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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끌어안다

시마자키 도손, 히로쓰 류로, 구니키다 돗포, 고이즈미 야쿠모,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 외 2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 2021년 07월 28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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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78쪽 | 210*297*30mm
ISBN13 9791128856709
ISBN10 112885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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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25명)

저 : 시마자키 도손 (Shimazaki Toson,しまざき とうそん,島崎 藤村,본명 : 시마자키 하루키)
1872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논어, 효경 등을 배우며 자랐고, 메이지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 서양 고전을 탐독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메이지 학원 졸업 후 메이지 여학교 고등과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이듬해 기타무라 도코쿠 등과 함께 문학잡지 『문학계』의 창간 동인으로 참가해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1897년 첫 시집 『약채집』으로 등단, 『일엽주』, ... 1872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논어, 효경 등을 배우며 자랐고, 메이지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 서양 고전을 탐독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메이지 학원 졸업 후 메이지 여학교 고등과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이듬해 기타무라 도코쿠 등과 함께 문학잡지 『문학계』의 창간 동인으로 참가해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1897년 첫 시집 『약채집』으로 등단, 『일엽주』, 『여름 풀』, 『낙매집』 등 총 네 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메이지 시대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로 평가받았다. 이후 시 창작을 접고 나가노 현 고모로 의숙에서 6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06년 『파계』를 자비 출판했다.

첫 소설인 『파계』는 예상과 달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비로소 일본 문단에도 본격적인 자연주의 소설이 등장했다는 절찬을 받는다. 이어서 『봄』(1908), 『집』(1911) 등의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며, 다야마 가타이와 더불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선구자적인 입지를 확고히 했다. 1913년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만나 1916년에 귀국, 『신생』(1918)과 『봄을 기다리며』(1925)를 발표한다. 말년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역사소설 『동트기 전』(1932, 1935)를 발표했으며, 1943년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일본의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지 않은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메이지와 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1861년 6월 8일 나가사키현(長崎?)에서 아버지 히로쓰 도시조(?津俊藏), 어머니 리우(柳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로쓰 나오토(?津直人)이다. 1877년 외국어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제국대학 의학부 예비과에 입학했으나, 폐첨(肺尖) 카타르로 중퇴하였다. 그 후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농상무상의 관리가 되었... 메이지와 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1861년 6월 8일 나가사키현(長崎?)에서 아버지 히로쓰 도시조(?津俊藏), 어머니 리우(柳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로쓰 나오토(?津直人)이다. 1877년 외국어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제국대학 의학부 예비과에 입학했으나, 폐첨(肺尖) 카타르로 중퇴하였다. 그 후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농상무상의 관리가 되었지만, 일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소설류를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1883년에 부모를 모두 여윈 후 생활은 방탕해졌고 도쿄 생활이 어려워져 낙향한다. 이때 겪은 가난은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887년 친구인 화가의 권유로 정치소설 「여자참정신중루(女子?政蜃中?)」를 ??도쿄에이리신문(東京?入新聞)??에 연재한 뒤, 죽음을 앞둔 결핵 환자의 심리를 그린 「잔국」(1889), 「지는 동백(おち椿)」(1890), 「작은 배의 폭풍(小舟嵐)」(1890~91) 등 주관적 경향이 강한 작품을 발표하여 호평을 얻는다. 1895년에는 사실적 수법으로 전환해 심각(비참)소설 「변목전(?目?)」, 「흑도마뱀(???)」 등을 발표한다. 1996년에는 심중소설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마도 정사(今?心中)」, 「가와치야(河?屋)」 외에 「엉킨 실(もつれ?)」(1899), 「메구로코마치(目?小町)」(1900) 등으로 인간의 애욕과 집념을 그렸다. 또한 1902년에 발표한 「비(雨)」에서는 민중들의 가난한 생활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 화제가 되었다.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문학결사인 겐유사(硯友社)에 속하면서도 이채를 띠는 그의 문학 세계는 지금도 많은 문제점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저 : 구니키다 돗포 (Doppo Kunikida,くにきだ どっぽ,國木田 獨步)
일본 근대의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자다. 치바 현(千葉縣) 출생으로 히로시마 현(廣島縣)과 야마구치 현(山口縣) 등에서 성장했다. 아명은 가메키치(龜吉)인데 데쓰오(哲夫)로 개명했다. 돗포(獨步)는 필명이며, 학력은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어정치과를 중퇴했다. 작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등과 친교를 맺었고, 데뷔작은 청일 전쟁 종군... 일본 근대의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자다. 치바 현(千葉縣) 출생으로 히로시마 현(廣島縣)과 야마구치 현(山口縣) 등에서 성장했다. 아명은 가메키치(龜吉)인데 데쓰오(哲夫)로 개명했다. 돗포(獨步)는 필명이며, 학력은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어정치과를 중퇴했다.

