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브닝 스탠다드 씨어터 어워즈 작품상
2017 퓰리처상 / 오비 어워즈 Best New American Play
2016 수잔 스미스 블랙번 상 수상작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계급의 붕괴와 인종 간의 갈등
그 안에서도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신간 『스웨트』는 영미 연극계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 린 노티지의 2015년 작이다. 옮긴이가 밝힌 바와 같이 작품의 제목인 “‘sweat’는 ‘땀’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우리 말에서 땀이 의미하는 것처럼, ‘노동’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모두 2막 16장(전환의 장 포함)으로 구성된 이 희곡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스웨트』는 펜실바니아 주의 공장지대인 레딩 타운의 한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이후인 2000년과 2008년을 오가며 진행된다. 2000년은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폐업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던 무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공장에서 25년 가까이 일해온 삼총사 신시아, 트레이시 그리고 제시는 레딩의 한 바bar에서 하루의 피곤을 풀곤 했다. 2000년의 어느 날 회사는 현장 노동자를 관리직으로 승진시키겠다고 한다. 흑인 여성인 신시아는 인종적, 성적 차별을 벗어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백인 여성인 트레이시는 회사의 정책을 반신반의하며 소극적으로 임한다. 결국 관리직은 신시아에게 돌아가고, 이들 사이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갈등은 회사의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공장 라인이 순식간에 폐쇄되면서 절정에 이르러 신시아와 트레이시의 아들인 크리스와 제이슨마저 일자리를 잃는다. 정규직이자 노조원이었던 이들이 해고된 자리에 히스패닉계의 임시직이 들어가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점점 힘을 잃는다. 결국, 모두의 삶과 오랜 연대가 녹아 있는 그 바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하고 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8년 그날 사고의 주인공이었던 세 사람은 바에서 만나고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며 치유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바로 이 현상, 노동계급의 붕괴를 가장 작은 사회단위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 그리고 각 개인의 내면의 변화 속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때 각 개인은 흑인이고, 히스패닉이고, 백인이다.” 노동자라는 동질성을 가지지만 인종이라는 차별성을 가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안정된 환경에서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친구였으나, 그 안정이 파괴되자마자 인종적 차별로 깊은 상처를 주게 되고, 모든 문제를 힘없는 히스패닉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폭력으로 전화한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한 것은 인종 간의 갈등과 그 갈등이 빚은 파국이 아니라 “인종은 다르지만 이웃이자 동료로서 잘 유지되어 오던 사람들의 관계는 이들을 둘러싼 안정된 체제가 붕괴될 때 함께 붕괴되고, 그 과정에서 각 인종에 속한 개인들이 각자 시험에 들고, 고난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작가 린 노티지의 혜안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 작품으로 린 노티지는 두 번째 퓰리처상(2017)을 비롯하여 수잔 스미스 블랙번상(2016), 오비어워즈(2017), 이브닝 스탠다드 씨어터 어워즈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을 비추는 작가, 린 노티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는 차별을 고발하다
『스웨트』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린 노티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을 비추는 작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이자 동시대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찬사를 받아 왔다. 극작가 린 노티지가 다뤄온 소재는 실로 다양하다. 「기쁨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Crumbs from the Table of Joy」(1995)에서는 아내를 잃고 독일여성을 새 아내로 맞아들인 1950년대 흑인 남성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고, 「속옷Intimate Apparel」(2003)에서는 하숙집에 살면서 사람들의 속옷을 꿰매주면서 사는 20세기 초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첫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 「폐허Ruined」(2008)에서는 내전 시기의 콩고에서 가해자인 남성들을 상대로 몸과 술을 팔면서 서로를 보호해 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리고 「그건 그렇고, 베라 스타크를 소개합니다By the Way, Meet Vera Stark」(2011)에서는 1930년대 은막의 스타였던 백인 여배우를 시중들어주던 흑인 여성 베라 스타크의 70 평생을 조명한다.
소재들은 이토록 다양하지만, 린 노티지가 이 이야기들을 통해 시종일관 붙들고 늘어지는 건 미국사회 내의 인종차별 문제다. 차별은 피해자를 해칠 뿐만 아니라 가해자 또한 이유 없는 폭력의 주체로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질병인데, 노티지는 작품 안에 가까운 관계를 가진 흑인과 백인을 늘 같이 등장시키면서 이 점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킨다. 『스웨트』(2015)는 그런 면에서 여태까지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 주제를 미국 제조업의 몰락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다룸으로써 인종 간 폭력과 계급의 문제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으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 노티지는 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작가가 되었다.
노동계급의 불안과 다민족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
국립극단 창단 70주년 기념 공연 레퍼토리 「여기 미래가 있습니다」의 해외 신작으로 선정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빠르게 신자유주의 체제에 편입된 우리 사회 역시 린 노티지가 『스웨트』를 통해서 보여준 문제를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신자유주의에 유린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진중공업, 쌍룡자동차 등 목숨을 건 투쟁이 이어졌고, 오늘날도 현재진행형이다. 린 노티지의 『스웨트』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특히 노조의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해 임시직, 대체인력을 고용한 사례는 노-노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현재 결혼이민과 귀화자를 포함 343,797명에 이르는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했고, 사업과 취업 등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이들까지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다민족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 지 오래다. 이러한 현실에서 『스웨트』가 던지는 문제의식과 시사점은 바로 우리에게도 귀한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올해로 창단 70주년을 맞는 국립극단이 린 노티지의 『스웨트』를 창단 70주년 기념 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로 택했다. “한국 연극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여기 미래가 있습니다」의 공연작품 중 유일한 해외 신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 작품의 초연 연출을 맡은 안경모 연출가는 “「스웨트」는 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인 노동문제,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가 인간 노동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시켜 인간 존엄을 훼손하고 삶의 동기마저 해체시키는 이른바 ‘진공상태’에 이르게 하는 일임을 아프게 그려낸다. 또한 이미 다민족사회로 들어선 우리에게 인종문제가 얼마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지를 예고한다.”고 추천의 말을 전하고 있다.
희곡 작가인 번역가의 희곡다운 번역
독창적인 일러스트로 주목 받는 그래픽 작가의 지면 무대 연출
알마출판사가 2019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GD(Graphic Dionysus)’는 “아름다운 가상을 만들어내는 활자 극장”을 표상하는 희곡 시리즈이다. 이번에 네 번째로 출간된 『스웨트』 역시 책장을 펼치는 순간 지면에 연출된 무대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고래가 그랬어』 『시사IN』 등에서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수차례 독립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우연식 작가의 그래픽으로 재현된 무대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독자들의 ‘아름다운 가상’에 풍부한 상상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스웨트』의 번역은 「에어콘 없는 방」으로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고영범 작가가 맡아 가장 희곡답게 번역되었다. 이 번역으로 국립극단 창단 70주년 기념 레퍼토리로 선정된 「SWEAT 스웨트」의 대본으로도 사용하였다. 희곡을 읽기만 해도 무대에서 연기자들이 주고받을 대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