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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야생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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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 창비 | 2022년 05월 20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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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2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420g | 145*210*20mm
ISBN13 9788936438760
ISBN10 89364387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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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캐럴』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캐럴』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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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40 「코끼리 고구마 그리고 오조의 발목을 잡은 손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나간 시간이 모여 있는 세계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예요.
그곳에서 살아갈 존재들을 기억해줘.”


『트로츠키와 야생란』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기억’한다. 표제작 「트로츠키와 야생란」의 ‘나’는 ‘너’와의 추억이 담긴 러시아에 혼자 도착한다. 과거 그들은 추억의 장소에 혼자 찾아오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그 장소에 홀로 서 있는 ‘나’는 “너의 없음”을 생생하게 실감한다. ‘너’는 활동하던 단체에서 모함을 당해 일을 그만두게 되고, ‘너’의 자리는 ‘너’를 음해하던 ‘그자’가 차지한다. 힘겨워하던 ‘너’는 산에 갔다가 벼랑에서 떨어지는 일을 겪고 만다. ‘나’는 ‘그자’를 찾아가 계단에서 밀치는 복수에 성공하지만, 이내 두려움을 느끼고 러시아로 도망치게 되었고, 그곳에서 트로츠키라는 남자를 만나 그가 살고 있는 호수 안의 섬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제 다른 삶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다시 ‘너’에게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호수는 꽁꽁 얼어 섬은 고립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이다. 여기 남아 때를 기다리는 일 그리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얼음길을 걷는 일.

「잠수종과 독」은 떠난 연인인 현우를 그리워하는 의사 ‘공’의 이야기이다. 주목받는 사진작가인 현우는,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중 불타는 건물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손에 쥔다. 하필 현우는 운전 중이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다급히 핸들을 돌리다 사고를 당한다. 불이 난 곳은 진보 언론사 건물이었는데, 방화범의 소행으로 변을 당한 것이었다. 방화범 역시 분신을 시도했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와 공의 환자가 된다. 언론과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화의 원인을 찾고자 방화범이 의식을 차리기만 기다린다. 의사로서 불안정한 상태의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과 현우의 죽음에 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분노 사이에서 공은 주사기를 든다.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약물이 담긴 그것을.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K는 클레오를 추억한다. 클레오는 사람들 모두 일정한 비율의 행복과 고통으로 살아가며 “운명이라는 것은 그 비율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조용하고 깊고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결국 죽음을 택해 이 세상을 떠났다. K는 클레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사라진 클레오의 “행복과 고통의 비율”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며 클레오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한다.

떠난 사람들은 정말로 ‘떠나간’ 것일까.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이 마치 ‘여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 때로 어느 것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호명하는 ‘남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방식으로”(「유명한 정희」) 흘러가기에,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상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에게 남은 삶을 살며 어디에든 죽은 사람들을 위한 세계가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잊히고 사랑하는 마음도 끝나리라 믿지만 ‘영원’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여기’ 남은 자들은 기억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영원은 사람의 사랑이 아니고 지지고 볶는 마음이 아니고 괴롭거나 우울하거나 즐겁거나 행복한 사랑이 아니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서, 지지고 볶는 현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그를 보낸 괴로움이 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동시에 지극한 슬픔이어서, 남은 사람들은 “계속 슬프고 슬퍼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된다.

불가해한 삶의 흐름 속
아주 찰나에 지나가는 진실


한편 사랑하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곳에 없는 존재들과의 기억을 곱씹으며 그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인물들이 있다.
「유명한 정희」에는 유년 시절 만난 친구 ‘정희’를 기억하는 ‘나’가 등장한다. 정희는 어린이답지 않은 “건조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가진 친구였는데, ‘나’는 ‘묵념’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정신적 교분’ 같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정희를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때도 정희의 소식만은 계속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정신과 의사가 된 ‘나’의 앞에 정희가 찾아온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정희는 자꾸 ‘살의’를 느껴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정희와 상담하며 ‘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정희에게 품었던 알 수 없는 감정의 정체를 들여다보게 된다.

「혹자가 말하길」은 어릴 적 함께 놀았던 ‘혹자’라는 친구가 갑자기 눈에 보이기 시작한 김지우와 황보염의 이야기이다. 혹자는 사람 모습을 하고 말도 하지만 그가 먹는 밥은 줄어들지 않고 거울에도 그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혹자의 모습과 혹자를 둘러싼 이야기는 환상인 것도 같고 실제인 것도 같아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혹자는 그들의 기억일 수도 있고 실재하는 어떤 인물일 수도 있겠는데, 혹자는 물론 지우와 염을 둘러싼 이야기들 역시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외에도 귀에서 나무가 자라는 사촌 그리고 귀가 유난히 잘생긴 애인과 기묘한 여행을 떠나는 「귀 이야기」, 하늘의 구름이 어느덧 코끼리가 되어 걸어다니고 뜨겁게 익힌 고구마가 되어 떠다니기도 하는가 하면 길에서 손들이 튀어나와 발목을 휘어잡는 이야기인 「코끼리 고구마 그리고 오조의 발목을 잡은 손들」,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엉켜 있는 사람들이 한마리 검은 고양이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되는 「●●」, 걸핏하면 망상에 빠져들어 어떤 것이 실재하고 어떤 것이 영화 속 줄거리로 존재하는지 뚜렷이 분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노보 아모르」까지. 이장욱의 작품들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인가 물으며, 이것이 “참으로 이상한데 결국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삶”(「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기기도”(「유명한 정희」) 한다. “인간 영혼은 고귀하거나 선량하거나 사악하지”(「잠수종과 독」) 않고, “우리의 의지와 선택도 실은 세상의 논리가 작용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삶에는 또한 “저기 존재하는 저것이 그냥 저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트로츠키와 야생란」)이 있고, “따로 고귀한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이 없”더라도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노보 아모르」) 만들어진 인생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 그렇게 속삭이는 듯한 이장욱의 소설들은 외롭기보다는 따스하고 쓸쓸하기보다는 환하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삶과 죽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세심히 풀어내면서도 이장욱은 특유의 유머를 내려놓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곳곳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데, 허를 찌르는 언어들이 주는 여운에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소설 속 인물들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말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다는 경구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만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소설을 쓰는 일이 그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어쩐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소설을 쓰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만…… 어느 밤에는 제 곁에 물끄러미 앉아 있는 죽은 이들을, 곰곰 보듬어보게 됩니다.

(…)

그렇겠습니다. 세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일상사에 바쁘다가도 어이없이 한가해지고, 차가운 마음이다가도 세상 모든 것이 문득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습니다.
2022 봄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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