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영국 추리소설작가협회상 수상작
30개국 출간, 500만 부 판매 작가
중세 고고학자이자 소설가인 프레드 바르가스의 지적 게임
“빅토르, 고약한 운명 같으니, 너는 밖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
예고 없이 날아드는 우아하고 섬뜩한 동그라미의 메시지
‘살아 있는 전설’ 바르가스의 “롱폴” 중 가장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걸작
"일단 읽기 시작하라! 당신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어느 분야로 분류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바르가스는 혼자만으로도 독보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 《텔레옵스》
"좋은 “롱폴”을 쓰기 위해서 바르가스가 고수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독자를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붙잡아 둘 수 있어야 하고, 독자를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코스모폴리탄》
"너무나 잘 짜여 있고, 잘 읽히며, 재미있어서 한순간의 지루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 《엘르》
추리소설계 ‘살아 있는 전설’ 프레드 바르가스의 “롱폴” 중 가장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걸작
프레드 바르가스의 장편 추리소설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가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소위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바르가스는 국내에서 2008년에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해신의 바람 아래서』(문학에디션 뿔 펴냄)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난 바 있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로 2006년 영국 추리소설작가협회상을 수상할 당시 “프랑스적 독창성을 보여 주는 빛나는 사례이자 엄청난 기세로 몰아붙이는 탁월한 서사가 일품”이라는 심사평을 받기도 하였다. 2009년에는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로 영국 추리소설작가협회상을 다시 한 번 수상하면서 동일 작가가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이번 작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는 199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바르가스가 창조한 인물 중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아담스베르그 형사가 등장한 데뷔작이기도 하다.(국내에서는 『해신의 바람 아래서』(2008)에서 아담스베르그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프레드 바르가스는 초판만 15만 부 이상 찍는 프랑스 문단의 흥행 보증수표로서, 프랑스 추리소설계의 여왕으로 통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바르가스의 추리소설’을 “롱폴(rompol)”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는 바르가스가 처음 소설을 썼을 때 제목을 정하지 않고 소설을 먼저 쓰는 방식에서 비롯된 바르가스만의 용어였다. 즉 각 장의 머리에 ‘Roman policier(추리소설)’란 단순한 표현을 쓰다가 점차 이를 줄여서 ‘rompol 1’, ‘rompol 2’ 등으로 적기 시작했던 데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다 점차 바르가스의 작품들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롱폴”은 ‘바르가스의 추리소설’이라는 뜻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파리의 한밤중,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를 다각적으로 쫓는 고감도 추리소설
예고 없이 날아드는 우아하고 섬뜩한 동그라미가 전하는 메시지
어느 날부터 파리의 거리에는, 새벽마다 파란 동그라미가 출몰해 60여 개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 안에는 맥주 깡통, 바구니, 클립, 구두, 잡지, 가방, 라이터, 손수건처럼 평범한 소품들이 하나씩 들어 있다. 파란 동그라미는 “단연 최고의 이야깃거리로 떠올랐”으며 파리 시민들은 “재미로 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한밤중에 미행”을 하려는 상황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엘리트 수사관 ‘장 바티스트 아담스베르그’는 관록과 직감을 바탕으로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를 밝히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 간다.
“내일 아침 일찍, 오늘 밤에 또 새로운 동그라미가 그려졌는지 반드시 확인하게나. 있다면 열심히 연구하게. 자네만 믿네. 아까 그 여자에게도 조심하라고 말했네. 두고 보게나. 이건 반드시 커질 걸세. 한 달 전부터 동그라미가 갑자기 많아졌네. 가속도가 붙었단 말일세. 여기엔 분명히 아주 끔찍한 뭔가가 있어. 자넨, 그런 냄새 안 나나?”
당글라르는 잠시 생각하더니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글쎄요, 퇴폐적인 뭔가가 있다면 있을까…… 어쩌면 누군가가 대대적으로 벌이는 장난일지도 모르죠…….”
