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특집: 한국 경제에 대한 클리셰(cliche)들
《서울리뷰오브북스》 4호에서는 ‘한국 경제에 대한 클리셰(cliche)들’이라는 주제를 〈포커스 리뷰〉로 다룬다. 경제학자 김두얼,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부동산과 인프라 사업 전문가 양동신이 ‘한국 경제’를 떠올릴 때 빠지지 않는 주제인 경제정책, 경제 성장과 위기, 부동산 등의 이슈에 대해 면밀히 살펴본다. ‘한국 경제가 위기다!’, ‘한국 부동산 경제가 위기다!’라고 흔히 내뱉어지는 선언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제대로 살피며, 한국 경제 위기 담론이 가지는 부실함을 폭로한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하지만 더 좋은 정책은 존재한다.” 김두얼은 「영혼을 담아야 감동을 줄까?」라는 제목으로 『경제정책 어젠다 2022』의 서평을 썼다. 이 책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까지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베테랑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상소’인 셈이다. 김두얼은 저자들이 진단한 소득 불평등 문제, 기업 활동 규제에 대한 문제, 기업 소유 구조 개선 등 세 가지 개혁에 공감한다. 그러나 소위 이 공무원들에게 “영혼이 있는가?”를 질문하며 수십 년간 기재부 공무원이라는 화려한 배경에 비해 이들이 제시한 대안은 빈약하고, 의아하며, “사회적 대타협 기구라는 실천 방안”은 “공허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드디어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홍춘욱은 「고슴도치만 보이는 한국의 경제 관련서 시장」에서 『모방과 창조』, 『김인준 교수의 위기의 한국 경제』 두 책을 통해 ‘한국 경제 위기 담론’을 자세히 다룬다.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에서 필립 테틀록이 제시한 ‘고슴도치’와 ‘여우’의 비유를 들어 한국 경제 위기론의 배경에 ‘고슴도치를 자처하는 경제 전문가’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가령 『모방과 창조』에서 저자 김세직 교수가 주장한 ‘5년 1% 하락의 법칙’은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OECD에서 분석한 생산성 지표를 함께 고려했을 때, 노동생산성, 자본의 질적 개선, 총요소생산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다이내믹하고 개방된” 경제활동을 지향하는 한국에 ‘고슴도치’보다는 ‘여우’의 얼굴을 한 경제 전문가가 더 필요한 이유다.
“꿈의 주택 정책은 과연 존재하는가” 양동신은 「부동산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넘어서」에서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2』를 리뷰한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부동산 정책에 깊이 관여한” 김수현 전 실장이 이 책의 공동 저자이다. 양동신은 “유독 한국에서만 부동산의 가격 등락이 심한 상품”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세계적인 현상임을 지적한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의 상태가 더 안정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필자도 인정한다. “꿈의 주택 정책”을 제시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과 주거 문화 개선을 동반한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김홍중은 「세계에 대한 믿음ㅡ타르코프스키 시네마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통해 감독의 철학과 세계를 살핀다. 〈거울〉(1986), 〈솔라리스〉(1971), 〈스토커〉(1979) 등 영화를 낼 때마다 “괴작”의 독특한 철학으로 무장한 타르코프스키의 세계를 들뢰즈를 소환하여 “인간과 세계의 파괴”를 이야기 하면서도 “이 세계를 믿어야 할 이유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외치는 타르코스프키의 영화관을 톺아본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권보드래, 송지우 편집위원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담 형식의 서평을 새롭게 시도했다. 문학 연구자인 권보드래와 정치철학 연구자인 송지우가 각각의 자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따로 또 같이 리뷰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미래 시대의 면면을 ‘클라라’라는 AF(Artificial Friend)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클라라와 태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클라라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조건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인공지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가 어떤 인간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 그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또 “분열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능력주의’화된 세상 속에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소외, 차별하는지 설명한다. 두 편집위원은 오늘의 세계를 반영하는 이러한 모습을 훑고 경제, 교육, 인간관계 등의 주제 등을 건드리며 교차, 대화의 가능성과 서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홍성욱은 「다다익선, 혹은 Many things go」에서 장하석의 신작 『물은 H2O인가?』를 리뷰한다. 장하석이 책에서 주장한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작업”의 타당함에 동의와 공감을 마땅히 보내면서도, 다원주의로 설명되지 않은 몇 가지 한계들을 지적한다. 가령 화학혁명에 대한 해석, “과학의 발전”과 “역사 전반을 바라보는” 관점, 마지막으로 다원주의가 아닌 “일원주의”가 필요한 때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반박한다. “오만한 과학주의”를 넘어 성숙하고 겸손한 과학기술자로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장대익은 「인류에 관한 최악의 가짜 뉴스를 고발한다」에서 화제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살핀다. 인간이 “정복자가 된 것은 다른 종보다 더 다정다감한 종”이었기 때문이라는 책의 주장을 복기하며, 인간이라는 종, 인간 사회 성장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다정함’이라는 필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허나 장대익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 사회가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인간의 다정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박진호는 「한문이 근대에 남긴 유산」에서 사이토 마레시의 『근대어의 탄생과 한문』을 리뷰한다. 한문 문화권에 속하고, 현재까지 한자의 영향권 아래 있지만 한자를 어떻게 읽느냐의 관점에서 ‘음독’과 ‘훈독’으로 나뉘고, 그에 따라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차이점을 보인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의 차이”를 살핀다.
