 문제의 곡이었는데, 우리 언론은 분노와 원색적인 규탄으로 그와 흑인 랩 뮤직 풍토를 공격했다. 언론의 애국적 시각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랩과 관련한 흑인 정서의 본질이나 랩 자체의 성격은 다소 접어둔 채 흥분된 논조로 일관해 씁쓸한 맛도 없지 않았다. ‘블랙 코리아’ 사태에 대한 객관적 파악을 기하기 위해선 우선 랩 뮤직의 특성을 이해해야한다. 랩은 흔히 흑인의 거리음악으로, 그에 맞춰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춤’ 음악의 최신형 정도로나 알려져 있다. 물론 랩은 70년대 후반 디스크 자키들에 의해 개발되어 일반인들에게 급속히 퍼져나간 흑인의 댄스음악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의미하게 지껄이는 게 아니라 그 노랫말에는 흑인들의 빈곤, 약물 및 폭력에 대한 반발, 흑인의 자부심 고취 등 일련의 사회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 흑인들은 랩으로 자신들의 현실을 노래한다. 랩은 오락성 춤음악이 아니라 흑인의 시각을 반영하는 도구이자 비판 및 욕구의 분출구가 되는 셈이다. 아이스 큐브의 블랙 코리아는 이같은 랩이 지닌 ‘현실 반영’의 기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특정 국가를 들먹여 매도하는 극단적 정서의 표출이 비판의 표적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랩을 하는 랩퍼 가운데는 따라서 정치의식이 강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런 DMC, 빅 대디 케인, 커티스 블로우, 퀸 라티파, 아프리카 밤바타 등등, 아이스 큐브도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문의 1등에 관한 한 이들은 모두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라는 그룹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아니, 모든 장르를 통틀어 따져도 과격하고 호전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감히 따를 자는 없다. 88년 이들의 두 번째 앨범 < 우릴 저지하려면 수백만 국민이 있어야 한다(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는 < 빌리지 보이스 >지가 실시한 전국 비평가 설문 조사에서 트레이시 채프먼의 데뷔작을 누르고 당당 1위를 차지했다. ‘혁명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혁명에 대해 랩하는 것’이 우월(?)했음이 입증되었다. 깊이 들어갈 것도 없이 자신들의 급진성이 뻔히 백인들로부터 미움살 것을 알면서도 그룹 이름을 ‘공적(公敵)’으로 붙여 놓은 대담함을 보라. 이 그룹의 멤버이자 공보처장관(Minister of Information)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는 프로페서 그리프는 88년 5월 런던의 한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이렇게 공언한다. “백인은 모두 살인자다. 명심하라! 대학살은 누가 저질렀는가? 히로시마에는 누가 원폭을 떨어뜨렸는가?” 리더인 척크 디(화제의 인물이다)의 발언 또한 같은 헤비급이다. “내가 흑인이라고 해서 매스컴은 우릴 반(反)화이트인 양 다루고 있지만 그건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붙잡기 시작하니까 함께하지 못하도록 흐트러뜨리려는 술책이다. 그런 사기를 믿지 말라!” 이들의 노래는 무시무시하다. 척크 디 스스로가 인정하듯(“내가 뭔가 전할 때 어떤 사람들은 벌벌 떤다”) 폭탄보다 더 요란하게 공포와 스릴을 뿌린다. ‘가사는 반항이지. ... 난 CIA와 FBI에 랩하는 거야.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죄다 거짓이야. 내가 그 얘기할 때 그들은 겁먹지. 왜냐하면 나는 폭탄보다 더 요란하니까.’ ‘폭탄보다 요란한(Louder than Bomb)’ 퍼블릭 에니미는 자신들을 가리켜 ‘마인드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이를 제목으로 한 노래도 갖고 있는데, 주제 파악(?)에 있어 현명하다. 심지어 이들은 흑인들이 테러 성채로 입성할 것을 권유하는 등 흑인 총궐기를 제창하기도 했다. ‘인생을 통하여 난 생생한 파울에 으르렁거리지. 뼛속 깊이 나의 집이 너의 집이야. 자, 테러 성채로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하위의 테러는 실수로 촉발되는 거야. ... 