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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02월 25일 리뷰 총점9.2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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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5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88쪽 | 673g | 153*224*30mm
ISBN13 9788932015811
ISBN10 893201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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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명)

1892년 보스니아의 트라브니크 출생. 소년 시절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보스니아에서 보낸 안드리치는 자그레브와 비엔나에서 철학을 공부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학업을 중단했다. 이 무렵 안드리치는 진보적 민족 단체 ‘청년 보스니아’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14년 많은 단원들이 체포되고 안드리치도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때 옥중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 1892년 보스니아의 트라브니크 출생. 소년 시절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보스니아에서 보낸 안드리치는 자그레브와 비엔나에서 철학을 공부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학업을 중단했다. 이 무렵 안드리치는 진보적 민족 단체 ‘청년 보스니아’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14년 많은 단원들이 체포되고 안드리치도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때 옥중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는 훗날 그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1년에 시를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20년 첫 단편집 『알리야 제르젤레즈의 여행』을 비롯 보스니아의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사후까지 100여 편이 넘는 단편과 중·장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집필하여 전쟁이 끝난 1945년에 동시에 발표한 3부작 『드리나 강의 다리』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아가씨』는 5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보스니아에 살아온 다양한 민족 공동체의 공통된 역사와 운명을 조명하여 이들의 갈등과 견제 속에 형성된 발칸 특유의 문화를 서사적으로 그려낸 걸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침체된 유고 문학계에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게 되며 특히 『드리나 강의 다리』는 안드리치가 1961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발칸의 호메로스’로까지 불리우며 보스니아의 얼굴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로 꼽히는 안드리치는 1975년 심장 발작으로 영면하였다.
역자 : 김지향
한국외국어대학교 유고어과를 졸업하고 베오그라드 국립대학교 문과대학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 연구소 연구 교수 및 동 대학교 유고어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외딴 집』에 나타난 등장인물 연구」(Beograd, 1995), 「유고 현대 시문학」(1999),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연구」(Beograd, 1999)등이 있으며 저서로『세계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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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그럼에도 꿋꿋이 삶을 살아가는
평점10점 | d********2 | 2023-01-06 | 신고

그럼에도 꿋꿋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과 장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담겨 있으며 그것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릴 만큼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 과연 어떠한 역사와 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좀 더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드리나 강의 다리’를 읽고자 했던 이유였다. 다리에 얽힌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도 어느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흔하고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것도 다리에 얽힌 약 400년 가량의 대서사시를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역사도 살필 수 있었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인간들의 욕망과 감정들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던 것이었다.

한편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리‘라고 흔히들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소설의 주역은 다리와 더불어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꿋꿋이 영위해 간,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었다. 후대에 널리 이름을 떨친 지도자나 하물며 다리를 조성한 건축가가 아닌, 오직 피지배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노동력을 바치며 때로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무수한 생명들 말이다. 특히 초반부에 총독인 베지르에 의해 파견된 다리 건설관인 아바다가의 혹독한 동원 방침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으로 다리를 밤마다 다리를 파손한 농부인 라디사브의 일화는 다리를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특히 공감했던 장면과 구절은 “역사가 흐를수록 사람들은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다리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과 고통, 아픔들(사형, 홍수 등)이 발생하는 와중에도 비셰그라드의 주민들은 ‘카피야’라는 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치유를 받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남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그들의 아픔을 망각하기도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고,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비셰그라드 사람들이 “그날 그날의 모든 고통을 옛날에 체험하던 그 커다란 고난의 회상 속에 떠내려보낸다”고 하더라도, 공동체가 경험한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과 기억들은 그들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을 뿐더러, 잠시 잊고 살아가더라도 언제금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의 삶과 경험들을 어느 정도 함께 기억해줄 수 있는 것이, 과거를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과 점차 축적된 기록으로 타자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오늘날의 사람들과의 차이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무수히 많은 비셰그라드의 사람들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호텔을 운영하는 로티카와 이슬람교도 상인인 알리호좌였다. 뛰어난 사업 수완을 지니며 빼어난 미인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던 로티카의 경우 호텔을 운영해가는데, 이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 호텔이 파괴되면서 역사 앞에 ‘힘없는‘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오늘날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야 이러한 역사 속에 무력하게 놓인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 나라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아니 그럴 수밖고 그것이 역사라고 딱히 느낄 새 조차 없을 정도이지 않았을까?