작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등과 친교를 맺었고, 데뷔작은 청일 전쟁 종군기인 『애제통신(愛弟通信)』(1894)이다. 대표 작품으로 자연 친화적인 시 「돗포 읊다(獨步吟)」(1897) 등과 사상 소설 「잊을 수 없는 사람들(忘れ得ぬ人人)」(1898), 「쇠고기와 감자(牛肉と馬鈴薯)」(1901), 자연을 재발견한 명문 「무사시노(武藏野)」(1898) 등을 발표하고, 후기에 「봄 새(春の鳥)」(1904), 「대나무 쪽문(竹の木戶)」(1908)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맡는다. 잡지 『부인화화보(婦人畵報)』(현존)의 창간자, 편집자로서도 평가받고 있다. 작가 후반기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이 돗포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선구자 이광수는 1900년대 초 도쿄 유학 시절 돗포의 단편을 애독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893년부터 일기 『거짓 없는 기록(欺かざるの記)』을 쓰기 시작해 사후에 출판된다.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지인이자 개화기 작가인 야노 류케이(矢野龍溪)에게 소개받아 오이타 현(大分縣) 사이키(佐伯) 소재 쓰루야학관(鶴谷學館)의 영어 및 수학 교사로 부임(1893. 10), 이듬해 8개월 만에 퇴직한다.
1894년, 『청년문학(靑年文學)』에 참가, 출판사 민우사(民友社)에 입사해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가 1890년에 창간한 『국민신문(國民新聞)』의 기자가 된다. 1894년 청일 전쟁 해군 종군 기자로 참가해, 남동생에게 부치는 서간체 형식으로 전쟁 르포 『애제통신(愛弟通信)』을 연재해 ‘국민신문 기자 구니키다 테쓰오(國木田哲夫)’로서 일약 유명해진다.

귀국 후 1895년 11월, 기독교인 집안의 사사키 노부코(佐佐城信子)와 만나 열애 끝에 도쿠토미 소호의 주례로 결혼하고 기독교인이 된다. 곤궁한 생활 때문에 귀향해 부모와 동거하게 되는데 이듬해 노부코(信子)가 실종되어 협의 이혼하고, 그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다. 나중에 이를 소재로 시라카바(白樺)파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는 소설 『어떤 여자(或女る)』(1919)를 발표했다.
1905년 건강이 악화된다. 제2소설집 『돗포집(獨步集)』(1905)을 간행하고, 단편 「호외」(1906)를 발표, 폐결핵으로 요양 생활 중, 「궁사(窮死)」 「절조(節操)」(1907) 등을 발표하고 37세에 작고한다. 자연주의 작가 다야마 가타이는 조사에서, 돗포의 인생은 한마디로 ‘궁(窮)’이라고 했다. 제3소설집 『운명(運命)』(1906)이 높게 평가받았고, 돗포는 자연주의 운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돗포의 문학과 사상은 명리(名利) 부정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老壯) 사상,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의 자연 계절 묘사, 영국의 전원시인 워즈워스의 낭만성, 기독교의 박애(博愛)정신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 외에도 무사시노(武?野)의 자연미를 시적인 요소로 함축한 『무사시노』, 사교 클럽에 모인 사람들이 인생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돗포의 사상을 말하는 『쇠고기와 감자(牛肉と馬鈴薯)』,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임을 모르고 결혼한 남성의 고뇌를 다룬 『운명론자(運命論者)』 등이 있다.
