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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국경 쟁탈전 1881-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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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국경 쟁탈전 1881-1919

경계에서 본 동아시아 근대

쑹녠선 저/이지영, 이원준 | 너머북스 | 2022년 04월 29일 리뷰 총점8.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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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2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666g | 152*225*30mm
ISBN13 9788994606699
ISBN10 8994606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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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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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3명)

저 : 쑹녠선 (Nianshen Song,宋念申)
미국 UMBC(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역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국 칭화대 교수로 있다. 청조 후기와 근현대사 가운데 중국-한국 간의 변경(邊境), 동아시아의 초지역적 네트워크, 역사 지리, 국제관계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를 발견하다_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중일의 현대』(역사비평사, 2020), 『????』(北京: 新... 미국 UMBC(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역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국 칭화대 교수로 있다. 청조 후기와 근현대사 가운데 중국-한국 간의 변경(邊境), 동아시아의 초지역적 네트워크, 역사 지리, 국제관계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를 발견하다_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중일의 현대』(역사비평사, 2020), 『????』(北京: 新星出版社, 2018), “The Journey towards “NoMan’s Land”: Interpreting the China-Korea Borderlandwithin Imperial and Colonial Contexts”(The Journal of Asian Studies, Vol. 76, Issue4, Nov. 2017), 「在延???中?」(『文化??』, 2016. 6) 등이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성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중국 근대사를 전공하며, 주로 청말 만주의 신정(新政) 개혁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성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중국 근대사를 전공하며, 주로 청말 만주의 신정(新政) 개혁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로 있다. 중국 현대사를 전공하며, 주로 20세기 중반의 ‘신중국’ 건국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로 있다. 중국 현대사를 전공하며, 주로 20세기 중반의 ‘신중국’ 건국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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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380

출판사 리뷰

“서쪽으로 압록, 동쪽으로 토문(土門)”
토문강이 송화강인가? 해란강인가? 아니면 두만강인가?


이 책은 1880년대 조·청 국경 분쟁에 앞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가장 안정적인 국경인 두만강과 압록강의 분계를 표시한 비석인 1712년(숙종 38년)의 백두산 정계비(중국에서는 이를 세운 청 관료 이름을 따서 ‘목극등비’라 칭한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숙종 36년(강희 49년) 한 범죄 사건이 양쪽 조정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인 아홉 명이 인삼을 캐려고 압록강을 몰래 넘어갔다가 청나라 사람 다섯 명과 마주치자 그들을 살해하고 물건을 훔친 사건이었다. 이 월경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백두산 정상 동남쪽의 어느 산마루를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삼아 “서쪽으로 압록, 동쪽으로 토문(土門)”으로 경계를 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되었다. 문제는 토문강이었다. 당시 압록강은 수원지가 분명했지만 또 하나의 분계강인 두만강은 산림의 물줄기가 복잡하고 단속(斷續)적이어서 진짜 수원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얼마 후 조선인들은 청의 목극등이 선택한 그 물줄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물줄기는 북쪽으로 흐르다가 훨씬 북쪽에 있는 아무르강의 한 지류인 송화강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조선 조정은 내부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사소한 실수로 청을 귀찮게 하지 않기로 했다. 북경의 청 조정은 이 오류를 알지 못했고 국경지대의 안보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므로 이후 어떤 청 관리도 다시 조사할 일이 없었다.

비석이 세워지고 170년도 넘어 조선인 빈농 수천 명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 동남부의 황무지를 개간하자 이 모호함은 결국 공식적인 영토분쟁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토문강이 경계인가? 그렇다면 어느 강이 실제 ‘토문강’인가? 송화강인가? 해란강인가? 아니면 두만강인가? 두만강이라면 복잡한 물줄기 중 어느 것이 그 수원인가? 이 논쟁적인 질문을 둘러싸고 1880년대 청과 조선 사이에 영토분쟁이 반복되었다. 이 문제는 한국에서는 ‘간도’라 하고 중국에서는 옌볜(延邊)이라 하는 두만강 북쪽 지역의 한인 이주민에 대한 통치권이 어느 나라에 귀속되느냐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데 사안의 급박함은 러시아의 팽창과 결부되어 있었다.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러시아는 외만주를 점령하고 두만강 하구까지 팽창하여 연해주에 한국인 정착민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던 상황이었다. 즉 두만강 지역(또는 만주 전체)이 이미 몇몇 신구 강대국의 싸움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적이고 다변적인 분계강을 둘러싼 모순은 일본이 조선 통제를 확립한 뒤 만주를 식민화하려던 20세기 초에 청과 일본의 정치적 분쟁으로 비화하며 장기화했다.

국경의 역사적 의미가 서로 다른 시대에도 똑같았을까?

