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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편안한 피아노 명곡 모음집 (Peaceful Piano Moods)

[ 4CD / 캡박스 ]
Ola Gjeilo, Richard Rodgers, Vangelis, Gabriel Yared, Patrick Doyle 작곡 외 3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Deutsche Grammophon | 2022년 03월 2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4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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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피아노 명곡 모음집 (Peaceful Piano Mood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2년 03월 24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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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Ola Gjeilo: Before Dawn 선택듣기
  • 02 Vangelis: Main Theme (From "Missing") 선택듣기
  • 03 Richard Rodgers: Something Good (From "The Sound Of Music") 선택듣기
  • 04 Wolfgang Amadeus Mozart: Ave verum corpus, K. 618 선택듣기
  • 05 Robert Schumann: 7. Traumerei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6 Johannes Brahms: Intermezzi, Op. 117 - 1. in E Flat Major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7 Franz Liszt: No. 3 in D-Flat Major. Lento placid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8 The Arts and the Hours 선택듣기
  • 09 Paul Tony Lambert: As Ballad 선택듣기
  • 10 Stephan Moccio: Earned It (Solo Piano) 선택듣기
  • 11 Joep Beving: Sleeping Lotus 선택듣기
  • 12 Frederic Chopin: Nocturne in G Minor 선택듣기
  • 13 Vikingur Olafsson: For Johann 선택듣기
  • 14 Vikingur Olafsson: And at the Hour of Death 선택듣기
  • 15 Johann Sebastian Bach: Das Wohltemperierte Klavier: Book 1, Bwv 846-869 - Prelude And Fugue In C, Bwv 846 (Prelude And Fugue) 선택듣기
  • 16 Stanley Myers: Cavatina 선택듣기
  • 17 Main Title Theme (From "The English Patient") 선택듣기
  • 18 Maurice Ravel: Prelude en la mineur (1913), M.65 선택듣기
  • 19 Claude Debussy: Deux Arabesques L. 66 - No. 1, Andante con mo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0 13 Preludes op.32 - No. 5 in G Major: Modera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1 Franz Liszt: Fruhlingsglaube 선택듣기
  • 22 Ludwig van Beethoven: 15 Variations and Fugue in E-Flat Major, Op. 35, "Eroica Variations" - 7. Variation 5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3 Dolly Suite, Op.56 - 1. Berceuse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4 Benny Andersson (ABBA): Trostevisa 선택듣기
Dis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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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Claude Debussy: Transcription pour deux pianos 1895 선택듣기
  • 02 My Father's Favourite (From "Sense & Sensibility") 선택듣기
  • 03 Chad Lawson: Prelude in D Major 선택듣기
  • 04 Mikhail Pletnev: Var. I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5 George & Ira Gershwin: Arr. for piano solo 선택듣기
  • 06 George & Ira Gershwin: Love Walked In (Arr. Percy Grainger) 선택듣기
  • 07 Johannes Brahms: Variation Xii (Book 1) 선택듣기
  • 08 Franz Liszt: 3. Pastorale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9 1. Allegr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0 Ludwig van Beethoven: No. 2 in G major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1 Johann Sebastian Bach: 9. Schafe konnen sicher weiden (arr. Mary Howe for two pianos) 선택듣기
  • 12 Franz Schubert: 3. Allegro modera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3 Peter Iljitsch Tschaikowsky: Pas de quatre (Arr. for piano by Earl Wild) 선택듣기
  • 14 Serge Prokofieff: 6. Con eleganza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5 1. Butterfly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6 Frederic Chopin: No. 2 in F Minor "The Bees"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7 Frederic Chopin: Etude in A flat, Op.posth. " Methode des methodes " 선택듣기
  • 18 September Song 선택듣기
  • 19 Philip Glass: No. 14 (Etudes) 선택듣기
  • 20 6. Andante sostenuto "Venetian Gondola Song"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1 Yann Tiersen: La Valse D'Amelie 선택듣기
  • 22 Rui Massena: Valsa 선택듣기
  • 23 Sophie Hutchings: A Small Kind Of Revival 선택듣기
  • 24 Stephan Moccio: Winter Waltz 선택듣기
  • 25 Edvard Grieg: 4. Notturn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6 5. Lilacs (Transcr. Rachmaninov for Piano) 선택듣기
Dis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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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2. Summer Evening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2 Sergej Rachmaninoff: No. 5 in D-Flat Major: Adagio sostenu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3 Franz Schubert: No. 3 in G-Flat Major: Andante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4 Ludwig van Beethoven: Poco mo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5 Johannes Brahms: 15. in A (For Piano Duet) 선택듣기
  • 06 Franz Liszt: No. 1 in E Major. Andante con mot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7 Ludwig van Beethoven: 4. Andante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8 Frederic Chopin: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9 Promenade.Moderato commodo assai e con delicatezza - attacca (for Piano) 선택듣기
  • 10 Peter Iljitsch Tschaikowsky: 2. Danses caracteristiques. b. Danse de la Fee Dragee: Andante non troppo (Arr. Nicolas Economou for 2 pianos) 선택듣기
  • 11 Johannes Brahms: 9. in D Minor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2 Domenico Scarlatti: Sonata in D Minor, K.9 선택듣기
  • 13 Claude Debussy: Page d'album, L. 133 (Pour l'oeuvre du "Vetement du Blesse) 선택듣기
  • 14 Robert Schumann: 7. Vogel als Prophet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15 Isaac Albeniz: Tango, Op.165, No.2 (Arr. Godowsky) 선택듣기
  • 16 Benny Andersson (ABBA): The Day Before You Came 선택듣기
  • 17 Music Lab Collective: River Flows In You (Arr. Piano) 선택듣기
  • 18 Frederic Chopin: Waltz In A Minor Opus Posth. Kk4B No.11 - Allegretto 선택듣기
  • 19 Rolf Lovland: Song From A Secret Garden (Piano Solo Version) 선택듣기
  • 20 Luke Howard: In Metaphor, Solace 선택듣기
  • 21 Stephan Moccio: Sea Change 선택듣기
  • 22 Ludovico Einaudi: Abc 선택듣기
  • 23 Johann Johannsson: Dressing Up (From "Personal Effect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선택듣기
  • 24 Max Richter: H In New England 선택듣기
  • 25 Claude Debussy: 5. Bruyeres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6 Stephan Moccio: Fracture 선택듣기
  • 27 Johann Sebastian Bach: Aria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28 Benny Andersson (ABBA): Chess 선택듣기
Dis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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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Frederic Chopin: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2 Melodie dell'Orfeo (Act 2) 선택듣기
  • 03 Johann Sebastian Bach: 1. Sonatina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Bwv 106 Transcr. By Gyorgy Kurtag) 선택듣기
  • 04 Serge Prokofieff: 7. Pittoresco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5 Edvard Grieg: 4. Solveig's Song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6 Johann Sebastian Bach: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Chorale Prelude Bwv 639 (Transcr. By Ferruccio Busoni) 선택듣기
  • 07 Johannes Brahms: Variation V (Original Version) 선택듣기
  • 08 Dario Marianelli: One Of Them (From "Darkest Hour" Soundtrack) 선택듣기
  • 09 Philip Glass: Opening (Glassworks) 선택듣기
  • 10 Max Richter: The Departure 선택듣기
  • 11 Ola Gjeilo: Winter 선택듣기
  • 12 Stephan Moccio: Wrecking Ball (Solo Piano Version) 선택듣기
  • 13 Joep Beving: Ab Ovo 선택듣기
  • 14 Agnes Obel: Roscian 선택듣기
  • 15 Vivian Roost: Gymnopedie No. 2 (Vivian Roost Rework) 선택듣기
  • 16 Vangelis: Main Theme (From "Chariots of Fire") 선택듣기
  • 17 Johann Johannsson: Linda and Walter (From "Personal Effect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선택듣기
  • 18 Jean-Michel Blais: La solitude (From 'Matthias & Maxime' Soundtrack) 선택듣기
  • 19 John Cage: In A Landscape 선택듣기
  • 20 Max Richter: Dream Solo 선택듣기
  • 21 Jacob Muhlrad: Sea Report Chorus 선택듣기
  • 22 Of Twilight Skies 선택듣기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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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39명)

