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왜 시와 시인을 표적으로 삼았는가?
미디어론의 관점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재발견
그리스 사상과 문학 연구의 전환점, 미디어론의 선구적 저작!
구송문화에서 읽고 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기록문화로
운문에서 산문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
개념적 사고로 이끄는 미디어 혁명의 원류를 찾는다
이 책은 미디어론의 관점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해명하려고 한 독특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플라톤이 살았던 서기전 5세기에서 4세기의 그리스는 의사소통 기술의 변화로 야기된 문화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서기전 720년에서 7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알파벳이 그리스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쓰는 것’을 모르는 구송(口誦)문화에서 ‘읽고 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자문화로 점차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전환기에 플라톤은 종래의 구송문화 속에서 만들어져온 인간의 사고습관과 그것을 키우는 교육형태를 비판하고, 새로운 문자문화에 걸맞은 사고유형과 교육제도를 만들고자 했다. 왜 플라톤은 ‘이상국가로부터의 시인의 추방’이라는 악명 높은 주장을 펼쳐야만 했을까? 그것은 그가 시인들이야말로 전통적인 구송문화의 유력한 대표자이며 그런 문화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유능한 교육자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 철학이 형성되는 계기
호메로스를 비롯한 시적인 전통으로부터 문자를 통한 읽기와 쓰기가 널리 퍼짐에 따라 의사소통의 매체와 그 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그에 필요한 인간의 신체기관도 듣는 귀에서 보는 눈으로 이행한다. 귀로 들으며 배우고 가르치는 분위기는 눈으로 글자를 확인하고 글자를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분위기로 바뀐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매체의 변화 이상의 근본적인 의식구조의 체계 및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런 혁명 이전과 이후의 관계를 시와 반시(反詩), 시와 철학의 대립으로 놓고 그러한 대립이 플라톤 철학이 형성되는 필연적 계기였다고 보는 것이 저자 해블록의 관점이다.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대립
호메로스에서 플라톤에 이르는 동안, 온갖 정보를 알파벳 문자로 표기할 수 있게 되면서 저장 방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개념에 의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사고를 나타내는 어휘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문자화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그에 따른 성과들도 잇따라 나타났다. 이런 변화의 시대를 살았던 플라톤은 그 성과를 널리 알리게 되었고 그 대변자가 되었다. 이 책 제1부는 호메로스를 비롯한 전통시의 내용과 역할 및 심리상태를 규명하고 플라톤이 시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게 된 연유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제2부에는 플라톤 자신의 철학적 정신이 담겨 있다. 1부는 반시로부터 시작한다. 2부는 플라톤 철학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유럽 문명의 시원인 호메로스를 비롯한 구송의 전통시에 전면 도전함으로써 전통과 혁신, 이미지와 추상적 개념, 시와 철학, 시인과 철학자, 그리고 미망으로 이끄는 감각과 참존재를 추구하게 된 개안(開眼)의 지성을 첨예하게 대립시킨다.
‘혼’을 일깨우는 플라톤의 미디어 혁명
플라톤의 미디어 혁명은 전통의 반복학습을 폐기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혼’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편안하게 이야기체의 무용담을 들으며 그들의 행동을 기리고 기억하려는 구송문화는 반복학습의 전형이다. 이런 전형에 철퇴를 가하고 하나의 의식혁명을 이루기 위한 사명을 플라톤이 짊어진 것이다. 편안하게 무용담을 듣는 자세는 ‘시’와 ‘시인’이 듣는 사람들을 수동적인 청취자로 만든다. 플라톤은 이런 중독성 ‘청취’로부터 독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혼’을 일깨우도록 하는 일에 나선다.
