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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저/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년 06월 04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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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10g | 146*205*30mm
ISBN13 9791191187908
ISBN10 11911879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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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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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저자 소개 (2명)

2009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삽화를 그리며 그림으로 데뷔했으며, 약 10년 전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단상들을 만화로 줄곧 그렸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조색기』, 『자해장려안하는만화』 등을 그렸다. 2015년 겨울부터 트위터에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과 관련해 약 2000명의 팔로워와 정보 및 경험을 나눠왔다. 2016년 5월 ‘여성 정병러(... 2009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삽화를 그리며 그림으로 데뷔했으며, 약 10년 전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단상들을 만화로 줄곧 그렸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조색기』, 『자해장려안하는만화』 등을 그렸다. 2015년 겨울부터 트위터에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과 관련해 약 2000명의 팔로워와 정보 및 경험을 나눠왔다. 2016년 5월 ‘여성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은어) 자조모임’을 주최했다.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정신질환과 제반 문화를 다룬 온라인 주간지 《주간리단》을 발행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서남의대 명지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노인, 중독, 불안 분야를 주로 연구했다. 현재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저서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 『어른이 처음이라서 그래』, 『어쩌다 도박』(공저)이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서남의대 명지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노인, 중독, 불안 분야를 주로 연구했다. 현재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저서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 『어른이 처음이라서 그래』, 『어쩌다 도박』(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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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304

출판사 리뷰

병자가 현재를 관리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돕는 실천적 가이드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해 여전히 '다 괜찮다'는 식의 무책임한 위로나 근거 없는 대체요법이 팽배한 사회에서 따를 수 있는 대단히 실천적인 가이드이기도 하다. 저자가 가장 초점을 두는 것은 '어떻게 정신병자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책임감 있게 관리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 즉 어떻게 병을 관리해나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책은 그러기 위해 필요한 아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책들을 제공한다. 이는 약물 치료와 관련된 것부터 생활의 작은 습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초진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하는지, 정신과 의사와 효율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신과 약물에 관해 환자가 알아두면 좋을 것들과 약물 치료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등의 실질적인 문제를 상세하게 살펴본다. 그리고 중증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못할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폐쇄병동에 입원한 후 어떻게 사회에 복귀할지와 같은 문제들부터, 직장과 학교에 적응하는 법, 생활 리듬을 촘촘하게 설계해 병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까지 다룬다. 또 한국에서, 정신질환과 오래 싸워온 당사자가 건네는 이와 같은 제안들은 한국 사회의 특성과 현실에 맞춤한 조언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같은 사회적 문제부터 복지 지원과 같은 세부적인 제도까지, 이 책은 한국 정신질환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처럼 여전히 환자의 주체적인 힘이나 병을 대하는 적극적인 태도는 과소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단순한 위로나 힐링의 차원을 넘어 환자가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음을 설득하고 돕는, 아주 현실적인 가이드가 돼줄 것이다.

약물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약물이 작용하기까지 시간은 약물에 따라 다릅니다. 타이레놀처럼 20분 뒤에 씻은 듯이 두통이 사라지는 것과 이쪽 계열의 약물 작용은 작동 기전이 완전히 다릅니다. 항조증제인 리튬은 7일 정도 걸리며, SSRI 계열의 항우울제는 충분한 치료 효과를 나타내려면 일반적으로 3~6주가 걸리곤 합니다. 때로는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기 이전에 부작용이 선행할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은 약물 치료를 위해 용기를 낸 환자들을 쉽게 좌절시키고, 정신과에 재방문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물을 처방받을 때, 해당 약물이 작용하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기약 없이 효과를 기다리는 것과 한계를 정하고 참는 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34)

병식을 가진 B의 경우, 조증을 눈치채면 단번에 불려간다. 이름하여 조증 법정으로. “조증 인정하십니까?”, “최근 며칠간 50만 원 쓰셨죠? 당장 병원 갑시다.”, “자이프렉사(항조증제로 체중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음) 먹고 10킬로그램 찌겠네요.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검사와, “아니 아무 문제도 없으시잖습니까. 좋아 보이시는데?”, “과장된 걱정을 하시는군요. 기분이 좀 나아지셨을 뿐입니다.” 하며 정중하고 뻔뻔하게 부인하는 변호사 사이에 끼어 우왕좌왕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판결을 내린다. 그는 여러 수를 생각하지만 결국 머릿속 법정을 폐회하며 과거의 판례, 사고의 전적을 쭉 한번 읊고 ‘병원에 가라.’라는 판결에 따라 버스에 몸을 싣는다. (41~42)