작곡 : Ola Gjeilo (올라 야일로 )
작곡 : Vangelis (반젤리스,Evangelos Odysseas Papathanassiou)
신시사이저의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해 나가는 반젤리스(Vangelis)는 록,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연주로 종합해내는 뮤지션이다. 신시사이저라는 기계에 ‘따듯한 인간의 체온’을 실어내는 그의 연주엔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전율이 있다. 이미 수많은 솔로 연주 앨범과 영화음악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고한 추종세력을 확보한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설파... 신시사이저의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해 나가는 반젤리스(Vangelis)는 록,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연주로 종합해내는 뮤지션이다. 신시사이저라는 기계에 ‘따듯한 인간의 체온’을 실어내는 그의 연주엔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전율이 있다. 이미 수많은 솔로 연주 앨범과 영화음악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고한 추종세력을 확보한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그의 대표곡 ‘To the Unknown man’, ’Chariot of fire’ 그리고 ‘Conquest of Paradise’는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인간의 시도는 끝내 승리한다는 해피 엔딩의 서사시이다. 반젤리스는 신비의 베일로 싸여있는 존재다. 런던에 소재한 자신의 작업실인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에서 칩거하며 오로지 ‘창조’를 위해 몸부림친다. 같은 그리스 출신이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야니(Yanni)가 대중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팝 스타라면 반젤리스는 자신의 예술혼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집스런 대가가 따로 없다. 에반겔로스 오딧세이 파파타나시우(Evangelos Odyssey Papathanassiou)라는 긴 이름의 본명으로 1943년 3월 29일 그리스 동부 발로스에서 태어난 반젤리스는 4세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으나 이내 싫증을 내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연주감각을 익힌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어서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자신의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확실한 지침서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지식은 나에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밍스(Forminx)라는 록 밴드를 결성하고 1960년대 당시까지 록음악에 문외한들인 그리스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반젤리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인으로 성장한다. 1967년 포밍스가 해체되고 보컬과 베이스 주자이 데미스 루소스와 드러머 루카스 시데라스를 만나 자신의 이름을 딴 파파타나시우스(Papathanassiou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들 셋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길 원했고,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1968년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1968년 파리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퍼지면서 이들의 녹음 작업을 위해 영국으로 가려던 계획은 당시 공장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비자발급이 되지 않은 관계로 수포로 돌아간다. 이 때 그들의 음악성을 높이 산 프로듀서 삐에르 스바로(Pierre Sbarro)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레코딩을 할 수 있었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발표한 첫 싱글 ‘Rain and Tears’가 유럽시장을 석권하며 60년대 후반부터 1972년 밴드가 해산될 때까지 이들의 음악은 유럽지역 전역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얻는다. 1972년 밴드는 해산하게 되고, 반젤리스는 솔로로 나선다. 이미 < Dragon >(1971), < Sex Power >(1972)같은 솔로 앨범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극히 저조했다. 그러나 1973년 프랑스 영화 감독 프레드릭 로시프의 TV 다큐멘터리 < 동물의 묵시록 >(‘L’Apocalypse Des Animaux)의 배경음악과, 폴리돌(Polydor)에서 발표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La petite fille de la mer‘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 동물의 묵시록 > 덕분에 본격적인 솔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1974년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와 수개월간 공동작업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밴드의 키보드주자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후임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그러나 결국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패트릭 모라즈(Patrik Moraz)가 가입하게 됨으로써 소문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반젤리스는 이후 예스의 보컬 주자 존 앤더슨(Jon Anderson)과의 지속적인 음악 교분을 갖게 된다. 1975년 RCA와 계약하며 반젤리스는 런던에 자신의 음악 작업실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세우고 수많은 솔로 명반들을 발표한다. 존 앤더슨의 보컬이 참여한 ’So long ago, so clear’가 수록된 명반 < Heaven & Hell >(1975)을 시작으로 < Albedo 0.39 >(1976), 그의 대표곡 ‘To the Unknown Man’이 수록된 < Spiral >(1977), < Beauborug >(1978)를 연속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반젤리스라는 이름이 대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게끔 한 것은 역시 영화음악이다. 먼저 < 동물의 묵시록 >에 이어 < Ode >, < Opera Savage >, < China >, < Antratica >, < The City >와 같은 TV 다큐멘타리 시리즈에서 배경음악을 맡으며 그의 재능이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리고 1981년,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우정을 그린 휴 허드슨(Hugh Hurdson)감독의 영화 < 불의 전차 >(Chariot Of Fire)의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여기서 동명의 테마 연주곡 ‘Chariot of fire’가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의 솔로활동은 정점을 맞기에 이른바. < 불의 전차 > 영화 음악으로 그는 1982년 오스카상 영화음악 부문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음악에서의 재능은 그칠 줄 몰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걸작 < Blade Runner >(1982)에서 반젤리스는 미래 도시의 음습하고 차디찬 분위기를 그의 신시사이저 연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영상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 앨범은 사운드트랙의 빛나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80년 반젤리스는 < Heaven & Hell >에서 함께 한 보컬리스트 존 앤더슨과 다시 한번 조우하며 존 & 반젤리스< Jon & Vangelis)라는 듀오를 결성한다. < Short Stories >(1980) < Friends of Mr. Carino >(1981), < Private Collection >(1983), < Page of life >(1991)로 이어진 공동작업은 ‘Polonaise’, ’The freinds of Mr. Cairo’와 같은 히트곡을 남긴다. 1990년대 들어서도 반젤리스의 명성은 지속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음악가로 대접받던 반젤리스는 < 블레이드 러너 >의 리들리 스콧 감독과 다시 한번 만나며 영화 < 1492: Conquest of paradise >(1992)로 여전히 웅장하고 힘이 느껴지는 신시사이저 연주를 들려주면서 과거 < 불의 전차 >에 못지 않은 찬사를 받는다. < 1492: Conquest of paradise >의 성공은 반젤리스가 ‘영화음악계의 지존’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90년대의 솔로앨범으로는 < Voices >(1995), < Oceanic > (1996), < El Greco >(1998)가 있다. 2001년에는 미국 나사(NASA)의 후원으로 작업한 클래식 소품 < 2001 Mars Odyssey >를 발표한다.
작곡 : Gabriel Yared (가브리엘 야레드)
영화음악 작곡가 영화음악 작곡가
작곡 : Agnes Obel (아그네스 오벨)
신비한 목소리, 시적인 가사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덴마크 싱어송라이터 신비한 목소리, 시적인 가사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덴마크 싱어송라이터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작곡 : 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1810년에 독일 작센 주의 츠비카우 시에서 태어났다. 출판업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음악 못지않게 문학에도 심취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슈만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부모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슈만은 이후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1828년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마음...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1810년에 독일 작센 주의 츠비카우 시에서 태어났다. 출판업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음악 못지않게 문학에도 심취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슈만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부모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슈만은 이후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1828년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피아노 공부를 이어가던 중 유명 피아노 교수 프리드리히 비크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게 슈만은 열정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었으나 혹독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 결국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슈만은 작곡과 음악 평론의 길로 들어서는데, 어린 시절의 독서가 큰 자양분이 되었다. 1834년 동료들과 함께 음악 잡지인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ur Musik>를 만들고, 10년간 편집장 역할을 하며 글을 썼다. 슈만은 이 잡지를 통해 베를리오즈, 쇼팽 등 무명의 뛰어난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 작곡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작품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에 실린 슈만의 조언들은 그의 피아노 작품집 〈어린이를 위한 앨범Album fur die Jugend〉과 함께 발표하려고 쓴 것인데, Musikalische Haus-und Lebensregeln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 어린이와 젊은 음악가들을 향한 슈만의 특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으며, 1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큰 울림을 준다.