저 : 고이즈미 야쿠모 (Lafcadio Hearn,小泉八雲)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Lafcadio Hearn)는 1850년 그리스의 레프카다섬에서 아일랜드인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두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네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지고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한 뒤 친척에게 맡겨졌다. 열여섯 살 때 놀던 중 왼쪽 눈을 실명. 열아홉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 보이, 야간 경비, 행상...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Lafcadio Hearn)는 1850년 그리스의 레프카다섬에서 아일랜드인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두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네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지고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한 뒤 친척에게 맡겨졌다. 열여섯 살 때 놀던 중 왼쪽 눈을 실명. 열아홉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 보이, 야간 경비, 행상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저널리스트로 문필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 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 이주해 문화의 다양성에 매료되고, 왕성한 취재 집필 활동을 했다. 뉴올리언즈 시대에 엑스포에서 접한 일본 문화, 뉴욕에서 읽은 『고사기』 등의 영향을 받아 1890년 4월에 일본 땅을 밟는다. 그해 8월 마츠오카에 있는 시마네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또 구마모토 제5고등학교, 고베 크로니클사에서 근무한 뒤 1896년 9월부터 도쿄대학에서 문학부 강사로 영문학을 강의한다. 그해 고이즈미 세츠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1903년 도쿄대학에서 해고되어 강사 자리를 나쓰메 소세키에게 물려주고 와세다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옛날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부인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모아 『괴담(怪談)』(1904)을 발표했다. 번역, 기행문, 이야기 문학을 중심으로 평생 약 30여권의 저작을 남겼다. 1904년 9월 26일 심장마비로 54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저 : 다니자키 준이치로 (Junichiro Tanizaki,たにざき じゅんいちろう,谷崎 潤一郞)
일본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188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중기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다방면에 걸쳐 문학적 역량을 과시한 작가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수차례 지명되는 등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탐미주의적 색채를 드러내며 여성에 대한 에로티시즘, 마조히즘 등을 극도의 아름다운 문체로 탐구하였다. 한평생 작풍이나 제재, 문장, 표현 등을 실험하며 다채... 일본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188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중기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다방면에 걸쳐 문학적 역량을 과시한 작가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수차례 지명되는 등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탐미주의적 색채를 드러내며 여성에 대한 에로티시즘, 마조히즘 등을 극도의 아름다운 문체로 탐구하였다. 한평생 작풍이나 제재, 문장, 표현 등을 실험하며 다채로운 변화를 추구하였고, 오늘날 미스터리, 서스펜스의 선구가 되는 작품이나 활극적 역사 소설, 구전, 설화 문학에 바탕을 둔 환상 소설, 그로테스크한 블랙 유머, 고전 문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을 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을 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에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와 7월호에 연재되었던 『세설』은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었다가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고,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9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히기도 했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신부전과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문신』, 『후미코의 발(富美子の足)』, 『치인의 사랑(痴人の愛)』, 『춘금초(春琴抄)』, 『미친 노인의 일기(?癲老人日記)』 등이 있으며,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사후 50년을 맞이한 2016년 저작권이 소멸되어 다수의 소설작품이 번역되었으나, 국내에는 다니자키의 극작가(희곡가)로서의 역량이 알려지지 않아 30여 편의 희곡 대부분이 미(未)번역 상태이다. 『문장의 희곡: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레제드라마』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이미 희곡을 발표한 다니자키의 극작가로서의 숨겨진 일면을 소개하고, 1910~40년대 일본의 신극운동을 계기로 근대 초기 한일 양국의 소설가들의 희곡 창작과 레제드라마의 유행을 고찰한 연구의 성과물로 기획되었다.
