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물학 서적과 역사서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풀과 나무에 바치는 戀歌
몸에 각인된 나무의 기억, 人紋으로 되살아나다
나무와 풀로 기록한 ‘민초의 자서전’
이 책은 우리의 농경문화 속에서 민초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풀과 나무를 그 민초의 생활 속 눈높이로 바라본 나무 이야기다. 특히 수림樹林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황림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가 오랜 세월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해온 풀과 나무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여타의 나무식물학 서적이나 나무 에세이류와는 구별이 된다. 특히 농사꾼이자 목수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무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과 어머니나 주변 어른들, 때로는 본인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풀과 나무의 갖가지 생활상식과 민담 등을 놀라운 기억력과 애정으로 갈무리하여, 그것을 강원도 영서지방 구전 민속의 구성진 내용들과 버무려 ‘민초’의 관점에서 두드러지게 조망하고, 나무의 생태학을 마치 민중의 자서전과도 같이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시화되지 않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지, 또한 그것이 현 시점에서 얼마나 새롭고 진귀하게 여겨지는 지에 대해서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산업체를 경영하는 저자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황림마을의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주말마다 오가면서 텃밭을 일구고, 현지의 식생과 민속, 마을의 민속지를 부지런히 관찰하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끝에 그 내용의 일부를 이번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린 그러한 큰 밑그림의 일부이며, 그런 점에서 현재진행형인 이 책이 쓰여진 시간은 지난 수십 년이요 거기 들어간 역사적, 심리적, 문화적 에너지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죽은 나무’도 ‘산 나무’와 똑같이
좀더 자세히 총 55편의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다루고 있는 대상의 독특함이다. 저자는 민초의 생활과 가까웠던 풀과 나무를 주 대상으로 삼았다. 불쏘시개부터 시작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던 소나무, 국수까지 말아먹었던 느릅나무, 장기알을 만들었던 대추나무 등 민족의 나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당연히 포함되었고, 길가의 풀들을 대표하는 질경이, 민들레, 쑥, 들국화, 곤드레 같은 풀들이 대거 지면에 초청되었다. 살아있는 식물도 다루지만 ‘죽은 식물’도 대상에 포함되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인 ‘지게’와 머리에 돌을 이고 찧던 어머니의 ‘디딜방아’가 그것이다.
그 다음은 내용의 독특함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젊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성황림 근처에도 산마다 피난민들이 그득했는데, 이들이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해 집집마다 문짝을 다 떼어다가 불을 땠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자 집마다 문부터 만들어 달아야 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이 문짝을 만들어서 팔아 한 밑천을 잡은 뒤 본격적인 목수의 길에 들어섰다. 목수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 책의 중심 멘탈리티와 에피소드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 글인 ‘아버지의 퉁소 구릿대’에서는 ‘구릿대퉁소’가 등장한다. 대나무퉁소를 기막히게 잘 불던 아버지는 우연한 일로 이 퉁소가 깨어져버리자 매우 아쉬워했다. 대나무는 추운 영서지역에서는 귀한 나무라 아버지는 대나무와 비슷한 구릿대를 잘라다가 저음의 구릿대퉁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대추나무는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한번은 저자의 아버지가 유년의 그에게 마른 대추나무로 팽이를 만들어주셨다. 얼마나 야물고 옹골지던지 쇠심을 박은 친구들의 팽이보다 훨씬 오래 돌았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를 더 만들 요량으로 마른 대추나무 가지를 잘랐다가 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듣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무를 상하게 했다는 게 아니었다. 마른 대추나무는 너무 단단하여 오히려 연장을 상하게 하니 절대로 연장을 대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나무와 풀과 관련된 구전기록들
또한 이 책에는 나무와 풀과 관련된 구성지고 때로는 재미도 있는 구전 기록들이 많이 등장한다. “십리절반 오리나무, 열아홉에 스므나무, 가자가자 감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춤이라도 추자나무 삐까번쩍 광나무 입었어도 벚나무 낮인데도 밤나무” “입 맞춘다 쪽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와 같은 전래 나무타령의 해학과 익살부터,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와 같은 각설이타령의 넉살스러운 표현, 그런가하면 “억새에는 안 끊어져도 고사리 줄기에는 손가락이 끊어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억세진 고사리 줄기는 꺾거나 잡아당기면 둥근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날카로운 결각을 지톴채 세로로 갈라진다”고 풀이하거나 “소한테는 이놈이 쌀밥이여”라는 말에서는 어릴적 소먹이꾼의 몫을 단단히 했던 저자가 “억새와 비슷하지만 잎이 부드러워 손을 베지 않으며 잎 뒷면에 솜털이 많아 야산에 은빛으로 일렁이는 풀”이라며 ‘안들미(정식명 기름새)’를 관찰하게도 했다. 영서지방 구전노래는 방아 제작에 쓰여진 나무의 이름을 일일이 알려주기도 한다. “이 방아는 뉘 방안가 강태공에 조작 방아 / 방아살은 무슨 낭구 대추낭구 쌍살 가지 / 방아채는 무슨 낭구 가달지기 박달 낭구 / 방앗굉이는 무슨 낭구 백년 묵은 낙랑장송” 방아와 관련된 노래에는 애환이 많다. “시어머니 죽어지니 안방 널러(넓어) 좋더니 / 보리방아 물주고 나니 또 생각나네”와 같은 정선아라리의 한 대목은 물을 부어 불린 뒤 휘저어 뒤집어가며 찧어야하는 보리방아에 거둘어줄 손이 얼마나 아쉬우면 고된 시집살이를 시켰던 죽은 시어머니조차 생각날까 라고 덧붙였다.
