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다시 읽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로 자리잡은 김만중의 『구운몽』을 재해석하는 연구서로, 참신하고 입체적인 관점, 섬세하고 깊이 있는 세부 분석이 돋보인다. 오랫동안 『구운몽』 연구에 천착해 온 저자는 기본적인 캐릭터·서사·스타일 분석뿐만 아니라 독자에 대한 고찰, 동아시아 비교 연구와 원전 연구를 넘나들며 폭넓은 독해를 시도한다. 이 책은 작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구운몽』을 둘러싼 큰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풍부한 원문 인용을 통해 한문 소양이 없는 독자라도『구운몽』의 독특한 문체를 느낄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소설”, “남성의 욕망을 한껏 표출한 흥미 본위의 소설”, “불교적인 깨달음을 통해 인생무상을 갈파한 사상소설” 등 몇 가지 범주에 한정된 『구운몽』 해석에서 벗어나 여러 방법론을 동원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에 따르면, 『구운몽』은 김만중이 자신과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기도 하지만, 당대 조선 사회에 특정한 메시지를 남기는 “이념 장치”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구운몽 다시 읽기』는 당대 조선 사회의 변화와 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속에서 『구운몽』이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고, 욕망, 여성, 사대부, 소설 전통, 동아시아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운몽』을 독해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문제와 접목된, 새로운 고전 읽기의 지평을 열어젖힌다.
한국 고전문학은 왜 뜨거워지지 않을까
한국 고전문학은 왜 뜨거워지지 않을까? 최근 몇몇 출판사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며 한국 고전문학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다소 냉랭하다. 한국 고전문학과의 만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한국 고전문학은 뻔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국어·문학 교과서를 통해 요약된 줄거리나 작품의 일부를 접했기 때문에 특정 작품을 읽지도 않고서 그 작품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또는,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글’이라는 획일적 가치 평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는 명목하에 작품을 특정 시공간에 붙박아놓는 해석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고전문학은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한국 고전문학을 읽기 전에 필요한 것은 고전문학을 읽는 새로운 관점들이다. 현재 우리 삶과 연결된 비판적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상상력, 다른 방식의 고전문학 읽기 모델이다.
그리고 여기, 한국 고전문학 다시 읽기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책 한 권이 있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와 함께 우리 고전소설 수작들을 발굴·소개하는 ‘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를 번역한 정길수 조선대 교수가, 우리 고전소설에 심드렁한 독자들을 향해 모험심을 자극하는 고전소설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다. 한문 고전 특유의 표현을 살리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현대적 감각의 언어를 구사해내는 번역자의 친절한 글쓰기가, 텍스트 안팎을 넘나들며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종합·재해석하는 고전소설 연구자의 치밀한 시각과 만난다. 이러한 작업이 온전히 『구운몽』이라는 작품 한 편에 할애되었다. 최근 주목받는 젊은 고전소설 연구자 정길수 교수의 두 번째 저서 『구운몽 다시 읽기』(돌베개, 2010)는 『구운몽』과 한국 고전소설이 즐거워지는, 다양한 읽기 관점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왜『구운몽』이 고전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지, 왜 저자가 『구운몽』을 “아시아 최고 수준의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라 평가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문 소양이 없는 독자라도 『구운몽』의 독특한 문체를 느낄 수 있도록 원문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우리말 번역도 추가했다.
『구운몽』을 새롭게 읽기 위한 두 가지 수칙:
시점의 이동과 시야의 확대
“지금까지 이루어진 수많은 『구운몽』 연구 중에는 『구운몽』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이나 전체적인 구조를 규명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운몽』의 원전原典에 관한 연구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한문본과 한글본으로 전하는 다수의 『구운몽』 이본異本의 계통을 규명하며 원작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찾아내는 일이어서, 연구자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에 힘입어 『구운몽』의 큰 그림은 어느 정도 그릴 수 있게 되었지만, 『구운몽』의 작자가 『구운몽』을 창작한 이유, 『구운몽』의 창작 방법, 『구운몽』이라는 소설 작품의 미덕, 특히 그 세부 축조의 묘미, 등장인물 간의 역학 관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구운몽』의 이념, 동시대 소설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은 여전히 주목되지 않았거나 오해되고 있지 않은가 한다.”_13쪽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간의 미진함에 대한 보론補論의 성격, 널리 퍼져 있는 몇 가지 통념들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13쪽) 『구운몽 다시 읽기』는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소설”, “남성의 욕망을 한껏 표출한 흥미 본위의 소설”, “불교적인 깨달음을 통해 인생무상을 갈파한 사상소설” 등 몇 가지 범주에 한정된 『구운몽』 해석에서 벗어나 여러 방법론을 동원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기본적인 캐릭터·서사·스타일 분석뿐만 아니라 독자에 대한 고찰, 동아시아 비교 연구와 원전 연구를 넘나들며 폭넓은 독해를 시도한다.
