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타이포그래피,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가나(가타가나/히라가나), 한자, 로만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적 환경 속에서
그들이 탐구해 온 타이포그래피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물음과 답을 여기에 실었다.
[일본에게 타이포그래피를 묻다]는 어떤 책인가?
일본디자인학회는 2010년 열두 편의 글을 모아 [타이포그래피 특별호]라는 연구 성과집을 발간했다. 이 한 권의 연구 성과는 학회에서 발행하는 대개의 결과들처럼 형식적이고 딱딱한 연구 논문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 일본 타이포그래피가 형성된 초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도 이어진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그들의 주된 관심과 노력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한글과 한자)와 마찬가지로 자국어를 글로 표현한 글자(가타가나/하라가나)는 물론 한자와 로만 알파벳을 사용해야 하는 일본의 언어 환경 속에서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해 왔으며, 그러한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굳이 일본에게 그들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캐묻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열두 편의 모든 글은 현재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체전문가, 타이포그래퍼, 해당 전공 교수들이 집필했다.
둘째, 새로운 폰트를 개발하기 위한 준비 자세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진지함과 치밀함이 있었다.
셋째, 발전하는 사회적 기술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일본 타이포그래피의 잠재력을 스스로 확장시키려는 일선 현장과 교육 현장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이에 대한 그들은 진지한 응답은 오히려 우리들 자신을 향해 또 다른 질문을 낳게 하는 계기가 되고 우리에게 타이포그래피, 크게는 디자인의 현실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 배경은 일본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정리하고 우리의 타이포그래피가 어디에서 시작되어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진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타이포그래피, 21세를 맞이하다
타이포그래피는 각 나라의 언어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일본의 경우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라는 세 가지 문자와 함께 아라비아 숫자와 로마자를 같이 쓰고 있어 상당히 복잡한 타이포그래피의 형태를 취한다. 더욱이 타이포그래피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어 단순한 타이포그래피의 연구라 해도 사실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창작하는 것, 다시 말해서 미래의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일도 타이포그래피 연구이며, 과거의 여러 서체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타이포그래피 연구이다. 한자 서체가 로마자와 같은 명조체로 만들어진 유래를 재조명하는 것도 타이포그래피 연구라 하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1세기라는 현실은 물론 글자, 타이포그래피를 속속히 들여다보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향방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의 혼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일본 타이포그래피의 실무와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로마자 사용의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술 발명 이래 서구 문화권의 타이포그래피는 역사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예술과 테크놀로지 면에서도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또한 종이 매체에서 영상 매체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폰트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고 현재 로마자와 그 타이포그래피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스크린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폰트명 Lim Uni-Type)가 어떤 발상으로 디자인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이와타 둥근고딕체 개발 당시의 전통적인 폰트 디자인 과정을 어떠하고, 폰트 개발 콘셉트인 읽기 쉬운 글자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의 전망은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의 폰트업체의 현황
사진식자기에서 디지털로 탈바꿈하면서 초래된 폰트 시장의 개방은 많은 회사의 참여로 현저한 가격 저하를 초래했으며, 돌맹이와 보석을 섞어 놓은 것처럼 수많은 서체를 만들어 냈다. 또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디지털기기나 가전제품에 탑재되어 디지털 폰트의 이용 범위는 날로 넓어지고 있다. 이와 동반되는 비즈니스 가능성의 확대는 폰트 회사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만큼 걱정스럽기도 하다. 서체를 돈벌이로만 생각하지 않고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폰트의 이용 범위가 넓어지고 그 활동이 자유로워질수록 일본의 폰트 회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철학을 문제 삼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글자는 읽기 쉽고 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글자를 만들기 위한 철칙이 아닐까?
오늘날 타이포그래피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역할
타이포그래피에 관련된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타이포그래피 존재 방식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타이포그래피를 성립시켜 온 여러 요인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미래 타이포그래피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타이포그래피의 기본적인 성질을 결정한 주조 금속 활자, 사진식자, 그리고 디지털 폰트에 대해서 기술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현대와 미래의 타이포그래피 필요 요소를 찾아본다.
