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신용점수, 수능등급, GDP ……
만들어진 숫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신용점수는 삶을 결정하는 숫자다. 신용점수가 낮으면 당신은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못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한다. 신용점수가 어느 정도 있어야 은행에서 각종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점수가 높다면 우대이율까지 받을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는 신용점수로 구직자를 평가한다. 비단 신용점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GDP를 통해 국가에 등급이 매겨지고, 수능등급으로 학생들의 12년의 노력이 평가받는다. 숫자로 평가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숫자들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냈다. 편의 또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서.
전시 상황이 되자 국민소득 개념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복지보다 무기에 돈을 쓰고 싶었는데, 그 개념에 따르면 그런 정부 지출은 국민소득의 감소를 의미하므로 결과적으로 전쟁 지원을 약화시킬 터였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찾아낸 것이 GDP라는 다른 측정값이었다. GDP는 정부에서 생산된 것(이를테면 무기)을 포함하여 국가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총 가치를 측정한다. 이에 따르면 새로 만든 폭격기도 경제에 이로웠다. GDP는 오로지 정치적 의도로 탄생한 수치였다.
2장, 〈만들어진 숫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중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 조치들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담배를 더 많이 피웠고, 실업자가 되었고, 우울증에 걸렸다. 반면 현황판에 생활방식, 고용, 정신건강에 관한 수치들은 담기지 않았다. 우선순위가 다른 수들에게 있었기 때문인데, 의료활동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바이러스에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통계에 따른 판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판단이기도 했다.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여, 〈수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에서
신용점수가 높은 사람은 정말 성실할까? 시험점수가 높은 학생은 똑똑할까? GDP가 높은 국가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실을 포착해야 할 숫자가 오히려 진실을 바꿔버렸을 수도 있다. 이런 숫자들을 확고하게 자리잡힌 것으로 여기는 순간, 편견과 차별이 탄생한다. 컴퓨터가 모든 것을 계산하는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는 객관적인 숫자를 만들지 못한다. 인간이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해야 하는 지금, 컴퓨터가 계산하는 결과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숫자들의 합이다. 우리는 만들어진 숫자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숫자 뒤의 진실을 꿰뚫어볼 눈을 갖춰야 한다.
빅데이터 시대 숫자를 판단하는 뜻밖의 신호, 인간의 숫자 편향
당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판단하라!
《위험한 숫자들》은 인간이 왜 계속 숫자 실수를 저지르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밝힌 첫 번째 책이다. 사실 숫자들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숫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외에도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와 혼동한다거나, 오차범위를 고려해야 한다거나, 대표성이 없는 표본추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이 모든 경고에도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한 낭설을 진실인 양 이야기하고, 알코올이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분명한 사실까지 의심한다.
우리는 왜 계속 틀릴까? 예일대학교 교수 댄 카한과 그의 연구팀은 허구의 피부연고 임상실험에 관한 도표 하나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까다롭게 계산하도록 했다. 그 결과 수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이 정답을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실험의 결과는 달랐다. 총기 규제에 관한 도표를 주고 똑같이 계산하도록 하자,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도 틀린 결과를 내놓았다. 심지어 이전의 수치들과 난이도가 똑같은 도표였는데도!
카한은 실험 참가자들이 내놓은 답들은 진리와 더 이상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답들은 참가자의 정체성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과의 소속감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그런 답을 내놓았다. 자신들의 심리 상태로 스스로를 속인 셈이다. 즉 사람들은 사실을 더 많이 알고 더 큰 재능이 있을 때 스스로를 속이는 일도 많아진다. 우리 뇌는 변호사처럼 작동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확신을 방어하기 위한 주장을 기어코 찾아낸다.
6장, 〈숫자 본능을 이기는 힘〉 중에서
“술 한 잔으로 수명이 30분 단축될 수 있다”라는 표제를 보면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생각이 드는가? 혹시 당신은 이틀에 한 번꼴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지 않는가? 숫자가 그릇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싶다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은 왜 그 숫자를 보고 기뻐하거나 분노하는가? 혹시 내가 그 숫자에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오로지 숫자에 관한 지식만으로는 정답을 알 수 없다. 당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판단하라!
《휴먼카인드》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 강력 추천
“블라우는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최고의 선생이다”
저자 사너 블라우는 유럽 전역을 뒤흔든 크라우드펀딩 저널리즘의 시초 《코레스폰던트》의 수학 전문기자이자 네덜란드 고등연구소 전속 저널리스트로, 촉망받는 숫자 전문가다. 코로나바이러스 통계, 인공지능, 미래 예측 등에서 숫자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심층 보도한 기사들로 유명하다. 또한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심리, 역사, 사회 이슈 등을 풍부하게 담아내, 그녀의 첫 책 《위험한 숫자들》은 암스테르담의 시장 펨커 할세마가 직접 나서서 ‘수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블라우는 ‘숫자 편향’이 대중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숫자 전문가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점을 꼬집는다. 50년 동안 수많은 통계 전문가가 담배가 폐암과 관련이 없다고 옹호한 이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킨제이 성보고서, 기온 변동이 거의 없어 보이는 보수성향 잡지의 기후변화 그래프 …… 모두 전문가들이 옳다고 믿어서 생산한 숫자들이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중요한 요소 하나를 간과했다. 음주가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에 특히 신이 났음을 깨달았을 때, 프라사드의 트윗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음주가 해롭지 않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만 그 연구에 결함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카한의 연구처럼 나는 내 소속집단에 맞는 해석을 골랐다. 옳은 해석이 아니라 옳다고 느껴지는 해석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데 능했다. 직업상 그런 유형의 연구를 반박할 온갖 주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의 뇌도 변호사처럼 움직였다.
6장, 〈숫자 본능을 이기는 힘〉 중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숫자 전문가들을 상대로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볼 수 있을까? 블라우는 숫자를 의심하는 연습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숫자를 마주할 때마다 그 숫자 전달자가 누구인지, 숫자는 표준화된 수치인지, 어떻게 수집되고 분석되었는지, 어떤 형태로 제시되었는지, 무엇보다 본인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연습 말이다.
수는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현실을 근사해낼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의미 있다고 해서 모두 셀 수는 없으며, 셀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의미 있지는 않다.”라고 했다. 블라우의 《위험한 숫자들》을 통해 숫자를 의심하는 습관을 만들고 숫자로 만든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