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한다”
미래를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의 작동 원리를 밝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인간만이 ‘넥스팅(nexting)’하는 존재, 즉 미래를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계절이 변화하면 짐승은 번식과 생존을 위해 움직이지만, 인간은 새해가 밝았음을 선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미래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자, 가장 불안해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대안을 떠올리고 그 이후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 즉 전망(prospection) 능력을 가진 덕분에 인간은 즉각적인 만족을 넘어 미래를 대비하며 생존과 진화를 이어왔지만,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는 내일을 점치는 고도의 데이터와 예측으로 가득하고, 전망이 없는 개인과 사회는 불안과 무기력에 빠진다.
이에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이자 학습된 무기력과 우울증에 관한 최고 권위자인 펜실베니아대 심리학과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이러한 인간의 전망 능력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유일무이한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밝히며, 지혜로운 존재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 대신 “무엇이 인간을 지혜롭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호모 프로스펙투스(Homo prospectus)’로 인간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을 비롯하여 저명한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철학자 피터 레일턴(미시간대 철학과 교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 찬드라 스리파다(미시간대 철학과 및 정신의학과 부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전망의 원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정서·직관·선택·상상 등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저작이다. 수년의 공동 연구 끝에 탄생한 이 책은 전망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자유의지·도덕성·창의성·심리적 장애 등 우리 삶의 중대한 질문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2.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서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 소셜리스’로”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의 융합 연구로 인간의 본질을 파헤친 거대한 프로젝트
마틴 셀리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2017)을 통해 지난 100여 년간 과거에 지배당한 심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순간을 사는 존재로 만들어지지 않았다(We aren’t built to live in the moment).” 지금까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연구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대부분 개인의 과거 이력과 유전자, 현재의 자극, 현재의 동기와 정서에 기인한다고 파악하고 인간의 미래 예측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직접 번역하기에 이른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지적하듯, 기존의 심리학은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개인과 사회가 던지는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이에 마틴 셀리그먼과 로이 바우마이스터, 피터 레일턴, 찬드라 스리파다 등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능력인 ‘전망’이라는 개념을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들은 심리학·인지과학·신경과학·철학 등 다양한 연구진이 합작하여 펜실베니아대학교와 존 템플턴 재단의 후원을 받아 2012년 ‘전망 심리학(prospective psychology)’ 프로젝트를 발족하였으며, 수년간 공동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는 ‘전망’이라는 프레임으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거대한 연구의 결정체이다. 이 책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은 무엇보다 학습을 통해서만 지혜로워질 수 있다.(1장) 문제는 학습이 경험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예측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에 영향을 받는 불확실한 과정이라는 점이다. 즉, 인간은 기대나 의지 같은 예측 시스템에 따라 최종적으로 사피엔스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이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의 진정한 기원은 엄청난 예측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학습하는 능력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 정의, 호모 프로스펙투스 소셜리스(Homo prospectus socialis), 짧게 말해 ‘호모 프로스펙투스(Homo prospectus)’다.
3. “인간은 과거보다 미래를 3배 더 많이 생각한다”
인간의 직관·정서·상상·기억·학습 과정을 전망의 원리로 재정의하다
인간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까지 그날의 일과부터 1년 계획과 평생의 목표, 인류의 미래까지 끝을 알 수 없는 먼 훗날을 계획하고 기약한다. 일생생활 속 시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을 추적한 바우마이스터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보다 미래에 관해 3배 정도 더 많이 생각한다.(6장) 약 500여 명의 참가자는 사흘간 매일 여섯 번 휴대전화의 신호가 울리도록 설정해놓고, 신호가 울릴 때마다 들었던 생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기술했는데, 응답 결과 사람들은 현재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고, 그다음 미래, 그 다음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나 과거의 일을 생각할 때마저 사람들은 ‘과거나 현재의 일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과거를 분해하고 합성하여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평가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새로운 인간 정의인 ‘호모 프로스펙투스’를 소개하며 전망적 사고의 관점에서 직관·정서·상상·기억·학습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전망이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바꾸는지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피터 레일턴은 2장에서 인간의 학습과 결정이 정교한 논리와 계산보다 일종의 예측 과정인 직관과 정서에 더 크게 의존한다는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정서를 통해 ‘내가 이 결정을 하면 미안해질 것이다’, ‘기분 나쁜 실험자가 아이스크림을 더 먹는다’처럼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하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경험적으로 배움으로써 행동을 유발하고 성찰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어 철학과 신경과학 분야 연구자인 찬드라 스리파다는 3장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직관적 사고와 심사숙고하는 사고가 연결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또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마음 거닐기(공상)를 창의적 사고보다는 최적의 행동방식을 찾는 적응과정으로 재정의하며, 마음 거닐기가 일종의 행동 지도를 만듦으로써 학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나아간다. (4장)
4. “‘미래’는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돈·종교·철학·문학 등 문화 속 전망의 원리와 ‘사회적 미래’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다
기나긴 인간의 진화 과정 속에 언어와 분업, 지식과 법률 및 종교 등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동료 인간이 먼 미래에 무엇을 할지 ‘시뮬레이션’하고 ‘신뢰’하고 ‘공감’하는 전망적 사고 때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는 개인이 뇌 역량을 넘어 공동으로 축적하고 소유한 지식과 시스템을 통해 사회적으로 창조하고 계획한 합의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5장에서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개인의 전망이 공동체와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돈과 종교, 죽음, 문화라는 흥미로운 사례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돈은 한 쪽만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얻고, 다른 쪽은 돈을 받아 가지고 있다가 다른 것으로 바꾸는 수단으로써, 본질적으로 전망에 따르는 미래의 가치 저장소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 역시 현세나 내세에 얻을 보상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게 만든다. 이 관점에 따르면 철학은 일종의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여러 행동과 결과를 평가하는 연구의 다름 아니며, 문학은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하고 상상하면서 반응하는 연습의 일부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도덕적 판단 역시 전망적 사고에 기초한다. 9장에서 피터 레일턴은 트롤리 문제와 같은 도덕적 딜레마 문제를 여러 가지 변형된 시나리오로 제시함으로써, 도덕적 판단이 대부분 논리가 아닌 ‘이유는 말 못하겠지만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정서적 직관에 따른다는 사실을 밝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상상과 공감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상상과 공감능력을 추론하고,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집중한다. 이는 ‘동성애’나 ‘근친상간’ 같은 이슈에 느끼는 개인의 혐오감이 시대 변화에 영향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5. “급변하는 시대, 개인과 사회의 불안을 잠재울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가”
미래의 위기를 헤쳐나갈 전망 능력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공감에서부터 시작한다
과거에 매몰된 사람은 우울하고, 미래에 매몰된 자는 불안하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잘못된 전망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 관점으로 인해 무관심, 자살, 우울감, 짜증, 무기력 등의 심적 장애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에 매몰된 심리학적 치료 방식에서 나아가 전망 자체를 교정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치료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해본 10장(마틴 셀리그먼과 앤 마리 롭케)은 주목해볼 만하다.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개인의 심리상태뿐 아니라 행동 방식을 바꾼다. 가령 생각이 신뢰나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가상의 투자 과제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위험한 투자를 피하고 더 안전한 투자를 선택했다.(6장)
변화를 10년 앞당긴 코로나 시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 앞에 우리는 늘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사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실의에 빠진 개인은 물론 사회적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설득력 있고 긍정적인 ‘만약 그렇다면’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좀 더 빠르게 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