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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컴필레이션 - 올 스타 크리스마스 히츠 1집 (All Star Christmas Hits Vol. 1)

Dionne Warwick, John Denver, Westlife, Randy Crawford, Bryan Adams 노래 외 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Bellevue / Bellevue | 2021년 12월 0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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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컴필레이션 - 올 스타 크리스마스 히츠 1집 (All Star Christmas Hits Vol. 1)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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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2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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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Disc
  • 01 Tom Jones - Mary's Boy Child
  • 02 Bryan Adams - On Christmas Day
  • 03 Randy Crawford - White Christmas
  • 04 Manhattan Transfer -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 05 Ami Stewart - My God is so high
  • 06 The Sisters of Glory: Ce ce peniston, Thelma Houston & Phoebe Snow - Oh Happy Day
  • 07 Dionne Warwick - Silver Bells
  • 08 Westlife - O Holy Night
  • 09 Shola Ama - Joy To The World
  • 10 The Corrs - Happy Xmas (War is Over)
  • 11 Helen Redoy - Deck the Halls
  • 12 John Denver - Little Drummer Boy
  • 13 Dolores O'Riordan - Panis Angelicus
  • 14 Cleopatra with the Harlem Ten - O Come All Ye Faithful

아티스트 소개 (6명)

R&B, 팝 보컬 R&B, 팝 보컬
1970년대 복고적인 ‘미국의 소리’ ‘32세의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라고 < 뉴스 위크 >지가 1976년 공언한 대로 존 덴버는 전성기 시절 내내 ‘미국의 목소리’(The voice of America)로 통했다. 그의 청량제 같은 노래들과 수더분한 ‘촌놈’ 외모는 곧 1970년대 중반의 ‘미국 그 자체’였다. 그 무렵 미국은 존 덴버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했다. 1974년과 1975년 미국인들은 워... 1970년대 복고적인 ‘미국의 소리’ ‘32세의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라고 < 뉴스 위크 >지가 1976년 공언한 대로 존 덴버는 전성기 시절 내내 ‘미국의 목소리’(The voice of America)로 통했다. 그의 청량제 같은 노래들과 수더분한 ‘촌놈’ 외모는 곧 1970년대 중반의 ‘미국 그 자체’였다. 그 무렵 미국은 존 덴버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했다. 1974년과 1975년 미국인들은 워터게이트와 월남전 패색이라는 최대의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워싱턴 정가는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렸고 국론은 ‘고도의 민주주의 나라’라는 위상을 무색케 할만큼 완전 분열되었다. 미국인들은 허탈했고 피곤했으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건강한 미국’을 얘기해 주고 공허한 그들의 마음을 위무해 주어야 했다. 그가 가수라면 좋았고 나아가 ‘쉽고 깨끗한’ 노래를 들려준다면 더 좋았다. 거기에 존 덴버는 딱 알맞은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었다. 명반 < 궤적의 피(Blood On The Tracks) >를 내놓은 밥 딜런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을 달래 주기란 힘들었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격동의 1960년대가 떠오르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러나 존 덴버는 편했다. 그에게 근심거리란 없어 보였고, 다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인 듯 했다. 그 자신도 1970년대 중반의 상황이 자신을 수면 위로 부상 시켜준 원천임을 알았다. 