『구운몽 다시 읽기』는 주인공 양소유의 매력을 해부하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역학 관계와 공간 배치를 통해 『구운몽』의 이념을 드러낸다. 나아가, 17세기 독자들의 자리에서 그들이 『구운몽』에서 느끼는 흥미와 미감을 살펴보고,『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의 관점에서 창작 동기와 창작 방법을 밝힌다. 한반도를 벗어나 동아시아 소설사의 흐름 속에서 『구운몽』이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고, 여성 편력을 일삼는 애정 영웅들이 등장하는 세 편의 동아시아 소설들(『구운몽』, 『육포단』, 『호색일대남』)을 비교해 각 작품이 형성된 사회문화적 맥락을 읽어내기도 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한문 고전 특유의 교양을 바탕으로 한 세부 묘사와 사건 전개, 인물 설정에 대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만날 수 있고, 고전문학 연구의 기본이 되는 원전 논쟁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소설 연구 방법론을 아우르는,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작은 의문에서 출발해 점점 시야를 확대해가는 서술 방식은 『구운몽 다시 읽기』의 또 다른 미덕이다. ‘왜 양소유 저택은 이러한 구도로 되어 있을까?’, ‘왜 『구운몽』에는 여인들 사이의 시샘, 남성의 변심이나 무심이 존재하지 않을까?’, ‘왜 『구운몽』에는 속임수가 빈번하게 등장할까?’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구운몽』을 둘러싼 큰 그림이 그려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미스터리를 푸는 기분으로 저자의 촘촘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욕망의 문제, 사대부 정치철학으로서의 보편주의, 동아시아 근대성과 통속소설의 관계 같은 커다란 주제에 당도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운몽 다시 읽기』는 『구운몽』에 국한된 작품 해설?연구서처럼 보이지만, 실상 고전소설 전반에 접근하는 입체적인 관점들을 제시하는 안내서이다. ‘구운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그리고 소설을 둘러싼 17세기 조선 사회와 동아시아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키워드들은 우리 시대의 문제로 확장된다. 10여 년간 『구운몽』을 구심점으로 한국 고전소설을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구운몽』의 제목과 줄거리 읽기
‘구운몽’九雲夢이라는 제목은 여러 갈래로 멋지게 해석될 가능성을 지녔지만, 가장 평이한 해석은 ‘구운몽’을 ‘아홉 사람의 구름 같은 꿈’이라기보다 ‘아홉 구름의 꿈’이라 옮기는 것이다. ‘九’는 등장인물 성진과 여덟 선녀, 혹은 양소유와 여덟 여성을, ‘雲’은 이 아홉 사람, '덧없는 인간 존재‘를 뜻한다. 『구운몽』의 줄거리, 아홉 구름의 꿈은 다음과 같다.
성진은 형산 연화봉에 사는 젊은 승려이자 육관대사의 수제자이다. 육관대사의 명을 받고 용궁을 방문, 용왕의 권유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위부인의 제자인 여덟 선녀를 만난다. 이들과 잠시 말장난을 한 성진은 불도 수행에 회의를 느끼며 인간 세상의 재미와 부귀영화를 꿈꾼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크게 질책받고 염라대왕에게 끌려가 양소유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양소유는 중국 당나라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해 과거를 보러 가다가 첫사랑 진채봉을 만난다. 급작스레 난리가 일어나 진채봉과 인연을 이루지 못하고, 낙양에서 만난 기녀 계섬월의 천거로 훗날 양소유의 제1부인이 되는 정경패를 만난다. 양소유는 정경패와 혼약을 맺고, 정경패와 일심동체처럼 지내온 몸종 가춘운을 소실로 삼는다. 연나라를 복속시키고자 출정했다가 계섬월의 친구이자 기녀인 적경홍을 만나고, 조정으로 돌아와 황태후의 외동딸 난양공주와의 혼인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양소유는 이미 정경패와 혼약을 맺은 상태이므로 황제의 혼인 요구를 거부하다가 하옥되는데, 때마침 토번의 침공이 벌어진다. 토번 공격에 나선 양소유는 토번 군주가 보낸 자객 심요연을 새로운 연인으로 삼고, 동정 용왕의 딸 백능파의 도움을 받아 토번을 복속시킨다. 이 와중에, 태후의 배려로 난양공주와의 혼사 문제가 풀리고 진채봉도 다시 만나게 되어, 양소유는 여덟 여성을 모두 처첩으로 거느리고 50년 이상의 부귀영귈를 누린다.