1840년 클라라 비이크와 결혼하였다. 그 후 수많은 가곡을 작곡하고 멘델스존의 라이프니츠 음악원에서 강사, 드레스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그 뒤 정신 이상으로 라인 강에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조되었으나 2년 후 1856년, 46세에 현재 본으로 편입된 엔데니히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장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평가받는다. 시적이며 철학적인 그의 음악은 아주 낭만적이다. 그의 초기 음악에서 형식적인 고전주의의 틀을 깨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근대적 피아노 기술을 개척하고 개성 있는 피아노 소곡과 가곡을 남겼으며, 가곡에서는 가곡 못지 않게 피아노 반주부에 중요한 표현을 준 점이 획기적이다. 그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은 우수한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좋은 협력자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사육제>, <어린이 정경> 등의 피아노 곡과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의 가곡집, 합창곡 <유랑의 무리>가 유명하고, 그 밖에 관현악곡·실내악곡·기악곡도 많다.
작곡 : Johannes Brahms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독일어: Johannes Brahms, 문화어: 요한네스 브람스, 1833년 5월 7일 ~ 1897년 4월 3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다. 함부르크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주로 음악가 생활을 했으며, 당대 낭만주의 음악의 선도적 존재였다. 일생동안 그는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가졌으며, 19세기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 따르면 그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 요하네스 브람스(독일어: Johannes Brahms, 문화어: 요한네스 브람스, 1833년 5월 7일 ~ 1897년 4월 3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다. 함부르크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주로 음악가 생활을 했으며, 당대 낭만주의 음악의 선도적 존재였다. 일생동안 그는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가졌으며, 19세기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 따르면 그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더불어 "3B"로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브람스는 여러 피아노곡, 실내악, 교향악, 성악, 합창곡을 작곡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여러 자신의 작품을 초연했으며,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연주자였다. 브람스의 여러 작품은 현대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이다. 완고한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수많은 자신의 작품을 없애거나 출판하지 않기도 했다.

브람스는 전통주의자이자 혁신자였다. 구조나 작곡 기법면에서 그는 바로크와 고전파 음악에 굳게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는 대위법의 대가였다. 이런 구조와 함께 그는 화성과 음색에 대한 대담하고도 새로운 시도로 당대 조성 음악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그의 업적과 기예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에서 에드워드 엘가에 이르기까지 후대 여러 음악가들의 찬탄의 대상이었다. 브람스의 작품은 결국 조성을 버리게 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한 세대의 음악가군의 시작점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브람스의 작품은 독일 낭만파 중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고전파적인 양식 위에 서서, 중후하고 북독일적인 맛을 지니며, 또한 아름다운 서정성도 갖고 있다. 그가 작곡한 4개의 교향곡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걸작으로 그 중에서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제9에 이어지는 제10교향곡이라고 할 만큼 베토벤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쌓아올린 뛰어난 작품이다. 바이올린 협주곡도 놀랄 만한 완성도에서 베토벤의 곡 다음에 놓일 만한 가치가 있다. 피아노 음악에서도 피아니스틱한 화려한 기교를 배격하고 중후한 작품을 작곡하였다.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가 관현악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는 데에 특색이 있다. 독주곡에서는 <파가니니 변주곡>(1863), <헨델 변주곡> 등이 뛰어났고, 연탄용(連彈用)인 <헝가리 무곡>은 특히 유명하다. 실내악에도 특필할 만한 작품이 많은데, <클라리넷 5중주곡>이 많이 연주되고 있다. <대학 축전 서곡>, <비극적 서곡>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성악곡을 작곡하는데 있어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200여 곡의 가곡과, 중후하고 교묘한 화성은 다소 가까이하기 어렵지만, <알토 랩소디> 등 깊은 슬픔을 담은 명작이 많다. 그리고 마지막엔 심각한 종교적인 작품 <독일 레퀴엠>(1866-1869)을 들 수 있다. 그의 암담하고 우울한 깊이가, 여기에서는 다듬어진 아름다움 속에 정화(淨化)되고, 모든 사람을 감명시키는 숭고함에 이르고 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세레나데, 교향곡 네 곡, 피아노 협주곡 두 곡, 바이올린 협주곡 한 곡, 바이올린과 첼로 이중 협주곡 한 곡, 관현악 서곡(대학축전 서곡, 비극적 서곡) 등 수많은 관현악 작품을 남겼다.