그는 < 세븐틴 >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여, 내가 세상이 왜 행복한 곳인가를 노래할 때 내게 그대의 귀를 주오”라고 말했다. “난 미국에 대해, 가족에 대해, 삶의 축복에 대해 노래한다. 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노래부른다.” 당시 미국인들은 그의 노래 제목만 들어도 즐거워했다. ‘내 어깨 위의 햇살이 나를 행복하게해(Sunshine on my shoulder)’ ‘나를 고향으로, 시골길로 보내주오(Take me home, country roads)’ ‘나의 달콤한 여인(My sweet lady)’ ‘내가 촌놈인 것을 신께 감사드려요(Thank god I’m a country boy)’ 등.. 참으로 낙천적이고 전원적이며 명랑했다. 이 곡들은 모두 싱글 차트에서 1, 2위를 기록했다. ‘차라리 카우보이가 되고 싶다(I’d rather be a cowboy)’고 하고 ‘집에 다시 돌아온(Back home again)’ 것을 찬양하고 산과 바다, 시골이 무대인 그의 노래가 거부감을 줄 리 없었다. 그는 실제로 산을 사랑한 컨트리 보이였다. 공군 조종사의 아들로(1943년생) 존 헨리 듀센도르프가 본명인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산이 많은 도시 덴버의 이름을 따 개명했다. 또 유랑과 속세의 삶을 살다가 27세에 로키산에 올라가 새로운 인생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매년 시간을 내 콜로라도의 전원에 있는 아스펜 집에 묵곤 했다. 그는 ‘콜로라도의 정신’이었다. 주지사 존 밴더후프는 그에게 ‘콜로라도의 계관 시인’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닉슨과 포드 대통령 교체 이후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전통적이고 복고적인 가치를 대변했다. 해맑은 컨트리 음악을 들고 나온 그가 환영받은 것은 당시의 보수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가 미국인이었고 미국의 정서를 견인한 주역이었기에 1974년과 1975년에 그의 인기는 경쟁자인 영국 로커 엘튼 존을 추월했다. 팝적인 컨트리 록은 강렬한 하드 록과 복잡한 프로그레시브 록이 대세였다. 그러나 워터게이트와 월남전 패망으로 시끄럽고 혼잡스런 사람들에게 이러한 음악들은 귀에 들려 오지 않았다. 존 덴버는 정반대의 ‘컨트리 팝’으로 록의 퇴각을 강제했다. 록 진영은 갑작스런 그의 인기 행진에 놀랐다. 록 비평가들이 볼 때 덴버 노래의 낙천적 분위기는 건강한 정서의 반영이 아니라 단순한 ‘도피적 심리’에 불과했다. 혼탁한 세상을 잊고 편하게 살자는 심산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를 악평하는 사람들은 때문에 그를 ‘팝음악의 극단적 낙천주의자’라고 일컫는가 하면 ‘록의 미키 마우스’라고 내리깔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래가 대중들을 사로잡은 ‘어처구니없는’ 실상에 록 언론의 주도층은 궁지에 빠진 것이 사실이었다. 1974년 여름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애니의 노래(Annie’s song)’만 해도 그렇다. 삶의 축복을 노래하는 그의 지향을 축약한 이 노래는 이후 수년간 결혼식 때 축가로 가장 많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영국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으며 4년 뒤에는 아일랜드 플루트 주자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가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해 3위에 랭크 시켰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곡은 그가 캠퍼스 커플로 1967년 결혼한 아내 앤 마텔(Ann Martell)을 위해 쓴 곡이었다. 스키 리프트에서 10분만에 썼다는 이 곡은 노랫말 가운데 애니(앤의 애칭)라는 말을 집어넣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 노래가 애송되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 곡은 < 피플 >지로부터 그가 쓴 가장 훌륭한 러브 발라드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80년대 들어서 존 덴버는 이 축복의 찬가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아내 앤 마텔과의 관계가 삐꺽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79년에 이미 궤도를 이탈했다. 잉꼬나 다름없던 둘은 덴버의 엄청난 성공에 불안과 위기를 느낀 앤이 남편과 ‘의사 소통이 중단됨을 느끼면서’ 악화되었다. 이혼 수속을 밟은 두 사람은 마침내 1983년 갈라서고 말았다. 존은 이 무렵을 이렇게 회고한다. “애니와의 이혼은 내 생애 가장 뼈아픈 순간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16년간 부부였다. 결혼 15주년 기념일에 우리는 조용히 앉아 ‘우리 잘 안되고 있어’라고 얘기했다. 난 그녀에게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을 난 당신에게 줄 수가 없어. 