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상가로서의 강준만
독자들은 『대중문화의 겉과 속 Ⅱ』를 읽으면서 소비 및 사이버 문화 시대에 사회와 자신의 삶의 작동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은 강준만 교수가 이제 대중문화비평가의 단계를 지나 서서히 사회사상가로 나아가고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진단은 충분히 이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디지털 격차로 인한 문제가 어떻게 나타나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건 디지털 기술의 도입 이전에 존재했던 빈부격차의 확대재생산형 격차라고 하는 사실이다. 적어도 현 단계에선 컴퓨터가 자꾸 일자리를 없애고 소득 격차가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 이상, 정보화 및 디지털화 사업이 기존의 왜곡된 시장 논리에만 의존하지 않게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연구자들이 단백질은 금속과 결합될 수 있다며, 두뇌 속으로 이식될 바이오칩(biochip)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 인터페이스의 혁신은 꼭 필요하겠지만, 인터페이스에 대한 무한대의 집착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에 기계를 집어넣어 두뇌의 생각 능력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켜 뭘 어쩌자는 걸까? 그렇게 해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까? 이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인가?”
“‘인터넷 패러독스’(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사용한 인터넷이 오히려 개인의 고립을 촉진하는 문제)는 그 타당성 여부를 아직 그 누구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상호 보완적인 동시에 상승 효과를 낼 수 있게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그와 동시에 현실 세계의 문제를 인터넷의 문제로 착각할 수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인간관계가 피상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은 경제구조라든가 소비문화와 같은 전반적인 맥락에서도 살펴볼 일이지 인터넷에만 집중시켜 그걸 탐구하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인터넷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 이용 시간과 소득 수준 및 소비 행태와의 관계를 살펴보지 않고 조사 대상자의 인터넷 이용 시간만으로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평가하면 그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쇼핑 중독'과 '명품 신드롬'의 비밀
강 교수가 이번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 두 가지 주제 중 하나는 소비자본주의의 심화와 정체성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인터넷 사이버 사회로의 진입과 그것이 불러온 정치?경제?사회상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격렬한 속도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개인들의 삶의 문제이다.
소비자본주의의 심화와 정체성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은 바로 ‘쇼핑 중독’과 ‘명품 신드롬’이다. ‘쇼핑 중독’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종류의 전염병으로까지 불리는 어플루엔자(Affluenza)의 대표적인 증상인데, 어플루엔자는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만족시키기 불가능한 갈망의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보다 나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품’은 인류 역사 이래로 오래된 계급 차별화 역사의 맥을 잇는 현상이다. “비싸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은 아름답지 않”으며 라이프 스타일은 ‘계급’을 대체했다. “이제 사람들은 종교, 정치적 견해, 가치관 등이 아니라 사용하는 제품의 브랜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명품 소비에 더 열성적이다.
‘가상 판옵티곤’과 자발적 통제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중류층과 상류층은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중류층이 상류층을 쫓아가면 상류층은 기분 나쁘다며 다른 곳으로 숨는다. 오늘날 패션의 사이클이 빨라진 것도 이런 숨바꼭질 놀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류층은 중류층이 쫓아오면 숨어 버리고, 중류층이 상류층이 숨은 곳을 찾아내면 얼마 후 또다시 숨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본주의의 심화는 우리의 모든 의식을 공략의 대상으로 삼는 각종 마케팅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최근에는 마케팅 기법이 전자기술 및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수퍼판옵티콘(superpanopticon)' 혹은 ‘가상 판옵티콘(virtual panopticon)’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판옵티콘’은 ‘모두 본다’는 뜻으로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독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푸코는 바로 판옵티콘에서 ‘근대 권력의 전형’을 보았다. 가상 판옵티콘 체제하에서 사람들의 모든 소비행동은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라는 이름하에 구조적인 감시와 분석의 대상이 되는데, 마크 포스터는 이 체제의 특성을 “감시를 당하는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보 폭발'과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정체성 혁명’
인터넷은 그 짧은 역사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것이 가져올 ‘기이한’ 변화들은 아직 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자는 그 중 이미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모습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정보 폭발 혹은 정보의 과잉이 가져오는 관심의 빈곤이다. 이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정보 폭발’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데이비드 솅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풍부함에서 기인된 기억력 상실이라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의 초점은 더욱 좁아진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더 적게 안다. 이 악순환은 다른 지식 영역에 있는 사람들간의 분열을 촉진시킨다.”