상인 알리호좌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일찌감치 오스트리아 군대가 쳐들어옴에 따라 시련을 겪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며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힘쓴다. 그럼에도 그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의 황태자 암살 사건 이후 초라하게 파괴된 다리를 발견하고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한 평생 비셰그라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오며 삶을 영위한 사람에게 가장 상징적인 것을 처참하게 짓밟아버렸을 때의 상실감과 허무감은 실로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상상하는 것조차 그들에게 실례가 될 정도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역사 앞에 놓인 개별 인간에 대한 고찰 외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방인과 토박이들 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에 끼인 것과 더불어 다리가 놓인 뒤로 활밸해진 이동 덕분에 각기 다른 종교와 인종을 가진 사람들(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들 등)이 한데 모여 삶을 영위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서로 화합하기도 하고 공동의 시간들을 보며 추억을 쌓기도 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듯(그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인간들의 세태를 보여주듯),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은 민족끼리의 불화를 부추기고,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 지역을 차례로 쳐들어와 지배를 함에 따라 이방인들과 토박이들이 서로 단합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갈등을 빚는 상황을 여과없이 소설에서 잘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이방인들의 경우 지배를 하는 이방인들과, 그낭저냥 주변 이웃처럼 살아가는 이방인들로 나뉠지라도, 결국에는 그들만의 정체성이 때로는 중요해지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이를 보며 공통된 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할 없는 요인인지, 세계시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조차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슬라브인들의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삶의 현장을 목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나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공감대 덕분에 오히려 그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에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있다“는 구절은 변하지 않는 장소 속에서 꿋꿋하게 각자만의 삶의 영위해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응원과 나에 대한 위로로도 들렸다. 물론 “모든 인간의 가장 슬프고도 비극적인 약점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한 치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데 있었다. 인간은 재주도 많고 기술과 지식도 많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만은 도무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슬프게 들린 것은 나 역시도 이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사람일 것 같아서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리석음조차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으로 받아들여 앞으로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다리와 함께 살아간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19 댓글 13 접어보기
종이책 주간우수작 드리나 강의 ‘오래된 다리’
평점10점 | y*****2 | 2015-12-21 | 신고

지난 가을 보스니아의 모스타르를 여행하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보스니아 내전의 흔적에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시가지 곳곳에 창문 없이 방치된 건물들은 예외 없이 총탄자국이 마치 마마의 흔적처럼 남아 있고, 들여다보면 건물 안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이드 말로는 내전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복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스타리모스트 만큼은 복구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의 스타리모스트는 네레바트강을 경계로 나뉘어 있는 가톨릭계 마을과 이슬람계 마을을 연결해주고 있었습니다. 모스타르를 점령한 오스만제국이 1566년에 완공한 스타리모스트는 1,088개의 하얀색 돌을 사용하여 길이 30미터에 폭 5미터, 높이 24미터의 단일 아치형의 이슬람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00년이 넘도록 이슬람제국이 유럽에 남긴 다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았던 스타리모스트는 1993년 9월 보스니아 내전 당시 무너진 것입니다.