일본 타이포그래피의 현주소: 제품 서체의 변화
디자인 분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으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프로덕트, 인터페이스, 그래픽 디자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본의 타이포그래피를 재정리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특히 프로덕트와 인터페이스에서의
문자 형태의 변화를 예로 들어가면서 현재 프로덕트에 사용되고 있는 타이포그래피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본다. 제품에서 생겨난 타입페이스 디자인 바람이 폰트 회사나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 앞으로 생겨날 타이포그래피 변화의 바람에 주목해 본다.
일본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현재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가 가독성이 떨어지는 서체로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문 교육을 통해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있는 대학의 디자인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타이포그래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는 어떤 식으로든 타이포그래피를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디자인 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실태를 개략적으로 조사하고, 대학별로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현장을 분석하고 고찰한 결과를 근거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교육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 활자 역사 연구의 현재, 그리고 그 문제점
유럽과 미국의 근대적인 활제 제작 기술이 일본으로 도입되고 어느덧 14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어 활자 서체 연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지에 대한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 연구는 일본의 서체 전반에 대한 역사 조사가 아니라 에도막부 말기와 메이지 초기 시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초기 명조체 개발에 대한 의문점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활자 서체 역사 연구는 기초 부분, 즉 출발점이 확립되지 않은 채 진행될지도 모른다. 최근 활자 역사 연구는 세계사적 시점을 중심으로 하여 문헌 조사를 하고 1차 자료 분석을 해도 더욱 거시적이거나 혹은 더욱 세부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한층 더 정밀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근대 활자 서체 역사 연구는 길고 긴 시행착오를 걸쳐서 드디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며 비로소 올바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윌리엄 캐슬론, 캐슬론체, 그리고 현대성에 관하여
'18세기에 들어서 윌리엄 캐슬론이 나타날 때까지 인쇄 문화의 중심은 네덜란드였다. 영국 또한 활자의 주조는 네덜란드에 주문하는 형편이었다. 캐슬론은 1720년 영국에서 최초의 활자주조소를 열고, 엘제빌의 활자를 본 떠 캐슬론이라는 서체를 만들었다. 캐슬론체는 아름답고 읽기 편한 형태로 대단히 좋은 편을 받았고 나중에 이 서체는 올드로만의 대표적인 서체로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서체가 되었다. 여기에서는 캐슬론과 그가 만든 주조 활자, 그리고 네델란드의 엘제빌에 관해서 고찰한다. 21세기에 들어서서 타이포그래피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당분간은 올드 스타일 로만체가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것은 인쇄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휴대전화, 컴퓨터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에서도 읽기 편한 올드 스타일이 무시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캐슬론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본질적인 연구가 필요하겠다.
영국의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재고
영국을 대표하는 근대의 타이포그래퍼이자 작가, 교육자였던 앤서니 프로스호그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얀 치홀트를 누구보다 먼저 영국에 소개하고 얀 치홀트의 뉴 타이포그래피 이론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울름조형대학에 초빙되어 타이포그래피의 수업을 만들고 의욕적으로 교육에 종사했지만, 그가 디자인한 대학 안내 [Ulm]의 디자인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1984년에 타계한 앤서니 프로스호그, 그의 발자취를 소개한다. 영국 타이포그래피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 앤서니 프로스호그의 1940년대 전후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영국의 근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아이소타입의 공헌
심벌은 문자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주변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소타입은 타이포그래피와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역사적 사례를 가지고 설명한다. 바로 아이소타입과 같은 시기에 생겨난 '뉴 타이포그래피'와 1970년대에 영국 레딩대학교의 타이포그래픽 커뮤니케이션를 중심으로 추진된 정보 디자인 운동이다.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아이소타입이 주목받고 수용된 역사와 이유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내용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현대로 통용되는 의의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의 가독성과 판독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
서체디자이너가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동시에 읽기 편함을 배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이것은 21세기에 들어서부터 언급되어진 것이 아니다. 읽기 쉬운 활자와 조판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와 조사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심리학자와 인지과학자 등의 학제적인 전문가의 공헌에 힘입어 타이포그래피가 발전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이제까지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관해서 특히 인쇄물의 읽기 편함을 중심으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