모든 형제가 형제는 아니야. 흑인의 손이 말콤 X 그분을 목죄었고 휴이 뉴튼의 사살도 방아쇠를 당긴 건 흑인이지 않은가.’ ‘테러 성채로 와요(Welcome to the Terrordome)’ 이 곡은 싱글로 발표돼 크게 히트했는데, ‘하위의 테러는 실수로 촉발된다’는 구절과 관련, 프로페서 그리프의 반(反)유대 발언이 터져나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척크 디에 따르면 문제가 된 구절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얘기를 부풀려 말하는 언론의 공격에 대한 하나의 대응이며 뒷부분을 들어 유태인이 아니라 오히려 흑인을 비판한 것이라 해서 파문은 진정됐지만 이들의 급진성은 많은 사람들의 뇔 속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너무 전투적이라는 지적은 고사하고 ‘블랙 나치’라는 제도권의 거센 비판이 뒤따랐다. 이 과격한 퍼블릭 에니미를 이야기할 때 피해 지나갈 수 없는 인물과 조직은 루이스 퍼러칸과 ‘블랙 머슬림’이다. 검은 회교도를 뜻하는 이 조직은 30년대에 패드라는 흑인 행상인에 의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종교단체로그의 사후에는 엘라이어 모하메드 목사에 의해 계승되며 50년대에는 말콤 X가 가입, 세가 크게 늘어난다. 복싱영웅 케시어스 클레이가 그 교도가 되어 모하메드 알리로 개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블랙 머슬림 운동은 법 아래 평등한 정의를 부르짖는 흑인의 자유요구였지만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공민권 운동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배타적 흑인 지상주의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무력을 긍정하는’ 꽤 과격한 이념이다. 현 블랙 머슬림의 지도자가 바로 루이스 퍼러칸이다. 퍼블릭 에니미는 ‘그 사기를 믿지 마(Don’t Believe the Hype)’라는 노래에서 퍼러칸의 추종자라고 밝히고 있으며 실제로 프로페서 그리프는 이 단체의 정식 교도이기도 하다. 그리프의 철학은 퍼러칸을 꼭 닮아 유달리 백인에 대한 공격성이 두드러진다. 또하나의 예를 들면 그는 88년 영국의 페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백인의 심장은 완전히 식어 있다. 놈들은 사기치고 살인을 일삼고 있다. 그게 놈들의 본질인 것이다. 백인은 이 지구상에서 일등 살인자다”라고 말했다. 살벌 그 자체다. 그러나 그리프의 이념이 퍼블릭 에니미의 이념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척크 디가 주축이 되어 미국 뉴욕 롱 아일랜드 소재의 아델피대학 시절 결성된 이 그룹이 내건 기치는 원색적 백인 공격은 절대 아니며 흑인의 자부심을 일깨우자는 것이었다. 라이커스섬 수용소에서 갖은 공연(공연장소부터 유별나다)에서 척크 디는 “우리의 필생의 목표는 백인지배의 혼란에서 빠져나와 우리 아들딸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책임지는 것”이라며 “그에 앞서 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5천 명의 미래 흑인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천명했다. 3집 은반인 < 흑인 행성의 공포(Fear of a Black Planet) >의 속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블랙 파워는 흑인 인종을 말살하려는 전세계적인 음모에 대항하려는 ‘자기 방어’의 집합적 수단이다.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단결해야 우린 튼튼하게 설 수 있다.” 블랙 파워의 선언은 곧 흑인 현실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퍼블릭 에니미가 파악한 흑인을 둘러싼 현실은 제도적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 파워엘리트에 의한 약자 통치 등 체제 그 자체가 가져다준 것이며 보다 범위를 좁히면 주거비 삭감을 강행하여 무주택자를 늘게한 보수적 레이거노믹스가 된다.(이러한 부조리를 송두리째 떠안은 부시의 시대에 와서 결국은 흑인 폭동이 발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흑인 자부심 고취는 노골적으로 또는 보이지 않게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백인들의 압제에 대항하는 ‘방어적’ 개념이지 도발적 개념은 아니다. 