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슬픔과 상실의 보편성, 그리고 그 반복성을
탁월한 문체로 풀어낸 대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장편소설이 추구하는 서사의 역사성과 단편소설에서 강조하는 상황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있는 점에서 중편다운 무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손홍규 작가가 즐겨 다루었던 리얼리티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이 작품에서는 이채로울 정도로 새롭다는 점이 주목을 요합니다. 이 소설의 서사적 진행 방식은 현재에서 과거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경험적 과거는 기억 속의 회상이 되지만 일종의 환상처럼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적 고안은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에 집착해온 작가 자신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 중에서
대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옥같은 5편의 우수상 수상작 소개
1. 손홍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대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장편소설이 추구하는 서사의 역사성과 단편소설에서 강조하는 상황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있는 점에서 중편다운 무게를 보여주고 있으며,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에 집착해온 작가 자신의 새로운 실험이 높은 소설적 성취로 이어진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실패한 인간들의 상실감과 어두운 과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불한당들이 모여 있는 술집에 검은 상복을 입고 상장을 팔에 찬 젊은이가 등장한다. 그 청년의 모습에서 불한당들은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의 자기 이미지와, 자기들이 상실한 것의 상징을 본다. 그들은 그 청년의 이미지가 자기들의 내부에서 그동안 같이 나이 들어온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한당들은 젊었을 때 몸에 새긴 용의 문신을 지우려고 하지만, 잘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피부에 흔적이 남아있다. 어두운 과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 술집에는 그 청년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 든 사람도 있어서, 작품은 이제 그의 회상으로 옮겨간다. 그 역시 상실과 실패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그를 위해 요리하기를 거부한 채, 직장의 근로자 농성 장소에 나가고 있으며, 가출한 딸은 전화도 없고,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때는 그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그게 불가능해진 지금 그는 더 이상 꿈을 갖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는 그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만일 과거를 추억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과거는 자칫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반부부터는 그의 아내의 시각으로 소설의 구도가 넘어간다. 그러면서 꿈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수많은 이 땅의 여성들 이야기로 이동한다.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집에서는 실패자인 남편에게 시달리고, 밖에서는 직장상사에 성희롱 당하는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상실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탐색하고 있다.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이 땅의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그리고 여성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상실과 실패를 은유적으로 천착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삶에의 슬픔’과 ‘상실’은 보편적이고 반복되는 속성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어느새 자리 잡고 있는 슬픔과 상실, 그리고 그 반복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다.
2. 구병모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교사인 남편의 전근으로 시골로 내려가게 된 임산부 ‘정주’를 통해 인간의 편견, 무례한 간섭, 그로 인한 주인공의 심리적 불편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한 시골 마을을 우리 사회의 소우주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인간사의 제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인 정주의 시골 생활은 일상에서의 한시적인 일탈이자, 정신적 여행일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얻게 되는 커다란 깨우침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3. 방현희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
1989년식 포르쉐에 대한 사랑을 통해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욕망과 그것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과일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9급 공무원의 안정된 삶을 원했으나, 시험에 계속 떨어지자 트럭을 과격하게 몰다가 죽고, 포르쉐를 몰며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던 주인공의 친구도 끝내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그것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자기를 또 다른 세상에 데려다줄 포르쉐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은유로 해서 무게 있는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의 역량과 자동차 전문가를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이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4. 정지아 「존재의 증명」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의 딜레마를 통해,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성찰한 작품이다. 기억상실증의 주인공이 ‘인간을 소환하여 오롯이 저를 느끼게 만드는’ 각성제 성분인 카페인 음료인 커피의 애호가라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작가는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며 지극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기억’을 통해 ‘자기 자신’은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세련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5. 정찬 「새의 시선」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해와 사실에 대한 증언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격랑 이후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던 용산 참사를 카메라의 각도와 정지된 사진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사건을 보는 각도와 그 희생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이 접근 방식은 한 장의 사진으로 고정된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내포한다.
6. 조해진 「파종하는 밤」
미디어 아티스트인 주인공이 산업재해로 폐쇄된 공장의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며 경험하는 깨달음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산업화의 초기에 공장주의 무지로 인해 수은중독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다루면서, 죽은 자와의 교감과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상 수상 작가 손홍규의 ‘수상 소감’ 중에서
가만히 앉아 태초부터 주어진 질문을 어루만지듯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뭐라 말 못할 그 길 가야하고 가야만 할 길
어쩌면 끝내 갈 수 없는 길.
그 길에서 다시 넘어지고 서성거리겠지.
그런 날들이었고 그런 날들이겠지.
가만히 앉아 태초부터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려 애쓰다
참으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환대했음을 깨닫는다.
어쩌자고 살아왔는가 싶은데 어쩌자고 이리들 환대하시는가.
소설가라는 현실에 절망하고
의심하고 후회하면서도 이 길을 걸어가겠지.
소설을 깊이 사랑하는 자는
소설을 깊이 의심하고 증오하는 자임을 매번 깨달으면서.
그러겠지. 그래야 하겠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고마운 이들이 너무 많아 가슴에 담아두련다.
미안한 이들도 너무 많아 가슴에 새겨두련다.
아짐찮다는 말,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말.
유언처럼 아껴둔 이 말.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에 대한 심사평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간다움의 회복을 강조한다. 그리고 가해자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참된 의미에서 화해는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권영민 월간《문학사상》 주간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꿈의 언어로 폭력의 기원을 더듬는 특이한 서술을 보여준다. 한 가정의 붕괴를 통해 폭력의 기원을 탐색한 이 중편소설은 폭력이 만연한 우리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권택영 문학평론가
이 땅의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그리고 여성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상실과 실패를 은유적으로 천착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색은 사변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중편 분량으로 다루고 있어 중후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김성곤 문학평론가
감각적인 제목에, 집요한 필력이 돋보인다. 이런 힘이 아직은 우리 소설에 있기에 우리는 소설을 믿을 수 있고, 미래에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구도를 끝까지 밀고 나간 작가정신에 경탄했다. ―윤후명 소설가
작가는 한국 현실에 근거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취향답게 리얼리티를 판타지로 변용시키는 데에서 그의 소설적 변별성을 획득한다. 그럼으로써 현실은 감각적으로 확장되고 주제적으로 보편화된다. ‘지금, 이곳’의 경계를 넘어서 큰 폭의 삶의 풍경으로 변화하는 것, 요컨대 현실은 하나의 설화로 변형되는 것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