그의 합창 대작 독일 레퀴엠은 전례상의 장송 미사(Missa pro defunctis)의 내용이 아니라 브람스가 루터 성서에서 고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일생에서 세 번에 걸쳐 작곡되었다. 2악장의 초기 판본은 로베르트 슈만이 자살한 지 얼마 안된 1854년에 작곡한 것으로, 나중에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쓰였다. 레퀴엠의 대부분은 1865년 어머니가 죽은 뒤에 작곡하였다. 5악장은 1868년 공식 초연 이후에 덧붙인 것으로, 작품은 1869년에 출판하였다.

브람스의 변주곡 작품으로는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헨델 주제에 따른 변주곡과 푸가, 파가니니 변주곡(둘 다 피아노 독주), 그리고 하이든 주제에 따른 변주곡(피아노 연탄곡과 관현악용 두 판본)이 있다. 교향곡 4번의 마지막 악장은 형식적으로 파사칼리아이다.

그의 실내악곡으로는 현악 4중주 세 곡, 현악 5중주 두 곡, 현악 6중주 두 곡, 클라리넷 5중주, 클라리넷 3중주, 호른 3중주, 피아노 5중주, 피아노 4중주 세 곡, 피아노 3중주 네 곡(4번은 작품번호가 없다)이 있다. 그는 피아노가 반주하는 독주 소나타도 많이 썼는데,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첼로 소나타 두 곡, 클라리넷 소나타 두 곡(이 두곡은 본인이 비올라 소나타로 편곡하였다)이 있다. 또 피아노 독주곡으로는 초기의 피아노 소나타와 발라드에서 나중의 소품 모음집 등 다양하다. 브람스는 가곡(Lied)에서도 중요한 작곡가로서 200곡이 넘는 가곡을 썼다. 그가 죽기 직전에 쓴 오르간 합창 전주곡(chorale preludes) Op.122는 오르간 주자의 중요한 연주곡목이기도 하다.

브람스는 음악에서 특정한 묘사나 이야기를 배제하는 절대 음악의 신봉자였으며, 오페라와 교향시를 전혀 쓰지 않았다.

브람스는 흔히 크고 복잡한 음악 구성을 보이는 진지한 음악가란 평을 받고 있지만, 브람스 생전에 유명해져 상업적으로 성공한 일부 작품 중에는 대중의 기호에 맞게 당대의 번성하던 음악 시장에 적합한 곡도 있다. 20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비평가 B.H. 하긴은 브람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거부하고 자신의 여러 녹음 음악 안내서에서 브람스는 그러한 작품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규모가 더 크고 진지한 음악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브람스가 쓴 이런 류의 가벼운 곡으로는 춤곡집(헝가리 춤곡 왈츠 Op.39 피아노 연탄곡, 성악 4중창과 피아노의 "사랑의 노래 왈츠"(Liebeslieder Waltzes)), 몇몇 성악 작품("자장가Wiegenlied" Op.49 4번이 유명하다. 1868년 출판.) 등이 있다. 브람스의 '자장가'는 친구 베르타 파버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썼다.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에 고전파의 형식과 질서를 담아내어 당대 여러 화려한 음악과 대조된다. 그리하여 브람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신독일 악파의 표제 음악과 대비하여 그를 전통 형식과 "순수 음악"의 대가로 보았다.

브람스는 베토벤을 숭상하였다. 그의 집에는 베토벤의 대리석 흉상이 그가 작곡하던 곳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 일부 악절에서는 베토벤의 양식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의 4악장 주요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피날레 주제와 닮았으며, 브람스 본인도 그러한 유사성에 대해 아무리 멍청이(jeder Esel)라도 이 점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독일 레퀴엠은 어느 정도는 1865년 어머니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한편으로 1854년에 작곡을 시작하다가 슈만이 자살을 시도한 뒤 포기한 어느 교향곡 초고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한때 "슈만의" 레퀴엠을 쓰기도 하였다. 그가 포기한 이 교향곡 작품의 첫 악장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첫 악장으로 쓰였다.

브람스는 고전파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하이든도 좋아하였다. 그는 이들 작품의 친필 악보나 첫 판을 수집하였으며, 편집하기도 하였다. 또 브람스는 조반니 가브리엘리, 요한 아돌프 하세, 하인리히 쉬츠 그리고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등 고전파 이전 작곡가의 음악도 연구하였다. 그의 친구로 탁월한 음악학자들도 있었는데, 프리드리히 크리산더와 함께 브람스는 프랑수아 쿠프랭의 작품 판본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그는 엄격한 대위법 기술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옛 음악을 검토하였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일부 주제는 바로크 음악에서 본뜬 것도 있다. 가령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의 푸가로 된 피날레는 바흐 작품 푸가의 기법을 참조하였으며, 브람스 교향곡 4번 4악장의 파사칼리아는 바흐의 칸타타 150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젊은 브람스를 격려해준 슈만 등 초기 낭만파 음악가들도 브람스에 큰 영향을 주었다. 브람스는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과 종종 만나기도 하였다. 1862~63년 빈에 체제할 적에 브람스는 특히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슈베르트의 영향은 이 시기 브람스의 작품인 피아노 4중주 Op.25와 Op.26, 그리고 슈베르트 현악 5중주와 대 2중주가 암시된 피아노 5중주에서 드러난다. 혹자는 브람스의 작품에서 쇼팽과 멘델스존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이들이 브람스에 영향을 주었다는증거는 거의 없다. (가령 브람스의 스케르초 Op.4는 쇼팽 스케르초 B-flat단조, 그리고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F단조 Op.5는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C단조를 암시한다는 식이다.)

베토벤처럼 브람스도 자연을 좋아하여, 자주 빈 근처의 숲에서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둬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성인 브람스는 종종 무뚝뚝하거나 냉소적이었고, 때론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 구스타프 예너는 "브람스가 불평쟁이 평판을 듣는데는 이유가 있다. 또 그를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는 빈의 그가 좋아하는 "붉은 고슴도치" 술집에 날마다 드나드는 것처럼 빈의 언론이 보도한 예상할만한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그가 등짐을 지고 걷는 모습을 그가 붉은 고슴도치 술집으로 걸어가는 캐리커처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로 남은 사람들은 그에게 충실했으며, 브람스도 이들에게 성실하고 관대하게 대했다.

