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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18년 03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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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628g | 135*195*35mm |
ISBN13 | 9791195888221 |
ISBN10 | 1195888228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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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의 날/예스24 X 난다] 가장 오래된 고백의 이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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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모르는 아이가 있다
다섯 살 조카의 애착 인형은 낡은 푸 인형이다. 오래돼 포슬포슬 섬유가 일어나고 군데군데 때가 섬유에 배어 지워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른 인형이 없나 싶어 유행하는 캐릭터 인형을 몇 번 사줬는데, 침대에 줄을 세워놓고 좋아만 할 뿐 잠이 올 때면 으레 그 낡은 푸 인형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포슬포슬한 인형 얼굴에 코를 부빈 채로 잠이 들었다.
“곰 인형을 몰래 빨았는데 묻어있던 ‘콧똥’이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대성통곡하고 문 쾅 닫고 들어갔어.”
어느 날 카톡에 동생이 조카 이야기를 남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쥐는 그 인형을 몰래 빨아놓았더니 조카가 단단히 삐졌다는 이야기인데, 삐진 이유가 ‘콧똥’이 없어졌다는 이유란다.
상황은 이해가 가는데 당최 ‘콧똥’이 뭔지 몰라서 물었더니 “코를 계속 문지르니까 묻은 새까만 것”이란 답이 흘러나왔다. 코를 계속 문지르느라 인형 섬유에 배긴 때를 말한 것이었다. “곰돌이도 씻어야 한다고 잘 설득해봐.”라 눙쳤더니 “다시 묻히면 된다고 했어”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조카는 푸 인형에 코를 박고 예의 그 소중한 ‘콧똥’을 새로 묻히는 중이었다.
‘콧똥’이 지워졌다고 우는 조카 이야기에 웃다가 가슴이 서늘해진다. 고작 ‘콧똥’을 이유로 통곡할 수 있는 그 순수함을 언제까지고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를 이용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란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죄의 목소리』는 30여 년 전 미제 사건이 내포한 그 악마성에 주목한다.
어린아이를 범죄에 끌어들이면 그만큼 사회에서 희망이 사라진다. ‘깅만 사건’이 저지른 죄는 어느 일가족,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인생을 박살내버린 것이다. (507쪽)
시오타 타케시의 『죄의 목소리』는 일본 쇼와시대 최대의 미제로 통하는 ‘구리코·모리나가 사건(일명 깅만 사건)’을 다룬 화제작이다. ‘구리코·모리나가 사건’은 1984년 일본의 대형 제과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협박사건을 일컫는다. 청산소다를 넣은 과자를 협박에 사용하면서 사회를 독극물 공포에 몰아넣는 등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지시사항에는 세 명의 아이 목소리를 사용했다.
시오타 타케시는 사건의 가장 악랄한 점으로 아이들을 이용한 점을 손꼽는다. 살아있다면 작가와 비슷한 연배일,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에 관한 상상이 그로 하여금 십수 년간 사건을 파헤치는 계기가 된다.
소설의 주인공 아쿠쓰는 우연히 31년 전 ‘구리코·모리나가 사건’ 취재를 떠맡으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사건의 증거는 흩어지고, 시효가 지난 사건을 기억하는 이를 찾는 것도 어려워진다.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사건을 추적할수록 아쿠쓰에게는 범행 자체가 아닌, 사건에 남겨진 사람들이 잔상으로 일렁인다.
사건의 진상을 쫓는 기자로서 아쿠쓰는 언제나 ‘범인’을 주축에 두고 있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왜 지금 이 사건을 파헤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고 보니, 이대로 목적도 없이 범인만 찾아낸다고 해결이 되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과거’를 쫓아왔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는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없는가……?
사건은 1984년에서 1985년까지 1년 4개월동안 발생했다. 사건은 수십 년 전 ‘과거’의 일이나, 아쿠쓰는 사건을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를 묻는다. 무엇이 과거 사건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사건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삶이다. 아쿠쓰가 남겨진 사람들을 좇는 이유다.
“그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노조미 짱이 요즘도 가끔씩 꿈에 나타나요. 학교나 카페에서 외국 영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아아, 무사해서 다행이다’하고 생각하지요. 그러다가 잠을 깨서 영락없는 현실을 다시 인식하면 가슴이 미어지듯이 아파옵니다.” (209쪽)
범행에 악용된 세 아이의 중 한 명인 노조미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유학을 가 영화자막 번역가의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꿈꾸던 중 3 소녀였다. 사건의 여파로 행방불명이 된 노조미의 시간은 단절되었지만, 그녀의 담임교사 미쓰코는 꿈 속에서 소망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노조미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 사건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현재이다. 사건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사람’을 기억하고 피 흘리는 사람들, 사건의 여파로 영영 어둠으로 숨어야 했던 삶….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피 흘리는 상처가 아쿠쓰가 목도한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무엇일까. 『죄의 목소리』의 결말은, 사건의 추적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낸다.
“억울하게 범죄에 휘말렸을 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범죄에 직면했을 때, 사회의 구조적인 결함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불행을 떨쳐버릴 수 있겠습니까? 떨쳐버리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총괄해서 정리해야 하고 그렇게 정리하기 위한 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480쪽)
“범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죄는 놈들이 어린아이들을 끌어들였다는 점이죠. 아무것도 모른 채 휘말린 아이에게, 만약 그 아이가 불행하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372~373쪽)
그것은 31년의 세월을 거슬러 진상을 드러내고, 사건에 의해 망가진 삶에 다시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이 소설은 인위적인 극화나 감동 코드를 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감동적인 것은 진실을 파헤치는 저널리즘의 정신과 십수 년간 전착한 ‘미래’라는 주제를 완결성 있게 그려낸 까닭이다. 십수 년의 취재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소설의 조밀한 결, 중후한 서술에서 드러난다. 극이 아닌 한 편의 르포를 따라가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포커스를 사건이 아니라 인간, 삶의 문제에 맞춘 것이 이 소설이 승리한 지점이다. 리얼리티에만 그치지 않고, 리얼리티를 통해 삶에 관한 중후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신문사의 도리이가 아쿠쓰에게 하는 말은, 그가 추구하는 작가 정신이자 저널리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 일은 인수분해 같은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눈앞에 있는 불행이나 슬픔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왜’라는 생각으로 계속 나눠보는 거지. 소수素數가 될 때까지 줄기차게 나누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만 포기하면 안 돼. 그렇게 나온 소수야말로 사건의 본질이고 인간이 추구하는 진실이니까.” (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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