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인터뷰를 하던 한 부치 다이크(여성 동성애에서 남자 역을 맡는 사람)가 머잖아 성전환 수술을 할 거라고 한네 블랭크에게 말했다. 수술을 승인받기 위해 치료사와 면담할 은밀한 내용까지 들려주던 그가 의외의 말을 덧붙였다. “사실 난 남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당혹스러워하는 한네를 한동안 바라보던 그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견디기 힘든 건 뚱뚱한 여자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악담이에요. 뚱뚱한 여자로 사는 건, 정말이지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사례 둘: 2018년, 캐나다 출신의 유명 의상디자이너 앨런 모드 베닛이 암 진단을 너무 늦게 받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진작부터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만병의 근원이 몸속 지방에 있으니 살 빼라는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의사들이 헛소리로 시간을 축내는 동안 암세포는 무서운 속도로 증식했고, 베닛은 수술 한번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지방FAT에 대한 오해와 무지, 종교적 신념만큼이나 강고하게 자리 잡은 뚱뚱함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무수한 사례 중 일부다. 충격적이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지방과 비만을 둘러싸고 이들보다 훨씬 가슴 아프고 끔찍한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이상할 것도 없다.
생명 유지의 핵심요소인 지방은 어쩌다
타락의 증거이자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되었나?
우리 문화는 지방을 추하고 나쁘고 온갖 병을 일으키는 살인자라고 가르친다. 비만은 자기 절제력 부족의 증거이며 탐욕과 방종, 인지능력 결여를 드러낸다고 세뇌한다. 하지만 지방이 없다면 우리 삶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지방이 없었다면, 단세포 단위의 미생물조차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인류가 그토록 자랑해마지않는 뇌 기능 역시 지방이 없다면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토록 중요한 지방이 어쩌다 악의 메타포로 내몰리기 시작한 것일까?
이 책 『지방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원제: FAT)』는 우리 곁의 친근한 물질이자 생명 유지의 필수요소인 지방FAT의 실체 및 지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일상의 갖가지 블랙코미디를 통렬하게 드러내는 책이다. 계급과 젠더 문제 전문가인 한네 블랭크는 서구의 기독교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계급주의 및 성차별 문화와 궤를 같이하는 지방 혐오의 뿌리 깊은 기원을 촘촘하게 추적한다. 더불어 ‘비만 낙인’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는 현대 의료산업과 대중건강 운동의 검은 속내를 낱낱이 해부해서 보여준다. 지방의 진짜 모습부터 성적·문화적 메타포, 지방을 둘러싼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까지 영리하게 파헤친 이 책은 우리가 잘못 알았던 지방을 풍성하고 다채로운 의미로 다시 보게 한다.
생명체의 근원인 지방, 태초에 지방이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젠더 연구자이며 평생 비만인으로 살아온 한네 블랭크가 자신의 개인사를 섞어가며 이 책을 쓴 목적은 확실하다.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며 비누, 음식물, 화장품 등 일상 곳곳에 존재하는 고마운 지방이 어쩌다 하루속히 퇴치해야 할 골칫덩이이자 ‘사회악’으로 내몰렸는지 정치·문화사적으로 파헤쳐보는 것이다. 저자는 지방과 관련해 우리 일상에 널리 퍼진 여러 오해와 편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서구 기독교와 제국주의의 폭력,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고 권력체계를 강화하는 데 지방이 어떻게 도구로 이용됐는지를 차근차근 드러낸다.
지방 과잉이 건강을 해친다는 논리는 일부 인정한다 쳐도 뚱뚱한 여성이 아름답지 않다는 ‘미’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비만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게 된 연유는? 흑인은 뚱뚱하고 게으르고 성적으로 타락했다고? 여성 스스로 뚱뚱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예단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심리의 기저에서는 대체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것일까?