저 : 코바야시 타끼지 (Takiji Kobayashi,こばやし たきじ,小林 多喜二)
20세기 초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 아끼따 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홋까이도오로 이주, 백부의 빵 공장 일을 도우며 통학했다. 졸업 후 홋까이도오 척식은행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1920년대 중반부터 하야마 요시끼, 막심 고리끼 등을 읽으며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자각을 지니게 된다. 1928년, 사회주의 이론가인 쿠라하라 코레히또를 만나 그의 예술론에 크게 영향받았으며, ... 20세기 초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 아끼따 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홋까이도오로 이주, 백부의 빵 공장 일을 도우며 통학했다. 졸업 후 홋까이도오 척식은행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1920년대 중반부터 하야마 요시끼, 막심 고리끼 등을 읽으며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자각을 지니게 된다. 1928년, 사회주의 이론가인 쿠라하라 코레히또를 만나 그의 예술론에 크게 영향받았으며, 그해 『1928년 3월 15일』을 내놓으며 세상에 알려진다. 1929년에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게 가공선』을 발표하는데, 먼 바다를 떠도는 거대한 배를 무대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어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준을 사상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에도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밖에 『부재지주』 『공장세포』 『당 생활자』 등의 소설과 다수의 산문을 집필했다. 일본공산당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지하조직으로 옮겨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집필과 헌신적 활동을 계속하다 1933년 2월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한다. 경찰 당국은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그의 작품들을 금서 취급하는 등 사후에도 철저하게 박해받았다.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노동 현실이 척박해지면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게 가공선』이 다시 인기를 끌며 새로이 주목받았다.
무로 사이세이는 다이쇼(大正) 시대부터 쇼와(昭和) 시대에 걸쳐 시·소설·하이쿠·수필·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단행본 기준 150권 이상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그 가운데 20여 권의 시집과 80여 권의 소설집을 펴낸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자 소설가다. 하급 무사 출신인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일주일 만에 인근 절의 주지승을 통해 양자로 입양된... 무로 사이세이는 다이쇼(大正) 시대부터 쇼와(昭和) 시대에 걸쳐 시·소설·하이쿠·수필·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단행본 기준 150권 이상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그 가운데 20여 권의 시집과 80여 권의 소설집을 펴낸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자 소설가다.

하급 무사 출신인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일주일 만에 인근 절의 주지승을 통해 양자로 입양된다. 주지승의 내연의 처에게 입양되어 자라면서 친부모와는 가깝게 교류하지 않았고 열 살 무렵 친부가 사망한 뒤 친모는 자취를 감추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그로 인한 반항과 고독에서 사이세이는 일생 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사이세이의 삶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제는 이러한 태생적 결함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독립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이세이 문학은 전통 시가인 하이쿠에서 시작한다. 양모의 권유로 14세 무렵 고등소학교를 중퇴하고 지방재판소에 급사로 취직을 한 그는 직장 상사에게 하이쿠의 기초적인 작법을 배운다. 이후 지역 신문이나 문예지에 시가나 산문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대한 열의를 쏟아붓는다. 초기에는 본명인 데루미치(照道)와 필명인 잔카(殘花)를 썼으며 17세 무렵부터는 사이세이(犀西)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사이세이(犀西)라는 이름은 당시 가나자와 출신의 고쿠부 사이토(?府犀東)의 필명 속에 담긴 ‘사이강의 동쪽(犀東)’이라는 의미에 상응하여 붙인 것이다. 그는 강의 서쪽에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를 담아 필명을 ‘사이세이(犀西)’라고 지었으며 나중에 같은 음의 한자인 ‘사이세이(犀星)’로 바꾼다.

