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교 분석이 필요한가?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대응 방식은 달라진다
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하다는 점이다. 생명과학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조건을 갖추면 지구 반대편에서 입증된 실험 결과를 이곳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 또한 과학에서 나타난 성과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 유명한 말처럼,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런데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는 미국, 영국, 독일이라는 세 국가를 다룬다. 한 가지 중요한 사례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세 국가에서 각각 어떤 방식으로 생명과학의 도전에 대응했는지 비교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왜 그랬을까? 비록 과학에는 국경이 없을지라도, 법과 정책에는 국가별로 환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제도나 운영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소송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연구원 차크라바르티는 분자 기술로 조작에 성공한 슈도모나스 속 균에 특허권을 신청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특허를 줄 수 있느냐에 관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다가 결과적으로는 차크라바르티의 특허가 인정받는 판결이 나왔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의회 대신 사법부가 생명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관한 특허법의 적합성을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영국은 전문가의 권위가 인정받는 사회 가운데 하나였지만, 광우병 사태 때문에 전문가의 권위가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 10년 뒤, 오랜 정치적인 논란 끝에 영국 생명공학 정책은 대중이 더 많이 참여하고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독일은 나치 시대의 기억 때문에, 국가가 인간 존엄의 신성함을 손상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하는 독일 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인간 문명에 등장한 야만성과 잔인함을 개탄하면서 유전공학으로 인간의 가장 추악한 특성을 제거하는 바이오 유토피아(bio-utopia)를 예견했다. 그러자 독일의 주요 신문과 잡지들은 격렬하게 슬로터다이크를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이 우생학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이론의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까지 논쟁에 참여하면서, 이 사건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중요한 윤리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아직 많은 과학자와 일반인은 과학이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한 활동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 실제로 수행되는 과정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허젠쿠이의 사례에서처럼 법·제도와 갈등을 일으키는 과학 연구가 일어난다. 그 갈등은 국가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비교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는 다양한 이론적 도구를 사용해 수많은 사례를 분석하면서 이러한 까다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연구자 실라 재서노프,
생명과학 정책으로 민주주의와 국민 만들기를 해부하다
실라 재서노프는 과학기술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재서노프는 하버드대학교 존 F.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과학기술학 석좌교수로서 과학기술이 정책적으로 규제되는 방식을 가장 선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재서노프는 생명과학 때문에 새로운 법이나 제도가 생겼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책에서는 생명과학에서 도전이 나타났을 때 국가가 생명과학을 규제할 뿐 아니라 생명과학도 국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책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생명과학에서 나타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논의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다. 실라 재서노프는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생명과학이 아닌 다른 과학기술에도 이러한 문제가 제기될 것임을 암시한다. 나노 기술, 인공지능, 자율자동차의 발전은 우리를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는 이런 과정을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정통할 뿐 그 기술이 퍼졌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시민들의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과학자, 기업, 정부, 사법기관, 정당, 시민 등 여러 행위자가 국가 정책 결정에 관여할 것이고, 그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기술이 적용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재서노프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주요 기술을 제대로 통치할(govern) 수 없다면,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well-governed) 사회가 아니다”. 이 말은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가 단순히 기술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사회 구성과 민주주의 거버넌스를 다루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시민 인식론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과학기술 강국이다. 다른 나라가 보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그렇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대한민국은 그동안 후발주자로서 커다란 이득을 누리며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후발주자의 장점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정치와 관련 갈등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에는 미국, 영국, 독일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과학기술의 도전에 대응해온 사례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책을 보고 잘 연구해서 우리 사회에 맞게 적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적으로 과학기술 제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유심히 보면 이러한 기대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라면 후발주자가 강점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제도는 그렇지 않다. 정치적·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달라서,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우리는 이미 황우석 사태에서, 국가가 산업 논리로만 과학기술에 접근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격했다.
겪어야 할 시행착오는 겪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다양한 행위 주체가 충돌하고 협상하고 조율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구성해간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러한 합의 과정을 피할 수는 없다. 최근 이루어진 원전 관련 논의는 시민들까지 참여한 숙의 절차를 거친 거의 최초의 과학기술 정책 결정 사례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고, 지금도 그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러한 논의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시민 인식론’이라는 개념이다. ‘과학기술에 무지하고 정보가 결핍된’ 대중이 아니라, 과학기술 정책 담론에 참여하고 실행하는 시민의 등장이 필요하며, 이런 시민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 인식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그러한 논의가 떠오르는 과정을 재서노프는 섬세하게 잡아냈다. 그런 맥락에서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는 바로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