이들 노래에는 큰 것에서부터 자그마한 것에까지 흑인이 겪는 갖가지 고통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오래 전 911 다이얼을 돌렸지. 그들이 얼마나 늦게 도착하는지 알지? 그들은 원할 때만 오지. 그래서 시체 트럭이 와서 시체를 방부해가면 그만이야. 어쨌든 봉급은 받으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지.’ ‘911은 웃음거리(911 is a joke)’ 여기서 911은 구급차를 부르는 번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흑인층 거주지역에는 구급차가 좀처럼 와주지를 않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트레이시 채프먼도 이를 다룬 노래를 부른 바 있다. 표면상의 차별은 예전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차별’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똑똑한 흑인이 영화 속에서는 무지한 것으로 비쳐지지. 농장의 노예역이 아니면 노예 마누라가 할 수 있는 전부야. 판사역, 그건 불가능하고 제미마 아줌마가 완벽한 캐스팅이지. 스파이크 리처럼 우리의 영화를 만들자구. ‘불태우자 할리우드를!(Burn Hollywood Burn)’ 흑인들이 상층이동의 한 방식으로 자주 진출하는 곳이 연예계인데, 실제로는 노예, 범인 등 부정적인 역할만이 주어지는 할리우드의 인종 차별을 꼬집는 노래다. 이 곡에는 우리에게 최고스타(?)인 아이스 큐브가 참여, 눈길을 끈다. ‘혁명화를 위해 변화를 일으켜야지. 이상할 것 없어. 사람은 보통 같다고들 하지. 아냐, 우린 같지 않아. 게임을 알지 못하거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각이야. 부주의하면 안돼. ...엘비스 프레슬리는 많은 이들에게 영웅이지. 그러나 우리에겐 무의미한 존재야.’ ‘파워와 싸우라(Fight the Power)’ 인상 깊은 소절은 엘비스 관련 부분. 일반인들에게 엘비스는 백인음악 컨츄리와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를 결합해 소화해낸 록큰롤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흑인에게는 ‘블랙 뮤직을 훔친 자’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흑인이 그에게 품고있는 혐오감을 노래로 대변한 것이다. 엘비스의 변함없는 위세는 바로 백인이 누리는 기득권이며 퍼블릭 에니미는 이를 파워로 표현, 그와 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노래는 논란을 일으켰던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에 대대적으로 피처되어 화제를 불렀다. 영화 자체가 블랙 파워를 그린 ‘불’인데, 거기에 퍼블릭 에니미의 노래라는 ‘기름’을 퍼부은 격이었으니 오죽했으랴. 더구나 이 곡은 프로페서 그리프의 반(反)유대 발언이 있은 시점에서 발표된 것이어서 퍼블릭 에니미는 JDO(유태인 방위조합)의 집중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JDO의 압력 때문에 그들의 신작앨범은 자꾸만 출반이 지연됐으며(JDO는 스파이크 리 영화까지도 보이콧하라고 극장주에 압력을 행사했다) 그 과격성으로 인해 앨범 속지에 가사가 게재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레코드 회사와 배급업자인 CBS 간의 말썽이 있었고 라디오는 이들의 노래를 틀지 않았다. 트러블 메이커에 대한 당연한 반대급부라고나 할까. 퍼블릭 에니미와 스파이크 리 간의 관계는 흥미롭다. 퍼블릭 에니미는 < 불태우자 할리우드를! >에서 스파이크 리를 등장시켜 존경을 표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화에 사운드트랙을 기꺼이 제공하는 성의를 보였다. 스파이크 리 감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퍼블릭 에니미의 존경인물 1호는 말콤 X인데, 스파이크 리 감독은 92년 또 한 편의 충격 시네마 < 말콤 X >를 만들어 서로의 ‘의식 일치’를 간접적으로 과시했다. 그러나 제도권의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방법론의 변화를 꾀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뒤늦게 본래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2집에서 3집으로 넘어오면서 다소간 변화를 보였다. 