1907년 그의 나이 19세 때 《신성(新?)》에 발표한 시를 계기로 고다마 가가이(?玉花外)의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에 몰두한다. 아울러 1910년 22세 때에는 포부를 품고 상경하지만 무명 시절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경제적 궁핍과 불안정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도시 생활에 지친 그는 미련 없이 고향 가나자와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 역시 녹록하지는 않았으며 가슴속에 품은 문학을 향한 열망은 그를 몇 번이고 다시 도쿄로 돌아오게 만든다. 도쿄와 가나자와를 오가며 이상과 현실 속에서 좌절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고된 삶의 모습이 현실적인 감각과 이상 세계로의 환영으로 발현된다.

값싼 하숙방을 전전하며 곤궁한 생활을 하는 생활 속에서도 사이세이는 뜻이 맞는 문인들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거나 동인지를 간행하는 등 시인·편집자·발행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간다. 20대 중반부터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를 비롯하여 우에다 빈(上田敏),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과 친분을 이어 가며 문단의 중심에 선다.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 사이세이는 소설 창작에도 힘쓴다. 그가 소설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까닭은 불우한 성장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명심과 경제적 자립에 우선하는 것이었다. 1919년 31세에 〈유년시대(幼年時代)〉를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하여 높은 반응을 얻게 되고 그해에 〈성에 눈뜰 무렵(性に眼?める頃)〉,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或る少女の死まで)〉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다진다. 초기 자전소설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유년 시대〉, 〈성에 눈뜰 무렵〉,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는 태생적 속박과 자신의 상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와 더불어 사이세이는 한 해 30~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창작욕을 보인다. 그런 성과로 46세에 양모와 절에서 함께 자란 형제들을 소재로 소설 〈남매(あにいもうと)〉(1934)를 발표하며 1935년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芸懇話?賞)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오다 1953년에는 영화화가 되기도 하고 1972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다.

소설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에 반해 사이세이는 점차 시를 쓰는 일에 소홀해 진다. 1932년 간행한 시집 《철집(鐵集)》에서 ‘더는 시집을 엮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고백한 이래 1934년 8월에는 〈시여 그대와 헤어지노라(詩よ君とお別れする)〉(《문예(文藝)》)라는 글에서 마침내 시작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는 변화에 대한 의지와 시와 소설 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남매〉의 성공으로 자신의 문학적 생명을 소설에 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변혁기를 보내며 사이세이의 문학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그는 타고난 미적 감각으로 전통적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일본의 정원을 소재로 하는 글을 다수 남기고 있다. 수필집 《정원을 만드는 사람(庭を造る人》(1927), 《정원과 나무(庭と木)》(1930), 《일본의 정원(日本の庭)》(1943)이 그것이다. 그는 1931년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짓고 매년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며 집과 정원을 직접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이 별장은 자신과 친분이 깊은 호리 다쓰오(堀辰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등 많은 문인들이 드나드는 교류의 장소가 되었으며 사이세이 자신 역시 이 별장에서 〈성처녀(聖處女)〉(1935), 《살구 아이(杏っ子)》(1956) 등과 같은 작품을 저작한다.

전시기에 이르러 사이세이는 《천황의 군대(美以久佐)》(1943)와 《일본미론(日本美論)》(1943)에서 전쟁을 찬양하는 시를 발표하여 전후 논란의 중심에 선다. 이에 도미오카 다에코(富岡多?子)는 ‘시인은 대중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능력자로서 국가에게 이용당하는 시대도 있다. 전쟁 시대에 시인은 국책에 봉사하는 선전가·선동가로만 기대되었을 것이다’라며 사이세이를 옹호하기도 한다. 사이세이는 《무로 사이세이 전시집(室生犀星全詩集)》(1962)에서 ‘오늘 이들 시를 지우는 것은 마음속의 더러움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논란이 된 전쟁시를 삭제한다.

오랜 문학 활동을 통해 높은 문업을 이룬 사이세이는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芸懇話?賞)(1935), 제3회 기쿠치간상(菊池寬賞)(1941), 제9회 요미우리문학상(??文?賞)(1958), 제1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日出版文化賞)(1959), 제12회 노마문예상(野間文芸賞)(1959) 등을 수상한다.

