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젊은 날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를 만난다
― 한 젊은 정치학자의 글쓰기와 세상 읽기
동아시아 정치사상계의 거목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 그의 사상과 학문적 궤적을 담은 개인 문집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이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학계의 덴노(天皇)’, ‘마루야마 덴노’로 불리는 마루야마는 ‘전후 일본사상의 원점’ 또는 ‘전후 민주주의의 이론적 리더’로 평가받을 만큼 현대 일본에 사상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인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주었다”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의 글들은 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공통의 ‘지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젊은 시절에 쓴 글들을 모은 문집으로, 이 글들이 쓰인 시기는 연대로 보면 1936년부터 1957년까지, 개인적으로는 22세 대학 시절부터 43세 때까지, 정치사적으로는 1945년 8·15를 전후한 시기로, 전쟁 기간에 집필한 25편과 전후에 집필한 36편, 총 6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학생 논문에서부터 서평, 대화체 글, 신문 기고문, 강연 내용 등 다양한 주제와 다채로운 글이 실려 있어, 마루야마가 젊은 날 어떤 글을 썼으며, 또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말해주는 물증 또는 자료집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곧 ‘한 젊은 정치학자의 글쓰기와 세상 읽기’라 명명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젊은 시절 마루야마의 사상사적 궤적을 훑을 수 있으며, 사유 방식을 추체험할 수 있다. 즉, 마루야마 정치학의 기원과 사유의 근원을 읽을 수 있다. 훗날 마루야마가 본점(本店, 본업)과 야점(夜店, 밤거리의 노점)이라 비유한 것처럼 이 책에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비판한 글들(야점)과 아카데믹한 일본사상사 관련한 글들(본점)이 나란히 실려 있다. 그뿐 아니라 ‘정치학’ 분야가 아닌 일상의 모습을 담은 글들도 수록되어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현실 참여에 적극적인 생기발랄한 젊은 정치학자 마루야마와 인간적인 모습의 마루야마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2. 마루야마는 어떻게 정치학자가 되었는가
― 학문적·사상적 궤적을 좇아가는 역사정치학적 사료와의 소중한 만남
이 책에는 언론계 진출을 꿈꾸던 마루야마가 어떻게 정치학을 전공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를 알려주는 학생 논문이 실려 있다. 1936년(22세)에 쓴 「정치학에서의 국가 개념」은 정치학자 마루야마의 탄생을 예고하는 글로서, 마루야마는 1976년에 쓴 후기에서 “이 치졸한 학생 논문을 (이 책에) 실은 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구자 생활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난바라 선생을 인생의 은사로 모시는 기연을 만들어준 것이 이 당선작이었다는 이유 때문”(43쪽)이라 밝히고 있다.
그는 “나는 지금까지 내 학문적 관심의 가장 절실한 대상이었던 일본의 근대적 사유의 성숙 과정과 그 규명에 전념하고 싶다”로 시작하는 「근대적 사유」(1946년 집필, 208쪽)를 통해 일본사상의 근대화를 해명하게 위해서는 메이지 시대 외에도 도쿠가와 시대(에도 시대)의 사상사를 더욱 주목해야 하며, 이를 위해 “마르크스의 집요한 점착력(粘着力)에서 배우면서 노둔함에 채찍을 가하며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학문적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밝힌 이 짤막한 글은 이후 그가 《일본정치사상사연구》(1952년 출간)에서 에도 시대 사상가 오규 소라이(荻生?徠)를 얼마나 치밀하게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해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모두 마루야마가 학문적, 사상적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그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글들이다.
이 책에는 1936년부터 1957년까지 글이 쓰인 시점, 짧은 ‘후기’를 붙여 간행된 시점(1976년), 그리고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시점(2011년),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이 중층적으로 공존한다. 1936년부터 1957년까지 쓴 글을 통해서는 마루야마가 어떻게 정치사상사를 공부하고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해당 시기는 어떤 시기였는지를 객관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다. 그리고 덧붙인 후기를 통해 그 시대가 마루야마에게 또 어떤 영향과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이 책을 읽는 현재 시점의 독자들은 마루야마의 글을 통해 그의 정치사상사를 접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글들이 쓰인 시기와 역사를 함께 따라감으로써 역사정치학적으로도 마루야마를 접할 수 있다.
