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부침을 둘러싼
이론적, 실천적 쟁점들에 대한 총괄적 점검과 분석.
한국 노동계급이 처한 구조적 조건과
주체적 딜레마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과 전망.
한국 노동계급 형성의 현 상황과 딜레마에 대한 진단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노총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대 사건이었다.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조직된 신규 노동조합들은 한국노총의 지도력을 거부하고 대안적인 민주노조운동을 구축하며 노동조합운동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해방공간에서 노동자계급 형성을 주도하며 사회변혁에 매진했던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이후 꼬박 40년이 지난 이후 새로운 전환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잠시나마 노동계급은 계급 형성뿐만 아니라 계급 헤게모니 구축에도 성공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런 점에서 비록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계급이 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함께 재활성화의 계기를 맞았다 하더라도 1987년의 노동조합운동은 해방공간에서 활동했던 전평 시기와 비교하면 턱없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가권력과 자본계급 지배가 붕괴되었던 해방공간에 비해 1987년 국가권력과 자본계급 지배가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노동자 대투쟁이 발발하여 조직화에 성공했다는 점은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 흐름과 맞물리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중심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기대는 절정에 달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사반세기가 지났다. 오늘날 노동계급과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은 당시에 기대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가히 초라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왜 민주노조운동은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을까?
민주노조운동은 노태우-김영삼 정권하에서 강도 높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꾸준히 조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했다. 1996~97년 노동법 재개정 총파업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축적된 역량을 과시했고 노동계급 형성은 기대처럼 선형적으로 급진전되어 해방공간의 부활을 점치게 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경제 위기가 발발했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민주노조운동과 함께 노동계급 형성도 정체?후퇴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은 그 사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갈리며 새로운 주체 형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은 비단 남한의 노동계급만 겪은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보다 먼저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경험한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10년을 경험하면서 노동계급 형성이 진전되며 좌파 정권이 집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한의 노동계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민주노조운동과 노동계급 형성의 부침은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축적된 노동계급 역량이 얼마나 쉽게 와해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주었다. 계급 형성 성과란 축적하기도 어렵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는 점을 잘 일깨워 준 것이다. 노동계급 형성이란 노동계급이 하나의 집합체로서 형성?해체?재형성을 반복하는 과정임을 실감케 해 주었다. 이 책은 그 부침의 동학을 분석하여 노동계급 형성의 가능성과 제약, 그 딜레마를 규명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각 장별 주요 내용]
이 책은 네 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노동과 계급에 대한 진보학계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제2부는 해방 후 남한 노동계급의 역사를 계급 구조와 계급 형성 측면에서 검토한다. 제3부는 경제 위기와 뒤이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을 노동계급은 어떻게 경험했고 민주노조운동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분석하고, 제4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을 경험하면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변화했고 현재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제1부 노동과 계급 연구의 성과와 과제
노동문제 연구와 계급론의 연구 동향을 점검하며 향후 연구 과제를 검토한다.
1장_노동문제 연구 성과를 노동운동, 노동과정과 노동통제,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등 네 영역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진보 학계의 노동문제 연구 추세를 살펴보면,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조건에 따라 노동문제 연구의 초점이 변화했으며, 노동에 대한 통제는 국가에서 시장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으나 쟁점들을 관통하는 대립되는 관점은 지속되고 있으며, 노동문제 연구는 전문성 강화와 실천성 약화라는 변화 추세를 보여 왔다.
2장_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과제를 짚어 보는데, 먼저 구해근의 국내 계급연구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를 검토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노동계급 형성의 부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설명력도 부침하기 때문에, 외환 위기 이후 노동계급 형성 후퇴에 따른 계급론의 설명력 약화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형성이 후퇴한 것은 물질적 조건과 노동자 경험을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을 반증하는 역설적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설적 현상에 대해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이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계급 형성의 부침을 설명하며 역설적 현상의 원인과 인과적 메커니즘들을 규명하는 것이다.
