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할까? 국가나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까? 자유 복지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과연 충분히 보장되고 있을까? 찰스 프리드는 ‘자유’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와 함께 일상생활 속에서 침해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고찰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자유의 ‘개념’과 ‘가치’를 재정립한다. 이 책은 《세계시민주의》, 《정체성과 폭력》, 《선제공격》에 이은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네 번째 책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 찰스 프리드의 첫 번째 국내 번역서다.
“선택의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은 아무리 그 대가가 가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정신의 퇴행이며 인간성의 말살을 의미한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적’으로는 ‘독재’, ‘공산주의’, ‘전체주의’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들만이 자유의 침해자일까? 독재 정권, 공산주의, 전체주의는 모두 국가나 집단을 위해, 혹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다른 가치들 역시 ‘자유’의 침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인식하는 자유의 침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민주주의’, 혹은 ‘공동의 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유의 침해다. 자국의 영광이나 종교적 성취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거나, 자연환경·인류의 미래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역시 자유의 침해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찰스 프리드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들에 대해 고찰했다. 특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침해되는 자유에 주목했다. 과연 현대에 있어서 자유란 어떤 개념이며, 어떤 경우에 침해가 되는 것일까. 그가 제시하는 논제들은 자유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 가지 사례
찰스 프리드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하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세 가지 들었다. 캐나다 퀘벡 주의 프랑스어 헌장, 캐나다 국가 의료보험 제도, 그리고 미국 버몬트 주의 월마트 입점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들은 모두 민주 복지 국가에서 이루어진 자유의 침해 사례다.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논란의 여지와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프리드는 이 사례들을 통해 자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1)퀘벡 주의 프랑스어 헌장
캐나다 퀘벡 주의 프랑스어 헌장 사례는 퀘벡 주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프랑스어 헌장으로 인해 몬트리올의 중국인 병원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간호사를 채용한다’는 구인 광고를 내지 못했으며,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를 영어 학교에 보내려다 당국에 의해 거부당했다. 또한 손녀에게 말하는 인형을 사주려고 했던 어느 할머니는 인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이유로 통신 판매로 인형 주문을 할 수 없었다. 프랑스어를 지킨다는 목적 아래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된 것이다.
2)캐나다 국가 의료보험 서비스
두 번째 사례인 캐나다 국가 의료보험 서비스 사례는, 민간 의료보험 서비스를 허용하면 수준 높은 의료진들이 고급 의료 서비스 분야로 몰려 국가 의료 서비스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민간 의료보험 서비스를 제한한 사례다. 이 사례의 경우에도 맹점이 있다. 바로 국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망 등 치명적인 후유증도 발생한다. 퀘벡 지역의 주민이 국가 의료 서비스가 아닌 좀 더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만 한다. 이 역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버몬트 주의 월마트 규제
마지막 사례는 버몬트 주의 월마트 문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04년 훼손 위기에 처한 문화 사적지 리스트에 버몬트 주 전역을 포함시킴으로써 건축 규제를 통해 월마트의 버몬트 입점을 금지시켰다. 이들의 월마트 입점 규제는 사실 환경적 문제라기보다 경제적 문제가 더 크다. 즉, 월마트가 버몬트 주에 생기게 되면 소규모 도시와 마을의 중심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작은 상점들이 경쟁에서 밀려나 지역 공동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역의 상권을 살리기 위한 불가항력적 방법처럼 여겨지지만 월마트의 입점을 금지하는 것은 더 큰 매장에서 다양한 상품을 좀 더 싸게 사려는 대다수 소비자의 자유를 침해한다.
찰스 프리드는 이 세 가지 사례를 통해서 자유의 개념을 재정립한다. 즉 이 ?례들은 모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동참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중 원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만 사용하도록 강요했으며, 민간 보험을 금지시킴으로써 어쩔 수 없이 모두가 국가 의료보험에 가입하도록 만들었고, 버몬트에서 월마트의 입점을 금지함으로써 월마트와 지역 상권에서의 쇼핑이라는 선택의 문제를 차단한 것이다. 즉 프리드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침해라고 말한다.
자유의 가장 큰 가치, 선택!
이성적이고 성공을 추구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들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려는 것은 자유의 침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성취뿐 아니라 국가나 가문, 혹은 신앙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향유나 신의 영광을 위해 흔쾌히 자유를 희생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정해진 시간에 시를 읽는 대신 피아노를 친다거나, 신체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수영 대신 육상을 선택한다면 그 선택이 자신의 자유를 희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프리드는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은 자유의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행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이 내게 어떤 선택을 강요한다면 그 선택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일지라도 내 자유는 박탈된다”며 자유의 진정한 가치는 선택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아름다움이나 국가의 영광, 인류에 대한 헌신, 평등에 대한 열정 등은 자유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목표들은 선택의 대상이며, 자유는 그 선택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즉 이 목표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선택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가치들인 것이다.
국가는 자유의 수호자인가, 침해자인가?
프리드는 자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예로 든다. 길을 걷고 있는 나를 어떤 사람이 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나무에 꽁꽁 묶여 있는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그렇다면 둘 중 어떤 사람이 나의 자유를 박탈한 것일까? 전자일까? 후자일까? 아니면 양자 모두일까? 쉽게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역시 전자의 경우가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나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양측 모두 마찬가지지만 자유를 박탈한 것은 전자의 경우만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아서 이루지 못했다거나, 환경적 영향으로 일을 실패했다면, 그가 비인간적으로 또는 잔인하게 내 이익을 저해했다고 불평할 권리는 있겠지만, 도와주지 않은 사람이나 환경이 나의 자유를 박탈했다고 볼 수 없다.