 

한적해 보이기만 하는 모스타르 주민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끔찍한 싸움이 벌어진 것은 지난 세월에 견주어보면 알량하기만 한 민족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모스타르의 가톨릭계 주민과 이슬람계 주민들은 스타리모스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왔습니다. 정교계의 세르비아가 쳐들어왔을 때는 힘을 합하여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세르비아의 기치에 대항한 대크로아티아 기치를 내세운 크로아티아가 모스타르의 가톨릭계와 합세하여 이슬람계 주민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두 세력이 스타리모스트를 경계로 대치하던 중 다리가 폭파된 것입니다. 어느 쪽의 소행인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투와 살상이 전개되는 동안 냉정하던 모스타르 주민들까지도 다리가 무너질 때는 오열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유네스코가 중심이 되어 스타리모스트의 복원이 추진되었습니다. 스타리모스트야 말로 종교간, 민족 간의 화합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나토평화유지군은 강에서 부서진 다리의 조각들을 찾아냈고, 유럽 각국은 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터키는 보관하고 있던 다리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축에 나서 2004년 7월 23일 세계 10개국 정상들과 찰스 황태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종헌 지음,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94-102쪽, 소울메이트, 2012년; http://blog.yes24.com/document/8280199) 

 

이종헌은 발칸사람들의 정체성과 수백 년에 걸쳐 평화롭게 공존해오던 사람들이 대립하여 갈등을 빚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보 안드리치야말로 발칸사람들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892년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부모가 살던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성장해서는 정교의 본산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어로 작품활동을 했지만,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보스니아의 도서관건립기금으로 기증했다고 합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모두의 과학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베오그라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는 물론 크로아티아까지도 자국 출신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두 살이 채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셰그라드의 고모에게 맡겨진 이반 안드리치는 드리나 강의 다리 위에서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훗날 안드리치 작품들의 원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장한 다음 사라예보에서 공부하면서 남슬라브의 독립지원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보스니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청년 보스니아 운동’을 전개한 혁명단체에서 활동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대전 이후에 외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퇴직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24년 외교관으로 일하면서도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에서 <터키 지배의 영향하에서 보스니아 정신생활의 발전>이라는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적 갈등, 문화적 차이가 공존했던 보스니아는 그에게 있어 영원한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작품을 통하여 보스니아인들의 역사, 가치관, 문화를 이야기했고, 특히 운명에 관한 보스니아 사람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서사적 힘을 인정받아 1961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위키백과, 이보 안드리치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3%B4_%EC%95%88%EB%93%9C%EB%A6%AC%EC%B9%98)

 

드리나 강은 북서 헤르체고비나를 흐르는 타라 강과 피바 강이 합류하여 시작되는데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국경을 따라 흘러서 슬로베니아 북부 알프스에서 시작하는 사바 강에 합류하고, 사바 강은 도나우 강으로 흘러듭니다. 346km를 흐르는 드리나 강은 짙은 녹색을 띄기 때문에 세르비아인들은 질룐까(녹색)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산세가 험한 발칸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드리나 강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서로마와 동로마제국의 자연적 국경이었던 드리나 강은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세력이 만나는 경계였습니다. 오스만제국이 발칸을 점령하면서 유입된 이슬람까지 더해지면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드리나 강을 따라서 어우러지게 된 것입니다.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는 다리 주변에 살고 있는 비셰그라드 사람들은 물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다리가 세워지는 과정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무너지기까지 무려 340여년에 걸쳐 다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다리입니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이 다리 사이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오는 긴밀한 연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얽혀 있는 운명을 따라 떼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리의 유래와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내려오는 마을의 삶과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미리 이야기합니다. 일종의 향토지(鄕土誌)라고 할까요?

 

소설 속에 나오는 드리나 강의 다리는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 다리(Mehmed-Pasha Sokolovic Bridge)입니다.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예니체리로 끌려간 소년이 장성해서 오스만제국의 파샤가 되었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불편한 두 마을이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다리건설을 명하였고,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의 궁정 건축가 시난의 설계로 1571년 짓기 시작한 다리는 1577년 완공을 보았습니다. 1666년, 1875년, 1911년, 1940년, 1950-52년에 각각 중요한 보수공사가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11개의 아치 가운데 3개가 파괴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5개의 아치가 파괴되었지만 이내 복구되었으며 1992년 보스니아 내전 시 벌어진 비셰그라드학살 사건에서 많은 보스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 군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다리는 2007년 유네스코에 의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Wikipedia. Mehmed Paša Sokolović Bridge. ; https://en.wikipedia.org/wiki/Mehmed_Pa%C5%A1a_Sokolovi%C4%87_Bridge)

