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를 거쳐 사범대학에 들어갔고, 임용시험을 거쳐 교사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12년 동안, 주로 문제풀이와 자율학습 지도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지금의 학교에 와서, 체험학습, 창의성 교육을 실천해 보려고 하니 솔직히 너무나 어렵다. 우선 내 자신이 창의적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갇혀진 틀 안에서의 수업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수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태도, 학생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과 훈육의 조화, 철학이 담겨 있으며 일관성 있는 학교 정책, 학부모와의 협력과 갈등의 아슬아슬한 관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책도 보고 꿈도 키워왔지만,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준비됨으로 풀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면서, 때론 실패를 경험하면서 풀어가야 할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대안적 교육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고 그 길을 걸어간 좋은 모델이 없을까 궁금해진다.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http://www.mindle.org)에서는 홈스쿨링을 포함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149여개의 대안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대한학교연맹에 의하면 전국에 80여개의 기독교대안학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아직 연합단체에 가입되어있지 않은 대안학교, 또 대안형 교육을 지향하는 인가된 특성화학교까지 포함하면 새로운 교육을 표방하는 학교가 매우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교장 공모제와 초빙제가 확산되고 있고, 또한 공립형 대안학교도 세워질 예정이라고 하니 단위학교 개혁의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어떠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학교를 세우고, 개혁해 나가느냐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헌신과 또 그만큼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대안학교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대안학교마다, 그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마다 모두들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싶다. 그 중에서도 실험적 시도의 단계를 넘어 이제는 좋은 모델로 자리 잡은 이우학교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함께 하는 배움
이우학교는 특별히 '배움의 공동체'라는 철학 속에서 ‘공부’가 아닌 ‘배움’을 강조한다. ‘공부’가 아무런 대화 없이 혼자 지식을 쌓는 것이라면, ‘배움’은 사물과 만나고, 사람과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친구를 만들고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우리는, 정작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안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을 할 때가 대부분이고, 토론이나 모둠학습을 하노라면 교실은 어수선해지면서 일부 학생들은 배움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며, 아이들을 위해 체험학습을 마련해도 배움과 연결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 책 『이우학교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 수업의 중심에 아이들을 놓고 배움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월 2회 이상의 수업연구회인데, 교사들이 공개 수업에 들어가 수업의 내용과 진행 방식에 대한 관찰 뿐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고 한다. 이우학교와 같은 소규모 학교에서 교사 한사람이 담당해야 할 업무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잘 안다. 더구나 각종 체험학습이나 학생, 학부모와의 상담의 양도 상당한 교사들에게, 동료교사와 관리자, 외부 손님들에게까지 공개하는 매월 2회의 수업연구회가 줄 부담은 적지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교사들은 학생들에 대한 민감도가 커졌다. 어수선한 교실 분위가 차분해지고, 아이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수업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사교육을 하지 않고,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그리고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문제풀이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오히려 학력이 향상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학습에 대한 동기와 자아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교사, 학생, 학부모의 권한 나누기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은 좋은 건물이나 재정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땅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모든 결정권을 교장이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효율적인 집행 구조, 그리고 그에 걸맞는 의사소통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물론, 구성원간에 다른 생각이 있어서 갈등이 생길 수 있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끈질긴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권위의 껍데기 대신에 인격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일방적인 규칙을 강요하거나 교사 편의에 의한 행사 대신에, 학생들과 함께 만들고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실수할 수 있고, 조금 서투를 수 있지만, 생각 없이 내뱉는 아이들의 말에 오늘도 나는 속으로 상처받곤 하지만,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줄 때 그들은 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우학교에서는 학교의 개혁과 실천에 있어 그 힘의 원천을 교사와 학부모에 있다고 보고 있다. 가능한 한 학부모와의 만남은 적을수록 좋은 교사의 입장에서, 학부모와의 협력 관계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학부모에게도 권한을 상당부분 나누어주고, 학부모들 역시 교육의 주체로서 건강한 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해준다면 학교와 교사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줄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대안학교 이야기를 읽다보면, 좋기는 좋은데 항상 뭔가 답답한 마음이 있다. 책으로 포장된 이야기 이면에 실제로는 우리가 모르는 숱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또 더 큰 이유는 아마 우리가 속해 있는 학교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앞뒤 꽉 막혀서 말이 통하지 않는 관리자,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 할 선생님들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마저 교사에게 상처를 주고 낙심케 하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교육은 커녕, 내 한 몸 추스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늘,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탓, 바뀌지 않는 시스템의 탓, 관리자 탓을 해왔다. 그렇게 남 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실 나 자신도 그 속에서 익숙해져 가는데 말이다.
이우학교 이야기는 대입제도의 현실 앞에서도, 변화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사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상이 있기에 현실을 발판으로 일어설 수 있듯이, 단위 학교에서부터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그 첫 번째 실천이 바로 ‘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무실 풍경을 보자.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관료들은 윽박지르고 있고, 교사들은 턱을 괴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업무는 세분화되어서 각자 자기 일만 잘 하면 될 뿐이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맺기란 많이 어려워졌다.
모든 교사가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마음을 나누고 좋은 생각을 공유하며 작은 것 하나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고단한 교직생활에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작은 점들이 모여서 길을 이루듯, 그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결국은 상식이 되기 때문이다.’고 이 책장에 적힌 글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