1961년 10월 73세에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쇠약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62년 3월 1일 도쿄 도라노몬(虎の門) 병원에 입원한 뒤 의식 불명에 이른 19일로부터 일주일 후 3월 26일 영면한다.
저 : 미야자와 겐지 (Kenji Miyajawa,みやざわ けんじ,宮澤 賢治)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농예과학자이다.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단가를 짓기 시작한 겐지는 열여덟 살 무렵부터 동화를 지어 형제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하여 동화를 창작했는데, 겐지 동화의 초고는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이후 농업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계속...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농예과학자이다.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단가를 짓기 시작한 겐지는 열여덟 살 무렵부터 동화를 지어 형제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하여 동화를 창작했는데, 겐지 동화의 초고는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이후 농업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생명 존중 사상과 공생(共生)의 행복관을 담아내던 겐지의 동화들은 당시 주위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배타적이던 일본에서는 외면당한다. 결국 겐지의 동화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생을 마친다.

그러나 사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본 열도는 '겐지 붐'이라고 할 만큼 열광적인 독자군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되어 정서적 영감을 불어넣을 만큼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겐지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 대한 환멸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표작으로는 『쥐돌이 쳇』,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은하 철도의 밤』, 『첼로 켜는 고슈』, 『카이로 단장』 『미야자와 겐지 전집 1,2』등이 있다.
저 : 하기와라 사쿠타로 (Hagiwara Sakutaro,はぎわら さくたろう,萩原 朔太郞)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관능적이며 근대적인 고독에 대한 시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썼고, 이는 일본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3년에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한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에 발표한 ‘...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저 : 히사오 주란 (Juran Hisao,ひさお じゅうらん,久生 十蘭)
홋카이도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연출가이다. 필명인 히사오 주란은 프랑스 유학 당시 스승이었던 거물급 연출가 샤를 뒬랭(Charles Dullin)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것이다. 모험 소설, 추리 소설, 역사 소설, 유머 소설,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은 「해표도(海豹島)」, 「곤충도(昆??)」 등이 있다. 작풍은 속도감 있는 문체와 세심한 인간 관찰에 따른 역설적인 논리, 빠르게... 홋카이도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연출가이다. 필명인 히사오 주란은 프랑스 유학 당시 스승이었던 거물급 연출가 샤를 뒬랭(Charles Dullin)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것이다. 모험 소설, 추리 소설, 역사 소설, 유머 소설,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은 「해표도(海豹島)」, 「곤충도(昆??)」 등이 있다. 작풍은 속도감 있는 문체와 세심한 인간 관찰에 따른 역설적인 논리, 빠르게 반전하는 전개가 주를 이룬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이민자나 방랑자, 다문화, 파국, 표류 같은 국가의 비호에서 멀어진 인간의 모습은 작가가 중요하게 다루었던 문학적 주제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에 사숙하며 문학서를 탐독했다. 1920년에 귀향하여 하코다테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중 연극에 흥미를 느껴 1922년에 연극 집단 ‘소극회’에 참가, 1923년에 동인 그룹 ‘생사(生社)’를 결성한다.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스 파리에 유학한다. 귀국한 후 1934년에 파리 체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요시·타누코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집을 발표한다. 히사오 주란이라는 필명은 「황금 늑대」를 발표한 1936년부터 사용하였다. 범인 수사나 권선징악 중심이 아닌,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새로운 탐정 소설을 선보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중이던 1941년에 화중(華中) 지방으로 종군했으며, 1943년에는 해군에 징집되어 남태평양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한동안 행방불명 신고를 받았으나 1944년 지바 초시로 무사히 돌아왔다. 전쟁 후에는 현대소설, 역사소설, 논픽션 등을 계속 집필했다. 1957년에 식도암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저 : 사카구치 안고 (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에세이 「타락론」에서는 전쟁에 졌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타락의 본성이 있고 혼란은 필연적이며, 타락을 통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타락론」을 소설화한 것이 「백치」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저 : 나카지마 아쓰시 (Atsushi Nakajima,なかじま あつし,中島 敦)
