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삼국지를 길용우가 읽어 낸 러닝 타임 91시간 29분의 오디오북,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가 1월 10일 출시된다.
박태원이 1938년부터 번역하기 시작한 ≪삼국지≫는 1950년에 정음사 판으로 잠시 출간되었으나 이후 절판되었고 북한에서만 1959년부터 1964년 사이에 4 차례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2008년이 되어서야 깊은샘출판사에 의해 완간되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사극 연기의 달인 길용우 배우와 함께 120장에 달하는 삼국지 전권을 1년 넘게 낭독 녹음하여 ‘전편 1인 낭독 오디오북’으로 완성하였다. 삼국지의 1인 낭독은 1960년대에 고 장민호 배우가 케이비에스 라디오를 통해 실연하여 청취자의 큰 호응을 받았으나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지금은 들을 수 없다.
출판사는 “평론가들이 최고 판본으로 손꼽아 온 박태원 삼국지가 길용우라는 21세기 전기수의 목소리를 통해 연의, 곧 이야기의 세계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젊은이를 위한 삼국지는 많았지만 어른을 위한 삼국지는 찾기 어려웠는데 이제 삼국지를 아는 독자를 위한 어른 삼국지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출간의 의미를 밝혔다. 삼국지 1인 낭독 오디오북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서 120장 가운데 한 장인 86장을 무료를 들을 수 있는 무료 청취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전 읽기의 부담을 새롭게 해결한 ‘듣는’ 삼국지
#(사용자 증언) 1955년 생, 67세 P씨의 새벽 독서 현장
새벽이다. 이맘때면 잠이 깬다. 한동안 뭘 할지 몰라 방과 거실, 주방과 베란다를 배회하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나는 깊은 밤에 삼국지를 듣는다.
핸드폰을 켜고 오디오북을 꽂은 뒤 플레이를 터치, 낮보다는 볼륨을 조금 더 낮추니 소리에 더욱더 집중하게 된다. 오늘은 49장, 제갈공명은 주유에게 동남풍을 약속한다. 인간이 자연을 움직인다는 이야기, 믿기 힘든 내용이지만 이렇게 전해지는 것은 아마도 다른 뜻이 있을 게다. 과연 그 다른 뜻이라는 게 뭘까? 인간의 간절함은 초인간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교시인가? 이야기는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장면은 점점 더 자세히 그려진다. 나는 지금 2022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1800년 전 중국 대륙을 주유한다. 듣는 것은 전쟁터 이야기인데 내 생각은 점점 더 명료해지고 마음은 점점 더 평안해진다.
삼국지를 처음 만난 것이 열일곱 살, 50년 전이다. 지금까지 예닐곱 번을 읽었지만 이제 듣는 것이 읽는 것보다 쉽고 낫다. 책으로 읽을 때는 눈도 피곤하고 힘도 들어서 듬성듬성 뛰어넘으며 읽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렇게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또박또박 흡수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삼국지를 건성건성 읽었다는 것을. 좋아하는 장면, 읽고 싶은 대목만 찾아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 아니 정청하다 보니 삼국지의 깊은 뜻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관중, 모종강, 박태원은 단 한 자도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 삼국지에 적힌 말은 모두 다 뜻이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절감한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다. 내 인생 살아온 길, 살아갈 길이 여기 그대로 적혀 있지 않은가?
삼국지, 삼국연의가 걸어온 길의 끝,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서기 184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까지 1839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2세기 말에 출발하여 3세기 말까지 97년간 일어난 일을 진수가 역사 기록인 ≪삼국지≫로 기록한 것이 서기 218년의 일이었다. 그 뒤 배송지가 자세한 주석을 달았다. 이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이야기로 만들어 거리에서, 찻집에서 즐겨 오길 1000년, 마침내 명나라 사람 나관중이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였으니 그 이름이 ≪삼국연의≫다. 이것을 700년 뒤에 청나라 사람 모종강 부자가 120장의 이야기로 정리하였고 그로부터 또 200년 뒤에 조선의 모더니스트 작가 구보 박태원이 한국인의 말법으로 옮긴 것이 ≪박태원 삼국지≫다. 해방 전후로 정음사 본 삼국지로 알려졌으나 절판되었고 북한에서만 출간되었다가 2008년 깊은샘 출판사가 국내 출판의 길을 열었다. 그동안 정통 삼국지 특유의 만연체, 의고체 문장으로 국내 젊은 독자들과는 벽을 쌓고 있었으나 2022년 마침내 낭독의 달인 길용우의 91시간 29분 낭독으로 그 진가를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박태원 삼국지의 출간 경위는 아래 첨부된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의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를 참조하세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의 말멋, 구보 박태원의 글맛으로 되살아나다
삼국지를 왜 동양의 고전이라고 하는가? 삼국지 전문가 신복룡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인간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상황 속에서 삶을 이어가게 마련인데 고전은 이런저런 사건으로 이런 경험을 제공한다.” 그는 또 박태원 삼국지를 이렇게 평가했다. “가장 정확하고 원전에 가장 충실하며 번역자의 작위적인 글이 가급적 절제되어 있어 삼국지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박태원 삼국지는 연의, 곧 이야기형 삼국지다. 연의란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이야기를 덧붙여서 재미있게 설명한 이야기를 말한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그리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어와 영어의 공습이 없었다면 우리가 쓰는 한국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구보 박태원 삼국지를 잠깐이라도 들어 보라.
