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배해 온 권력자와 사상가 들이 만들어 놓은
뿌리 깊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다
세상을 해킹 하고 싶었던 프로그래머가 정작 현실에서 거액의 연봉에 부정한 해킹을 제안 받자 그 자리에서 거절한 후, 생각에 빠진다. 해킹을 의뢰한 인간과 거절하는 나란 인간에게는 어떤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거지? 도대체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된 것인가? 누가, 왜, 어떻게 지금의 우리로 프로그래밍 했는가? 아무 의심 없이 믿는 것,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이것이 프로그램 된 것들이다. 작정하고 이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획한 프로그래머의 의도를 알아내야 된다. 그 의도를 낳은 세계관을 알아야 되며, 그 세계관을 낳은 역사적 사건과 사상 담론들을 추적해야 한다. 공학도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박식함으로 ‘지적 괴물’이라고 불리는 저자답게, 온갖 철학과 물리학, 심리학, 경제학, 수학 이론에 역사와 대중문화, 주역을 넘나드는 이 책은 폭과 깊이에서 독자들의 지적욕구를 자극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오래 전부터 누적되어 온 것들을 추적한 결과, 공동체에 대한 합의가 부재할 수밖에 없던 한반도 역사와 일본을 통해 굴절된 서양의 근대 담론들을 만나게 되고 이것들이 우리에게 도덕이나 가치는 삭제된 ‘일등주의’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음을 깨닫게 된다. 프로그래밍 된 대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나를 재프로그래밍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까지 나아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를 지배해 온 권력자와 사상가 들이 만들어 놓은 뿌리 깊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타자의 사유가 나에게 설치되어 나를 구성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강명관 교수는 이같이 말하며 자신의 공부 목적이 ‘내가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컴퓨터의 운영체제와 같다. 그 누구도 윈도를 설치할 것인지, 리눅스를 설치할 것인지, 다른 프로그램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 결과 나의 대뇌를 차지한 타자의 사유들이 나로 하여금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 것이다.”
우연히 한국인으로 태어난 ‘나’는 타자들의 담론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복합물이라는 그의 문제의식에 동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세상을 해킹하고 싶었던 프로그래머이자 지독한 독서광인 저자가 자신을 해부체로 삼아 이 흥미로운 작업을 호기롭게 감행했다.
한때 아인슈타인이 수학만으로 블랙홀을 예측했듯이 수학적 논리로 물리적 세계를 예측하고 싶었고 세상을 움직이는 결정적 요인을 알아내어 세상을 해킹하고자 했던 저자는 깨닫는다. 거꾸로 ‘내가 세상에 해킹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세상은 거시적 낙관론으로 우리를 해킹 한다
“해킹은 컴퓨터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사람이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다.” 케빈 미트닉이라는 전설적인 해커의 말처럼 대부분의 해킹은 심리적인 것이다. 해킹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내부 공모가 많다. 순수한 기술력으로 해킹 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프로그래밍 된 단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데 인간을 이용하기 위해 최면을 거는 사람들은 비판 정신을 없애는 데 집중한다. ‘전에도 문제가 없었어. 앞으로도 문제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정신은 해킹 당한다. 페이싱(pacing)! 상대방이 사실로 받아들일 만한 모든 정보와 경험에 대해 보조를 맞춰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킹 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은 항상 믿을 만한 수준의 올바른 정보만 제공한다.”
저자는 세상이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거시적으로 보면 예측 가능한 인과도 미시적인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데 우리를 프로그래밍 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거시적 낙관론에 우리의 욕망을 고정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통찰한다. 성공이나 혁신은 위치선점일 뿐이며 시대 흐름과 수많은 사람의 무수한 접속에서 이루어진 미시적 우연일 뿐인데, 이런 미시적 우연의 산물들을 거시적 법칙으로 전환해내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는데 우리의 사고가 고정되는 순간 해킹 당한다는 말이다. “거시적 정의에 안주하고 미시적 변화에 눈을 돌리는 순간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들과 사상가들에 의해 손쉽게 프로그래밍 당한다.”
인류 역사상 권력자들은 사람들의 정신을 해킹 해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이식시키는 일에 집중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들에 의해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까?