이 책은 두만강이 한국과 중국, 러시아의 국경선으로 확정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1885년의 1차 국경회담 결과 양측은 두만강이 토문강임에 동의했으나 1887년의 2차 국경회담에서 조선은 두만강의 가장 북쪽 물줄기인 ‘홍토산수’를, 청은 남쪽 ‘홍단수’를 주장하다가 가운데 물줄기인 ‘석을수’를 타협안으로 제시했으나 조선의 거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1909년 이른바 청·일간의 ‘간도협약’에서 청의 타협안인 석을수를 일본이 받아들이는 대신 만주의 수많은 이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경계가 획정되었다.(참고로 1962/64년 북·중 간에 다시 그어진 경계선은 천지의 중앙과 홍토산수를 거쳐 두만강과 압록강의 물길을 연결한 것이다. 1887년 국경회담 당시에 홍토산수를 두만강 원류로 지목했던 조선의 주장을 이번에 중국이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백두산의 남쪽 부분과 천지의 절반 이상(54.5%)을 북한이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쑹녠선은 수십 년에 거친 국경 분쟁의 맥락을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여러 언어로 작성된 자료를 조사하여 한중일 3국의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층적으로 설명한다. 국경의 역사적 의미가 1712년의 정계비 설치에서 1885-7년의 1, 2차 조·청 국경회담, 1909년의 간도 협약까지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문제 상황을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의 맥락에서 이해하며 그 전화(轉化)와 생성의 원인을 탐구한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5)의 승리,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1905)를 거치면서 1907년, 두만강 국경 분쟁에 공식적으로 개입했다. 그리고 1907년부터 1909년까지의 중·일 국경협상은 1885-7년에 있었던 조·청간 국경협상과 비교할 때 그 내용과 목적 모두 달랐다. 더 이상 종번과 포용에 기초한 ‘왕조의 지리학’ 차원의 경쟁이 아니었다. 논쟁에서 새로운 증거 제시도 없었고 현장 합동 조사도 없었다. 실제 갈등은 한국 이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중·일 양국의 국가 건설을 둘러싼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수백 년 전에 형성된 경계를 어떻게 국제법과 영토 국가라는 새로운 체제에 맞게 재규정할지를 둘러싼 담론 차원의 경쟁이었다. 간도 분쟁은 이제 인구와 국경을 둘러싼 청과 조선 사이의 충돌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국가건설 경쟁으로 국면이 전환된 것이었다.

쑹녠선은 이 작은 변경지대에서 발생한 충돌과 담판, 타협에는 심각한 지역사·지구사적 의의가 담겨 있다고 했다. 두만강 국경 ‘만들기’ 과정은 바로 동아시아 삼국이 새롭게 건설되는 과정이었다. 간도 사람들이 ‘국민’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동아시아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 과정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도(연변)는 동아시아 근대의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간도를 둘러싼 갈등은 궁극적으로 근대 국민국가 건설을 향한 경쟁

청은 19세기 말 길림-조선 통상국을 설립한 후 아예‘한인 무단점거자들을 위무’한다는 뜻의‘무간국(撫墾局)’이란 지방행정기구로 전환하며 본격적으로 이민 사회의 초기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나섰다. 한국(대한제국)은 1903년 이범윤(친러정권기의 관료 이범진의 동생)을 ‘간도관리사’로 임명했다. 이범윤은 총 5백 정을 보유하고 러시아 고문의 훈련을 받은 1천 명이 넘는 병력을 확보한 뒤 그해 말 간도를 한국 영토라 선포했으나 청의 압력으로 해임되고 이후 의병장으로 반일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간도파출소’ 설치였다. 1906년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상당하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기구인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된 직후 설치되었는데 행정체계와 경찰력의 구축, 간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역사학적·고고학적 연구를 포함한 광범위한 현지조사, 농업실험과 교육·위생사업 등을 전개했는데 일본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이상설이 설립하고 많은 항일 활동가를 불러들인 용정의‘서전서숙’을 폐쇄한 것도 간도파출소였다.

당시 간도파출소 법률고문이자 총무과장이었던 시노다 지사쿠의 이력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20-30년대 이왕직 장관으로 근무하며 일본의 검열과 왜곡으로 심각하게 변질되었다고 비판받는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 두 편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편찬을 주재했고, 1940년대 현재 서울대의 전신이자 제국대학의 하나였던 경성제국대학의 총장을 지냈다. 시노다는 간도(시노다의 간도는 북만주는 물론 남만주를 전부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를 ‘무인지대’, 즉 버려진 황무지라 주장하는 논문은 발표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영유권을 모두 부정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무주지 개념이 1960-70년대 한국에서 ‘북방 영토’에 대한 향수로 되살아난다. 한때 일본 식민주의적 담론이었던 것이 한국 민족주의적 동기와 결합하면서 식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이의 상당히 역설적인 협력 사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간도(연변)를 둘러싼 한·중·일의 갈등은 궁극적으로 근대 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경쟁이었다. 일본에게 간도는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장차 만주, 몽골, 심지어 시베리아 동부까지 정복하려는 제국주의의 도약판이었다. 청은 연변을 중국 동북 3성의 본보기로 간주했다. 연변을 만주에 묶어두지 못하는 것은 곧 동북 3성 전체를 중국에 묶어둘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승부에서 이기려고 각국은 군사화에서 관료화, 인구조사에서 치안 유지, 인프라 구축에서 공교육과 공공의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근대적’ 국가 장치를 강화함으로써 통치력을 강화했다. 중·일의 변경 건설 시도들은 차별성보다 유사성이 더 많았다. 여기에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등이 모두 반영되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여러 국가에서 도입한 이 장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이 국경지대에서 국가권력의 힘이 빠르게 강화되었다.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에서 한국인들은 전혀 침묵하지 않았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각자 정치적 청사진을 가진 채 양국의 경쟁에 개입했다. 일진회는 한국 근대화의 희망을 일본에 걸었다. 또 다른 다양한 세력들은 일본을 한국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모두 친중국적이지는 않았다. 실제 대립하는 두 진영에 속했던 한국인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본이나 중국과 연합을 결성하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강한 한국을 재건한다는 핵심적인 정치적 이상을 버리지 않았다.