원본에 실린 모든 한시를 박태원이 한국어에 딱 떨어지게 옮겨 놓았다.
현대의 한국어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한국어의 중요한 단어, 한자말이 모두 살아 있다.
생략과 함축의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말이 번거롭지 않고 뜻이 분명하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는 모더니스트 구보 박태원의 의고체 말법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가 조선의 말멋이 살아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태원은 당대 최고급 중국문학 전문가인 양백화에게 중국 문학을 수학했다. 양백화는 이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859회에 걸쳐 삼국연의를 ≪매일신보≫에 번역 연재하였다. 그는 특히 중국 희곡을 번역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다. 박태원 연구가 윤진헌은 〈박태원 ≪삼국지≫ 연구〉에서 “박태원이 그의 문학에서 특히 인물의 대사를 다루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점, 소설에서 대사와 지문 형식을 실험한 것은” 양백화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한다. 박태원의 삼국지가 이야기체 삼국연의를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러한 문학 수업의 결과와 이야기체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관심이 숨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태원 삼국지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윤진헌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자적인 해석에 기반하여 작품을 번역하였는데 구보의 세련된 현대어 문장이 번역 과정에서 구수한 의고 문장과 결합하여 독특한 미적 성취에 도달하고 있는바 박태원 삼국지의 흡수력은 도저한 것이었다.”
윤진헌은 또 박태원의 번역 전략에 대해서는 이렇게 분석한다.
“작가가 전통적인 이야기꾼의 형식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과연 박태원 삼국지가 이루어낸 고졸한 품격의 비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윤진헌은 “작품의 문체를 살펴볼 때 박태원 특유의 만연체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고소설 번역에서 발견되는 현재형의 문장과 리듬을 생산하는 낭독형의 문장이 뒤섞여 있어 때로는 리듬을 타며 빠른 속도로 읽게 되고 때로는 흥미롭게 재구성한 시각적 형상화로 사실성과 유머를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문학은 기교, 즉 문체라고 주장했던 구보 박태원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윤진헌의 해석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21세기 전기수, 낭독자 길용우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는 120장 가운데 어느 곳을 들어도 재미있다. 시작하기가 힘들지 한번 듣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그치기 힘들다. 왜 지금으로부터 1800년이나 지난 이야기가 21세기 한국인을 꼼짝 못하게 붙잡아 두는 것일까? 이것은 전기수의 힘이다.
전기수는 이야기를 대본 삼아 그때, 그곳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에 옮겨온다. 현대의 전기수, 낭독자 길용우의 목소리는 독자의 상상력을 깨워 일으킨다.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그리고 현대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이 책에 등장하는 1233명의 등장인물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을 살려 연기한다. 목소리 하나로 독자는 스스로 유비가 되고 조조가 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독자는 장강에서 한수로, 낙양에서 건업으로, 서촉에서 남만으로 끝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때로는 승리의 진군으로, 또 때로는 패배의 도망길로 1800년 전 중국의 산과 길과 강을 건넌다. 인간의 목소리는 위대하다. 글자를 살려 사람도 만들고 땅도 만들고 바람과 불도 일으킨다. 삼국연의는 삼국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삼국지는 서양 소설과는 다르다. 180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거리의 이야기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으로 읽는 서양 소설과는 달리 삼국지, 삼국연의는 전기수의 도움을 얻고 나서야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소설은 읽는다.
이야기는 듣는다.
