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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 EPUB ]
김기형 | 문학동네 | 2021년 09월 2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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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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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페이지 수 약 2.5만자, 약 0.9만 단어, A4 약 16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8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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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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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뒤로 걸어서만 만날 수 있는 ‘아주 착한 혼자’들의 세계,
두 손에 ‘절대 자두’를 붉게 쥐고서

문학동네시인선 159번째 시집으로 김기형 시인의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작은 지점들을 통과해나가면서 큰 무늬를 그려내는 확장”(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김기형은 작은 디테일에 머무르면서도 읽는 이에게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목소리를 드러내왔다. 등단작 「손의 에세이」에서는 ‘손’에 복종하고 싶기도 하고 손을 배반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양가감정 가운데서 어떠한 억압과 관습으로부터도 자유롭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인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장된 첫 시집에서 시인은 ‘나’와 ‘나’ 바깥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환대와, 말하고 듣는 이가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과감한 발화를 길러낸다.

왜 자두냐고 물으면
그것은 자두가 보았으므로
삼천원어치의 자두가
나뒹굴었으므로
계단을 타고 다 터지면서 나타났으므로

울지

다리 없는 것이 몸 전체로 힘을 주니
안으로 근육을 일으키니
그것이야말로

절대 자두여야만 한다
_「자두 f」 부분

이 시집의 첫 시인 「자두 f」는 ‘두려움’에 대해 말하며 시작된다. 그러니 이 시집은 ‘두려움’을 말하며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두려움’이 “자두의 힘”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두는 “계단을 타고 다 터지면서 나타”난 자두다. “나뒹”군 자두는 울지만, “다리 없는” 자두는 “몸 전체로 힘을 주”며 “안으로 근육을 일으”킨다. 그러니 그것이야말로 ‘절대 자두’여야만 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울음을 힘과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는 시인의 시작은 주목을 요한다. ‘절대’라는 수식어를 통해 용기를 부여하는 시인의 손을 지켜보자.

누가 이런 생각을 하며 밤을 새우겠어요. 누가 자신을 앞에 두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겠어요. 앞은 본 적 없고 뒤를 돌아볼 때마다 두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던 것일 텐데. 한 바퀴를 돌고 온 것인지, 내 앞으로 붙어버렸으니까. 어디서 돌아왔을까. 문신처럼 앞이 나타났으니 각자 앞을 얻었다고 해요. 서로의 옷자락을 붙잡고 뒤를 지켜봐주기로 해요.
_「매일 잘못되는 삶」 부분

‘절대’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삶은 그만큼 절실한 삶일 터이다. 언제나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잘못되어간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꾸만 뒤를 돌아볼 것이다. 흘리고 말아버린 지금들을 다시 줍지도 거두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그렇다면 너무나도 많은 슬프고 잘못된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뒤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바로 이곳에서 시인의 전환이 빛난다. 뒤를 보며 걸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한 바퀴를 돈다면 앞을 볼 수 있고, 앞으로 갈 수 있다. 아무리 걸어가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버거운 이들에겐 소중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둥근 저 위를 푹 하고 찌른다
고된 밤과 흰 눈의 안

테두리가 바삭하고 으깨지는
아주 착한
혼자
_「나는 신의 손을 본 적이 없다」 부분

모두 같은 모습으로 다녀요
엎어져서 이동하는 무리
투명한 뱃속을 가졌으니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가벼운 물방울 안에 둥둥 떠서는
팔과 다리로 원을 찢듯 휘젓습니다
나도 같이 가요
물방울이 서로 끌어당기면
나는 차렷 자세로 기다리겠습니다
몇 개의 팔쯤은 잃어도 될 것처럼
_「등을 구부린 사람」 부분

앞서, 뒤로 걷던 ‘나’는 이윽고 ‘나’ 바깥의 ‘너’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홀로 있는 ‘나’들은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기 쉬울 터이나, 김기형의 ‘나’는 “둥근 저 위를 푹 하고 찌른다”. ‘아주 착한 혼자’의 ‘테두리’가 “바삭하고 으깨지는” 시간이다. 김기형의 시는 자신을 열어 다른 존재를 맞이하는 동시에 상대를 “푹 하고 찌른다”. “이것 보세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가 들었어요”(「반성」). 그는 “작은 것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적막에 가까운 말”을 듣고 말한다. 행동하는 수동성, 또는 기다리는 적극성의 태도라고 한다면 어떨까. 화자는 작게 머무르는 존재들을 기쁘게 환영하는 가운데, 그들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먼저 “조용히 흔들”(「9월생」)리고 있다.

굴뚝
솟는 불이
지워내는 하늘을
보라
보라고
으스러질 자기 몸을
이 길에

(……)

주먹 안에 흰빛
말을 시작하면
붉은 눈
_「어디에서 이 아이는」 부분

‘붉음’은 대개 피와 눈물, 불 같은 것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의 눈. 주먹을 꽉 쥔 탓에 모세혈관이 터져 붉어진 손, 그리고 자두의 색. 이처럼 붉어진 존재들은 어떤 행동을 야기할 결심을 세우고 있다. 무언가 달라지기 바로 직전의 세계에서 횃불을 피우듯이 다음 국면이 예고되는 것이다. “보라/ 보라고” 말하며 직접 가닿는 발화와 심상이 결합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행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세계를 향한 분명한 응전이다.”(안희연 발문, 「기형의 시」) 김기형에게서 목소리는 이제 ‘불길’이 된다. 듣고 읽는 이는 화자의 말에 이어서 “단단한 발음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김기형의 권유는 화자의 일방통행적인 권유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의 손에 이끌린 당신은 뒤로 걷는 연습 후에 ‘나’의 앞에서 나를 이끌게 된다. 그런 당신이 나타나기를 김기형은 기다리고 기대한다. “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천사들이 나타난 것일까」). 그러니 누구에게나 시작은 혼자였겠지만, 걸어가는 것은 모두다. “혼자 호명한다/ 일순간 여럿이 간다”(「나의 작은 이집트」).

시인이 내민 것이 그러하니 이쪽의 우리들도 그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 여기 울고 있는 영혼이 있구나. 불을 갈망하는 목소리구나. 이 모든 건 살아 있다는 뜻이구나, 아프구나. 다시 강조하지만 이 모든 시는 기형의 손으로 쓰였다. 이 모든 게 기형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게 좋다. 세상이 정의하는 기형의 의미를 비껴나는 방식이어서 좋다. 매 순간 간절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좋다. 기형의 시는 기형의 시. 당신도 이 좋음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_안희연 발문, 「기형의 시」에서


시인의 말

내가 깨어진다 하여도
이 물은
쏟아지지 않으리

2021년 8월
김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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