브람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매우 다른 유형의 작곡가였지만, 그와 평생지기였다. 그는 1897년 죽음을 앞두고 빈의 빈 극장에서 초연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이성의 여신(Die Gottin der Vernunft)에 가려고 하기도 했다. 아마 브람스가 슈트라우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왈츠를 쓰는데 무언가 도움을 주겠다고 쓴 글일 것이다. 브람스가 슈트라우스와 안면을 트게 되었을 때, 슈트라우스의 아내 아델레(Adele)가 브람스에게 팬이라며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푸른 도나우" 왈츠의 음표 몇 개를 쓰고는, "슬프게도 (이건) 브람스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썼다.

1860년대부터 그의 작품은 널리 팔려, 브람스는 재정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방 셋짜리 아파트에 하녀 한 명을 두며 검소한 생활을 좋아했다. 그는 친척들에게 많은 돈을 썼으며, 젊은 음악가들에게 이름을 숨기고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극단적인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레메니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가 연주한 바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 등 여러 초기의 작품들을 없애버렸으며, 1873년 첫 공식 현악4중주곡이 나오기 전에 20곡의 현악4중주곡을 없앴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수 년 동안 곡을 고친 끝에 그는 당초 D단조 교향곡으로 쓸 곡을 자신의 첫 피아노 협주곡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의 세밀함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는 그의 교향곡 제1번인데, 이 곡은 약 1861년부터 1876년까지 거의 15년이 걸려서 쓴 곡이다. 이 곡을 몇번 연주한 뒤 브람스는 악보가 출판되기 전에 원래의 느린 악장을 없애고 새로 악장을 썼다.(원래의 느린 악장을 추측하여 복원한 판본을 로버트 파스칼이 출판한 바 있다) 브람스가 완벽주의자가 된 한 가지 이유로는 초기에 슈만이 그를 이르러 베토벤에 버금갈 음악가로 평가한 것 때문이기도 한데, 이 예언으로 브람스는 베토벤을 따라 잡을 수 있도록 매진하게 되었다. 슈만의 예언에 브람스는 거의 자신감을 얻지 못했으며, 아마 이 때문에 첫 교향곡 완성을 늦춘 것 같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그 전부터 교향곡 1번이 그의 진짜 성격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클라라는 초고에서 본 어둡고 맹렬한 1악장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활기찬 마지막 악장이 "너무 화려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교향곡 2번을 인정하여 자신의 생각을 거두었는데,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자주 들을 수 있으며, 브람스의 밝은 작품이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사람들은 1악장이 특히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교향곡 2번을 19세기의 우수(melancholia) 감정과 연관지어 연구했던 라인홀트 브링크만가 출판한, 브람스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빈첸츠 라히너(Vinzenz Lachner)에 보낸 편지에서 브람스는 자신의 성격에 우울한 면이 있으며, 1악장에서 그런 성격이 반영되었다고 쓴 바 있다.
작곡 : Franz Liszt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 1811년 10월 22일 ~ 1886년 7월 31일)은 헝가리 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헝가리식 이름은 리스트 페렌츠(헝가리어: Liszt Ferenc)이다. 교향시(symphonic poem)을 창시했고, 단악장 sonata를 최초로 작곡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었고, 파리에 가서는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아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었으며... 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 1811년 10월 22일 ~ 1886년 7월 31일)은 헝가리 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헝가리식 이름은 리스트 페렌츠(헝가리어: Liszt Ferenc)이다. 교향시(symphonic poem)을 창시했고, 단악장 sonata를 최초로 작곡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었고, 파리에 가서는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아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었으며, 이 별칭은 오늘날까지도 리스트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뛰어난 기교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지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시간은 채 10년이 안된다. 낭만시대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서는 <메피스토 왈츠(mephisto waltz)>,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 <사랑의 꿈 3번 (love dream no. 3)>, <라캄파넬라 (la campanella)>, 등이 있다. 리스트만의 특별한 기교들과 표현들이 이 곡들에 들어있다. 헝가리 광시곡 2번을 예를 들어 옥타브를 치면서 다른 음을 연타하는 기교가 있다. 음악 전공생들이 거쳐야 하는 고난도 레파토리이다.

리스트는 1811년 10월 22일, 안나 리스트와 아담 리스트의 아들로 헝가리의 라이딩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했다. 그리고 궁정음악가여서 여러 유명한 musician들을 알고 있었다. 후에 Liszt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침 받을 수 있던 이유였다. 어머니도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리스트는 여섯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금방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열두살이 되던 1822년 12월 데뷔했다. 카를 체르니는 리스트의 첫 정식 piano 교사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리스트는 프레데리크 쇼팽과도 친해졌지만 이는 곧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1823년 파리로 옮겨간 리스트는 1824년부터 파에르와 레이하 밑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공부했다. 그러나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잠시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비쳤다. 1832년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의 공연에 다녀온 후 리스트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아프셔서 피아노 교사로 일하며 동시에 연습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음악계의 넓은 발을 가지게 되었다.

리스트는 베를리오즈, 로베르트 슈만, 장차 그의 사위가 되는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당대의 음악가들과 화가 앵그르, 시인 하이네,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과 친분을 다졌다. 그는 연주 활동을 하면서 특히 작곡에 힘을 쏟아 많은 피아노곡을 발표하였다. <12개의 연습곡> 을 더 어렵게 편곡한 것도 15세의 일이다.

1832년 4월 20일, 니콜로 파가니니에 의해 개최된 파리 콜레라 유행 희생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관람한 뒤, 리스트는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에서 거장이었던 것처럼 피아노에서 거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1847년 리스트는 키예프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일하였다. 이 시기 리스트는 자인-비트겐슈타인 (Sayn-Wittgenstein) 공작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져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졌다. 피아노 공연보다는 작곡에 주력할 것을 권한 사람도 공작부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려 했으나, 교황청과 비오 9세는 리스트와 공작부인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이유는 전 남편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압력 때문이었다. 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아직 살아 있었으며 정작 3년전 재혼했고 아버지가 러시아 황제의 부관이었던 유력 가문의 사람이었으며 니콜라이 1세는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회에서 리스트의 연주 도중 수다를 떨다 리스트에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대한 앙금이 있었다. 리스트는 1861년 로마로 옮겨갔다. 1865년 리스트는 예전의 희망대로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되어 교회음악 작곡에 헌신했다.

1869년부터 리스트는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같은 해 리스트의 딸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자 리스트는 몇 년 동안이나 코지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1876년부터 죽기 전까지 리스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가르쳐 바인가르트너, 실로티, 자우어 등의 명인을 배출하였다.

1886년 7월 31일 리스트는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최후 연주 여행을 가던 도중에 감기에 걸렸는데 이것이 폐렴이 되어 둘째 딸 코지마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는 별명이 많다. 최고의 기교를 가진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의 왕", "피아노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해서 "피아노의 파가니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교향시의 창시자"라고 불리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피아노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리기도 한다. 이 별명들 중 가장 넓게 사용되는 별명은 "피아노의 왕"으로, 리스트가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16세 쯤 파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후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리스트에게 찬사를 보내며 붙여줬다고 한다.