이 책은 청의 ‘내지화’와 일본의 ‘식민화’, 한국의 ‘독립’이라는 세 종류의 ‘탈(脫)변경’의 각축전 속에서 국민, 국경, 국가, 영토 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등장했으며, 동아시아 3국이 모두 국가와 국민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계에서 동아시아의 근대가 창출된 것이다.

만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신채호·나이토 코난·송교인

간도 협약을 전후로 두만강 북안 또는 더 큰 범위에서 만주는 다양한 지정학적 관점에 따라 새롭게 정의되었다. 이 공간을 둘러싼 경쟁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엄청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세 나라의 지식인들은 만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의 선구자 나이토 코난, 국제법을 이용한 주권 수호를 역설한 중국의 송교인, 역사를 통해 민족을 수호하고자 한 신채호 등의 논의를 분석한다. 신채호에게 역사의 주체는 국가라기보다는 민족이었다. 그는 ‘한민족’의 옛 영광에 대한 민족주의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기존의 역사 서술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한국사의 지리적 중심을 한반도에서 만주로 옮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만강 지역은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포함하는 한국의 역사적 공간 관념을 만들어냈다. 이 책은 하나의 지리적 공간이 서로 경쟁하는 정치적 목표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상상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개념이 서로 모순적임에도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규정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두만강이 만들어낸 중국 조선족 형성의 역사

1860년대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넘어 청 지대 아래의 만주로 들어갔다. 초기 이주자의 대부분은 함경도 지방 출신으로,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에도 당시 조정이 이들의 남하를 통제했기에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들은 두만강 중류 지역 즉 두만강과 그 3대 북부 지류인 해란하, 부르하통하, 가야강에 의해 조성된 부채꼴 모양 충적평야 주변에 주로 모였다. 1880년대 수천 명이었던 것이 1910년대 말에는 한반도 남부 사람들까지 이주해 오면서 약 30만 명으로 늘었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인과 그 토지를 지배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도 그들은 비록 하나의 통합된 집단은 아니었지만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각자 한국에 가장 이익이 된다고 믿었던 것을 추구했다.

국권 피탈로 토지와 인민이 분리되고 민족과 국가가 따로 나뉘자 간도는 ‘나라를 잃은 민족’에게 그들의 ‘상상된 공동체’를 건설한 공간을 제공했다. 교육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1910년대 간도는 당시의 한국 자체보다 더 ‘한국적’ 장소였다. 1919년 3월 13일 이른 아침 명동 학교와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과 교사들을 포함하여 한국인 약 2만 명이 인근 지역에서 용정으로 모여들었다. 3·1 운동이 ‘근대’라는 이름이 붙는 한국 민족주의의 시대를 출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 ‘근대’의 시대가 실제로는 한국 국경 너머 두만강 이북의 간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930년대 일본 관동군의 만주 침략으로 한국과 만주의 국경이 사실상 없어졌을 때 일본인에 이은 2등 시민의 자격으로 더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들었고 1940년대 초 연변에는 이미 63만 4천 명이 넘은 한국인이 터를 잡고 있었다. 만주의 한국인들은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으로든 국경을 초월한 사람의 집단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그들은 한국계 중국인이 되었다. 이 책은 두만강 국경이 만들어낸 중국 조선족 집단 형성사다.

추천평

쑹녠선은 한중일과 러시아의 국가기관과 활동가들이 통제권을 놓고 경쟁했던 한·중 국경 지대에서의 변경 개척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낸다. 여러 가지 언어를 활용하며 복수의 시각에서 서술된 이 숙련된 연구는 아시아의 제국사를 위한 새로운 모델이다.
- 『중국의 서진』의 피터 C. 퍼듀(예일대)

이 책은 국민국가의 변화하는 공간 관념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20세기 동아시아 역사의 흥미와 비극을 모두 포착하는 초국적 역사 연구이다. 만주의 한 작은 모퉁이가 쑹녠선의 능숙한 솜씨로 동아시아의 지구적 근대성을 둘러싼 지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투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의 앙드레 슈미드(토론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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