플라톤이 시를 공격하는 이유
전통적인 구송에 의한 배움은 문자화된 저작물로 그 형태가 바뀐다. 귀로 듣는 문화가 눈으로 보는 시대로 바뀐다.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에너지, 즉 사고력이 필요하다. 이 에너지는 ‘자신의 힘’이다. 문자화된 세계에 합당한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 미디어 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는 의식혁명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을 일깨우는 것이 플라톤의 사명이다. 플라톤이 ‘시’를 공격하는 이유는 미디어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종래의 습속을 버리지 못하는 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관행을 타파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 ‘자신의 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호메로스의 구송은 근대식으로 말하자면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는 교육과 같다. 그러한 암송은 더 이상 ‘시’가 아니며, 또한 ‘시’와 ‘시인’에 대한 플라톤의 공격목표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론
저자 해블록의 이러한 플라톤 해석은 대단히 독창적이고 자극적인데, 이 책이 출간된 시기(1963년)를 돌이켜보면 그것이 어떤 특별한 사상환경 속에서 탄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지금도 생산적이고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론이 등장했다. 이 미디어론의 특징은 커뮤니케이션의 발신자와 그 전달의도보다는 수신자에 주목하는 데 있다. 미디어가 인간의 표현형식이나 사고양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이 미디어론은 특히 대중문화론과 연결되기에 이른다. 또한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결정적인 차이를 시야에 넣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세계의 사회관습과 사회구조를 해명하는 데도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한 분석
저자 해블록은 이 책에서 ‘이상국가로부터의 시인의 추방’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소재로 삼아 그리스 문화에서 서사시의 존재의의를 논하고, 나아가 그 성과를 언급하면서 당시 문화상황에서 플라톤 사상이 지닌 의의를 규명한다. 해블록에 따르면, 시인에 대한 플라톤의 공격을 이해하려면 시인이 예술가이며 그 시가 예술작품이라는 오늘날의 선입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 플라톤에게 시인이란 그리스 교육제도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이며 문화장치(집단의 공법과 사법, 사회적 규범 등)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중심적 존재였다. 이런 시인관은 당시 그리스가 여전히 구송문화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진다.
어떤 문화장치든 그것을 존속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집단기억에 의존해야 하지만, 문자를 갖지 않은 구송문화에서는 인간의 생생한 기억을 통해서만 그것이 보존된다. 그러나 생생한 기억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사이에 변동이 생기는데, 그렇다면 그 보편성과 권위를 상실할 위험성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거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관용적 표현과 엄격한 운율을 구사하는 표현양식이다. 이런 시적인 언어기술에 의해 인간은 기억해야 할 내용과 감정적으로 ‘일체화’되어 그것을 쉽게 복송(復誦)할 수 있게 된다.
플라톤이 주요한 적으로 여기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한낱 예술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 해블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제1권을 상세히 분석하면서 이 서사시가 그리스 민중에게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일종의 교과서이자 유익한 문화적 정보의 창고, 즉 운문의 백과사전이라고 파악한다.
‘자율적 인격’이라는 관념의 성립
플라톤의 공격의 진짜 표적이 구송문화와 그 사고양식에 있다면, 플라톤 자신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문화 쪽에 서 있었던 셈이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는 대규모의 지적 혁명이 일어난 시대였다. 이는 ‘프시케’라는 그리스어의 의미변화에서 읽을 수 있다. 그때까지 사람의 생령, 호흡, 우주에 가득 찬 생명력 등을 의미하던 이 말이 서기전 5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도덕적 결정과 과학적 인식의 주체로서의 ‘자아’, 자율적인 ‘인격’과 같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율적 인격이라는 관념의 성립은 구송문화의 배제와 궤를 같이한다. 왜냐하면 자율적 인격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적 낭송에 수동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말하는 이야기와 심리적으로 일체화되는 정신적 태도가 부정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정신적 태도야말로 구송문화의 보존에 공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송의 한계와 ‘읽고 쓰기’의 보급
그러면 자율적 인격이라는 관념을 가능케 한 적극적 요인은 무엇일까? ‘읽고 쓰기’의 보급이라는 것이 저자 해블록의 주장이다. 하나의 메시지가 문자에 의해 기록으로 남게 되면, 입으로 하는 말처럼 그것에 늘 따라붙으며 그 내용과 공감적으로 일체화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나’는 대상에 대해서 반성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문자로 씌어진 것’이라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그것으로 되돌아가 그 의미를 캐묻거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송에 의한 기억은 그렇지 않다. 구송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물으면 그만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기억에 의한 보존을 치명적으로 방해해버릴 것이다. 결국 씌어진 문자와 함께 ‘사고’(思考)가 시작되는 것이다.
‘추상화’의 능력과 ‘이데아론’의 토양
그리고 읽고 쓰기에 의해 비로소 ‘추상화’의 능력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인간이 따라야 할 법이 구송에 의해 전승되는 경우, 이 법은 일련의 사건이나 행위라는 구체적인 옷을 걸치는 형태로만 기억된다. 구송적인 기억은 이런 구체적인 것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일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의 존재와 함께 구체적인 행위나 사건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들을 부수적인 것으로서 경시하고 한편으로는 ‘법 자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원칙이나 원리나 개념을 그 실제 사례로부터 분리하거나 그 문맥으로부터 추상할 수 있으며, 정의의 이데아나 용기의 이데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토양이 마련된다. 저자 해블록은 이데아론을 전개하는 『국가』라는 저작에서 플라톤이 시인을 공격해야 했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구송문화의 정신적 태도, 즉 시적인 정신적 태도를 부정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학설이라는 것이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란 무엇보다도 문자문화에 걸맞은 새로운 인식론 구축의 시도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