그것은 퍼블릭 에니미의 색깔이 ‘말콤 X적’에서 ‘마르틴 루터 킹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난 상대 인종과 짝을 맺는 형제자매들을 증오해선 안된다고 말하지. 인간은 신이 아니며 신이 우릴 이곳에 내려보내신 거야. 그런데 이 체제는 현명함이 없어. 이 악마는 우릴 둘로 갈라놓고 백인은 Good, 흑인은 Bad라고 가르치지. 흑백의 결합은 한층 나쁘다고 하고 ... ‘폴리와나크래카(Pollywanacraka)’ 노래 제목은 ‘폴리는 백인 사내를 원한다’(Polly wants a crucker)는 뜻으로, 백인을 원하는 흑인의 사이비성을 비난하기보다는 흑백의 결합을 가로막는 현실에의 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테면 백인을 마구잡이식으로 욕하는 것이 아니라 흑백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막는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며 퍼블릭 에니미가 바라는 바는 흑인 지상주의가 아닌 흑백 조화임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노래다. 그들은 3집 음반의 테마 컨셉트를 ‘평화와 사랑’으로 잡았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리차드 해링턴 기자는 90년 4월 이들의 3집 출반 기사를 쓰며 “이 앨범이 당신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앨범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의 업적을 “60년대 블랙파워 운동의 정신을 재연(再燃)했다”는 데 맞추고 있다. 팝 역사적으로 논한다면 랩을 통하여 록의 60년대 저항정신을 되살린 것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랩 뮤직의 성격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혹자의 찬사는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퍼블릭 에니미는 세상을 바꾸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다만 그것을 위해 계기를 만드는 것이며 사다리를 쌓아올리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문은 부서지지 않을지 모르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우리 차세대가 백악관에 당도할 수 있는 날을 실현하기 위해 장애물을 치워버리려는 것이다.” 제시 잭슨 목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유세 때 그렇게 언급했다. 퍼블릭 에니미도 그런 위치에 있었다면 아마 그와 똑같이 얘기했을 것이다.
노래 : Ol' Dirty Bastard (올 더티 버스타드)
노래 : Busta Rhymes (버스타 라임즈 (힙합 랩),Trevor Tahiem Smith Jr.)
이스트코스트 힙합 필드를 대표하는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는 딱따구리를 연상시키듯 ’톡톡 쏘아 뱉는’ 거칠고 과격한 랩으로 유명세를 탄 하드코어 랩 가수다. 자메이카 혈통으로 지역적 색채가 강한 그의 ‘속사포’ 래핑은 누구나 한번만 들어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하다. 그 독특한 랩 스킬과 자메이카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바로 버스타 라임스를 대변하는 트레이드마크. 데뷔 이후 줄 곳 버스타 라임스... 이스트코스트 힙합 필드를 대표하는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는 딱따구리를 연상시키듯 ’톡톡 쏘아 뱉는’ 거칠고 과격한 랩으로 유명세를 탄 하드코어 랩 가수다. 자메이카 혈통으로 지역적 색채가 강한 그의 ‘속사포’ 래핑은 누구나 한번만 들어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하다. 그 독특한 랩 스킬과 자메이카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바로 버스타 라임스를 대변하는 트레이드마크. 데뷔 이후 줄 곳 버스타 라임스는 동부 힙합의 히어로 제이 지(Jay-Z)와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단지 힙합 아티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까지 팝 가수들과 음악적인 교류와 접촉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파퓰러 뮤지션으로 각인시키는데 주효했다. 