그는 19세기의 대표적인 피아노 연주가로, 그의 기교는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가미해서 생기가 넘치도록 한 데에 있다. 작곡가로서 신낭만파에 속하고 교향시를 창시하여 음악에 문학적 요소를 도입하고 자유스러운 화성을 사용하여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작곡의 수는 매우 많고, 그 평가는 오늘에 있어서 각각 다르나, symphonic poem의 형식의 완성, 또 근대적 색채의 관현악법의 일면을 개척한 것은 동일하게 인정받고 있다.
작곡 : Stephan Moccio (스테판 모치오 )
Stephan Moccio는 그래미 앤 아카데미 상 후보 작곡가,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편곡가, 지휘자 및 녹음 아티스트. Stephan Moccio는 그래미 앤 아카데미 상 후보 작곡가,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편곡가, 지휘자 및 녹음 아티스트.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프랑스어: Frederic Francois Chopin, 문화어: 프리데리끄 프랑쑤아 쇼뺑, 1810년 3월 1일 ~ 1849년 10월 17일)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작곡가이다. “피아노의 시인” 이란 별칭을 가진 쇼팽은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는 그가 20세 때 폴란드를 떠나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프랑스어: Frederic Francois Chopin, 문화어: 프리데리끄 프랑쑤아 쇼뺑, 1810년 3월 1일 ~ 1849년 10월 17일)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작곡가이다. “피아노의 시인” 이란 별칭을 가진 쇼팽은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는 그가 20세 때 폴란드를 떠나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을 때 쓰던 프랑스어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 쇼펜(폴란드어: Fryderyk Franciszek Chopin, 문화어: 프리데리끄 프란찌쉐끄 쇼뺑)이다. ch는 폴란드어에서는 'h' 발음이 나지만, Chopin은 프랑스계 성씨이기 때문에 '쇼팽'이라고 발음한다. 폴란드어에서는 '쇼팽의'는 'Chopina'로 격변화하게 되는데, 이를 '쇼페나'라고 발음한다. 폴란드어에서는 'Szopen'(쇼펜)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쇼팽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운 바르샤바 공국으로부터 서쪽으로 46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인 젤라조바볼라에서 태어났다. 교구의 세례 기록에는 그의 생일을 1810년 2월 22일로, 이름을 라틴어로 프리데리쿠스 프란치스쿠스(라틴어: Fridericus Franciscus)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폴란드어로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가 된다. 그러나 쇼팽과 그의 가족들은 생일을 3월 1일로 기록하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이 날짜를 진짜 생일로 인정한다.

프리데리크 쇼팽의 아버지인 니콜라 쇼팽(영어:Nicolas Chopin)은 프랑스 로렌 출신으로, 16세가 되던 1787년에 폴란드로 이주해왔다. 니콜라는 폴란드의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고, 1806년에는 그가 가르쳤던 가문 중 하나인 스카르벡(Skarbek)의 가난한 친척인 테클라 유스티나 크리자노프스카(폴란드어: Tekla Justyna Krzyzanowska)와 결혼했다. 프리데리크 쇼팽은 부모가 결혼식을 올린 브로후프(Brochow)에 있는 교회에서 1810년 4월 23일, 부활주일에 세례를 받았다. 이 때 니콜라 쇼팽의 18살짜리 제자인 프리데리크 스카르벡을 대부로 삼았는데, 프리데리크라는 이름도 그에게서 따온 것이다. 프리데리크 쇼팽은 둘째이자 외아들로, 누나인 루드비카(Ludwika, 1807~1855), 여동생 이자벨라(Izabela, 1811~1881)와 에밀리아(Emilia, 1812~1827)가 있었다. 니콜라는 폴란드에 헌신했으며, 가정에서도 폴란드어를 주로 사용하게 했다.

프리데리크가 태어나고 6개월이 지난 1810년 10월, 니콜라가 바르샤바 고등학교 (대학 전단계 학교, 1804~1831에 존재했음)(영어:폴란드어: Liceum Warszawskie)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됨에 따라 바르샤바에 있는 작센 궁정(영어:Saxon Palace) 1층으로 이사한다. 니콜라는 거기서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어머니는 하숙집 소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었다. 프리데리크의 체격은 왜소했으며, 어린 시절에 병에 자주 걸렸다.

그의 누이인 루드비카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종종 자신의 동생 프레데리크에게 놀이처럼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다. 루드비카는 프레데리크의 재능을 눈치채었고, 결국 그들의 부모는 프레데리크가 공식적인 레슨을 받도록 한다. 공식적인 레슨을 처음 받게 된 것은 체코 음악가 보이치에흐 지브니(영어:폴란드어 Wojciech ?ywny)에게 1816년부터 1821년까지 교습을 받으면서 부터다. 누나 루드비카도 지브니에게 레슨을 받으며 프리데리크 등 남동생들과 가끔 듀엣을 하기도 했다. 쇼팽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7살 무렵에는 공개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고, 사단조, 내림나장조의 두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다. 1821년에는 내림가장조 폴로네이즈를 작곡해 지브니에게 헌정하는데, 그 원고는 아직까지 남아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쇼팽 원고가 된다. 12세 때부터 엘스너에게 작곡 레슨을 받았으며 나중에 엘스너가 세운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들어가게 된다.

1817년 작센 궁전은 바르샤바의 러시아 총독에 의해 군사용으로 징발되었고, 바르샤바 강당은 오늘날 바르샤바 대학교의 총장 집무실인 카지미에슈 궁정(영어:Kazimierz Palace)에 다시 세워졌다. 쇼팽가는 카지미에슈 궁정에 인접한 건물로 이사한다다. 이 기간 동안, 프리데리크는 폴란드 입헌왕국의 통치자인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에게 초대받아 그 아들과 종종 놀았는데, 거기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파블로비치 대공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했다. 율리안 우르신 니엠체비치(영어:Julian Ursyn Niemcewicz)는 그의 극적 에클로그 《우리들의 담론Nasze Przebiegi"(1818년)》에서 "꼬마 쇼팽"의 인기를 증언하고 있다.