이것이 삼국연의의 리터러시다.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삼국지의 참맛을 선보인다.
이용 환경 : 컴퓨터 또는 노트북(한글 윈도우 오에스(OS)), 스마트폰(안드로이드), 최초 1회 인증 단계는 인터넷 연결 환경 필수(사용자 청취 편의를 위해 전용 플레이어와 OTG C타입 젠더를 함께 제공)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오디오북 제작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오디오북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의 특징
- 달인의 낭독이 주는 엄청난 몰입감, 초감동 91시간 29분
- 원전을 빠짐없이 100% 전달
- 이야기체를 살린 입체 낭독
- 오리지널 의고체 문장
★ 86장 삼국지 무료 듣기
공명의 계교와 진복의 천재적 변론이 펼쳐진다. 삼국지에 담긴 지성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또 조비의 침공과 서성의 반격을 통해 전쟁의 긴박감도 느낄 수 있다. 위 촉 오의 비율이 적당하고 사유와 행동, 머뭄과 충동의 관계도 적당하다.
지금 ‘클릭’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LLgd34edPEs / 유투브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 검색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
박일영(박태원의 장남)
어쩌면 그냥 영영 덮어 두고 떠날 뻔했던 얘기를, 그것도 잠결에 ‘그러마’ 해 놓고는,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혹 괜한 일 벌려 부친의 작품에 누나 끼치지 않을까 사나흘을 자반 뒤집기만 하다가, 어쨌거나 시작은 해 보렵니다.
저는 구보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이령) 입니다. 글이란 써 본 일도 없고 생전에 써 볼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위인이지만, 호는 팔보(八甫)입니다. 구보의 원수 구(仇)자나 언덕 구(丘)자가 아닌 우리말 발음 그대로 아홉 구자에서 연유된 것으로,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 소설가 정비석 님께 소개하시면서, “구보의 아들인데 아홉은 안 되고 팔(八) 보쯤 되는 청년이오” 하셔서 얻게 된 호입니다.
그것이 한 50년쯤 전 일인데, 그 연유를 들은 대학 다니던 제 아이가 몸에 ‘칠보’ 라고 문신을 새겨 넣은 걸 보고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구보 박태원이 ≪삼국지≫ 번역에 뜻을 둔 것은 1929년 양백화(건식) 어른께서 그때까지 항간에 나돌던 ‘구화체 ≪삼국지≫’의 틀을 버리고, 근대적인 대화체의 문장으로 ≪매일신보≫에 연재를 시작하신 시기로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근거는, 구보가 어려서부터 집안에 고매한 한학자이며 의전의 전신인 한성의학교 출신 양의(洋醫)였던 숙부 박용남으로부터 한학을 사사했으며, 박옹 왈 “네 나의 학문을 받아들임이 일취월장하여 내 이제 너 점성(박태원의 아명)에게 더는 가르칠 게 없어 새로운 스승을 소개하리라” 하시며 당대 중국 문학의 대가셨던 양백화 문하로 보내셨던 사실이 있고, 그 후 부친께서는 1930년대 후반에 많은 중국 문학 작품 번역을 하고 계셨던 점에 연유합니다.
1939년 대동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의 인기 대중 작가이며 종군 기자였던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일본을 비롯하여 경성에서 일본어로 발행되던 ≪경성일보≫에 동시 연재를 시작한 ≪삼국지≫가 인기를 끌자, 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신판 ≪삼국지≫를 한글로 번역 연재하게 했으나, 이듬해 조선일보의 폐간과 함께 더는 한글 ≪삼국지≫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구보의 ≪삼국지≫ 번역은 1941년 월간지 ≪신시대≫에 연재됨으로써 막을 올렸다고 보겠습니다. 아마 ‘조선에도 삼국지 번역을 이어 갈 인재가 있다’ 내지는 백화 선생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역사 소설 번역을 해 보겠다는 의욕에, 요시카와의 번역이 번안에 가까운 데 착안하여, ≪신역 삼국지≫로 삼고초려와 적벽대전을 1943년까지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이것들은 1943년과 해방되던 해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러고는 해방이 되면서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원적≫을 중단하고 여러 편의 단편 발표 이외에는 자중하시다 1948년 ≪수호전≫을 세 권으로 정음사에서 발행한 후, 최영해 사장의 권유로 다시 ≪삼국지≫ 번역에 착수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군상≫을, 그리고 ≪서울신문≫에는 ≪임진왜란≫을 연재하고 있던 중이라 허물없이 지내는 벗으로부터, “군은 안경을 잡순(쓴) 주제에 신문 연재소설까지 쌍알이 질려 가지고… 운운” 하였다는 소리까지 들으셨다 합니다.