제2부 노동계급 60년의 역사
한국 노동계급의 존재조건과 계급 형성의 현황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기 위해 해방 이후 60년 동안의 노동계급 역사를 계급 구조의 변화와 노동계급 형성의 부침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3장_해방 60년 노동계급의 역사를 계급 구조 및 노동계급 내적 구성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해방 60년 동안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는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 변화의 핵심에는 프티부르주아의 급격한 감축이 있었다. 이제 계급 구조는 거의 평형점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계급 구조의 변화는 계급 간 상대적 규모의 변화보다는 계급 내적 구성의 변화를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가장 급격한 계급 구성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노동계급이다.
4장_해방 60년 노동계급의 역사를 노동계급 형성의 시각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궤적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민주노조운동의 부침과 관련하여 해방 60년은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해방공간으로서 전평을 중심으로 인민의 국가 건설이라는 변혁적 목표하에서 노동계급은 계급 형성에 성공하여 9월 총파업이라는 국가 건설을 둘러싼 계급 전쟁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전평 조직이 분쇄되며 노동조합으로부터 계급성?민주성?자주성이 제거되며 계급 해체가 진행되었고, 대한노총-한국노총 어용노조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계급의식과 투쟁 동원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저동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세 번째 시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신규 노조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이 발달하면서 노동조합은 계급성과 함께 민주성과 자주성을 회복하여 어용노조-민주노조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게 되었고,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다시 진전될 수 있었다.
제3부 경제 위기와 노동의 전략
산업민주주의 결여와 일방적 억압적 지배 아래 노동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가운데 경제 위기 이후 전개되는 구조조정과 민주노조운동의 대응을 대우자동차 해외 매각을 둘러싼 계급갈등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대우자동차 사태는 국가 기간산업의 해외 매각 여부를 둘러싸고 국민 여론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정부의 일방적 해외 매각 추진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대우자동차 사태는 노동을 배제한 정부의 일방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방식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동시에 완성차 노동조합들이 최초로 연대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노조운동 투쟁의 이념적 지향성과 투쟁 방식의 특성 또한 잘 보여 주고 있다.
5장_대우자동차 처리 과정을 정부의 정책 중심으로 검토하며 정부의 실패를 분석한다. 정부의 실패는 세 가지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정부 내 산업 정책 부문들이 배제됨으로써 산업정책 논리는 힘을 잃고 채권의 조기 회수와 금융권 부담 경감이라는 금융 논리가 지배하게 되었다. 둘째, 한미 간 자동차 수출입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미국 측 통상 압력은 정부로 하여금 대우자동차의 해외 매각을 통해 한미 간 통상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하였다. 셋째, 김대중 대통령이 두 차례나 GM 회장을 만나서 대우자동차에 대한 투자?인수를 요청하는 등 대우자동차 해외 매각은 김대중 정권의 개방정책과 세일즈 외교의 성공을 상징하게 되었다.