또한 오지 오스본, 자넷 잭슨, 레니 크라비츠, 피 디디, 메리 제이 블라이지, 에리카 바두 등 스타 가수들을 자신의 음반에 초빙하며 네임 밸류를 쌓아나간 것도 성공담을 만들어간 빅카드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분주히 장외활동도 즐겼다. 비단 랩 가수로서의 명함 외에 < 하이어 러닝 >, < 파인딩 포레스터 >, < 나크 > 등 몇몇 영화에 출연해 배우로서도 커리어를 충실히 다졌다. 여타 래퍼들처럼 그 역시 스크린에서의 활약상으로 폭넓게 팬 베이스를 구축한 셈이다. 국내에서 버스타 라임스의 존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이 출연한 영화 < 스페이스 잼 >(1996)의 사운드트랙에 실렸던 ‘Hit ’Em High (The Monstars’ Anthem)’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후 그의 곡은 빌보드 차트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컬트 지지자들을 양산해냈다. 1972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버스타 라임스는 출생 성분이 말해주듯 동부 힙합 문화권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의 랩은 다분히 이스트코스트 성향이 짙다. 1983년 롱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랩 뮤직은 그의 삶에 자양분이 된다. 10대 시절 랩에 빠져들었으며 훗날 롱아일랜드 출신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와 에릭 비 앤 라킴(Eric B. & Rakim)의 음악을 듣고 절대적인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1989년 불과 17세에 그는 ’라임 쿼텟(quartet)’ 리더스 오브 더 뉴 스쿨(Leaders Of The New School)을 결성하면서 랩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 일렉트라 > 레이블에서 러브콜을 보낼 만큼 재간이 뛰어났던 버스타 라임스는 퍼블릭 에너미의 리더 척 디(Chuck D)의 도움으로 곧바로 앨범 준비에 착수한다. 거기서 처녀작 < Future Without A Past >(1991)와 2집 < T.I.M.E. >(1993)을 발표하며 차세대 힙합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룹은 딱 2장의 음반으로 해산했고, 그는 그것을 인생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 솔로 행보를 시작했다. 그룹 해산 3년 뒤 내놓은 솔로 데뷔작 < The Coming >(1996)은 R&B 차트 1위에 오르며 순식간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수록곡 ‘Woo-ha!! got you all in check’이 랩 차트 정상을 밟았고, 팝 차트 8위까지 진입하는 히트를 거둔다. 1997년 2집 음반 < When Disaster Strikes... >(1위) 역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 시기 버스타 라임스는 동부 힙합의 간판주자로 성장했으며 ‘슈퍼스타’라는 명함을 손에 쥐었다. 이듬해 나온 3집 < E.L.E.: Extinction Level Event: The Final World Front >(2위)로 그래미상 후보로 올랐고, 2000년 4집 < Anarchy >(1위), 2001년 5집 < Genesis >(2위), 2002년 6집 < It Ain’t Safe No More... >(10위)까지 R&B 차트 성공작들을 연거푸 쏟아내며 히트퍼레이드를 내달렸다. 팝 차트에서도 ‘Dangerous’(9위), ‘What’s it gonna be’(3위) 등 다수 곡들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단지 랩 가수에 국한되지 않고 팝 아티스트로도 분주히 활동했던 것이 에너지가 됐다. 얼마 전 버스타 라임스는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 송 ‘I know what you want’를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올려놓으며 여전히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새 천년 발표한 싱글은 예전만큼 상업적 히트로 이어지진 못했다.