그러니 다른데 눈을 돌리는게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혼을 맞아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슬쩍 입장을 내비쳤다. “난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난 너무도 바빠 한 여인을 내 인생에서 가질 수 없다. 내 마음속의 마지막 일은 관계를 지속할 여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하여튼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성에 대해 정말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당시 언론은 잉꼬 부부였던 존과 애니의 이혼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한결같이 ‘아니 존 덴버가 이혼이라니...’라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그가 ‘애니의 노래’만 부르지 않았어도 충격은 훨씬 덜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더욱 커다란 쇼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1988년 8월 ‘너무 바빠서 여자를 사귈 수 없다’는 말과 달리 호주 출신의 늘씬한 가수 겸 배우인 카산드라 델라니(Cassandra Delaney)와 재혼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28살인 델라니는 45세였던 존 덴버보다 무려 17살 연하였다. 그는 지난 1990년 한국을 찾아 힐튼호텔에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콘서트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애니의 노래’의 주인공인 애니와 왜 헤어지게 됐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람은 좋아질 때도 싫어질 때도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휴식도 없이 내리 10곡 이상을 부르는 등 환상적인 호흡과 성량을 자랑한 이 내한 무대에서 그는 끝내 최고의 레퍼토리인 ‘애니의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아내인 델라니와의 부부 생활도 순탄하진 못했다. 4년간의 짧은 인연을 끝내고 두 사람은 1992년 이혼 법정에 들어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 그는 다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환경운동가’ 또 ‘마음씨 좋은 컨트리 보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켜 구속된 것이었다. 1993년 8월의 일이었다. 그는 델라니와 이혼을 확정짓고 난 뒤 축하하는 뜻에서(아니 이런!) 과음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50만 달러의 벌금과 자선 콘서트를 개최하라는 징계를 받고 풀려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그의 이미지에 단단히 먹칠을 했다. 일이 안되다 보니 그가 1976년에 설립한 윈드스타 파운데이션(Windstar Foundation)도 갈수록 재정이 악화돼 규모와 인원을 줄이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러나 존의 고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음주 운전 사건 1년 뒤인 1994년 8월 21일 자정, 다시 만취상태에서 1963년형 포르셰가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날 사고도 델라니와 이혼 별거 수당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뜻대로 잘 안 풀려’ 그만 홧김에 음주한 것 때문이었다. 존 덴버는 ‘캐시(카산드라)가 나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불평했다. 음주 운전 사고 재범으로 그는 유죄판결이 날 경우 2년 간 옥살이를 하게 될 위기에 몰렸지만 명성에 힘입어 다행히 그 같은 화는 면했다. 하지만 이는 ‘만능 연예인’으로서의 그의 제기를 불능으로 만드는 치명타 역할을 했다. 환경 운동에 나서고 기아 문제와 복지 부문, 그리고 반전 활동에 아낌없이 자신을 바쳤던, 모든 찬란한 순간이 빛을 잃어 가는 순간이었다. 1976년 이후 그가 인기 차트 톱 10에 랭크시킨 곡은 없었다. 1982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아마도 사랑은(Perhaps love)’을 함께 부르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주류에서는 이미 떨어져 있었다. 그는 1984년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지의 테니스 헌트와의 인터뷰에서 “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난 요즘 젊은이들이 살 레코드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의 가수로서의 시대는 소실점을 향했고 4년 연속 그래미상 시상식 사회를 본 엔터테이너로서의 시대도 거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미국 상황이 불러낸 가수일 뿐이었다. 사회기류가 바뀌면서 그에 대한 ‘효용가치’는 뚝 떨어졌다. 그가 가수보다 ‘예능인’에 비중을 둔 것도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위에 나열한 곡 외에도 ‘오늘(Today)’ ‘정크(Junk)’를 비롯해 무수한 곡들이 라디오 전파를 탔다. 그러나 그의 노래가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우리의 1970년대 팝송 청취가 압도적으로 ‘백인 팝(White Pop)’에 젖어 있음을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언젠가 ‘내가 낙천적인 이유는 내가 할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노래 : Westlife (웨스트라이프)