이후, 행복의 절정에 서 있던 양소유가 공허감을 느끼며 여덟 명의 아내에게 불가에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순간, 육관대사가 양소유 앞에 나타난다. 돌연 성진은 자신이 누렸던 양소유의 삶이 모두 한바탕 꿈이었음을 깨닫고 불도에 정진하기로 한다. 그리고 성진과 성진의 제자가 된 여덟 선녀가 불도를 얻어 극락세계로 가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왜 다시 구운몽인가」, 제1부 「양소유 탐구」)
남성·사대부 우위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장치로 『구운몽』 읽기
저자에 따르면, 『구운몽』은 김만중이 어머니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기도 하지만, 당대 조선 사회에 특정한 메시지를 남기는 “이념 장치”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노론 계열을 대표하는 관료로서, 남인을 중용하려던 숙종의 시도를 반대하다가 쫓겨난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애써 소설을 창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완강하고 비타협적인 정치가” 김만중을 염두에 두고 소설 속 여성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는 한편, 『구운몽』이 상정한 독자층을 살펴봄으로써 『구운몽』의 교묘한 이데올로기 작동 방식을 추적한다.
먼저, 『구운몽』이 남성의 일부다처 욕망과 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합리화하며, 사대부 우위의 세계관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다양한 소설적 장치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토대로 하며, 특정 장치의 양가적 측면, 다시 말해 다양한 독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양소유를 조롱하는 속임수는 한결같이 화락한 웃음으로 마무리되며, 양소유와 여성 주인공의 결연을 예비하거나 직접적으로 성사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여성을 속임수의 주체로 만들고 등장인물 사이의 권력관계를 역전시켜 여성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저자는 양소유 저택의 처소 배치를 분석해 위계 질서의 정점에 황태후의 딸인 난양공주가 아니라 사대부가의 여성인 정경패가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으로 군주와 사대부 사이의 차등을 교묘한 방식으로 허무는 것은 당대 집권 세력이었던 서인 혹은 노론의 발상과 통한다. 특히, 정경패(사대부)가 난양공주(군주)와 대등해지는 지점에 서구 부르주아의 ‘평등’에 상응하는 사대부의 ‘보편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이다.
“난양공주와 정경패만 ‘보편주의’의 적용을 받아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나머지 여섯 여성들에 대해서는 ‘차등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수미일관 ‘보편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경패가 선두에 서서 여덟 여성의 신분 차이를 허물어뜨리고 모두 같은 근본을 가진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장면은 이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유럽에서 ‘평등’을 주장하며 새로운 사회를 여는 대표 계급으로 부상한 부르주아지를 연상시킬 만큼 『구운몽』의 사대부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_84~85쪽
그러나 『구운몽』이 “상당 수준의 한문 소양, 다시 말해 상층 사대부가의 높은 교양 수준을 전제하여 성립한 작품”(96쪽)이라고 할 때, 『구운몽』은 강압적인 방식 대신 상층의 관용과 배려, 하층의 ‘본본’ 지키기를 ‘조화로운 세계’의 기본 덕목으로 삼고자 하는 상층의 바람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구운몽』의 갈등 해결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저자가 “배려의 형식과 차등의 질서”라 명명한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제2부「『구운몽』의 여성 탐구―‘지음’과 위계」,「『구운몽』의 독자는 누구인가」)
당대 소설 전통에 대한 작가의 반론으로 『구운몽』 읽기
『구운몽』은 당대까지의 우수한 소설 전통을 적절하게 활용한 작품이다. 그러나 『구운몽』이 영향을 받은 소설 전통을 단순히 열거하는 데서 나아가,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변용되고 있는지,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변용하고자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구운몽』의 세계에서 외적의 침입, 늑혼(강제 혼인) 모티브, 호협전기의 복수·보은의 테마는 남녀의 행복한 결연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며, 균열과 갈등은 웃음과 화락의 세계에 흡수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변용이 사대부적 미의식에 바탕을 둔 의도적인 것이며, 『구운몽』은 당대의 새로운 소설사적 흐름인 비극적 애정전기와 한글소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지적한다. 김만중은 패러디를 통해 비극적 애정전기에 담긴 비판적 지식인의 문제 제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한글소설에 나타난 하층민의 불만에 대해서는 위로를 건네며 차등의 질서에 바탕한 화합을 제의한다. 이로써 17세기 전반 조선 사회의 극심한 상하층 대립을 배경으로 형성된 소설 전통은 『구운몽』 이후 뚜렷한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 지배 이념을 대변하거나 통속적인 흥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제2부 「전기소설의 전통과 『구운몽』」)