노래 : Far East Movement (파 이스트 무브먼트)
노래 : Ludacris (루다크리스,Christopher Brian Bridges)
지난 2002년 8월 폭스 TV의 유명 앵커인 빌 오랄리(Bill O’Reilly)와 배우 겸 래퍼인 루다크리스(Ludacris)간의 신경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문제는 오랄리가 루다크리스의 히트 싱글 ’Word of mouf’ 외에 다수 곡들을 걸고넘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오랄리는 30초 짜리 펩시콜라 광고 모델이던 루다크리스의 랩 가사를 두고 저속한 노랫말 일색이라며 노골적으로 그를 공격하고 나섰... 지난 2002년 8월 폭스 TV의 유명 앵커인 빌 오랄리(Bill O’Reilly)와 배우 겸 래퍼인 루다크리스(Ludacris)간의 신경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문제는 오랄리가 루다크리스의 히트 싱글 ’Word of mouf’ 외에 다수 곡들을 걸고넘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오랄리는 30초 짜리 펩시콜라 광고 모델이던 루다크리스의 랩 가사를 두고 저속한 노랫말 일색이라며 노골적으로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게다가 루다크리스를 모델로 기용한 펩시콜라를 ’부도덕한 기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펩시는 더 이상 광고를 내보낼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오랄리의 펩시를 겨냥한 보이콧에 자극 받은 소비자들이 펩시 측을 상대로 인터넷 항의 메일 등으로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었다. 그 결과 상품의 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입은 펩시는 광고를 중도 하차시키는 극약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소비자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1년 전 애틀랜타 출신의 남부 랩 스타 루다크리스와 그의 심기를 건드린 빌 오랄리와의 가시밭길 냉전은 음악계의 핫 이슈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루다크리스가 기업의 마케팅에 적극 활용될 만큼 주류를 장악한 래퍼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넬리로 대표되는 남부 랩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주역이 바로 루다크리스라는 점을 안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외롭게 남부 랩을 이끈 구디 몹(Goodie Mob)과 스카패이스(Scarface), 그리고 그래미상에 빛나는 랩 듀오 아웃캐스트(OutKast)와 지난해 돌풍의 주역이던 컨트리 래퍼 넬리(Nelly)의 성공담은 확실히 남부 랩 필드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왔다. 거기에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루다크리스까지 가세해 어느새 힙 합의 헤게모니는 남부 애틀랜타로 이동되었다. 그것은 그간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의 양진영으로 갈렸던 힙 합 세력이 애틀랜타로 패권을 넘겨주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징표였다. 바로 남부 랩 성향을 공공연히 말해주던 더티 사우스(Dirty South)가 폭발한 것이다. 더티 사우스는 1990년대 과격한 갱스터 랩 이후의 대세로 자리한, 즉 스피디한 초고속 래핑을 앞세운 다분히 거칠고 노골적인 가사를 담아낸 팝 랩이다. 본명이 크리스토퍼 브리지스(Christopher Bridges)인 루다크리스의 존재는 지난 2000년 그가 설립한 인디 레이블 < Disturbing Tha Peace >에서 공개된 처녀작 < Incognegro >를 통해 서서히 알려졌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음반의 수록곡 ’What’s your fantasy’가 애틀랜타 지역 방송국에서 히트하면서였다. 그런 영향에 힘입어 결국 루다크리스는 그 해 힙 합 전문 레이블 < 데프 잼 >과 제휴를 맺고 메이저 데뷔작 < Back For The First Time >과 이듬해 소포모어 앨범 < Word Of Mouf >로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집은 팝 차트 4위에 올랐고, 2집 역시 3위에 랭크되며 두 장의 음반은 모두 미국에서만 3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순식간에 그는 팝과 힙 합계를 오가는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다. 당시 주목받던 신예 힙 합 프로듀서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애틀랜타 프로덕션 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ze)의 역할이 더없이 컸다. 제작에 참여한 그들의 역량이 루다크리스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고, 지금의 결실을 맺어준 키포인트였다. 그 여파는 꾸준히 지속되어 2003년에도 그는 영화 < 패스트 앤 퓨리어스 2 >에 직접 배우로 출연하는 등 인기를 과시했다. 게다가 영화에 삽입된 주제곡 ’Act a fool’ 또한 히트하며 팝/힙 합 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최근 공개된 3집 < Chicken -N- Beer >는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생애 처음으로 넘버원에 등극하는 영광을 수여했다. 물론 빌 오랄리를 통렬히 비판하는 가사와 함께!