“아닐세, 당글라르. 절대로 그렇지 않네. 파란 동그라미에서는 잔인함의 고름이 배어 나온다네.”
(pp.52~53)
아담스베르그의 예상대로 단순한 호기심거리 정도의 사건으로 출발한 동그라미의 출몰은 이제 잔인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양이와 사람의 시체가 파란 동그라미 안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흥미롭고 의문에 빠지는 대목은 “교양인의 필적”처럼 “우아한 필기체”로 “빅토르, 고약한 운명 같으니, 너는 밖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는 점이다. 이 메시지의 내용과 쓰인 형태는 사잰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두 사람 앞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 속에는 짓이겨진 고양이 시체가 들어 있었다. 핏자국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수 시간 전에 죽은 고양이를 길거리 어디에선가 주워온 모양이었다. 더러운 털로 뒤덮인 살덩어리를 음산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마주치자 기분이 영 찜찜했다. 게다가 동그라미와 “빅토르, 고약한 운명 같으니, 너는 밖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라고 적힌 글귀까지 보고 있노라니 시시한 마술사의 팬터마임 같은 걸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p.58~59)
아담스베르그는 시체를 관찰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셔츠 단추 채우기를 마쳤다. 집중 조명의 포화 속에 놓인 시체는 마들렌 샤틀랭보다 한층 더 무참하게 난도질당한 상태였다. 목 부분을 어찌나 깊이 찔렀는지 남자의 고개는 거의 180도 돌아가 있었다.(p.184)
직감으로 수사하는 엘리트 수사관 ‘아담스베르그’의 세기적 등장
환상의 콤비 ‘당글라르’ 형사와 영원한 사랑 ‘카미유’와의 첫 신화
인간미 넘치는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에게 너그러이 마음을 열어주면서도 첫사랑인 한 여자, 카미유에게는 가슴 아린 순애보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카미유의 어머니이자 해양학자인 호기심 박물관 ‘마틸드 포레스티에’를 만나는데 그녀는 일주일을 “심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1부(월?화?수요일), “별 볼일 없는” 2부(목?금?토요일), “하루만으로도 일주일 치”인 중요한 3부(일요일)로 여기고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사람의 뒤를 미행하는 습성이 있다. 아담스베르그는 동그라미의 사나이를 “잘 알 뿐만 아니라 야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괴이한 행동을 하는 그를 따라다닌 적”이 있는 마틸드를 증인 삼아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씩 찾아간다.
“동그라미는 어떻게 그리던가요? 안쪽에서? 바깥쪽에서?”
“바깥쪽에서. 갑자기 어떤 물건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이내 분필을 꺼내죠. 마치 그 물건이 그날 저녁에 찾던 물건임을 확신하는 사람처럼 전혀 망설이지 않아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 다음, 거리에 인적이 끊기기를 기다리죠. 남들 눈에 띄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나만 예외예요. 왜 그런지 이유는 나도 몰라요. 어쩌면 내가 자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그자가 일을 마치기까지는 20초쯤 걸려요. 물건 주위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쭈그리고 앉아서 글씨를 써요. 그러면서 주위를 내내 두리번거리며 살피죠. 그런 다음 광속처럼 사라져버려요…….”(p.99)
잘생긴 장님 ‘샤를 레이에’는 카페에서 마틸드를 처음 만나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게 된 남자이다. 정의롭고 이성적인 ‘당글라르’ 형사는 샤를에게 그가 “불가능한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잘 안다면서 파리의 자정을 삼킨 장본인을 찾기 위해 피치를 올린다. 또 그는 쌍둥이 네 명과 사내아이 한 명을 돌보는 착실하고 따뜻한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함께 사건을 놀이처럼 풀어보려는 시도를 해본다. 이처럼 다정다감한 성격의 당글라르는 세밀한 관찰로 사건에 논리적으로 접근하며 직감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아담스베르그와 명콤비를 이룬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그들의 환상적인 팀워크는 “롱폴”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용의자와 친밀감을 유지하는 건 오히려 권장 사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당신 집엔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장님에, 정신 나간 할머니, 학생, 철학자, 아래위층 이웃 등등. 마틸드 여왕의 추종자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내 말이 틀렸습니까?”(p.135)
한편 아담스베르그는 수 년 전 소리 없이 사라진 연인 카미유의 행적을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그녀와 극적으로 재회하기까지 절절이 가슴 앓는 내면 목소리를 보여 주면서 사내로서의 ‘아담스베르그’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면모를 발휘한다. 아담스베르그 형사가 주인공인 바르가스의 “롱폴”에는 아담스베르그와 카미유의 만남과 헤어짐이 책과 책을 넘어 이어짐으로써 ‘인간’ 아담스베르그 서장의 매력을 충분히 담아낸다.