나무는 놀이기구, 풀은 채소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놀았다. 나무로 놀이기구를 만들어 놀기도 하고 나무나 풀을 먹거리로 삼아 산천을 뛰어다녔다. 저자는 어린시절 이 분야에서 가히 일인자였던 것 같다. ‘구릿대나무’는 줄기 속이 텅 빈 데다 대나무처럼 마디마다 막혀 있어서 물총을 만들어놀았다. 손목 굵기만 한 구릿대의 밑동을 낫으로 잘라 마디의 막힌 부분을 한쪽만 남긴 뒤 못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총통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꽃이 지고 난 으름덩굴은 단단한 열매를 맺어, 그 녹색껍질이 어찌나 단단한지 줄기째 따서 빙빙 돌리다가 대장놀이할 때 부하들의 머리통 꿀밤을 먹였고, 느릅나무의 껍질은 도랑가에 똬리 친 뱀을 보곤 부리나케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막대 끝에 올가미를 만들고 그놈을 홀켜 들고 오던 아득한 시절의 어린 농군을 떠올리게 한다. 열매는 가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록 속에 먹을 것이 변변치 않은 늦여름에 개울가의 덜 익은 팥배라도 깨물고 버릭기를 되풀이하다보면 입이 시큼텁텁해진다. 그럴 때 단단하게 익은 개암 몇 알을 넣고 깨물면 금세 고소한 향기로 가득 차던 입 안. 질경이는 약으로 쓰였다.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 했던 저자는 지겨운 질경이와 익모초즙을 사흘이 멀다 하고 마셨는데, 익모초즙은 어찌나 쓰던지 한사발을 마시는 동안 배 아픈 것이 절로 달아났고, 질경이즙은 쓰기는 덜한데 대충 씻어 뿌리째 찧으니 흙이 버석거리며 넘어가는 느낌이 싫었다.
식물 이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 사이비 어원연구자
저자는 ‘사이비 어원연구자’를 자처한다. 철저히 ‘민초적’ 관점을 견지한 채 나무나 풀 이름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그의 여행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읽을거리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것이 ‘곤드레’이다. 요즘 ‘곤드레나물’이 웰빙식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그 어원도 “곤드레만드레 나는 취해버렸어”에서 착안된 듯한 “골짜기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양이 술에 취한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잘못 알려졌다. 저자는 이것이 견강부회라고 본다. 흔히 고주망태를 ‘술에 취해 술짜는 틀(고주)에 달린 엉성한 자루(망태)처럼 늘어진 상태’로, 곤드레만드레를 ‘술에 취해 떨어져 코를 골거나 헛소리를 해대는 모양’으로 정의해볼 때 곤드레나무는 ‘곤들레’에서 온 것이 맞다는 것이다. 곤들레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것으로 보아, 밋밋한 들에 지천인 민들레와 상반된 섭생을 가진 풀일 터, 이는 연어과의 물고기 중 깊은 산골짜기에서만 사는 ‘곤들매기’나 설악산 깊은 골의 ‘곤들폭포’에서도 ‘곤들’과 ‘골’의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민들레’는 ‘므은들레’ ‘미염둘레’ ‘문둘레’까지 다소 무리가 따르는 어원에 대한 주장들이 있지만, 저자는 ‘밋밋하거나 치장이 없는’의 의미로 쓰이는 ‘민둥산’ ‘민낯’ ‘민대머리’ 등의 접두어 ‘민’에 들판의 ‘들’과, 벌레, 찔레, 둥글레처럼 ㄹ받침의 주어 뒤에 붙는 접미사 ‘레’가 붙어 이루어진 ‘밋밋한 들판에 자라는 풀’로 해석한다.
이 책에는 여기 소개한 것 외에도 한 마을이 봄부터 겨울을 살아내는 풍경, 화전을 붙여먹던 강원도 지역민들의 나무에 얽힌 삶, 트럭이 탈탈거리며 넘어오던 읍내 나가는 길 위의 그 아름다운 풀꽃들과 나무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제 쉰이 넘은 저자는 부인과 막내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엉클한캐빈’(나무로 지은 엉클어진 모습의 오두막집이라는 지은이의 조어)으로 달려가서 텃밭을 가꾸고 산천을 고구려 주몽의 후예인 ‘주멍’으로서, 나무와 풀꽃들에 대한 ‘사이비 어원연구자’로서 탐험한다. 그리고 막내딸 참이에게 말을 건다. “참이야 가래 줄게” “가래가 뭔데?” “응, 호두보다 더 맛있는 거” “에이, 이게 뭐야! 먹을 것두 없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