3. 1936년부터 1957년까지,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했는가
― 책의 주요 내용과 형식
이 책에는 다양한 주제와 다채로운 형식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덕분에 이 책은 출간된 이듬해(1977년) 오사라기 지로상이라는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글을 수록한 것에 대해 마루야마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전쟁이 끝난 이후 어떤 상황 속에서 나의 전공인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 전념하는 대신 현대 정치의 여러 문제에 관해 이렇게 폭넓게 많은 글을 썼던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이번에는 일체 자위적인 변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 편 한 편의 논고를 보충해서 쓰게 되면 끝이 없기 때문에 그 성립 과정을 최소한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한해서만 간단한 ‘후기’를 덧붙이기로 했다”는 말로 갈음하고 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실린 글은 서평으로,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2매 분량에서부터 150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화체를 활용한 글도 눈에 띄는데, 서평을 대화체로 구성한 글(「러셀의 《서양철학사》(근세)를 읽는다」), 시국의 단면을 보여준 글(「기차 안에서의 시국 이야기」), 학생들과 역사를 논하는 글(「역사와 전기」) 들이 있으며, 그 외 강습, 강연, 담화 내용을 엮은 「메이지 국가의 사상」과 「공부와 학문에 대한 두세 가지 조언」, 「파시즘의 현대적 상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 책에 실린 글은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가 일반 정치학적 주제를 다른 글들로, 「정치학에서의 국가 개념」, 「근대적 사유」, 「일본인의 정치의식」, 「일본에서 자유의식의 형성과 특질」, 「현대 자유주의론」, 「존 로크와 근대 정치 원리」, 「‘진보파’의 정치 감각」, 「정치학 입문」, 「해럴드 라스웰의 《권력과 인격》」, 「해럴드 래스키의 《현대 혁명의 고찰》」 등이 있다. 두 번째 범주는 파시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비판으로, 「파시즘의 현대적 상황」을 비롯해 「단상」과 「E. H. 노먼을 애도함」을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사상사에 대한 탐구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유교 비판」, 「후쿠자와 유치키의 질서와 인간」, 「후쿠자와 유키치」, 「구가 가쓰난의 삶과 사상」, 「메이지 국가의 사상」, 「메이지 시대의 사상」, 「자유민권운동사」, 「우치무라 간조와 ‘비전’의 논리」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후쿠자와 유키치를 다룬 글이 단연 두드러진다. 네 번째 범주는 위의 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들로, 전중 시기의 신간 서평들과 전후 시기의 「무엇을 읽을 것인가」, 「문득 떠오른 감상」, 「모리아와세 음악회」, 「기차 안에서의 시국 이야기」, 「역사와 전기」, 「병상으로부터의 감상」 등이 대표적이다.
4. 책의 탄생과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
마루야마는 「저자 후기」에서 이 책의 탄생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54년 즈음 미스즈쇼보를 통해 1936년부터 그때까지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묵혀놓았다가 1976년에 이르러서야 출판사가 베푼 그간의 변함없는 신뢰에 보답하고자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제목은 그전 해(1975년)에 죽은 존경하는 사상사학자 한나 아렌트의 「과거와 미래 사이」와 제목이라도 비슷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고백한다. 만약 이 책이 출판사의 첫 제안을 받고 출간이 되었다면, 1956년 또는 1957년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정치사상사연구》(1952년)와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1956~57년)에 이어 출간되었을 것이며, 《일본의 사상》(1961년)보다 앞서 출간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 김석근에게도 마루야마는 특별하다. 그는 한국에 소개된 마루야마의 책 대다수를 번역했으며, 이 책은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그에게 마루야마는 ‘학문’의 ‘대상’이기 이전에 ‘사숙하는 스승’의 의미가 더 크다. 마루야마와 역자의 관계는 「역자 후기」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