1909년 도쿄 출생. 1920년에 용산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중학에 입학,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 1909년 도쿄 출생. 1920년에 용산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중학에 입학,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요절했다. 대표작 「산월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교과서에 늘 실리는 ‘국민교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번뜩이는 지성으로 빚어낸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낸 경험에서 나온 「범 사냥」을 비롯한 세 작품은 우리에게는 필독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저 : 하야시 후미코 (Fumiko Hayashi,はやし ふみこ,林 芙美子)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밥』 등이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다. 저역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의 이해』, 『20세기 일본 문학의 풍경』, 『일본 근대 작가·작품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1~8』 등이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다. 저역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의 이해』, 『20세기 일본 문학의 풍경』, 『일본 근대 작가·작품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1~8』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메이지 게사쿠(明治?作) 및 일본 개화기 문학(開化期文?) 가운데 가나가키 로분(?名垣魯文)의 작품에 나타난 과도기 신구 양상과 민중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논문으로는 「가나가키 로분의 『양반다리 전골냄비』에 나타난 서구관」이 있다. 번역에는 「진주」(사카구치 안고)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메이지 게사쿠(明治?作) 및 일본 개화기 문학(開化期文?) 가운데 가나가키 로분(?名垣魯文)의 작품에 나타난 과도기 신구 양상과 민중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논문으로는 「가나가키 로분의 『양반다리 전골냄비』에 나타난 서구관」이 있다. 번역에는 「진주」(사카구치 안고) 등이 있다.
덕성여자대학교를 졸업, 일본 쓰쿠바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문학박사).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베 코보의 소설로 본 현대 일본문화-아베 코보의 텍스트성」을 비롯하여 아베 코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주요 역서에 『벽』, 『아베 코보의 소설 읽기』 등이 있다. 덕성여자대학교를 졸업, 일본 쓰쿠바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문학박사).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베 코보의 소설로 본 현대 일본문화-아베 코보의 텍스트성」을 비롯하여 아베 코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주요 역서에 『벽』, 『아베 코보의 소설 읽기』 등이 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일문학전공) 석·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극동대학교 일본문화관광컨텐츠학과 교수이다. 『신과 인간 사이』,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 『春琴抄』, 『오사카 재일조선인 시지 진달래·가리온』 등을 번역하였으며 『일본근현대문학과 전쟁』, 『문형으로 배우는 일본어/일본어문형』, 『日本語ワ-クブック 1』, 『日本語ワ-クブック 2』 , 『日本語ワ-クブック 3』 등을 썼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일문학전공) 석·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극동대학교 일본문화관광컨텐츠학과 교수이다. 『신과 인간 사이』,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 『春琴抄』, 『오사카 재일조선인 시지 진달래·가리온』 등을 번역하였으며 『일본근현대문학과 전쟁』, 『문형으로 배우는 일본어/일본어문형』, 『日本語ワ-クブック 1』, 『日本語ワ-クブック 2』 , 『日本語ワ-クブック 3』 등을 썼다.
도쿄대학 대학원 비교문학 비교문화전공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2013년에 오타루상과대학(小樽商科大學)에서 준교수로 8년간 일했다. 현 무사시노대학(武?野大學) 교수. 『‘동양’을 춤추는 최승희 (‘東洋’を踊る崔承喜)』를 출판했으며 이 책은 2020년 제42회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했다. 도쿄대학 대학원 비교문학 비교문화전공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2013년에 오타루상과대학(小樽商科大學)에서 준교수로 8년간 일했다. 현 무사시노대학(武?野大學) 교수. 『‘동양’을 춤추는 최승희 (‘東洋’を踊る崔承喜)』를 출판했으며 이 책은 2020년 제42회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했다.