아일랜드 남성 5인조 웨스트라이프는 비슷비슷한 보이밴드들의 범람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건히 마련한 그룹이다. 5명의 멤버가 유려한 하모니로 아름다운 발라드 중심의 팝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의 ‘특화’된 발라드는 댄스음악 중심인 여타 보이밴드들과 구별되게 한다.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천편일률적인 댄스음악에 둔감해진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소녀 팬들의 상당한 지지를... 아일랜드 남성 5인조 웨스트라이프는 비슷비슷한 보이밴드들의 범람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건히 마련한 그룹이다. 5명의 멤버가 유려한 하모니로 아름다운 발라드 중심의 팝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의 ‘특화’된 발라드는 댄스음악 중심인 여타 보이밴드들과 구별되게 한다.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천편일률적인 댄스음악에 둔감해진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소녀 팬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발라드를 선호하는 국내에서는 가히 절대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인기도는 보이밴드 계의 ‘절대강자’ 백스트리트 보이스나 엔싱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차트성적도 화려하다. 영국에서 지금껏 이들이 발표한 7장의 싱글은 연거푸 차트정상을 차지했다. 이는 비틀스도 감히 달성하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팬 층을 10대에서 20대 이상까지 끌어올린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기대치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그룹이 웨스트라이프다. 브라이언 맥파든(Bryan McFadden), 키언 이건(Kian Egan), 마크 필리(Mark Feehily), 니키 번(Nicky Byrne), 셰인 필런(Shane Filan)으로 구성된 웨스트라이프는 원래 3인조로 출발했다. 6인조 그룹으로 활동하던 키언과 마크, 셰인이 보이존의 매니저였던 루이스 월시에 의해 처음 발탁되었다. 월시는 이들을 보이존의 로넌 키팅에게 소개시켜줬고, 곧 이 둘은 매니저가 되어 웨스트라이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로넌 키팅의 제안으로 브라이언과 니키를 영입해 완전한 라인업을 갖춘 웨스트라이프는 1999년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Westlife]을 발표했다. 그해 5월에 발매한 첫 싱글 ‘Swear it again’은 곧바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앞서 말한 대로 이 싱글을 필두로 7장의 싱글이 연속 차트정상에 오른다. 2000년에 내놓은 2집 [Coast To Coast] 역시 차트를 정복하며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히트행진을 이어갔다. 발라드 외에 이들의 또 하나의 특기는 리메이크다. 이 점은 아일랜드의 선배 그룹 보이존과도 닮은꼴인데, 이들은 주옥같은 팝의 명곡들을 웨스트라이프 식으로 재해석해 옛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아바의 ‘I have a dream’, 킹스턴 트리오의 원곡으로 테리 잭스가 히트시켰던 ‘Seasons in the sun’을 깔끔하게 재생시켰다. 이들은 수많은 보이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프로듀서들에 의해 다듬어졌다. 이들의 전담 프로듀서 스티브 맥(Steve Mac)과 웨인 헥터(Wayne Hector) 외에 ‘틴 팝 히트제조기’ 맥스 마틴,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 싱크에게 곡을 써줬던 라미, 역시 브리트니 앨범에 참여했던 페르 매그누손(Per Magnusson) 등이 웨스트라이프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이처럼 프로듀서에 의존도가 높은 보이밴드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들은 거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해맑은 감성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이밴드로서 음악팬들에게 더 없는 만족을 주는 웨스트라이프는 충분히 나름의 가치가 있다.