결국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군상≫은 중단하시고, ≪삼국지≫ 번역에 심혈을 기울여 1950년 3월과 4월에는 빨간 장정의 완역 ≪삼국지≫가 두 권이 나왔는데, 그 원고들은 대부분 제가 학교 가는 길에 학교 뒤에 사시던 최 사장 댁으로 나르곤 했습니다. 혜화초등학교 뒤쪽에 있던 적산가옥 이층집은, 외솔 선생님을 모시고 사셨던 듯, 대문에는 최영해 문패는 없고 최현배 세 글자가 가로 쓰기로 붙어 있었음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6월 들어 뇌염 방학에 들어갔는데 6.25가 났습니다. 포성이 그치고 잠잠해지자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종로통에 나가 보았는데 전매국(專賣局) 골목에서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순사가 엎어져 있는, 내 생애 최초의 주검을 보았고, 무지스런 탱크가 전찻길 위로 마구 달리는 것을 보며 전찻길이 망가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튿날 아버지는 집을 나가신 후 감감 무소식으로 일주일이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시지 못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두어 번 전선을 따라 종군 작가 걸음을 하셨는데, 아마 남쪽에서의 마지막 낙동강 전투 참전의 기록이, 이북에서 1952년에 발표한 ≪조국의 깃발≫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종군 나들이 후면 며칠씩 누워 계시던 기억과, 9.28 서울 수복이 되어 부랴부랴 ≪삼국지≫ 원고 셋째 권과 백여 매는 실히 되는 넷째 권 원고를 어머니와 아궁이에 태우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일을 후에 정음사 최 사장을 만나 얘기했더니, “그것만 있었더라면 내 팔뚝에 땀띠가 한 말은 줄었을 텐데”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이북에서 발간된 ≪삼국연의≫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도서관에서 아버님이 이북에서 내신 ≪삼국연의≫ 여섯 권과 ≪계명산천은 밝아 오느냐≫ 두 권을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1970년대) 네 식구가 함께 보았는데, 도서관을 나올 때 아이들이 저들이 무얼 안다고, 할아버지 책들을 한 권씩 안고는, 사서가 책은 두고 가야 한다는 말에, “이게 우리 할아버지 책인데…”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어쨌거나 아버님 생전에 가족들의 생존 소식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나중 마지막 스트로크(발작)가 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실 듯하다는 말 듣고 가 뵙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지인을 통해 의견을 타진할 때마다 만에 하나 남쪽에 알려질 수도 있다는 귀띔에 지레 겁을 먹고, 혹 남한 가족들이나 미국 올 때 신원 보증 서 주셨던 분들께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북 결단은 물론 편지도 못했던 일은, 정말 우리 세대가 받은 반공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모스크바 올림픽 전해였던지, 벗 하나가 미국 친선 탁구팀의 임원으로 끼어 가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아침 전화가 와 부친 함자를 물은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라는 설명을 안 하는 것은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의 아량이지요. 갔다 와서 전하는 이야기가, “야, 너희 아버지 거기선 대단하더라. 도착하자 만나 뵈올 뜻을 전했고 체류 중에도 두어 번 채근을 했었지만, 떠나 올 때 만나고 싶으면 올림픽에 오라면서, 비행기 표가 필요하면 알려 달라고 했다”는데, 말을 전하던 인사가 남으로 치면 차관급이어서 그런다는 말을 듣고, 도저히 내가 품고 살아 온 아버님의 말씀이라곤 믿기지 않았습니다.
난리 통에도 살아남은 큰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해진 줄 알았는데, 후에 평양에 갔을 때 들으니 큰누이도 새어머니 쪽도 모르는 일로서, 당시가 사경을 헤매고 계실 때라서, 연락을 맡았던 분들이 그런 답을 했던 걸로 안다고 하여, 결국 부친께선 남쪽 가족들의 생사도 모르고 돌아가신 듯합니다.