기독교의 금욕주의, 금식을 성스러운 행위로 찬양하다
오랜 인류사에서 지방은 생명을 지탱하도록 돕는 매우 유익한 물질이었다. 이븐 시나를 비롯해 건강과 신체에 대해 해박했던 중세 페르시아의 의학자들 역시 (지금 우리가 심장병이나 뇌졸중이라고 부르는 혈관 질환과 지방이 관련 있음을 알았음에도) 보통 사람의 몸에 지방이 풍부할 경우 영양 상태가 좋다고 판단했다. 유감스럽게도 같은 시기,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금식이 성스러운 행위로 찬양되고, 신앙심을 증명하는 도구로써 마른 몸을 고결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특히 여성들에게 믿음과 헌신의 순도를 증명하라며 가냘프고 수척한 몸을 요구하는 것은 남성 지배 권력을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요긴한 수단이었다.
이 같은 세계관은 15세기 이후 유럽인이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한층 교활하고 정교하게 뻗어 나갔다. 제국주의자들은 전 세계 비유럽인, 유색인들을 원시적이고 열등한 생명체로 간주하면서 기독교 신을 섬기는 자신들의 발아래 정복지의 모든 피조물이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노예제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및 낙인 찍기에도 열을 올렸다. 흑인은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고, 흥청망청 놀며 섹스를 좋아하고, 도둑질을 일삼는 데다, 뒤룩뒤룩 살쪘다’는 선동 아래 자신들의 부도덕과 잔인함을 감추기 급급했다.
‘평균적 시민의 몸’이라는 개념이 산업화를 만났을 때…
과학은 거침없이 확장하는 유럽 문화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벨기에의 과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아돌프 케틀레가 1895년 출간한 논문에서 장난처럼 구상한 ‘정상적 시민의 몸’에 대한 개념은 마침 도처에 생겨난 사업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자 개개인에 맞춰 셔츠와 신발을 만드는 대신 평균적 인간들을 위해, 평균적 규격으로 대량생산하면 어떨까? 노동자 개인의 몸에 맞게 기계를 제작하는 대신 평균적인 기계를 만들어 육체가 알아서 적응하도록 하면 어떨까?
소비자와 노동자 개개인을 고려하는 대신 대량생산으로 제품을 만들 때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을 상상해보라. ‘평균적 시민의 몸’이라는 폭력적 잣대가 인간에게 적용되면서 키 작은 사람, 힘이 약한 사람, 특히 살찐 사람 등 무수한 보통 사람들이 졸지에 ‘정상에서 벗어난’ 열등 인간들로 내몰렸다.
자본주의와 손잡은 의학, 지방과의 전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담다
날로 기세등등해지는 의학을 발판 삼아 더욱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여성 비만 혐오는 인종차별이나 젠더 폭력을 정당화하고 백인 남성의 계급주의 지배체계를 강화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 지방과의 전쟁에 새로운 전선이 만들어졌다. 체중 감량 산업이다. 살을 빼준다는 건강식품이 쏟아져나오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몸매를 만들어준다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열변이 불을 뿜었다.
아무 문제 없는 사람들의 몸에 비만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는 장사꾼들이 여기저기서 활개 치며 무수한 부작용을 낳았지만,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뒷짐을 졌다. 이런 엉망진창의 근원이 무엇이든, 정부는 비용을 치르지 않는 문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심약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붙은 ‘미끈거리고 역겹고 파괴적인 지방’에 대항할 무기를 사려고 어찌 몰려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스테이크와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난 여성이 피트니스 클럽으로 달려가는 블랙코미디를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지방 혐오 너머에서 작동하는, 지위와 권력의 무서운 진실들
어린 시절,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로부터 “너는 뚱뚱해서 정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거야.”라는 폭언을 숱하게 들었다는 저자는 말한다. 뚱뚱했으므로, 변방인으로서 예리한 촉수를 벼릴 수 있었다고. 비만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같은 처지의 배제당한 이들과 연대해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강력한 희망을 품기에 이르렀다고.
어디 비만 문제뿐일까? 인간의 몸에, 그리고 인간의 몸을 통해 완강하게 작동되는 소외와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려는 노력은, 소외당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의식 있는 우리가 잘못 만들어진 판에 균열을 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첫걸음이다. 흥미롭고 독창적인 문장으로 ‘비만 낙인’의 사회적·문화적·계층적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낸 이 책은 막연히 문제를 감지했거나 애써 외면해온 이들 모두에게 또렷한 각성제이자 예리한 죽비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