최재철(崔在喆)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대학 일본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다.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비교 문학 비교 문화 전공)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장과 외국문학연구소장, 대학원 비교문학과 주임교수, 도서관장, 행정지원처장, 일본어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일본근대문학회 창립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한국문학번역원... 최재철(崔在喆)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대학 일본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다.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비교 문학 비교 문화 전공)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장과 외국문학연구소장, 대학원 비교문학과 주임교수, 도서관장, 행정지원처장, 일본어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일본근대문학회 창립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대한민국학술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일본문학의 이해』(민음사, 1995. 1995년 문화체육부 우수도서)와 『일본문학 속의 사계(四季) - 한국문학과의 비교를 통하여』(소명출판, 2016.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가 있고, 역서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지음 『산시로(三四郞)』(한국외대출판부, 1995)가 있으며, 편저에 『韓流百年の日本語文?』(人文書院, 2009), 공저에 『鷗外の人と周?』(講座 森鷗外1, 新曜社, 1997), 『문학, 일본의 문학 - 현대의 테마』(제이앤씨, 2012),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다』(제이앤씨, 2014), 『비교문학자가 본 일본, 일본인』(현대문학, 2005), 『번역과 문화의 지평』(박문사, 2015),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이해』(소명출판, 2016)[이 세 권은 한일비교문학·문화 총서 1, 2, 3] 등이 있다.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및 중앙대학교 대학원 일본어교육학 석사를 취득했다.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 박사이다. 센다가야 일본어교육연구소 일본어교사양성과정을 수료했으며, 삼성화재(주), 하나은행, 하나경제연구소 재임했다. 새한미디어, 프레스센터, 농심 등 기업체 강의를 진행했다. 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로 동덕여자대, 선문대 등 강의를 진행했으며, 현 단국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강의전담 조교수다.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및 중앙대학교 대학원 일본어교육학 석사를 취득했다.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 박사이다. 센다가야 일본어교육연구소 일본어교사양성과정을 수료했으며, 삼성화재(주), 하나은행, 하나경제연구소 재임했다. 새한미디어, 프레스센터, 농심 등 기업체 강의를 진행했다. 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로 동덕여자대, 선문대 등 강의를 진행했으며, 현 단국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강의전담 조교수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조교수·경북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1930년대 '제국 일본'의 모던을 주제로 나고야대학(名古屋大?)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근대의 대중문화에 대해 도시, 매체, 젠더, 식민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잡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적 특성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조교수·경북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1930년대 '제국 일본'의 모던을 주제로 나고야대학(名古屋大?)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근대의 대중문화에 대해 도시, 매체, 젠더, 식민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잡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적 특성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전후 초현실적 작풍으로 인간 존재의 불안을 탐구한 아베 고보를 연구했다. 현재는 광고 기획과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전후 초현실적 작풍으로 인간 존재의 불안을 탐구한 아베 고보를 연구했다. 현재는 광고 기획과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한양병원 인공신장실장이다. 한양병원 인공신장실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언어연구교육원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암호」, 「전쟁과 한 명의 여인」(이상 사카구치 안고) 등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언어연구교육원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암호」, 「전쟁과 한 명의 여인」(이상 사카구치 안고) 등의 번역서가 있다.
한일근현대 비교문학·문화를 전공했고(문학과 여성/젠더/식민지주의 연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 비교사회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 경희대학 및 기타대학 강사, 가와사키(川崎)시립 다치바나고등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는 도쿄 세이토쿠대학 국제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家と家庭と女性:日·韓近代文?における看護婦表象と良妻賢母思想」(2009), 「漱石作品における植民地主義... 한일근현대 비교문학·문화를 전공했고(문학과 여성/젠더/식민지주의 연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 비교사회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 경희대학 및 기타대학 강사, 가와사키(川崎)시립 다치바나고등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는 도쿄 세이토쿠대학 국제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家と家庭と女性:日·韓近代文?における看護婦表象と良妻賢母思想」(2009), 「漱石作品における植民地主義と女性嫌?の問題―植民地への移動者と「芸妓」の表象を中心に」(2007) 등이 있고, 저서에 『시로와 쿠로의 일본어회화 패턴 111』(2017/공저), 『실용일본어강독Ⅰ·Ⅱ』(2003/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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