어디에서든 확고한 작가적 지위를 갖춘 분들은 작품 활동 멈출 필요 없지요. 필요할 때 엎드려 절 받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 위와 같은 이유에서 여기저기 글도 쓰시고, 방송 작가 생활도 하시고, 확인한 바는 없지만 함경도에 가 교정도 보시고, 벽촌 교장 노릇도 하셨다니, 그 틈틈이 ≪삼국지≫ 원고도 쓰셨겠지요. 그리고 대본으로 쓰셨던 1955년에 북경에서 발간된 ≪삼국연의≫의 전언(10권 권말의 주여창 해설)이 당시 중공 치하에서 ≪삼국지≫ 발간이 왜 필요한가 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타당한 논리로 전개해 나갔다는 점을 접하시고 정말 무릎을 치셨을 듯합니다.
어찌 됐건 그냥 그 머리말, 그것도 끝까지 뇌는 일도 없이 중략해 버리고 초판 1만 부를 찍어냈으니… 부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무리 바쁘셔도 전언은 음미해 볼 것을 재삼 부탁드립니다.
≪삼국지≫ 줄거리도 계급혁명 노선상에 올려놓을 수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 외람되게도 대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좀 삐걱거렸던 점은, 그곳 독자층이 어려서부터 한글 전용 교육을 받은 세대이고, 어느 정도의 각주를 달아야 하는지, 한자 어휘는 얼마나 수용이 되는지 어림이 잡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리듬을 잃은 문장이 다소 서툴렀지만 조금 지나 열이 오르니 역시 ‘구보’였습니다.
그 위에 인세에 쫓길 이유(?)가 없는 그곳에서의 창작 환경에 다소는 익숙해지신 듯, 문장에 여유도 느껴지고, 남쪽에서는 시도를 아니 하셨던 시들을 모두 번역(생각건대 이 부분은 시간을 물 쓰듯 해야 하는데)하셨고, 갈수록 각주는 왜 그리 자상해져 가는지….
그렇게 해서 근 4반세기 만에 구보 박태원은 ≪삼국지≫의 번역을 마치셨고, 그로부터 다시 근 반세기 만에 남쪽에서도 구보 박태원의 ≪삼국지≫가 햇빛을 보게 되었군요. 아들로서도 ≪삼국지≫의 한 애독자로서도 감개가 무량합니다.
- 2008년 박태원 ≪삼국지≫ 발간에 붙인 글
≪삼국연의≫의 정통성에 관한 고찰, 홍상훈, ≪삼국지연의≫ 한국어 번역과 서사 변용 / 한국학연구총서 제17집, 23-24쪽, 인하대학교출판부, 2007
홍상훈은 위의 논문에서 ≪삼국지≫ 번역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 한국어 번역본의 몇 가지 문제.
다만 한 가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은 적어도 현대 한국에서 ≪삼국연의≫에 대한 번역과 대중적 소개가 주로 중국 고전소설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현대 한국어 번역본은 텍스트의 오역과 작품에 대한 올바른 소개의 측면에서 모두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사례
원문 卿射之 操就討天子寶雕弓 金?箭 … (제20회)
직역: “그대가 쏘아보라.” 조조는 천자가 쓰는 보석으로 장식된 활[寶雕弓]과 황금 촉이 달린 화살[金?箭]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시위를 잔뜩 당겨 한 발을 쏘았다.
이문열: “승상께서 한번 쏘아보시오.” 헌제는 약간 무안한 얼굴로 조조를 돌아보며 들고 있는 자신의 보궁과 금비전을 내밀었다. 조조는 단 한 번의 사양도 없이 천자가 내미는 활과 화살을 받았다. (3권, 290쪽)
김구용: “경이 한번 쏘아 보아라.” 조조는 황제의 보조궁과 황금 촉으로 된 화살을 달라고 하더니, 둥근 달처럼 활을 잡아당긴다.(2권, 231-232쪽)
황석영: “경이 쏘아보오.” 조조는 화살을 뽑으려다 말고 황제의 보조궁과 금촉으로 만든 화살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재빨리 당겨 화살을 날린다.
박상률: “한번 쏘아 보시오.” 조조는 황제가 쓰는 활과 화살을 달라고 하더니 활을 힘껏 잡아당겼다 놓았다. (2권, 188쪽)
같은 원문에 대해 박태원과 신복룡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박태원: “경이 쏘아보오” 하니, 조조는 천자의 보조궁과 금비전을 달라 하여 한 번 힘껏 다려서 쏘니 (제20장)
신복룡: “경(卿)이 쏘아보시지요” 조조가 천자의 보조궁을 받아 화살을 메긴 다음 크게 시위를 당겨 쏘니 (제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