노래 : Randy Crawford (랜디 크로포드)
노래 : Bryan Adams (브라이언 아담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활동을 펼쳐 큰 성공을 거둔 캐나다 출신의 로큰롤 싱어 송라이터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는 팝 역사상 가장 소박하고 진솔한 가수 중 한 명이다. 출중한 외모도, 잘빠진 몸매(?)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도 타고나진 않았지만 그의 솔직 담백한 노래와 ‘이웃집 형’ 같은 친근한 이미지는 짧은 기간에 그를 1980년대 메인스트림에서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순수 로큰...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활동을 펼쳐 큰 성공을 거둔 캐나다 출신의 로큰롤 싱어 송라이터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는 팝 역사상 가장 소박하고 진솔한 가수 중 한 명이다. 출중한 외모도, 잘빠진 몸매(?)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도 타고나진 않았지만 그의 솔직 담백한 노래와 ‘이웃집 형’ 같은 친근한 이미지는 짧은 기간에 그를 1980년대 메인스트림에서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순수 로큰롤의 영웅으로 끌어올렸다. 음악 자체보다는 화려한 뮤직 비디오와 요란한 의상처럼 음악 외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1980년대, 브라이언 아담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뉴 웨이브와 MTV 유행으로 일반 가수들이 신시사이저가 찍어내는 인공적인 음악과 화려한 비주얼로 팬들의 귀와 눈을 현혹시킬 때 그는 요란한 치장을 배제하고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로큰롤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으면서 의상비를 절약(?)한 그가 자신만의 수수한 패션 스타일을 고집한 것은 당시 음악 외적인 것에 쏠려 가는 음악계의 트렌드에 대한 반발이었다. 1959년 11월5일 캐나다의 온타리오주(州) 킹스턴에서 태어나 요즈음 빌보드 싱글차트를 강타하고 있는 니클벡(Nickelback)의 고향인 서부 해안 도시 벤쿠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개구쟁이 소년은 바로 그곳 벤쿠버에서 미래 로큰롤의 파수꾼으로 성장하는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작곡가 짐 발란스(JimVallance)와 파트너십을 형성, 같은 국적의 러버보이(Loverboy)에게 ‘Jump’나 미국 하드록의 거물급 밴드 키스(Kiss)의 ‘Down on your knees’와 ‘Rock and Roll Hell’ 등을 제공하면서 나름의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1980년과 1981년, 연이어 처녀작과 소포모어 앨범을 공개했지만 팬들로부터 주목받는데 실패하고 만다. 두 번째 앨범에서 커트된 ‘Lonely nights’는 84위를 기록하곤 2주만에 차트 밖으로 밀려나는 참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1983년에 발표된 3집 < Cuts Like A Knife >에서부터 마침내 그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히트곡이 된 허스키 록 보컬의 발라드 ‘Straight from the heart(10위)’는 같은 해에 여성 로커 보니 타일러(Bonnie Tyler)에 의해 웅장한 스케일로 커버되었고, 팬들은 이 앨범의 ‘Cuts like a knife(15위)’와 ‘This time(24위)’도 애청했다. 특히 음반 타이틀곡 ‘Cuts like a knife’의 그 유명한 후반부 코러스는 이 곡을 로큰롤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성공의 만족감을 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1984년 연말에 발표된 4집 < Reckless >는 그에게 더 큰 성공을 안겼다. 그의 음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한 이 앨범으로 브라이언 아담스는 북미 지역을 훌쩍 뛰어넘어 월드 슈퍼스타로 솟아올랐다. < Cuts Like A Knife >가 성공의 씨앗이었다면 < Reckless >는 성공의 열매였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Heaven’으로 그는 최초로 차트1위에 올랐으며 ‘Run to you(6위)’,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조직했던 경험을 노래한 ‘Summer of 69(5위)’, ‘Somebody(11위)’, ‘One night love affair(13위)’, 그리고 1984년에 인상적으로 재기한 흑인 여성싱어 티나 터너(Tina Turner)와 함께 로큰롤의 열기를 발산한 ‘It’s only love(15위)’ 등이 줄줄이 히트차트를 도배했다. 여섯 싱글 모두 Top20을 기록한 대수확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물론, 수록곡들은 기타주자 키스 스코트(Keith Scott)가 이끄는 백업 밴드의 견고한 연주로 사운드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오픈 코드를 구사한 ‘Summer of 69’는 기타지망생들의 연습교본이 되었다. 싱글들 덕에 앨범 역시 1985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항상 미국의 그림자에 눌려 있던 캐나다가 조니 미첼, 닐 영 등에 이은 또 하나의 팝 거목을 배출하는 순간이었다. < Reckless >의 성공으로 브라이언 아담스는 바빠졌다. 1985년에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돕기 위한 음반 < We Are The World >에서 캐나다 아티스트들이 모여 부른 ‘Tears are not enough’를 작곡하는 것은 물론 ‘라이브 에이드’에도 기꺼이 동참하면서 뜨거운 인간애를 나누었다. 