 

작가는 다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삶을 모두 24개로 나누어 풀어내고 있습니다. “먼 발치에서 바라다보면 하얀 다리의 넓은 아치들 사이로 푸른 드리나 강만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다리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위로는 남녘의 하늘을 품은 비옥하고 기름진 공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10쪽)” 물론 번역도 참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은 왜 작가가 ‘발칸의 호메로스’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드리나 강에 세워진 다리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 가운데는 전략적인 것도 있습니다. 다리 가까이에는 마을의 장터가 자리하고, 강둑을 따라서 사라예보로 향한 길이 이어지고 있어 다리는 사라예보로 향한 길 양끝을 연결시키면서 카사바와 그 주변마을을 이어주고 있다고 적으면서, ‘연결’의 의미를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다리와 관련된 전설도 인용하여 신비한 감을 더하기도 합니다. 교각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쌍둥이 남매를 교각에 묻어야 한다는 전설을 비롯하여 이교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순교한 이슬람 수도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의 발칸지배에 대하여 압제였다는 평가와 그렇지 않았다는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이중적인 평가의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 나옵니다. 메흐메드 파샤로부터 다리건설의 감독을 위임받고 이곳에 온 아비다가는 파샤가 내준 건설자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고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라디사브라는 농부가 나서서 쌓은 다리를 몰래 허물다가 들켜서 처형을 당하는 일까지도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비다가의 횡포가 중앙정부에 알려지면서 아비다가가 처벌을 받게 되고 새로운 감독관이 파견되어 다리건설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제국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관리의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감시하여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기본원칙을 지켰다고 합니다만, 그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원칙을 벗어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민족이나 종교를 떠나서 한 마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도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드리나강의 다리까지도 물에 잠길 정도의 대홍수가 있던 날 밤에 흉흉한 물길에 쫓겨 집을 나온 주민들은 한 번도 물이 닿지 않은 메이단의 꼭대기에 있는 집을 찾았는데, 집집마다 모두 문을 활짝 열어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자연의 힘과 공통적인 불행의 짐은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대인들을 한데 뭉치게 했습니다.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의논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무너진 것은 1808년 세르비아가 혁명의회(Revolutionary Parliament)를 구성하고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면서입니다. 1813년 오스만제국은 20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세르비아의 저항을 제압하였고, 1816d년 부분적인 자율권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세르비아 내 터키인들이 보스니아로 쫓겨났고 그들은 복수의 기회를 찾게 된 것이 시발점이라고 합니다. 반란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세르비아인들은 드리나 강의 다리 위에서 처형되었고, 연고가 없는 시체는 강물에 던졌습니다.

 

19세기 말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주민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통제의 끈을 죄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저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터키인들의 집에는 실망과 혼란이 가득 찼고 기독교 신자들의 집에는 경계와 불신이 가득했다. (…) 입성한 오스트리아놈들은 복병을 두려워했다. 터키인들은 오스트리아 놈들을,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놈들과 터키인들을 두려워했다. 유태인들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특히 전시에는 모든 이들이 그들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183쪽)”

 

이렇게 드리나 강의 다리 부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은 19세기를 기점으로 확산된 것이었고, 특히 오스트리아, 독일, 소련 등 유럽 국가들의 부축임이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만제국이 물러나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된 반면 세르비아는 독립을 얻었고, 이 지역에 민족주의가 불꽃처럼 일기 시작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전쟁 중에 드리나강의 다리를 두고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격돌하는 가운데 폭파되어 무너져 내린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스타리모스트나 드리나 강의 다리가 복구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서 오순도순 살아온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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