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콘이란 무엇인가?>
파레콘은 ‘참여경제(학)’를 일컫는 말로써 공평성,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적 균형 등의 기본적 가치들에 기초해 경제정의를 구현하고 제도적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경제체제 이론이다.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 참여적 경제주체로서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 새로운 노동 분담체계(균형적 직군)와 노력과 희생에 근거한 보상체계, 참여적 계획을 통한 대안적 할당제도 등을 주요 근간으로 삼는 참여경제는 자본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대안들(중앙계획사회주의, 시장사회주의 등)까지도 모두 거부하는 포괄적 대안의 의미로 주목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한때 각광을 받기도 했던 '현실사회주의'가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지적 허탈감을 맛보았다. 이는 그 말썽 많은 '현실사회주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견제할 만한 유력한 이념 또는 체제가 무너진 데 따른 실망감 때문이었다. 파레콘, 즉 참여경제는 그러한 배경 속에서 저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10여 년에 걸쳐 공동 개발되었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써 앞으로도 계속 보완되어 나갈 새로운 경제적 비전이다.
<파레콘 출간의 의미>
《파레콘》은 세계화, 더 정확하게는 자본주의적 또는 대기업 위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형태의 세계화는 이미 강한 자들을 더 강하게 만들고, 이미 부자인 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 뿐이다. 그 바탕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행위자들 사이에 적대감을 야기하고 연대를 파괴하며, 공공재를 경시하고, 문화적 가치들을 획일화시킨다. 또한, 노동자, 소비자, 농부, 빈자 등 권리가 박탈된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치와 대기업 엘리트들의 이익만을 도모할 뿐이다. 파레콘의 저자는 이러한 구조적, 의도적 모순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아울러 새로운 국제적 규범과 제도를 수립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의 정의를 구현하자고 주장한다. 예컨대, IMF 대신 국제자산기관(IAA), 세계은행 대신 세계투자지원기관(GIAA), WTO 대신 세계무역기관(WTA)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세계화는 국가적 차원의 변혁을 요구한다. 새로운 제도, 새로운 지도적 규범과 의의, 새로운 경제 논리를 제공하는 파레콘은 진보를 추종하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정의를 위한 지난 수백 년 동안의 투쟁 역사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참여경제 ‘파레콘’의 요체>
파레콘의 핵심적인 제도적, 조직적 구성요소는 크게 다음 6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1.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
구체적인 경제체제하의 제도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비소유를 구분함으로써 구성원들 가운데 일부는 위에 위치시키고, 일부는 아래에 위치시켜 계급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공평성, 연대, 다양성, 영향력의 적절한 배분, 무계급성을 강조하고 있는 파레콘에서는 그러한 구분과 차별을 모두 배제한다.
어느 누구도 생산수단의 소유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경제?사회적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소득을 얻어서도 안 되며, 아울러 어느 누구의 소득도 생산수단의 소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2. 일련의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
파레콘의 핵심적 경제주체는 노동자와 소비자로 구성되어 있는 단위별 평의회다. 평의회를 통해 모든 소비자와 노동자는 질적 정보를 공유하고, 구성원들의 자율적 참여를 바탕으로 무엇을, 얼마만큼 어떠한 도구와 방법을 이용해서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한다.
평의회의 정책결정에 관한 절차들은 제도적으로 예단되지 않는다. 즉 다수결제나 합의제 또는 여타의 특정한 절차가 강요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정책이 구성원 개개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상정하고 그 크기에 비례하여 결정권을 부여한다. 즉 어떤 정책이 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정책의 결정권도 그만큼 커지는 비례적 결정권을 채택한다. 따라서 노동자와 소비자는 평의회 안에서 모든 정책 결정권을 동등하게 행사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3. 위계적 조직이 아닌 균형적 직군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업무 분담은 계급구분을 강요하는 위계적 분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파레콘의 노동자들은 누구나 한 작업장 안에서 몇 가지 이상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이 직무들은 상대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업무와 단순한 업무로 교차하여 구성된다. 이러한 일련의 직무 구성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의 업무수행에 있어 만족도나 기여도, 노동가치, 보상 등이 평균화된다. 이런 균형적 직군제도를 통해 직장의 정책 결정에 있어 모든 노동자들이 동등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된다. 파레콘의 ‘균형적 직군’은 노동이 제공하는 ‘권한부여 효과’와 관련하여 누구도 시종일관 혜택을 누리지 않도록 하여 계급구분을 완전히 철폐하는 데 목적이 있다.
4. 재산과 권력 또는 산출에 대한 보상이 아닌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
파레콘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오래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지에 따라서만 보상받을 수 있다. 더 많은 생산도구나 더 많은 기술 또는 선천적으로 더 많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보상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권력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은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보상의 크기는 오직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했는가, 즉 노고(勞苦)의 정도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보상방식이며,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5. 시장이나 중앙집권적 계획이 아닌 참여계획을 통한 할당
특정한 재화가 얼마나 생산되고, 그것이 상이한 이용자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가 하는 할당의 문제는 경제활동에 있어 가장 핵심적 사안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주로 경쟁적 매매행위를 통해 형성된 가격에 의해 할당이 이루어지고, 중앙집권적 계획사회주의에서는 질적 정보의 획득이 용이한 소수의 계획가집단들에 의해 결정된다. 두 가지 할당체계 모두 대다수의 소비자와 노동자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소수 자본가와 계획가집단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고 이는 심각한 계급구분을 초래하여 할당체계 자체를 왜곡시킨다.
파렌콘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모든 할당체계를 거부한다. 대신 소비자 평의회와 노동자 평의회 안에서 경제활동에 관련된 모든 정보의 공유와 구성원 간의 상호 연대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재화의 수요와 공급을 산정한다. 즉, 모든 경제활동의 주체가 직접 참여한 참여적 계획을 통해 할당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참여적 계획은 단위별 평의회의 수많은 검증과 수정을 거쳐 확정되게 된다. 참여적 계획을 통한 파레콘의 할당 체계는 진정한 사회적 기회비용이 진정한 한계수익과 같아질 때까지 재화가 생산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6. 계급 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파레콘의 모든 이념과 제도적 장치는 구성원 간의 차별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계급에 의한 지배구조를 배제시킨다. 소비자와 노동자 개개인은 단위별 평의회를 통해 자신의 소비와 생산을 스스로 관리하고 책임지며, 모든 정책결정에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비례적 결정권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 어떠한 외부적 압력이나 차별은 개입되지 않으며, 구성원 간의 호혜적인 유대관계를 통한 합의와 발전적 비전만이 제시된다. 즉 빈곤이 아닌 평등의 세계화, 탐욕이 아닌 연대의 세계화, 순응주의가 아닌 다양성의 세계화, 예속이 아닌 민주주의의 세계화, 강탈이 아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세계화의 가장 기초적인 근간이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