조문영은 「중국 대 서구라는 이분법의 유혹」에서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을 리뷰한다. 인류학자로 중국, 사람, 문화에 주목하는 필자는 “감시 기술로 중국 사회를 통찰하는” 책의 시선을 쫓으며 기술과 데이터, 편리함과 사생활 사이에 아슬아슬한 경계를 설명한다. 나아가 여전히 책에서 “중국 대 서구를 이분법화”하는 “관행”은 되풀이된다고 지적한다.
서소영은 「연결된 몸, 혼종의 의학, 그리고 배제된 목소리들」에서 『한의원의 인류학』, 『하이브리드 한의학』 두 권의 책을 리뷰한다. 한의학자로서 저자는 각각의 책에 실린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한의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지금의 한의학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니는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때로는 내부적 시선에서, 때로는 외부적 시선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설명한다. “성실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책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서소영은 저자들이 놓친 어떤 시선에 대해 언급한다. “몰성적인 관점”을 벗어나 젠더적 차원에서 한의학의 연구를 살피는 일은, 한의학계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이다.
신승철은 「사유 공간을 위한 이미지학자의 투쟁」에서 이미지학자인 아비 바르부르크의 『뱀 의식』을 리뷰한다. 바르부르크에게 “인디언의 이미지는 특별했다.” 그것은 유럽의 “병든 물질문명에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여겨졌고, “혼란스러운 몰락의 시대에 우주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정신학적 병을 안고 살았던 바르부르크의 인디언 이미지 문화와 함께한 “투쟁”은 책을 통해 현대에도 “다른 종류의 진보와 질서”를 담담히 가리키는 메시지가 되었다.
디자인 리뷰★(신설)
3호부터 이어지는 〈디자인 리뷰〉에는 2호부터 서리북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는 정재완의 글이 실렸다. 정재완은 민중미술 작가 오윤이 작업한 강은교, 박노해, 김정환 등의 시집을 엮은 ‘풀빛만화시선’의 북 디자인을 리뷰한다. 목판화 특유의 분절된 날카로움이 고스란히 담긴 표지는 정재완에게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이 스며 있는” 감흥을 일으킨다. 그가 “거의 40년을 거슬러” 1980년대의 책 표지를 살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세련되고 화려해진 북 디자인의 세계에서 ‘예술과 현실의 참여’를 치열하고 고민했던 어느 디자이너의 작지만 의미 있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Book & Maker: 화제의 귀환★(신설)
‘바갈라딘’으로 더 유명한 박태근 연구원이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Book & Maker〉의 첫 타자가 되었다. 박태근은 어떠한 콘텐츠를 엮어서라도 ‘책’이라는 하나의 물성을 만들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살핀다. 편지, 연재, 강연 등 “OO의 원고화”로 이루어져 온, ‘책’의 역사를 훑고, 이후에도 계속 책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이번 호 〈문학〉 코너는 ‘문학 특집’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소설, 에세이 등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편집위원 김영민의 ‘먹물 누아르’가 돌아왔다. 짧은 소설 「동어 스님전(傳)」에서 김영민은 ‘동어 스님’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에 삶과 학문, 가족 등 일상에 가까이 있지만 그 의미와 관계의 역동을 미처 살피기 어려운 주제들을 김영민 특유의 필체로 독파해 간다. 지난 호에서 분량의 세 배의 달하는 ‘학문적 글쓰기’를 파격적으로 보여준 김영민은 짧은 소설을 통해서도 독특함과 파격의 맥락을 잃지 않으려 분투한다.
김겨울은 「책 한 권 찾으려다 그 책의 씨를 말린 건에 대하여」에서 『아무튼 피아노』를 집필하기 위해 책 『니체와 음악』을 찾아 떠난 짧은 여정에 관해 썼다. 결제, 품절, 취소, 재주문의 끝없는 과정을 반복하며 저자가 한 권의 책을 얻으려고 집착한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들은 북튜버로 유명한 그의 ‘애서가’로서의 ‘웃픈’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김연수는 「지저분하게 책 읽기를 권함」에서 ‘마지네일리아’라는 기법을 설명하며, 소설가, 작가로서의 자신이 책을 어떻게 다루는지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가 “꿈꾸는 서점 중 하나”인 “완독서점”은 이 ‘마지네일리아’ 기법의 최고점에 이른 책들로 가득한 서점이다. 김소월과 백석까지 불러와 독자들에게 건네는 그의 권면은 할 수 있는 한 책을 “지저분하게” 읽으라는 것이다.
손보미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 속에 갇힌 느낌」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지인의 부고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이제는 “맞장구를 너무 잘 치는 늙은이”가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면서도, ‘교통사고 아니면 사람이 죽지를 않는다니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몸의 망가짐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리고 서가에 꽃힌 숱한 책의 여러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삶과 죽음, 그 언저리를 헤매게 하는 도구가 됨을 깨닫는다.
이아립은 「우리도 우정일까」에서 추리 작가인 필립 말로와 포르투갈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를 통해 책으로 엮인 인연을 새로운 이야기 속 공간으로 초대한다. 이아립의 상상은 어디서부터가 에세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인지 모를 새로운 장르적 독특함을 추구하며, 독자에게 알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국 만 리 떨어진 곳에” 있던 두 작가의 소환은 책으로 시작한 우정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석재는 「안 고쳐도 되는 집」에서 십여 년 전, 살았던 미국에서의 집을 그리워하며 오늘,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중에 큰돈이 들”지도 모르는 오하이오의 집을 뜯어고치며 보냈던 나날들, 고쳐도 고쳐도 여전히 고칠 곳이 남아 있는 자리들을 보며, ‘무엇인가를 고친다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질문은 곧, 삶에 대한 사유에 닿고 결국 “완벽한 삶에 대한 갈망”이 불필요하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합니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3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가며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런 비판을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3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