우울의 전염은 우리의 선의를 괴롭게 합니다. 상대의 기약 없는 우울증에 함께 탑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은 힘이 세며, 전염됩니다. 도우려 하던 사람이 같이 우울해지는 경우는 너무나 흔합니다. 병자의 감정에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어렵지만 표면적으로라도 거리 유지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알코올중독인 아버지가 술을 달라고 떼를 쓰고 방을 뒤집고 있어도 남은 가족들은 저녁 밥상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TV를 보며 자기 밥그릇을 비워야 가정이 유지되는 것처럼요. 상대의 우울에 빨려 들어가지 마십시오. 상대가 밥을 먹지 않아도, 잠만 자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활 스케줄만큼은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버티고 있어야 후에 조금 호전된 우울증 환자가 짚고 일어설 생활환경의 토대가 됩니다. (58)

우울증 환자를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당신도 움직여야 합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산책길을 골라 함께 걷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고, 식단도 조절시키고 싶다면 채소를 사서 방문하세요. 스틱 형태로 잘라 절반은 같이 먹고 절반은 냉장고에 두면 그가 먹습니다. 더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돈을 들이세요. 그가 하고자 하는 장면을 실현할 수 있게 학원이든 운동이든 등록비를 주세요. 그리고 이 기술은 우울증자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스스로에게 먹이를 주세요. 물을 주고요. 한 주에 한 가지의 채소를 사서 먹이십시오. (63)

우울증 환자는 자기의 삶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규칙, 반복, 훈련 등을 적극적으로 삶에 가져오세요. 행동과 행동을 엮어서,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행동의 연쇄를 이어지게 하십시오. 꼭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우리는 기분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던 시기를 지났습니다. 오로지 움직이십시오. 고양이들처럼. 충분히 잠자고 맑은 물을 마시는 고양이처럼. (71)

약물 치료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의사와 대화가 통하는지’가 아니다. 의사가 자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이나 특수한 관계에 대해 아주 자세히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약을 잘 지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서사를 이해해줄 만한 정신과에서 진료받기 위해 집에서 매우 먼 곳까지 찾아가거나, 환자가 몰리는 곳이라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내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만큼 내게 도움이 되는지를 꼭 따져봐야 한다. 만약 정신과에 가는 것만으로도 나의 많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유익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재고해볼 만하다. (149~150)

약은 정신병자의 제2외국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병자들로 구성된 집단에서는 자신의 증상이나 고통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나 쎄로켈 200 올랐어.”, “나 또 데파코트(밸프로에이트의 상품명) 먹어.”, “할로페리돌(조현병 치료에 주로 쓰임) 받았는데 이건 어떨 때 먹냐?” 등의 말로 자신의 병 상태를 표현할 수 있고, 해당 약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 이것은 그의 상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약물을 복용하는 정신병자에게 이런 제2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력 집단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155)

5. 의사는 타격팀이 아니다. 약물이 타격팀이다. 의사의 말들에 나를 돌아보기보다 바뀐 약물이 주는 느낌을 조목조목 기록하는 편이 낫다.
6. 약물은 내 느낌으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로 따져 처방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재깍 항우울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의사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받는다. 고로 질문하지 않는 의사는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164)

자신의 시간을 활동과 활동의 연속으로 구성하라. 게임 캐릭터의 주인공처럼 HP와 MP 등 각종 스탯이 존재한다고 상정하고 활동을 구성하면 이해하기 쉽다. 게임에서 키보드의 w, a, s, d 키를 순서대로 연속해 눌러 필살기를 구사하듯, 연속해서 움직이고 확실히 휴식해야 한다. 휴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활동의 일환이다. 우울증 환자는 남들이 보기에는 항상 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 ‘정말 쉬고 있는’ 환자들은 적다. 불행한 생각이나 자기혐오,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 자체가 사람을 깊이 피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나는 쉴 자격도 없어.’처럼 죄책감을 갖기 쉬운데, 이럴 때는 육체를 아바타나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라. 체력 수치가 낮아지면 체력을 채우기 위해, 졸림 상태 이상이 뜨면 상태 이상을 없애기 위해. 휴식과 수면에 어떤 가치를 이입하지 말고 당당히 기계적으로 완수하라. (174~175)

