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달라지게 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2017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에 선정되어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 개정보급판으로 출간되었다. 광대한 원시의 땅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수많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경계 밖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경계 밖인가? 경계 안인가?
경계를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한 위대한 여정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할 수 없고 속박할 수 없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서 마윤제 작가는 운명처럼 잡지 기사 한 꼭지와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고원에 올라가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 중 예순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가 자신의 오두막 계단에 앉아 낡은 브라질산 권총을 닦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이 소설의 시작점이 되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고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명경처럼 맑은 눈빛과 행복한 표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소설이 출간된 지금까지도 그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현실의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하며 고통스러울 때마다 작가는 아득히 먼 옛날 아프리카를 떠나 베링해협을 넘어 지구의 땅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의 지난한 여정을 떠올리며 글을 이어나갔다. 안락한 정주의 삶을 버리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 그들이 만든 새로운 표석을 떠올리며 3년이란 긴 시간 끝에 마침내 소설을 완성했다.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장중한 행로가 마감될 때
마치 내 남은 삶을 당겨 살아버린 것 같았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세상의 모든 경계 너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땅이 존재한다
오래전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곳, 자연이 보존되고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은신처인 지구의 땅끝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모든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에 대한 전설을 들은 한 소년이 그의 실체를 찾아 평생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네레오 코르소는 혼탁한 시대에 세상에 태어난 이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대체 무엇이 그를 경계 밖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네레오는 우리의 운명이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천형의 굴레인지,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웨나는 분명 질문에 충분한 답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고, 그를 찾는 긴 여정 끝에 답을 얻는다.
몰려오는 시간에 굴종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까?
일상에서 기쁨을 찾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소설은 우리 삶의 본질, 진리,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려는 한 남자의 일생의 서사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에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소통으로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 길을 찾는 독자들에게 마윤제 작가만의 진중한 언어와 이야기로 위로와 격려, 용기를 준다.
작가의 말
어느 날 친구로부터 자신이 참여하는 종교 행사에 동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행했다. 넓은 회당은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시 후 어렸을 때 교회에서 본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차례로 연단에 오른 사람들이 간증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연단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경건하고 엄숙한 표정과 눈빛 때문이었다. 빈자리 없이 회당을 채운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간절하게 갈구하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를 절실하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순간 심연 속에서 한 노인의 온화한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 놓인 잡지에서 본 네레오 코르소라는 늙은 목동이었다. 연중 내내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저 황량한 고원에서 살아가는 노인의 눈빛이 어찌 이리 명경처럼 맑은가. 친구도 가족도 없이 뜨거운 햇살과 바람에 삭아가는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은 어째서 이렇게 행복을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2013년 8월 중순부터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 평원으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한 줄의 글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시대에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 고원의 한 목동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곳곳에는 계절이 변하면 농부들이 들판으로 나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듯, 작가들은 책상에 앉아 묵묵히 한 줄의 글을 써나간다. 그들은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탐스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움직일 수 있는 육신과 생각할 수 있는 영혼이 있기에 하얀 여백을 채워간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수많은 번민과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한 줄의 글이 우리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