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인 동시에 개인적인 고백일 수 있으며,
현실의 어떤 순간을 담은 믿을 만한 복사본이요 필사본인 동시에
그 현실에 관한 해석일 수 있다.
이것은 뛰어난 문학이 오랫동안 갈망해 오면서도
문학적인 의미에서 결코 성취하지 못한 그런 경지이다.
……
세련되지 않은 사진이 진정성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진 중에 어떤 것은 가장 훌륭한 사진에 필적하기도 하며,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기억할 만하고 감동을 주는 사진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중에서
인천 골목 사진집 『골목빛_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은 다른 도시 아닌 인천의, 아파트동네 아닌 골목동네에 사는 사람이 제 삶과 가슴으로 담아 낸 인천 골목동네 풍경을 그러모은 책이다.
지은이 최종규는 인천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2007년부터 인천 골목길을 부단히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왔고 지금도 찍고 있다. 이 책은 그 가운데에서 2009년 한 해 동안에 찍은 사진과, 2010년 겨울과 봄 사이에 찍은 사진 수천 장 가운데에서 293장을 추려내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천연색 사진이 대부분인 골목길 사진은 삶이 자연스럽게 깃든 인천 골목동네를 골골샅샅 훑고 있으려니와, 어제가 아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골목동네 삶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사진 사이사이에 배치된 스물한 꼭지 짧은 글은 지은이가 골목길 나들이에서 생각하고 느낀 소회를 기록한 것으로, 골목동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인천이라는 도시를 비평하고, 무분별하거나 무례한 개발지상주의를 꼬집는가 하면 그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삶터에 대한 애틋한 슬픔을 토로하고, 사진찍기와 예술에 대한 남다른 견해를 펼친다.
인천사람 최종규가 함께 부대끼면서 제 삶과 가슴으로 담은 인천 골목동네 풍경
이 책 『골목빛_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은 골목길 풍경을 담은 사진을 짧은 에세이를 곁들여 엮은, 이른바 ‘포토 에세이’이다. 서점가에 ‘포토 에세이’가 넘쳐나고, 골목길을 소재로 한 사진과 사진집이 적지 않지만, 최종규의 『골목빛_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은 ‘골목길을 소재로 한 포토 에세이’이기 이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삶터로서의 인천 골목동네를, 골목동네 사람의 눈으로 온전히 담아 낸 진정어린 기록’이라는 점에서, 여느 포토 에세이나 골목길 사진과는 크게 구별된다. 그러한 차이는 무엇보다 지은이 최종규가 사진을 찍는 생각과 방법이 여느 사진과 거리가 먼 데에서 비롯된다.
인천사람 최종규는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떠나 있던 고향 인천에 열 몇 해 만인 2007년에 돌아온 뒤부터, 그는 부지런히 인천 골목길 마실을 다녔다. 때론 자전거를 몰고서, 때론 더딘 걸음으로 걸으면서, 때론 아기를 업고서, 새벽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비 오는 날에도, 눈 오는 날에도,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틈나는 대로 “천천히 골목동네를 쏘다니면서” 자신이 “발 디딘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가만히 되새겼”다. 고향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골목마실 길에 풍경을 한 장 한 장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거의 날마다 골목길 마실을 다니면서도, 처음에는 “구태여 제 삶터인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십여 년 넘게 줄곧 사진을 찍어 온 터이지만,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들이 이미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숱한 골목길 사진이 골목동네를 삶터로 삼은 사람의 눈으로 담은 것은 하나도 없고, 골목길을 그저 스러져 가는 옛 추억거리로나 또는 가난함에 초점을 맞춘 감상적인 사진미학의 소재로만 다루는 것을 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어, 스스로 골목길 사진찍기에 나섰다.
“저는 골목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골목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 사진은 늘 ‘골목사람으로서 부대끼고 지내는 모습’입니다…살갗으로 부대끼지 않으면 알 길이 없겠지요.”
최종규에게 사진이란 곧 그의 삶이다. 그가 늘 함께하는 그 무엇, 그가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그 무엇, 그래서 늘 지켜보고 또 껴안을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곧 그의 삶이면서 그의 사진이 된다. 그래서 헌책방을 사진 찍고, 함께 사는 아내와 아이를 사진 찍고, 자신의 삶터인 골목동네를 사진 찍는다.
최종규는 인천 골목동네를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면서, 더러 웃음 짓고, 더러 눈물 흘리고, 또 감탄하고 세월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햇살 아래서 망연히 쉬기도 하면서, 골목동네의 삶과 꽃, 강아지, 나무 그늘, 빨래 그림자 하나하나에서 전해지는 숨결과 빛깔과 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려고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한 장씩 사진에 담아 나갔다. 그가 사진에 담은 골목 풍경은, 그러므로, 그의 삶이요, 생각이요, 몸짓이며 넋이며 마음일 수밖에 없다.