마지막으로 습관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습관’을 가지라는 게 아니다. ‘습관’이라면 좋고 나쁨을 가리지 말고 전부 끌어와야 한다. 아침에 담배를 피우는 습관. 집에 오면 맥주를 한 캔 마시는 습관. 커피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잔 마시고 또 식후에 마시는 습관. 50분 일하고 10분 쉬기. 지하철이나 버스에 좋아하는 자리가 있고 그곳에 앉는 것. 반드시 건강한 습관이 아니어도 좋다. 이런 것들이 최후로 날뛰는 병과 맞선다. 습관은 사람에게 어떤 행동 패턴을 반복하게 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는 동안에는 최소한 다른 생각이나 잡념, 조증이 추동하는 여러 사고들이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사소한 습관들을 실천할수록 현재 우리의 시공간이 이전의 것과 다시금 연결되며, 조증으로 인한 단절을 막을 수 있다. (190)

꼭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도 주석을 제대로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 된 과제를 제출하지 않고, 출석 점수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결석했다는 이유로 그 학기 자체를 포기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등, 병자들은 자신이 세워놓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상황이 되면 손을 놓고 숨어버린다. 여기서 문제는 ‘완벽하지 않고 내 기준 미달이니 남들에게 보일 가치도 없다.’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비장하다는 데에 있다. 정신병이 있다면, 비장함과는 거리를 두어야 살아남는다. 자신에게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은 너무 빨리 죽는다. (240)

어떤 문제는 스스로 해내기 어려운 것을 넘어 불가능한 것일 때가 있다. 이런 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늘리고, 할 수 없는 일은 명백한 구조 요청을 보내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복지를 담당하는 국번 없이 129번에 연락하여 지원을 받을 지역의 주민센터와 연계되는 것, 자살예방센터에 연락해 심정적 지원을 받는 것 등 사회적 시스템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물론 모두 갑자기 연락을 취한다고 전부가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보는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382)


자신의 병을 깊이 탐구한 이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하고 밀도 높은 희망의 이야기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대단히 견고하고 아름다운 당사자 글쓰기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거창한 미사여구 없이도 자신의 병과 치열하게 투쟁하고 그것을 밑바닥까지 내려가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깊고 단단한 글이 갖는 힘을 보여준다. 자기 연민이나 과도한 비관에 빠지지 않고 냉철하게 스스로의 조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른 병자들을 향해 보내는 지지와 연대의 시선은 책의 곳곳에 스며 쉽게 잊히지 않을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저자는 퀴어 여성으로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떻게 정신질환에 더 취약해지는가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조건과 정신질환이라는 조건이 서로 독립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식하며,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정신질환자로서의 경험을 연결 짓는 데에서 이 책의 통찰이 빛난다. 저자는 병자로서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일을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경험과 나란히 놓고, 빈곤이 어떻게 병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를 섬세하게 살펴본다.
이 책은 또한 절망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묘한 희망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나는 더는 병을 치료로 낫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도 병자들에게 삶을 꾸려나가기를,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 정신질환을 앓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시하는 동시에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작은 행동,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나날이 우리를 지킨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든,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든 이 책이 취하는 태도는 '정신병'이라는 현실과 싸워나갈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필연적으로 이 싸움은 우리가 지게 될 것이라는 걸.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노화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병을 보고 있노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한다. 병이 펼쳐주는 지평도 상상만큼 나쁘지 않다고. 가끔은 기꺼이 그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나는 많은 약을 먹고 있지만, 그것들이 병증을 공격하고 소멸시킨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약은 병을 좀 더 합리적인(병과 병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준의) 크기로 조정하는 역할이다. 선두에서 씨름하는 건 자신이다. 그리고 전선의 선봉에 서야 할 때 나는 가끔, 아니 종종, 아니 좀 더 자주 병에게 진두지휘를 양보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제 너무 섞이고 얽히고 휘말려버렸다. 무언가 하려 해도 그게 정말 자신을 위한 일인지, 병이 속삭여 하자고 조르는 일인지 구분하기도 모호하다. (25)