1822년 스승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후 쇼팽은 바르샤바 콘소바토리의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뷔르펠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4세 때 바르샤바 중학교에 입학하여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연극에도 흥미를 가지고 희곡을 써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1826년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며, 1829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발표하고 빈에서 연주회를 열어 이름을 떨치자, 유럽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 그가 빈에 도착하였을 때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편지를 보냈으나, 아버지로부터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폴란드가 낳은 최초의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1831년 파리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혁명이라는 격정적인 연습곡을 작곡하였다. 1832년 파리에서 최초의 연주회를 열어 성공함으로써, 그 후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인물이 되었으나 그는 늘 조국과 친구와 가족을 걱정하며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즉흥 연주에도 뛰어났으며, 침착한 성품으로 그의 전주곡이나 연습곡은 예술적 수준이 높은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1830년대 초중반의 파리는 작곡가를 위한 시기였다. 쇼팽이 유명한 작품들을 남긴 것이 이 때이다. 1838년경에 그는 파리 시민들에게 유명해졌다. 그의 친구로 프란츠 리스트, 빈첸초 벨리니, 외젠 들라크루아가 있었다. 쇼팽은 헥토르 베를리오즈와 로베르트 슈만과도 친했는데, 그들의 음악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

1836년에 쇼팽은 17살의 폴란드 소녀인 마리아 보진스카와 비밀 약혼을 했고 나중에 취소했다. 같은 해에, 마리 다굴 백작 부인이 연 파티에서 쇼팽은 소설가이자 애인인 조르주 상드를 만났다.

쇼팽과 상드의 연애관계는 183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그들의 애정 관계는 9년간 지속되었고, 쇼팽의 건강 악화와 상드의 자녀들 문제로 헤어졌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스페인 마요르카의 버려진 가톨릭교회 수도원인 발데모사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1838년 ~ 1839년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닥쳤다. 쇼팽은 파리에서 먼 길을 거쳐 피아노를 가져와서 언덕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쇼팽은 그 절박한 시간의 기분을 스물 네 개의 전주곡(작품번호 28)에 담았다. 그 작품의 대부분은 마요르카에서 쓰여진 것이다. 추위는 쇼팽의 건강과 폐병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와 조르주 상드의 관계가 불륜으로 의심받아 비난과 푸대접을 받았다. 결국 파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쇼팽은 그 일 이후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1840년대에 쇼팽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와 상드는 노앙을 포함한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1849년 쇼팽은 모든 작품을 완성하고 마주르카와 녹턴에만 전념했으며,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러시아의 폴란드 혁명진압으로 발생한 난민들을 위한 연주회에 참여하였다. 그의 마지막 곡은 마주르카 바 단조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지은 민족주의적인 곡이다.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폐결핵이지만 그의 친지가 부검한 결과가 이전 검진결과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낭포성 섬유증이나 폐기종 같은 다른 질병을 앓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다.

로마 가톨릭 성 마들렌 교회에서 열리게 된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 을 연주하기로 했다. 레퀴엠에는 여자 성악가의 역할이 크지만 마들렌 교회에서는 합창단에 여자 가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마찰 때문에 장례식이 2주 동안 연기되었고, 결국 교회 측에서 쇼팽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양보했다. 쇼팽의 시신은 파리 Pere Lachaise에 안장되었다. 그의 심장은 누나 루드비카 옝제예비치(Ludwika Jedrzejewicz)가 전달 받아 폴란드로 가져간 뒤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있는 기념비 밑에 안치되었다.

21세기에 들어 보존된 그의 심장이 담긴 병을 열지 않고 관찰한 결과 심낭염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이 나왔다. 쇼팽이 앓았던 결핵은 심낭염의 일종인 결핵성 심낭염의 원인이다.

쇼팽은 필드가 창시한 살롱음악인 녹턴을 깊고 세련된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일반적인 춤곡인 폴란드의 마주르카나 빈의 왈츠의 선율과 표현의 폭을 넓혔다. 또한 전주곡을 독립적인 장르로 만든 장본인이다.

쇼팽의 곡은 독특한 선율로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혁명 연습곡》과 《강아지 왈츠》가 있다. 《장송 행진곡,전주곡 제 4번》은 지금까지도 슬픔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곡으로 쓰이고 있다. 《즉흥환상곡》 은 쇼팽 시절의 오페라 선율을 모방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반음계를 구사한 곡이다. 쇼팽은 노래하는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피아노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종종 자신이 도니제티와 빈첸초 벨리니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쇼팽의 작품과 재능은 다른 작곡가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슈만은 쇼팽의 선율을 따서 작곡한 그의 《사육제》를 쇼팽에게 헌정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Harmonies Poetiques et Religieuses》 가운데 한 악장인 〈Funerailles〉를 쇼팽에게 헌정했고 그 때가 의미심장하게도 1849년 10월이었다. 그 곡의 중간 부분은 쇼팽의 유명한 폴로네이즈 53번의 옥타브 트리오를 연상케 한다.

전주곡과 연습곡을 포함한 많은 쇼팽의 곡들이 그만의 고유한 기교를 띠고 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은 이 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서양 고전음악에서 쇼팽의 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속한다. 하지만 쇼팽 자신은 낭만주의 조류에 관심이 없었거나 싫어했고 자기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쇼팽의 작품을 전형적인 낭만주의 음악으로 보고있다.

약 200곡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피아노를 위한 것이였고 오로지 몇몇만이 다른 악기를 위한 곡이였다. 실내악에 관하여서는 바이올린보다 주로 첼로와 피아노에 대해 썼고, 이조차도 모두 네 곡 밖에 되지 않는다.

바르샤바에 살 때 쇼팽은 부흐홀츠의 피아노를 사용했다. 나중에 파리에서 사는 동안에는 플라이에에서 악기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플라이에(Pleyel et Cie)의 피아노를 '그 이상은 없다'는 뜻의 "비 플러스 울트라"로 평가한다. 리스트는 파리에서 쇼팽과 친구가되었고 쇼팽의 플라이에 피아노의 소리를 "수정과 물의 결합"으로 묘사한다. 런던에서 쇼팽은 "나는 3대의 피아노, 플라이에, 브로드우드 및 에라르드가 놓인 대형 응접실이 있다네" 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2018 년 폴 맥널티가 만든 쇼팽의 부흐홀츠 피아노는 폴란드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바르샤바 쇼팽 연구소에서 최초의 시대 악기 국제 쇼팽 콩쿠르에 사용되었다.
연주 : Martha Argerich (마르타 아르헤리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8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데뷔하였다. 1955년 유럽으로 건너가 F.굴다, N.마갈로프, B.미켈란젤리 등에게 사사하였다. 1957년 부소니 국제콩쿠르와 제네바국제콩쿠르에서 우승, 이어 1965년에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부동의 명성을 확립하였다. 그 연주는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여성다운 감성의 발양(發揚)을 특색으로 하며, 레...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8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데뷔하였다. 1955년 유럽으로 건너가 F.굴다, N.마갈로프, B.미켈란젤리 등에게 사사하였다. 1957년 부소니 국제콩쿠르와 제네바국제콩쿠르에서 우승, 이어 1965년에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부동의 명성을 확립하였다.