노래 : Lupe Fiasco (루페 피아스코,Wasalu Muhammad Jaco)
노래 : Rae Sremmurd (레이 스레머드)
멤버 : Swae Le, Slim Jimmy 멤버 : Swae Le, Slim Jimmy
밴드 : N.W.A (엔 더블류 에이,Niggaz Wit Attitudes)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 그룹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 그룹
밴드 : Beastie Boys (비스티 보이즈)
1981년 뉴욕에서 결성된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대중 음악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백인’ 힙합 밴드이다. 허나 현재의 높은 음악적 평가와는 달리 이들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흑인들만의 성역이었던 힙합을 백인이 연주한다는 점에서 활동 초기에 ‘문화적 해적’으로 평가절하 되곤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금세 오진으로 판명이 났다. 이 삼인조의 음악 속에는 힙합의 요소뿐 아니라 강력한 펑크(... 1981년 뉴욕에서 결성된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대중 음악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백인’ 힙합 밴드이다. 허나 현재의 높은 음악적 평가와는 달리 이들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흑인들만의 성역이었던 힙합을 백인이 연주한다는 점에서 활동 초기에 ‘문화적 해적’으로 평가절하 되곤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금세 오진으로 판명이 났다. 이 삼인조의 음악 속에는 힙합의 요소뿐 아니라 강력한 펑크(punk)와 메탈(metal)의 성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디스토션 기타 노이즈 위로 펼쳐지는 격렬한 래핑.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하드코어(hardcore)의 모습 그대로였다. 1994년 롤라팔루자 페스티벌 당시 레이지 어겐스트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에 친숙한 신세대들이 비스티 보이즈의 등장에 엄청난 환호를 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래 MCA(아담 요크), 마이크 D(마이크 다이아몬드), 케이트 셀렌바크(Kate Schellenbach, 존 베리(John Berry), 네 명의 청년으로 구성되었던 비스티 보이즈는 1983년 케이트와 존이 빠진 대신 킹 애드락(King Ad-Rock, 본명: 아담 호로비츠)이 멤버가 되면서 현재의 3인조 편성을 끝마쳤다. 이후 케이트는 루셔스 잭슨(Luscious Jackson)에 가입하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셋은 1983년에 싱글 ‘Cookie puss’를 발매하며 힘찬 음악 여정을 시작했다. 곡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소규모의 히트를 기록하며 비스티 보이즈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이듬해, 밴드는 한 인물과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되었다. 바로 랩과 헤비 메탈의 믹스가 장기인 릭 루빈(Rick Rubin)을 프로듀서로 맞이하게 된 것. 소속사 역시 명 레이블인 데프 잼(Def Jam)으로 교체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등장한 데뷔작 < Licensed To Ill >(1986)은 ‘랩’ 앨범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쾌거를 거두었고 500만장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수립했다. 활화산 같은 펑크의 에너지로 승부하는 싱글 ‘Fight for your right’는 빌보드 차트 상위권과 MTV를 장악하며 순식간에 하드코어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No sleep till Brooklyn’과 ‘Girls’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백인 우월주의를 경고하는 등의 메시지는 이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법정 투쟁으로 릭 루빈, 데프 잼과 결별한 뒤, 더스트 브라더스(Dust Brothers)와 함께 작업한 1989년의 2집 < Paul’s Boutique >는 전작과 상이한 지향을 선보이며 엇갈린 반응을 얻어냈다. 록의 무게가 줄어든 대신 힙합과 현란한 샘플링에 치중했던 이 작품은 한 곳에 머물지 않으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아쉽게도 상업적 성과는 전작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92년의 < Check Your Head >와 1994년에 발매한 < Ill Communication >에서는 초강수의 펑크가 다시 초빙되었다. 자연스레 결과는 대만족. 두 작품 모두 플래티넘을 따내며 < Paul’s Boutique >의 부진을 단숨에 만회하였다. 특히 후자에 수록되었던 싱글 ‘Sabotage’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국내에서도 많이 회자된 전력이 있다. 그리고 1998년, 통산 5집인 < Hello Nasty > 또한 첫 주에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어느새 30살을 넘긴 선조(先祖) 하드코어 밴드의 변치 않는 열정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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