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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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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262g | 128*188*20mm |
ISBN13 | 9788992409933 |
ISBN10 | 8992409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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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1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아빠의 페미니즘>이란 제목을 처음 만나고 '아! 바로 이 책이야!'라고 느꼈다. 내가 기다려온 책 말이다. 딸을 이 세상에 나오게 한 부모지만 엄마가 페미니스트되기는 쉬어도 아빠가 페미니스트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우리 현실이다. 성이 다르고 자라온 경험이 다르고 위치가 달라 아빠가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엄마보다 몇 배의 자각과 이해와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딸을 페미니스트로 교육시킨 대한민국의 아빠를 드디어 만났으니 내가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참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다른 데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엄마와 딸보다 더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아빠가 등장하는 내용도 그렇고, 열일곱에 자신의 첫 책을 내고 이번이 세 번째 출간인데다 초졸 이력의 스므살 저자도 그렇고, 거울이 있는 책 디자인도 그렇다. 거울의 의미 그대로 역시사지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잘 비추어 보라는 미러링을 상징한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아빠와 딸이 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빠와 딸도 엄마와 딸만큼 혹은 아빠와 아들만큼 깊이 연대하고 대화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아빠와 딸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J의 말을 들려주고, 이 땅의 모든 딸을 둔 아빠에게 당신은 당신의 딸을 위해 '최소한' J쯤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또 저자는 "J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딸이 살아갈 세상의 괴리감과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서 딸을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빠로서의 사명감 속에서 탄생한 과도기적 남성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수십 년 동안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아 온 남성이다. 나는 나의 아들을 가해자로 키우지 않을 자신이 없다. 이 그지 같은 세상에서 학교, 군대, 사회를 거치고서도 정신 똑바로 박힌 인간으로 살도록 가르칠 자신이 없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폭력에 침묵하지 않을 수 있는 남성으로 키워낼 자신이 없다. 내가 수십 년에 걸쳐 교육받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법칙, 그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의 대부분은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서는 안 될 몹쓸 것들이다. ..."
아빠 J의 이 말은 큰아이가 딸이라서 둘째로 아들을 낳으면 성차별을 하게 될 것을 우려해 낳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저자의 부모는 결혼 초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확고한 입장과 견해의 일치가 있었던 듯 싶다. 한마디로 준비된 부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부장적인 사고를 세뇌하고 사위에게 딸을 통제할 힘을 세습하듯, 어머니는 딸에게 수동적인 사고를 주입하고 며느리에게 아들을 떠받들며 사는 인생을 강요한다. 진아, 네가 너무 예쁘고 똑똑해서 며느리로 싫다고 지껄이던 그 사람들이 여성이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라. 그들은 너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지만, 동시에 너와 똑같은 폭력에 시달려온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방관자가 세상을 방치하고, 피해자가 자신을 놓아 버린다면, 끝내 피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이 슬픔을 절대로 잊지 마라."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예닐곱 살 여자아이였던 저자에게 예쁘고 똑똑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한 남자아이의 엄마는 "진이는 너무 예쁘고 똑똑해서 며느리로는 싫어."라고 했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있는 성차별을 기억하고 있는 저자에게 아빠가 해주었다는 이야기다. 그저 웃고 넘길 수 있을 법한 말인데 아빠 J의 말을 통해 그 속에 가부장제의 핵심을 만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만의 우정? 개뿔 아무 것도 없어. 너도 <삼국지> 읽었잖아. 배신과 모략으로 점철되어 있는 게 남자들만의 우정이야. 너도 뉴스 보잖아. 형님 아우 하면서 뒷돈 주고받는 게 남자들만의 우정이야. 나쁜 짓 함께하는 게 의리이고, 입 꾹 다물고 있는 게 우정이야. 모여서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게 남자들만의 추억이야. 여자 욕하고 욕보이는 게 남자들만의 훈장이야."
친구 관계에서 여자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 저자가 불신하기 시작할 때 아빠에게 남자의 우정은 뭐가 다른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흔히 남성중심 사회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로 분할 통치하는 이데올로기를 사용한다. 이에 대해 아빠 J는 남성동성 사회의 문제점을 쉬운 말로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제 여자들은 남성중심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연대해야 한다. 물론 깨어있는 아빠와 남성들도 함께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대한민국 아빠 맞아? 하고 감탄하며 재밌게 읽었다. 어려운 페미니즘 이론서보다 일상 속에 숨쉬는 페미니즘이 더욱 활력 있어 좋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과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나처럼 엄마가 먼저 읽고 아들, 딸과 이야기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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