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패러것, 어쩌다 마약중독자가 된 거지?
독방동 교도관인 타이니의 질문에 패러것은 곰곰이 기억을 더듬는다. 팔코너에 수감되는 순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조차 박탈된 패러것에게는 오직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자신은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가?
지적,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흥분제를 밀거래하던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 전시에는 약물에 취한 채 전투에 나서 무감하게 살상을 저질러야 했던 그, 현대문명이 가하는 치명적인 위협하에서는 어리석음 아니면 중독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중독’은 평화를 안겨주는 유일한 안식처이며 인생 역정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다.
패러것의 가족은 한때 대단한 재산가였으나 모든 것을 잃고 새로 이사한 집 앞에서 주유기 두 대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아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아내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이 세상에서 추방하고 싶어했던 아버지, 불같은 성격에 화려함을 사랑했지만 드레스를 입고 주유기를 들어야 했던 어머니, 식당에서 웨이터에게 “미스터”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 어머니에 반발해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만 정작 자신은 웨이터들을 박수쳐 불러대는 형 에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껍데기만 남은 가족의 위선적인 모습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형 에벤은 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동생의 허점을 이용해 조수가 바뀌고 있는 물속으로 동생을 유인한 다음 그 자리를 뜨고, 파티장에서는 창턱에 올라서서 떠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던 동생을 밀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아한다. 이에 대한 패러것의 반응 역시 그런 일은 아예 없었던 듯 다른 일상사에 대한 잡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한편 패러것의 옆에는 화가를 꿈꾸던 아름다운 아내 마샤와 아들 피터가 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들의 관계는 한없이 어긋나고 있지만 패러것은 이를 바로잡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두 사람은 삶의 매 순간을 공유하고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욕망에 충실한 벌거벗은 남녀에 불과하다.
아내를 따라 욕실로 들어간 그는 아내가 브러시로 등을 닦는 동안 뚜껑을 닫은 변기에 앉아 있었다. “아, 깜박 잊고 얘기 안 한 게 있어. 리자가 브리 치즈 한 덩이를 보내왔더군.” “그것참 반갑네,” 아내가 말했다. “하지만 여보, 그거 알아? 난 브리 치즈를 먹으면 항상 설사를 심하게 해.” 그는 자신의 성기를 끌어당기며 다리를 꼬고 앉아 대꾸했다. “그거 재미있군. 난 변비에 걸리는데 말이야.”_본문 28쪽
이처럼 기이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가족관계 속에서 패러것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자신의 삶이 위선과 부조리 속에서 구축되었다 해체되어가는 모습을 방관하고, 약물에 취하고, 평생 자신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원해왔던 형을 난로 철물로 내리쳐 죽음을 집행하는 것 외에는.
이제 살인자가 된 그의 삶에는 새로운 관계가 자리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동료 재소자, 재소자와는 반대쪽에 서 있지만 일종의 구금 상태 속에서 폭력적이고 가학적으로 변해가는 또다른 의미에서의 피해자인 교도관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명체 비둘기와 고양이, 그리고 연인 조디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 속에서 그는 하루하루 새로운 인간소외와 고통을 경험한다. 재소자를 찾아온 면회객들의 무심한 행동에서 자유가 낭비되는 모습을 포착하고, 조디의 갑작스런 탈옥으로 인해 또다른 상실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슬픔과 분열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에서는 자유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남자는 허리를 굽혀 양말을 끌어올렸다. 한 여자는 열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백을 뒤졌다. 그보다 젊은 한 여자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힐끗 쳐다보고는 초록색 우산을 펴 들었다. 몹시 늙고 못생긴 한 여자는 휴지 쪼가리로 눈물을 훔쳐냈다. 사실 그런 행동들이야말로 그들이 뭔가에 구속받고 있다는 제약의 표지나 다름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떤 자연스러움과 구속상태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기운이 묻어났고, 그것이야말로 쇠창살 사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패러것에게 잔인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_본문 38쪽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변기의 용도조차 불가사의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의 글자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모국어가 무엇인지도 잊어버렸다. 갑작스레 여자와 노랫소리에 대한 추적을 중단했고 마침내 그것들이 사라지자 안도감에 휩싸였다. 그에게 가벼운 현기증만 남긴 채 꿈은 절대적인 소외의 경험도 함께 데리고 사라졌다. 상처받았다기보다 충격을 더 받았다. 책을 들어보니 그제야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변기란 무언가를 버리기 위한 장치이고 교도소의 이름은 팔코너였다. 그는 살인죄로 기소된 상태였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세세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았다. 특별히 달콤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유용하고 오래 지속되는 현실들이었다. _본문 123쪽
기뻐하라, 마음껏 기뻐하라!
하지만 이러한 자기소외의 고통은 조디의 탈옥 이후 패러것에게 자신이 응당 있어야 할 곳에의 열망으로 변모한다. 이제 패러것은 수감 첫날 들은 치킨 넘버 투의 조롱기 어린 말을 자신의 새로운 미래로 꿈꾸고, 결국 치킨 넘버 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무덤에서 탈출한다.
왜냐하면 어떤 여행이든, 심지어 바보들의 여행이라 해도 그 끝엔 황금 단지나 젊음의 샘, 이제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바다나 강, 아니면 최소한 구운 감자를 곁들인 대형 비프스테이크처럼 좋은 뭔가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지. 모든 여행의 끝에는 반드시 좋은 뭔가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모든 게 끔찍한 실수라는 걸 자네가 알았으면 하는 거야. _본문 18쪽
하지만 패러것이 탈출에 성공했을지 우리는 쉽게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중독’과 ‘공포’에의 극복, 그를 통한 구원을 위해 평생의 전투를 치렀으나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치버는 패러것에게도 결코 장밋빛 미래를 쉽게 안겨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패러것에게는 물리적 자유라는 제한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의 자유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패러것이 자신이 꿈꾸던 구원을 얻었을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패러것은 버스의 앞쪽으로 걸어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인도로 발을 디딜 때 패러것은 추락에 대한 공포가, 또 그와 비슷한 다른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패러것은 머리를 높이 쳐들고 등을 꼿꼿이 편 다음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기뻐하라. 패러것은 생각했다. 마음껏 기뻐하라. _본문 235쪽
추천사
거칠고, 우아하고, 순수하다. 미국에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솔 벨로
시간과 역사와 기억을 넘나들다 마침내 주인공을 철창에 몰아넣었던 잔인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치버는 분노와 지성 그리고 날카로움이 넘치는 깊고 풍부한 글을 선보임으로써 이 책을 고통스러울 만큼 빛나는 존재로 만들었다. 『팔코너』는 미국 영혼의 발굴이다. 이 작품은 걸작이다. A. M. 홈스
치버는 상상과 일상을 장악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타임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이다… 읽으라, 그리고 한 단계 올라서라. 뉴욕 타임스
치버의 승리… 위대한 미국 소설이다. 뉴스위크
폭동 전야의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팽팽한 긴장감. 시드니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