카미유가 살아 있다니. ‘내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아직도 숨을 쉬며 살아 있다. 고집 센 이마, 약간 매부리코, 부드러운 입술, 지혜, 경박함, 날씬한 실루엣,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내 사랑’이 살아 있다.(pp.139~140)
“잘 가, 내 사랑.” 아담스베르그가 먼저 말했다.
그는 카미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
그는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기차에 등을 돌린 채 플랫폼에 서 있었다. 기차에 재킷을 두고 내린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카미유가 그 재킷을 입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소매가 손가락 끝까지 내려와서 헐렁거리는 옷을 입어도 그녀는 예쁘기만 하다고, 예쁜 그녀가 창문을 열고 밤 풍경을 내다보는 중일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함께 기차에 타고 있지 않으므로 카미유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처지였다. 아담스베르그는 걷고 싶었다. 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 나섰다. 내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한 시간. 그러니까 적어도 죽기 전에 한 시간 정도는 더 볼 수 있을 거야.(p.296)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황량한 도시, 삶의 참모습을 향한 희구
사건은 마들렌 샤틀랭, 제라르 퐁티외, 델핀 르네르모르 등이 연이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마틸드와 샤를을 포함해 의심 드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수사에서 배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희생자가 속출할수록 담당 형사들은 고뇌에 잠겨 갖가지 방법으로라도 단서를 찾기 위해 골몰한다. 특히 아담스베르그는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사건이 벌어진 도시를 향해 끔찍한 심경을 읊조린다.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나 후에나 그의 마음속엔 인생의 참모습을 그리려는 마음이 커져간다. 바로 이런 점이 여느 추리소설과 차별화된 프레드 바르가스의 매력적 “롱폴”을 완성한다. 즉 사건의 잔인함과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둔 소설이라기보다 시리즈처럼 이어지는 인물 간의 관계 설정, 인간미 넘치는 심리 묘사 등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또 한 명의 여자는 살리지 못했다. 아, 삶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죽은 여자에게서 턱선 따위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자기 너무 외롭고 구역질이 나서 손전등을 다른 곳으로 돌린 다음, 상급자들에게 보고를 하고 나서 손을 권총에 얹은 채 기다렸다. 오래간만에 도시의 밤이 너무도 끔찍하게 느껴졌다.(p.201)
어둠에 잠긴 호텔 방 침대에 누운 아담스베르그는 양손으로 목을 괴고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그는 전등을 다시 켜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아무리 들고 다녀봐야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수첩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연필을 쥐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릴에서 잠자리에 누웠다. 재킷을 잃어버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릴에서 잠자리에 누운 건 사실이었다. 다시 연필을 쥐고 계속해서 썼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나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p.298)
이처럼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탁월한 서사 전개와 긴장감, 독특하고 정감이 가는 인물들의 등장, 예측하지 못한 반전에 반전을 보여 준다. 한여름에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를 만나면 입맛 잃기 쉬운 계절에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독서의 즐거움을, 한겨울에 프레드 바르가스의 “롱폴” 시리즈를 만나면 추위를 이겨낼 유쾌한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