『구운몽』의 미학적 완성도를 음미하며 읽기
『구운몽』이 “빼어난 성취”를 이룬 장편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운몽』의 구조적 짜임과 장편화 방법의 미학적 완성도 때문이다. 『구운몽』의 작품 구조는 ‘편력구조’(세상 속으로 뛰어든 주인공이 길을 떠나 이런저런 인물을 만나며 세상사를 섭렵해가는 구조)와 ‘환몽구조’(작품의 도입부에서 꿈을 꾸고 결말부에 이르러 꿈에서 깨어나는 구조)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동서양을 아우르며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유사 구조의 작품들을 살펴보아도 『구운몽』만큼 두 구조가 상호 증폭 작용을 하도록 고안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장편화 방법과 관련해, 이전의 중단편소설에 비해 대폭 늘어난 세부 묘사, 개별 단편들이 나란히 진행되며 서로 간섭하기도 하는 복합 구조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또한, 이 책은 풍부한 원문 인용을 통해 한문 소양이 없는 독자라도 『구운몽』의 독특한 문체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독자는 이 책 곳곳에서 고문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구운몽』의 문체 실험, ‘한국식 구어체’를 감상할 수 있다. (제2부 「『구운몽』의 창작 방법」)
『구운몽』을 동시대 동아시아 작품과 함께 읽기
『구운몽』을 각각 17세기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 『육포단』, 『호색일대남』과 함께 읽는다. 남자 주인공의 화려한 여성편력기이자 ‘애정 영웅 소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세 작품에 대해, 남성 중심적인 통속 취미에 영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세 작품이 장편화 방법으로 주인공 한 명의 다채로운 경험을 서술하는 ‘편력구조’를 택했다는 데 주목하는 한편, 세 작품에 근본적으로 차이를 만드는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이를 발생시킨 사회문화적 맥락을 파고든다. 남자 주인공들의 애정 편력을 가능케 하는 도구인 ‘몸’(『육포단』), ‘교양’(『구운몽』), ‘돈’(『호색일대남』)의 비교를 통해, 당대의 지배/대항 윤리와 동아시아 근대의 맹아적 측면을 추출해내는 과정이 참신하다. (제2부 「17세기 동아시아 소설의 편력구조 비교―『구운몽』·『육포단』·『호색일대남』의 경우」)
『구운몽』 원전 논쟁 읽기
조선 시대 소설은 대개 필사筆寫의 방식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원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크고 작은 변형을 거친다. 따라서 이본異本이 많고, 이본에 따라 작품의 세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문본과 한글본이 병존하는 『구운몽』은 아직도 원작에 대한 논란이 해결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구운몽』의 원전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원작에 가까운 텍스트를 확정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원형原型을 최대한 복원할 수 있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원작의 ‘문체’를 논할 수 있”(28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운몽』은 한글로 창작되었는가, 한문으로 창작되었는가?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글본인 ‘규장각본’, 한문본인 ‘노존B본’과 ‘노존A본’을 검토한다. 누락된 부분을 체크하는 것은 기본, 문장 표현을 비교해 당호堂號·인명·지명, 전고典故 활용, 운문과 산문 형태 등을 꼼꼼히 따져 한문본인 ‘노존B본’이 가장 선행본이며 ‘노존A본’은 ‘규장각본’을 한문으로 개작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노존B본’ 일부(서두·결말부와 제6회 전반부)와 ‘노존A본’의 일치, ‘노존B본’ 38~39쪽과 50~51쪽에 존재하는 여백이 미궁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의문점들을 단서로 삼아 『구운몽』이본異本들의 형성 과정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내는데, 이러한 추적은 연구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제3부 「『구운몽』 원전의 탐색」,「『구운몽』 원전 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