사람은 각자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이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소유’와 ‘권리’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프리드는 세상 사람 모두가 각각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고 가정을 한다. 누군가 내 비눗방울 속으로 침범한다면 나는 그를 밀어낼 수 있다.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내 소유에 대한 권리 행사가 된다. 이를 자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수많은 자유의 경쟁자가 잠복해 있는 국가(정부)에 확대시켜보자.
우리는 우리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가 보장되는 계약을 맺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과 세부 사항은 국가와 법규가 존재할 때 비로소 결정된다. 권리가 있다고 해도, 그 대상이 확실하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데 이 권리가 국가가 규정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면 일반론적 개념에서의 권리와 자유는 보장되겠지만, 이 권리와 자유의 본질조차도 국가에 의존하게 된다.
프리드는 “높은 수준의 문명사회에서는 국가의 존재 없이 유효한 자유도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법률 없이는 효율적인 자유를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가는 자유의 가장 큰 침해자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성적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섹스는 모든 문화에서 대중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친밀한 행위인 동시에 상호간의 가장 밀작된 행위다. 이는 또한 소유권의 문제이며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섹스를 정부가 존재한 순간부터 통제하고 제한해왔다. 동성애, 매춘 등의 실질적 성행위 문제뿐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표현, 텔레비전이나 인쇄매체에서의 자극적인 광고까지 간섭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성적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이 책에서 프리드가 언급하고 있는 성적 자유의 문제는 두 가지로 압?된다. 하나는 매춘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동성애의 문제다. 매춘과 동성애를 법적으로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1) 매춘의 문제
먼저 매춘 문제를 살펴보자. 대다수의 여권주의자들은 매춘을 금지하길 원한다. 이 제도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소유권을 인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평등한 상태의 거래라면 인권의 문제 또한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매춘이 결혼보다 솔직하고 선호할 만한 자연스러운 성의 교환이라고 보기도 한다. 후자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매춘이 여성이 건네주거나 포기한 부분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매춘은 임금 노동에, 결혼은 노예 제도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섹스가 교환될 때 판단을 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 불평등하다면, 그 교환의 질 역시 불평등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매춘에 나서는 여성과 사고 싶은 명품을 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유로 매춘을 선택한 여성의 상황은 다르다. 전자는 사회적인 문제이고, 후자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거래라고는 하더라도 불평등한 거래가 될 것이다. 상황에 의해 내몰리듯 선택된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일 수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교환으로서의 매춘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춘을 금지하는 것이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후자인 매춘의 금지를 지지하는 것이다.
프리드는 매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자유의 정신으로 이 문제(매춘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의 정신은 그와 동시에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즉, 도덕적으로, 혹은 자신의 판단하에 그들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2) 동성애의 문제
사람들은 매춘뿐 아니라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섹스 행위나 노골적인 성 묘사가 나타난 글 또는 영상 역시 규제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동안 규제 대상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광고판이나 쇼윈도, 신문이나 TV 광고에서 원치 않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접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공적인 음란 행위는 사생활의 침범으로 간주된다. 프리드는 사람들이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에 분노하는 이유는 “이런 장면들이 품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적으로 반응할 시기와 장소를 자신이 선택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리드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공공장소에서의 음란 행위 뿐 아니라 사적인 장소에서의 성행위까지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성애다.
몇몇 사람들은 동성애를 직접 목격하지 않아도 어디에선가 그런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자신들을 불쾌하게 만들며,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프리드는 “자유의 정신이 성인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동성 간의 성행위를 박해하거나 비난할 수 없으며, 동성애자들 간의 성행위를 이유로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심각하고도 잔인한 침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동성 커플에게도 이성 커플과 마찬가지로 축복해주려는 마음이 있다 해도,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즉, 사회가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이들이 핍박받고 고소당하지 않도록 자유의 이름으로 보호해주는 것과, 결혼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하는 데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동성 결혼의 제도화는 오로지 사회 구성원들의 투표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며, 만약 다수가 찬성했다면 반대론자들은 자유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더 이상 이에 반대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일인가?
인류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삶을 살았던 적이 얼마나 될까? 과연 그런 시절이 있기는 했을까? 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긴 하지만 이 불평등의 역사는 단지 현대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에 대해 찰스 프리드는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평등을 누린다 하더라도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번영이나 행복은 기대할 수 없다.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의 관계에 수반되는 불평등성의 파괴”라는 것이 프리드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프리드는 과세의 이유가 단순히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정부의 시책은 자유의 정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의 정신을 시험하는 것은 과세 제도가 아니다. 세금은 공공재를 이용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이며, 또 정부가 가치 혼동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유의 정신에 부합하는 제도다.
이 책에서 프리드는 “과세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고 자유의 정신에 부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과세를 통한 불평등의 해소가 규제를 통한 것보다는 더 자유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있는 제도들을 살펴봄으로써 자유의 정의, 자유의 개념, 자유의 침해자 등을 고찰한다. 자유는 자아를 가지고 판단하여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하고 삶을 꾸려가는 개인으로서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한 자유는 각각의 개인성에 의해 성립되는 보편적인 가치이며, 자신이 선택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지배되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이것이 프리드가 결론을 내리는 현대의 자유에 대한 정의다.
현대의 자유롭고 국민 복지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의 억압은 온건하고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자유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민주주의 자체와 자유를 혼동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프리드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