모든 가치와 도덕이 삭제되고 오로지 ‘1등주의’라슴 프로그램만이 깔려 있다 누가, 왜,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는가
우리는 생각한다. ‘잘 먹고 잘살면 그만, 가치가 무슨 문제인가’ 그리고 언제나 기다린다. 강력한 지도자를. 왜 이렇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왜 혼돈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힘이라는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우리 생각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일본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 사상사를 밀도 있게 추적하여 조선과 달리 내면적인 ‘도덕’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 본 적 없는 일본의 역사와 근대 사상사를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다. 서양의 근대를 받아들이면서 군국주의로 발전해간 일본의 근대를 분석하는 것이 우리를 아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는 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다른 나라를 약탈해 잉여가 생기고, 잉여가 생기니 돈의 가치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한 것이 근대이다. ...근대적 인간은 경쟁의 인간이며 효율의 인간이어야 한다. 1등이라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바로 근대적 인간이다.” 저자는 근대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통찰한다. 일본의 ‘황도유학’이 효율성의 근대와 만나면서 ‘천황’이 있는 근대국가를 만들었고 철학과 정치가 사라지고 힘만이 지배하게 되는 프로그램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이는 곧바로 식민지 조선으로 전이되어 우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화하면서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은 다르다. 조선은 당파가 없어지고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망했고 저자는 그 씨앗을 정조의 세도정치에서 발견한다. 당쟁이 사라지고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군부가 근대화를 주도한 일본이 들어온 것이다.
‘힘’이 정의가 된 극대화된 근대 이데올로기에 지배받게 되는 망해가는 조선, 그리고 냉전의 최전선이 된 채 주체적인 근대국가로서 사회 공동체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를 만나게 된다. 공동선에 대한 합의가 있어본 적이 없기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힘에 의한 생존만이 남은 사회. 정치를 혐오하고 잘 먹고 잘살면 그만, 도덕이나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우리의 내면에 맹목적인 ‘1등주의’라는 프로그램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나를 재프로그래밍 한다
“선택 받은 소수가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으면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실패자와 낙오자에게 너무 가혹한 사회다... 평생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다가 정말 죽어 버린다. 우리 대부분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만 추구하다 죽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그래밍 된 대로 살다가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
이 책의 3부 ‘나를 재프로그래밍 한다’에서는 우리를 지배해 온 생각의 틀을 만든 철학, 사상들의 실체와 한계를 짚어내는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나를 재프로그래밍 할지에 대한 사색을 밀고 나간다. 모든 것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보고 새롭게 예측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고전적인 인과법칙이 아니다. 기존의 인과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인과적인 연결을 가리키는 ‘동시성 원리’, 주역적인 발상이다. 세계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서로 동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기체적인 발상이기도 하다. 다양한 원인이 다양한 결과와 동시에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사고다. 독자들은 3부에서 불교와 주역, 노자 철학과 ‘초양자장’ 개념까지 이른 현대물리학이 서로 통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저자의 흥미로운 통찰들을 읽게 된다.
저자는 불교 수행을 통해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나’라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나라고 고집하는 ‘마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곧 ‘자비’임을 알게 되는 순간 “성공하는 소수가 되기 위해서 죽기살기로 노력하기보다는 세상이라는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지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라고 자문하고 있다.
과학에 의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불확정성도 높아지고 있지만, 저자는 권력으로부터 인식의 자유를 확대시켜 준 과학적 방법의 장점을 강조한다. 과학은 모르는 것의 범위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많아질수록 앎의 범위는 넓어지고 그 속에서 더 깊고 넓은 이해가 생긴다. “컴퓨터는 아는 데까지 알면 끝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모를 때까지 알면 분석 능력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의 역사적 고난과 혼돈의 상처들 때문에 언제나 무의식에 자리 잡았던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한다. “우리를 구원해 줄 지도자는 없다” 우리들의 생각과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체에 대한 꿈을 프로그래밍 하자고 결론 짓는다.
녹록치 않은 사고의 전개, 흥미로운 통찰력!
저자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세상을 이해하는 에너지’로 바꾸고자 애썼던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박식함은 진정한 지적 호기심의 징표이자 속물성을 차단해주는 방패’라고『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가 말했듯이, ‘지적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저자가 쓴 이 책은 독자들의 지적욕구를 자극하면서 속물성으로 프로그래밍 되었던 우리 자신을 지켜줄지도 모른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기본 관점인 ‘거시적 예측 가능성의 세계 vs 미시적 불확실성의 세계’라는 구도는 우리를 지배해 온 권력자나 사상가 들이 만들어 놓은 뿌리 깊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어놓는다. 거시적 인과가 아닌 미시적 인과에 의한 네트워크의 이해는 새로운 인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녹록치 않은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동안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던 교묘한 생각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의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지식의 네트워크 속에서 현재의 ‘나’를 만든 것들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버려야 되고, 빠져나와야 할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독자들은 지적 자극과 함께 어떤 판단과 실천들을 해야 할지에 대한 삶의 생산적인 영감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인문서들의 주제가 자기와 상관없어 보였던 사람들에게는 ‘나를 중심에 놓은, 나를 통해 읽는 역사이자 사상사’로 다가가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