나는 정신병자들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낫는다는 것이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의미로. 과거 그 사람의 어떤 ‘맑았던’ 시점으로 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똑똑하고 영리했던, 기민하고 총명했던, 꽤 괜찮았던 시기를 안다. 하지만 병은 그곳 그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다. 오히려 병의 힘을 빌려 우리가 그때보다 똑똑하고 영민할 수 있는 미래에 당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다. (26)

당신의 목표는 예전의 능력을 다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일시적 장애를 겪고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상태의 환자가 아닙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의 시작 지점이 여기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 능력을 위주로 고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능력도 병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71)

나아지기는커녕 지금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게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을 뿐이라는 비참함을 정신병이 없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상태가 마치 질 좋은 양분인 양 혹처럼 돋아나는 새로운 질병들의 존재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그것은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다만 끝없는 병의 계주를 지켜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힘을 쏟지 말 것.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절망의 상태로 버려두지 말고 충분히 치료할 것. 그리고 희망적일 것. 당신이 자신의 모든 기회가 끝났다고 생각하더라도, 악화일로라도, 가능성이 없더라도 희망적일 것. (145~146)

나는 조증은 결단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는 생물 같고, 어떨 때는 고양이 같으며 어떨 때는 암흑이나 공기처럼 나를 감싸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정신병과 나만 덩그러니 남을 때도 있다. 그러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조증은 원래부터 너라는 존재는 가치가 없었다는 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그러면 나는 뭘 하느냐, 긴긴 우울증을 앓으면서 조증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현실에 남기로 마음을 정한 뒤에는 조증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조증은 온다. 정해진 계절에, 예기치 않게, 여전히 돌발, 급성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힘센 조증도 있지만 지리멸렬한 좀스러운 조증도 있고,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도 있다. 다만 이제는 어떤 열차도 타지 않는다. 적어도 내 어떤 부분은 언제까지고 기꺼이 열차에 올라타 끝까지 가려 하겠지만, 다른 부분은 언제고 내리는 손님 하나 없는 그 역 그 자판기 옆에 식은 종이컵을 들고 앉아 있을 것이다. (195)

천사처럼 날아오는 자살, 게다가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자살. 자살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내가 죽어야만 증명되는 것이라면 한 번쯤 자살과 자신이 공모해 만든 이 기이한 고리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아마 언젠가 당신은 자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며, 그런 조건과 환경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시 존재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괜찮은 축에 들게 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강가에 앉아 구경하는 놀이를 해보자. 강가에 앉아 여울을 피해 유영하는 오리들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335)

우리는 병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병을 좋아할 수 없다. 익숙해진 병과 앞날을 조금 함께 걸어볼 뿐이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병이 마치 배우자라도 된 양 여겨볼 뿐이나, 병의 배신에 여상하게 굴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병과 대치하든 공존하든 함께 존재하면서, 다른 영역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영역이란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난 곳이 아니며 모멸을 무릅쓰고, 수치감을 느끼며, 망칠 것을 재차 우려하면서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굴어야 하는 곳, 바로 사회다. (369)

정신병자인 우리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자책하거나, 인생이 손쓸 수 없이 망가졌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에 삶을 끝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병과 있는 것만으로도 품이 든다. 일상을 사수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이 언제나 도전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작은 행동,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나날이 우리를 지킨다. 우리는 누가 이기고 지는 승부를 하는 게 아니다. 오늘 건실한 하루를 보냈다고 내일도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새로 시작하고, 몇 번이고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도망쳐도 좋고, 비겁해져도 좋다. 다만 충분히 말하고, 기록하고, 관찰하자. (390)

추천평

이 책은 내가 이제까지 읽은 정신질환에 관한 책 중 가장 적확한 보고이자 실제적인 지침을 담고 있는 책이다. 같은 ‘건강 약자’로서 내가 극복하지 못한 호소, 분노, 자기 연민을 넘어선 글쓰기는 정신질환에 관한 글쓰기의 도약, 이정표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당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퀴어-정신병-섬 연애라는 3단 콤보는 그 파괴적인 면모에 비해 의외로 흔하게 존재한다.”라고 썼지만, 내 생각에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병에 짓눌리지 않고 병을 탐구한 당사자의 문장은 정확하고 구체적이면서 사려 깊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것은 일단, 그저 병”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아야 한다. 아프면 치료받고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필요하면 입원하는 병. 그것을 제대로 인지해야만 편견과 혐오, 차별을 없앨 수 있다. ‘정신병자’에게도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최진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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