최종규가 이처럼 골목 안 삶을 지긋이 바라보고 살갗으로 부대끼고 부둥켜안으며 골목동네와 이웃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사진에 담을라치면, 골목동네와 그의 이웃 또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고운 빛은 고운 빛 그대로, 아픈 모습은 아픈 대로 “스스럼없이 온 모습을 드러내면서 투박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며” 그를 부둥켜안는 것으로 화답해 온다.
최종규의 골목 사진이 진정성으로 빛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종규는 그가 쓴 다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진은 내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삶이라고 느끼는 사진은 아름답다고 받아들입니다.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고 싶으며 제 모자란 깜냥과 재주껏 아름답게 갈고닦고 있으니, 내 사진이 이럭저럭 어줍잖거나 어설프지만 이러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진정성으로 빛나는 질박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들, ‘골목빛’
오랜 세월 마치 서울의 식민지 같은 주변도시로 존재해 온 인천, “공장터에 사람들 살림터가 오그라져 있”는 “참 얄딱구리한 도시” 인천, “싼 일삯으로 공장 노동자가 되고, 허름한 물건으로 허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보금자리” 인천.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천은 오래된 골목동네 자취를 드넓게 남겨 놓고 있”건만, 최근에 ‘국제 도시’니 ‘관문’이니 ‘도시 정비’니 ‘주거환경 개선’이니 하며 개발의 삽질이 도도해지면서, 한쪽에선 고층 아파트가 쭉쭉 솟고 또 한쪽에선 몇십 년씩 삶을 이어오던 골목동네들이 마구 헐려나가고 있다.
최종규의 인천 골목 사진은 “예순 해, 일흔 해, 여든 해 길디길게 이어오면서 서로서로 가난한 대로 어깨동무하는 문화를 조용히 일구”어 온 골목동네의 오래된 자취를 더듬는다. 그리하여 자칫 궁상맞아 보일 수도 있는 빨래 풍경, 스티로폼 화분, 길바닥에 깔아 놓은 붉은 고추, 낡은 담벼락과 문패에 서린 발자취를 놓치지 않고 그 꾸밈없는 삶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더불어, 개발의 위세에 등 떠밀려 떠나간 사람들의 아픔도 헤아리고, 또 떠나지도 못해 집 헐린 빈터 틈바구니에서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앓이도 보듬으며, 가난하나 살아 있는 이야기가 곰실거리는 골목동네, 그곳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골목빛’을 최종규는 사진에 담는다.
꾸밈없는 모습을 담아서일까, 사진이 그의 삶 자체여서일까, 최종규의 인천 골목동네 사진은, 이미 그의 블로그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평하듯, 더할 수 없이 곱고 아름답다.
설령 그의 말대로 “어줍잖거나 어설”플는지는 몰라도, 또 사진미학으로 보면 그리 세련되지 않았을는지는 몰라도, 세심한 눈과 마음, 차분한 걸음걸이로 골목동네를 돌아본 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그리하여 인천 골목동네의 삶자락이 꾸밈없이 드러난, 최종규의 인천 골목 사진은 이야기가 있고 따뜻하고 가슴을 움직인다. 질박한 아름다움으로 빛이 난다.
여느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빛, 그것은 진정성의 힘일 터, 수전 손택이 말한 대로 “가장 훌륭한 사진에 필적하기도 하며, 감동을 주는 사진의 표준”이라 함직하다.
최종규가 골목동네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빛이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기니 그럴 터이다. 최종규의 인천 골목 사진에서는 ‘골목빛’이 일렁인다. 골목동네의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마음앓이가 알알이 아로새겨진 최종규의 골목 사진은, 그래서, 그대로 ‘골목빛’이요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다. 최종규가 가슴으로 느낀 ‘골목빛’은, 그의 사진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책을 인천 골목동네 이웃들한테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이 고우면서 다 다른 골목빛을 인천 토박이로 살아온 분들한테 되비치면서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맑으면서 다 다른 골목꽃 내음을 인천으로 나들이하는 분들한테 알려주면서 새참거리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천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고, 부디 꾸밈없이 골목길 삶자락을 껴안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최종규는 인천 골목동네 토박이들이 그들이 가꾸어 온 삶자리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주고 싶어한다. 인천 골목동네가, 인천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듯이 그리 꾀죄죄하고 낡고 공기 나쁘고 생기 없기만 한 삶터가 아니고, 오래된 삶 자취를 간직한 아름다운 보금자리이려니와, 동네 골목길이 정말 예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골목동네 이웃들한테 그가 찍은 사진을 한두 장씩 나누어주면서 “참 예쁘다”고 말을 건네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곳에 뿌리내리며 살아오는 분들이 집과 동네를 참 예쁘고 곱게 꾸미고 있는데, 당신들 스스로 이 동네가 얼마나 예쁘고 고운 줄을 모”르고, 오래된 동네를 빨리 허물어 아파껆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최종규는 못내 안타깝다.
그는 무엇보다도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인천 골목길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사진 책을 하나 마련해 한 집씩 찾아다니며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의 꿈대로 마침내 인천 골목 사진집 『골목빛_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을 내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