이러한 분열의 문제는 사람들을 ‘외로운 분자들의 나라’로 인도하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는 물론 일상적 삶의 토대까지 뒤흔들고 있다. 근래에 일고 있는 ‘자살 신드롬’의 배경에 ‘외로운 분자’ 신드롬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둘째, “인터넷혁명은 기술혁명이 아니라 정체성 혁명이다”는 말처럼 인터넷은 정체성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사이버에고(cyberego)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인터넷이 자아 형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으로 인한 다중인격 덕분에 유연한 사고와 적응력 등 여러 긍정적인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비용 또한 치루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비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날의 세상에선 그 누구건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만드는 건 결코 해선 안 될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경제’가 삶의 격렬한 속도를 불러온다
셋째, 인터넷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서의 권력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가족과 학교에서의 권력관계 변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 붕괴, 전문직업인과 조직 내부에 대한 외부인의 도전 등을 들 수 있다. 인터넷으로 인한 이 같은 권력구조의 변화는 아직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많은 혼란과 더불어 시행착오를 낳게 될 것이다.
넷째, 갈수록 자본과 광고주들의 손에 이끌려가고 있는 ‘웹경제’ 혹은 ‘인터넷 경제’의 문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라우저와 함께 인터넷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포털 사이트들의 번영은 인터넷의 기업적 통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현재 인터넷의 최대 장점인 다양성과 탈중심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인터넷 경제’의 문제점은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만델이 지적한 ‘인터넷 공황’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만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터넷 공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비행기의 속도를 자동차의 속도만큼 줄일 수는 없다. 멈추는 것은 사라지고, 성장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이는 우리의 삶이 ‘인터넷 경제’의 탈(脫) 공황 생존 법칙에 휘말려들어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하게 빨라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특히 인터넷과 관계없이 오래 전부터 24시간 체제를 유지해온 한국에서는, 24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인터넷 시간’ 법칙이 지배하는 인터넷 경제하에서,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그만큼 삶이 더 피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을 예고하고 있다 할 것이다.
탁월한 대중문화비평가 강준만
강준만 교수가 대중문화서를 처음 낸 때는 1994년이었다. 당시 한샘출판사에서 낸 『대중문화의 겉과 속』은 99년에 완전개정판을 낼 때까지 대중문화서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강 교수는 완전개정판을 내기 전에도 『고독한 대중』, 『TV를 위한 변명』, 『우리 대중문화 길찾기』 등 여러 권의 대중문화서를 출간했다.
99년에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발표한 『대중문화의 겉과 속』완전개정판은 강 교수가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탁월한 대중문화비평가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당시 강 교수는 완전개정판을 통해 대중문화에 있어 청소년들이 차지하는 위상, 청소년들의 스타 숭배 현상과 스타 시스템, 텔레비전이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 광고의 대중문화 지배 시스템, 대중문화로 편입된 인쇄매체의 변화상, 소비 사회 대중들의 소외 현상 등을 강력한 흡인력으로 짚어냄으로써 대중문화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을 알기 쉽게 보여주었다.
강준만 교수의 이러한 대중문화비평가로서의 탁월한 안목에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일반 독자들이었다. 비록 언론에서는 침묵을 지켰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문화의 겉과 속』완전개정판을 찾는 독자들의 손길은 별 가감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99년에 완전개정판을 내면서 강 교수가 지적했듯이 “대중문화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대중문화를 다룬 책이 5년 묵었다면 그건 역사책이다.” 그런데 99년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됐던 대중문화는, 요 몇 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급속히 인터넷 사이버 사회로 진입하고 휴대폰이 ‘종합가전기기’로 진화하면서, 그 폭과 변화 속도에 있어 웬만한 노력으로는 그 형체마저 파악하기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 이번 『대중문화의 겉과 속 2』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겉과 속 2』는 99년에 냈던 책의 후속편이면서도 개정판이 아닌 완전 별개의 책이다. 강 교수는 4년 만에 새로운 개정판을 내지 않고 별개의 책을 내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중문화의 확산 현상 때문이다. 전 사회의 ‘대중문화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중문화는 전반적인 소비문화 및 사이버 문화와 결합하면서 그 영역을 크게 넓혀 왔다. 따라서 그만큼 다뤄야 할 주제들이 많아진 탓에 한 권으로 소화하긴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