그 연주는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여성다운 감성의 발양(發揚)을 특색으로 하며, 레퍼토리도 J.S.바흐에서 J.M.라벨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F.F.쇼팽, 라벨, S.S.프로코피예프의 작품 연주에 뛰어나다.
연주 : Lilya Zilberstein (릴리야 질베르스타인 )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연주 : Daniel Barenboim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1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을 지휘하며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또한 1992년부터 도이치 슈타츠오퍼 베를린의 음악감독 겸 이 극장의 상주 악단인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 UN 평화대사로 활동 중이다.
연주 : Vikingur Olafsson (비킹구르 올라프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Pierre-Laurent Aimard (피에르-로랑 에마르)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연주 : Katia Labeque (카티아 라베크,Katia & Marielle Labeque)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연주 : Tamas Vasary (타마슈 바샤리)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Brigitte Engerer (브리지트 앙제레)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연주 : Alfred Brendel (알프레드 브렌델)
알프레트 브렌델은 1931년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와 그라츠음악원을 거쳐 에드윈 피셔에게 사사하였고 1948년(17세) 첫 리사이틀에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다음 해인 1949년에 부조니상을 받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여 빈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1963년에는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매년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극동 등을 들... 알프레트 브렌델은 1931년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와 그라츠음악원을 거쳐 에드윈 피셔에게 사사하였고 1948년(17세) 첫 리사이틀에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다음 해인 1949년에 부조니상을 받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여 빈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1963년에는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매년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극동 등을 들러 연주 여행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뛰어난 기교와 아름다운 음색의 소유자로 슈베르트, 리스트, 쇤베르크, 베베른 등의 작품연주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이며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망한 연주 활동 사이에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런던과 빈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가르쳤다. 2008년에 피아니스트로서 은퇴한 후 현재는 런던에 살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시를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는 『바로 나』(마르틴 마이어와의 대담, 2001), 『거울에 비친 상과 검은 유령』(2003), 『마지막 화음이 끝난 뒤』(질의와 응답, 2010)가 있다.
연주 : Aloys Kontarsky (알로이스 콘타르스키)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Mikhail Pletnev (미하일 플레트네프)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연주 : Yuja Wang (유자 왕,王羽佳)
중국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났으며, 6세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中央音??院)에서 음악을 배웠다. 21세부터 세계 독주회를 열며 국제적인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도이체 그라모폰과 녹음 계약을 맺고 있다. *수상 목록* 2006년: Gilmore Young Artist Award 2009년: Gramophone Classic FM의 올해의 영 아티스트 ... 중국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났으며, 6세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中央音??院)에서 음악을 배웠다.
21세부터 세계 독주회를 열며 국제적인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도이체 그라모폰과 녹음 계약을 맺고 있다.

*수상 목록*
2006년: Gilmore Young Artist Award
2009년: Gramophone Classic FM의 올해의 영 아티스트
2010년: Avery Fisher Career Grant Recipient
2011년: Echo Klassik Young Artist of the Year
연주 : Maria Joao Pires (마리아 주앙 피레스)
4세에 공개무대에서 연주하고 5세에 첫 리사이틀, 7세에 모차르트의 협주곡연주, 9세에 포르투갈의 ‘젊은 음악상’에 1등을 하는 등 일찍부터 천재성을 주목받았다. 1961년 17세 때 구르벤키안 재단의 장학금으로 뮌헨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엥겔과 슈미트를 사사하면서 그 재능을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70년 브뤼셀에서 열린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의 우승을 계기로 국제 무대로의 길이 열렸다. 단정한 스타일,... 4세에 공개무대에서 연주하고 5세에 첫 리사이틀, 7세에 모차르트의 협주곡연주, 9세에 포르투갈의 ‘젊은 음악상’에 1등을 하는 등 일찍부터 천재성을 주목받았다. 1961년 17세 때 구르벤키안 재단의 장학금으로 뮌헨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엥겔과 슈미트를 사사하면서 그 재능을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70년 브뤼셀에서 열린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의 우승을 계기로 국제 무대로의 길이 열렸다. 단정한 스타일, 명쾌한 터치에서 오는 투명한 울림, 치밀하고 청결한 감각 등은 특히 모차르트에서 십분 발휘되며, 일본 컬럼비아의 『모차르트/피아노 소나타 전집』 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 베를린 음악 콩쿠르 제2위
리스트 콘체르트상 제1위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 제1위
2015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2014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 2011 제6회 대원음악상 신인상 2011 제14회 차이콥스키기념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 3위 2009 제7회 일본 하마마쓰 국제피아노 콩쿠르 우승 2008 제6회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상 2008 제6회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오케스트라 협연상 2008 ... 2015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2014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
2011 제6회 대원음악상 신인상
2011 제14회 차이콥스키기념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 3위
2009 제7회 일본 하마마쓰 국제피아노 콩쿠르 우승
2008 제6회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상
2008 제6회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오케스트라 협연상
2008 제6회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1위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졸업
연주 : Nikita Magaloff (니키타 마갈로프 (피아노))
연주 : Alice Sara Ott (알리스 사라 오트 )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Andrei Gavrilov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Ivo Pogorelich (이보 포고렐리치 )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Shura Cherkassky (슈라 체르카스키)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Anatol Ugorski (아나톨 유고르스키,Anatoli Ugorski)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Francesco Tristano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 슐리메,Francesco Tristano Schlime)
1981년 생인 Francesco Tristano의 무대 이름 인 Francesco Tristano Schlime는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룩셈부르크의 고전적이고 실험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과 전자 음악을 모두 작곡한다. 1981년 생인 Francesco Tristano의 무대 이름 인 Francesco Tristano Schlime는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룩셈부르크의 고전적이고 실험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과 전자 음악을 모두 작곡한다.
뉴욕타임즈가 “클래식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로 찬사를 받고 있는 랑랑은 파워풀하고 화려한 연주로 세계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1982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살 때에는 선양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첫 독주회를 가졌다. 또 열세 살 때에는 차이코프스키 영 뮤지션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랑랑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그리고 미국... 뉴욕타임즈가 “클래식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로 찬사를 받고 있는 랑랑은 파워풀하고 화려한 연주로 세계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1982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살 때에는 선양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첫 독주회를 가졌다. 또 열세 살 때에는 차이코프스키 영 뮤지션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랑랑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그리고 미국의 빅 파이브라 불리는 모든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최초의 중국 피아니스트이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클래식 음악가로는 이례적으로 연주를 해 스타 파워를 증명했다. 그리고 2008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한국에서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였다.

한편 랑랑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많은 어린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보냈으며, 2008년 중국 쓰촨성에 지진이 났을 때에는 자신의 피아노를 경매에 붙여 피해자들을 돕기도 했다. 현재 랑랑은 자신의 힘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랑랑 국제 음악 재단’을 설립하여, 재능은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음악 할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세계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를 사사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를 사사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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