6장_대우자동차가 전형적인 재벌 사업체로서 노동자 불만으로 인해 노사 협력에 의한 독자 회생을 어렵게 한 근본 원인을 산업민주주의 결핍에서 찾는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헌신성 결여는 노동자들의 직장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원인은 대우자동차의 산업민주주의 결핍에서 찾을 수 있다. 대우자동차는 산업민주주의 세 수준, 즉 경영 여 수준, 작업 조직 자율성 수준, 직무 수행 자율성 수준 모두에서 노동자들의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이와 같이 산업민주주의 발달수준은 매우 낮은 반면 노동자들의 산업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날로 증가하여 산업민주주의 결핍에 대한 노동자 불만이 증폭되면서 기업에 대한 헌신성이 형성되기 어려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7장_대우자동차의 해외 매각 추진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분석하며 노동조합의 딜레마를 논의한다. 국민 여론의 설득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당면 이해관계의 희생도 감수하며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 요청되었지만, 노동자 동원을 위해서는 노동자 이해관계에 배타적으로 헌신하고 노동자 정서에 부합할 것이 요청되고 있었던 것이다. ‘설득’의 논리와 ‘동원’의 논리가 서로 갈등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조합의 취약한 조직력과 회사 측의 적극적 개입으로 노동자 동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은 동원의 논리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국민 여론의 지지를 극대화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제4부 시장경제 모델과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변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노동계급이 보수화를 겪게 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분석한다.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며 시장경제 모델의 이행은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으며 그에 저항하는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노동계급은 의식의 보수화를 겪게 되었다. 의식의 보수화 추세 속에서도 노동계급은 사회정치의식뿐만 아니라 문화적 특성에서도 계급적 차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노동계급의 내적 이질성의 존재도 확인되고 있는데, 문화적 차별성의 경우 아직 문화적 분절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의식적 차별성은 경제 위기와 구조조정 시기의 경험에 따라 유의미한 의식적 분절로 발전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식 수준 역전으로 인한 노동계급 형성의 미스매치 현상은 노동계급 형성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8장_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하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시장경제 모델을 자유시장경제 모델로 이행하도록 하여 노사관계 유형의 선택지를 제한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한국 사회의 경제사회 발전 모델을 국가 주도 시장경제 모델로부터 조정시장경제 모델이 아닌 자유시장경제 모델로 급격히 이행하게 하였다.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축적 체제는 거의 구축되었지만 아직 그에 상응하는 조절 양식은 마련되지 않음으로써 축적 체제의 효율적 가동을 어렵게 했다. 축적 체제에 상응하는 조절 양식을 구축하여 제도적 상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변화가 요구되었으며, 조절 양식의 이행은 민주노조운동의 저항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국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축적 체제 구축과 함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만들어졌지만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9장_경제 위기를 거치며 사회 전반적 보수화 추세 속에서 노동계급도 의식의 보수화를 겪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그 원인과 인과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노동계급 보수화현상은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다. 사회정치의식의 보수화가 모든 계급에 걸쳐 진행되는 가운데 노동계급이 상대적 진보성과 약한 보수화 정도를 보이고 있어 경미하나마 노동계급과 여타 계급들 사이에 이념적 괴리가 확대되는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급 내 부문들 사이의 계급의식 차이는 거의 유의미하지 않게 나타나는 가운데 모든 부문들에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가장 높은 설명력을 보여 주는 것은 이데올로기 접근법, 특히 대항 이데올로기론으로 나타났다.
10장_한국 사회의 계급과 문화의 관련성을 문화자본론 가설들의 경험적 검증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계급과 문화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부각된 주요한 이론적 쟁점들을 경험적 자료를 활용하여 이러한 세 가지 쟁점들을 검증하고자 했다. 경제자본의 문화자본 전환 가능성에서 차이가 있는 부유문화와 취향문화의 양 측면 모두에서 계급들은 문화적 차별성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상대적 설명력에 있어,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설명력을 보여 주었다. 노동계급 내 문화적 차별성은 아직 문화적 분절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11장_경제 위기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겪은 노동자들의 경험이 어떻게 계급의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며 노동계급의 내적 이질성과 계급 형성에 대한 함의를 검토한다. 설문 조사 자료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은 물적 조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보수화된 것은 경제 위기라는 상황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성과라는 점이다. 또한, 전반적인 노동계급 보수화 추세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보수화를 겪었으나 정규직의 보수화가 더 급격하게 진행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의식 수준은 역전되어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더 높은 의식 수준을 보이게 되었다. 정규직-비정규직 의식 역전의 결과로 경제 위기 이전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형성과 조직적 형성의 주체로서 민주노조운동과 함께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계급 내적 지도력이 크게 훼손되었고, 비정규직 재취업자는 의식 ?준이 높으나 조직률이 낮고 정규직 재취업자?조직률은 높으나 의식 수준이 낮게 나타남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형성과 조직적 형성의 미스매치 현상이 대두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