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준 까치와 까마귀가 대머리가 되어서 슬퍼했다면? 그래서 직녀가 미안하다고 베를 짜는 기술로 까치와 까마귀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었다면? 엄마랑 나는 자기 전에 전래 동화의 뒷이야기를 다르게 만들면서 놀곤 했었는데, 엄마랑 나는 이 놀이를 엄마가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 속 대사를 붙여 ‘그런데 말입니다놀이’라고 불렀다.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날개옷을 훔쳐 간 나무꾼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의 제목처럼 진짜 날개옷을 훔쳐 간 나무꾼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엄마랑 ‘그런데 말입니다놀이’를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에 오자마자 신나게 읽어보았다.

 지금까지 수백 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한 번도 선녀가 나무꾼과 결혼하는 걸 싫어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고, 선녀가 목욕하는 곳을 알려준 사슴이 나쁜 짓을 한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다른 사람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사냥꾼으로부터 자신을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해 아직 결혼 못 한 나무꾼에게 선녀를 소개해준 착한 사슴이라고만 생각했을까? 그러고보니 선녀도 갑자기 나타난 나무꾼이 자신의 날개옷을 숨겨 놓고 결혼하자고 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나무꾼이 동네 여자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 좋아하는 나쁜 사람이었다니 실망스러웠다. 이미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을 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제야 눈치챈 나에게도 실망했다.

 선녀의 언니들이 찾아와 나쁜 나무꾼과 사슴을 혼내주려고 작전을 펼칠 때는 어벤저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통쾌하고 신이 났다. 나무꾼과 선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 대신 나쁜 방법으로 선녀랑 결혼하려고 도둑질도 하고, 다른 사람을 몰래 훔쳐보기까지 했으니 “나무꾼은 아주 많이 벌을 받았습니다.” 가 이 이야기의 결말로 맞을 것 같다.

  책에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말고도 백설 공주와 왕자님 이야기와 콩쥐·팥쥐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착한 콩쥐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 팥쥐도 갑자기 생긴 새아빠와 새언니 때문에 마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힘들어했다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콩쥐도 팥쥐도 갑자기 한 가족이 돼서 힘들었을 텐데 다들 콩쥐 걱정만 해주고 팥쥐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주지 않은 것 같아 팥쥐가 너무 불쌍했다. 나도 새엄마와 팥쥐가 콩쥐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했지 새로운 가족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슬퍼하는 팥쥐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팥쥐도 나처럼 어린아이라서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 어쩌면 사람들이 괴롭힌다고 말했던 것들이 사실은 친해지려는 방법이 서툴러서 사람들이 오해한 걸 수도 있는데…. 팥쥐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 마음속에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정해놓고 사람을 대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잘못된 생각이 그 사람을 알아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고, 그 사람을 슬프게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엄마와 내가 하던 ‘그런데 말입니다놀이’는 전래 동화의 끝부분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평범한 이야기를 나와 엄마의 상상을 더 해 특별한 이야기로 만드는 놀이였다. 나는 이 놀이가 너무 재미있어 밤새 하자고 엄마를 귀찮게 하기도 하고, 쉬지 않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떠들었는데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어른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간 나무꾼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책을 써 줘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엄마와 놀이 하는데 더 많은 상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책을 다 읽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라고.

 나는 전래 동화가 싫었다. 왜냐하면 전래 동화는 맨날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아니면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날개옷을 훔쳐간 나무꾼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이야기는 상상했던 내용과 달라서 재미있었다. 맨날 똑같던 이야기를 살짝 바꾸어서 쓴 이야기이다. 백설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지 않았다든가 ,팥쥐랑 콩쥐랑 친해졌다든가, 선녀가 아기를 낳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이라서 너무 재미있었다.

 이 책에는 내가 잘 알고 있던 세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날개옷을 훔쳐간 나무꾼은 어떻게 되었을까 였다. 선녀 7명이 첫째 선녀를 따라 선녀들이 목욕한다는 선녀봉 연못으로 가서 목욕을 하는데 막내의 날개옷이 사라졌다. 선녀들은 올라가고 막내 선녀는 나무꾼과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늘에 간 선녀 언니들은 막내 선녀 구하기 대작전을 펼쳤다. 결국 날개옷을 되찾고 나무꾼은 벌을 받는다. 막내 선녀가 하늘로 다시 올라갔을 때가 제일 감동적이었다. 막내 선녀가 집으로 갈 땐 얼마나 기쁘고 좋았을까. 이젠 나무꾼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 것도 죄고 함부로 남의 옷을 훔친 것도 죄다. 억지로 결혼까지 하는 것도 큰 죄다. 나무꾼이 자기를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다. 전래 동화에서 강제로 결혼하는 선녀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해리 왕자와 잠자는 백설 공주 이야기이다. 옛날에 어느 나라에 왕자가 태어났다. 왕은 왕자가 멋진 왕이 될 거라고 기대했으나 얼굴도 평범하고 사냥과 승마 활쏘기를 싫어했다. 왕자는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나 같아도 왕자에 대해 실망이 컸을 것이다. 백성들은 왕자답지 않아서 해리 왕자를 나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도 쌓을 수 있고 지혜롭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왕자는 말을 타고 산책을 나갔다가 백설공주를 발견했다. 다른 왕자들은 용감함으로 공주를 살리려 하였지만 해리 왕자는 해독제를 만들어서 공주를 살렸다. 해리는 릴리라는 처녀의 도움을 받아 공주를 구했다. 해리 왕자는 똑똑하다. 공주를 구하려고 입맞춤을 한 왕자들이 쓰러져서 공주의 입에 아직 독이 있다고 생각해서 해독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해리 왕자는 백설 공주랑 결혼하지 않았다. 해리 왕자는 릴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해리 왕자는 책을 많이 읽고 생각도 잘 해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팥쥐도 슬펐대이다. 콩쥐는 아빠가 새엄마를 데리고 와서 동생 팥쥐가 생겼다. 새엄마는 착한지만 사람들이 새엄마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해서 새엄마와 팥쥐를 흉봤다. 팥쥐가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는데 콩쥐가 도와주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서 팥쥐는 언니가 밉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동생이 있는데 남동생 같은 여동생이다. 언제나 말썽을 피우지만 누군가 내 동생을 괴롭히면 내가 혼내 줄 것이다. 그런데 콩쥐는 팥쥐를 도와주지 않았다. 팥쥐 입장이나 새엄마 입장을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흉만 본 것이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콩쥐랑 팥쥐가 아빠 바꾸기 작전에 성공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아빠는 양반 노릇만 신경 쓰면서 새엄마에게 힘든 일을 시킨 것이 잘못했다. 이제 아빠도 달라지고 새엄마를 나쁘게 생각하는 편견이 사라져서 모두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