이렇게 타이트한 스케줄을 뒤로하고 1987년에 공개한 < Into The Fire >로부터는 싱글 ‘Heat of the night(6위)’과 ‘Hearts on fire(26위)’, ‘Victim of love(32위)’가 나왔지만 전작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음 앨범 < Waking Up The Neighbours >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다시 4년의 시간이 흐른 1991년이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영화 < 로빈후드 >의 주제가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는 팝 싱글차트 정상을 7주간이나 호령했고,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국내 음악 팬들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이 곡으로 그는 생애 처음으로 그래미상 트로피를 손에 쥐었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르면서 1990년대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빅히트 곡 외에도 ‘Can’t stop this thing we started(2위)’, ‘There will never be another tonight(31위)’, ‘Though I’d died and gone to heaven(13위)’, ‘Do I have to say the words?(11위)’ 등으로 인기를 이어갔으며, 이듬해에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는 베스트 음반 < So Far So Good >을 발표했고 여기서 다시 신작 싱글 ‘Please forgive me’를 7위에 올려놓으면서 절정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전형적인 브라이언 아담스표 발라드인 이 곡도 국내에선 오랫동안 애청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브라이언 아담스의 음악은 거친 혈기와 패기 속에서 낭만을 전하는 로큰롤보다는, 멜로디를 내건 성인 취향의 미드템포와 발라드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는 이 때문에 음악 향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Waking Up The Neighbours >는 아담스 특유의 직선적이고 흥겨운 로큰롤 사운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되었다. 성공 퍼레이드는 여전해 1994년에는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스팅(Sting)과 함께 ‘허스키 삼총사’를 이뤄 영화 < 삼총사 >의 주제곡 ‘All for love’로 또 다시 차트 정상을 수복했고, 1995년에는 영화 < 돈주앙 >에 삽입된 ‘Have you ever really loved a woman?’으로 빌보드 정상을 5주간이나 접수했다. 이 곡의 인트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부분은 팝 연주의 결정판으로 인정받았다. 이듬해에도 여장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와 함께 영화 < 미러 해스 투 페이시스 >의 주제가 ‘I finally found someone(8위)’을 불러 히트 레퍼토리를 추가했다. 나이 30대 중반을 넘어선 시점과 맞물린 1990년대의 두 번째 전성기는 이전의 로큰롤 스타일보다는 영화 주제곡이나 공연실황 음반을 발표하는 등 다소간 정체성을 조정한 듯한 인상이 투영되었지만 상기한 히트곡들은 예외 없이 차분한 발라드로 나타나 여전히 히트가수 이미지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히트곡 모음집 < So Far So Good >은 500만장이 팔려나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의 추억과 낭만이 긷든 로큰롤에서 자신들의 어렸을 적 꿈을 반추하길 원하는 팬들과 나이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구하고 싶은 아담스 자신간에 불가피한 괴리가 생겨났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뉴욕 해머스타인 볼룸에서 거행된 1997년의 프로젝트 < MTV Unplugged >는 일렉트릭 기타 위주의 예전 히트곡들을 어쿠스틱 음원으로 재생하는 절충적 방법을 취한 동시에 앞으로 그의 음악이 예전과 달라질 것임을 시사했지만 실적은 저조했다. 여기서 싱글 커트한 ‘Back to you(42위)’는 마지막 싱글 히트곡이 되었다. 1998년에 발표된 다음 앨범 < On A Day Like Today >는 팬들의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1994년 2월 내한 공연을 가져 국내의 팝 팬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준 브라이언 아담스는 관객들 중에서 한 남학생을 무대 위로 초청해 함께 ‘Heaven’을 부르기도 했고, 관중석 중간에 간이 무대를 마련해 뒤쪽에 위치한 팬들과도 거리감을 좁히는 등 수수하고 친절한 이미지를 실천,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이미지는 아직도 캐나다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그를 기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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