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잘 찍은 사진’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테마를 정해 꾸준히 사진을 찍다 보면 세상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바야흐로 ‘출사의 계절’이 왔다. 주말만 되면,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어디로든 소풍을 떠나고 싶어지는 요즘, 이럴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게다가 요즘은 ‘전 국민 사진가 시대’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생활사진가들이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고 있고, 그 중 많은 이들은 프로 사진가 못지않은 장비와 실력을 뽐내며 출사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폭풍과도 같은 사진의 유행 속에서 많은 생활사진가들에게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 사진 실력이 늘어난다고 해도,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활사진가들은 ‘한 장의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초점이 잘 맞고 색이 좋아 보이는, 소위 말하는 ‘쨍한 사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대규모 사진 커뮤니티의 첫 화면에 걸리면, 무비판적으로 좋은 사진이라고 믿어 버린다. 혹은 유명한 사진가들이 찍었다고 하면 무조건 좋다고 인정한다. 결국 생활사진가들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그러나 사실 ‘쨍한 사진’은 날씨 좋은 날,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모델을 앞에 두고 있다면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혹은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어쩌다 우연히 건질 수도 있다.
어떤 사진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이 다 함께 경치 좋은 곳에 출사를 나가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들을 모두 모아 놓고 각자 자신의 사진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때, 비슷하기만 한 수많은 사진 속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찾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자신도 알아보지 못한다니! ‘나만의 특별한 사진’이 아닌 그저 ‘좋아 보이기만 한’ 사진 찍기를 해왔으니, 생활사진가들의 원인모를 허전함은 더해만 간다. 이런 시점에서 생활사진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테마 사진’이다.
‘좋은 사진’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테마가 있는 사진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테마를 풀어 나갔으며, 어떻게 보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한 장의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공을 들이지 말고 테마를 정한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 7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생활사진가들의 ‘사진 선생님’ 곽윤섭 기자
사진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중 생활사진가와 가장 빈번하게 소통한 사람으로 『이제는 테마다』의 저자 곽윤섭 기자를 꼽을 수 있다. 곽윤섭 기자는 한겨레신문사의 사진기자다. 동시에 10년이 넘게 ‘곽윤섭 기자의 사진클리닉’에서 수많은 생활사진가들과 만나 직접 부딪히고 함께 고민하면서, 1만 장이 넘는 생활사진가들의 사진에 대해 비평과 조언을 하고 있는 ‘사진 선생님’이다. 생활사진가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곽윤섭 기자는 요즘 생활사진가들의 고민을 반영해 『이제는 테마다』를 내놓았다. 이 책은 여느 책들처럼 단순하게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총 28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테마의 의미와, 테마를 사진에 담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곽윤섭 기자 특유의 솔직한 문장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그저 멋진 사진’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편안하면서도 메시지와 이야기가 있는 곽윤섭 기자의 사진이 더해져 우리를 자연스럽게 테마 사진의 세계로 이끈다.
테마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28개의 강의를 기본 훈련, 감각 테마 훈련, 상징 테마 훈련, 일상 테마 훈련, 추상 테마 훈련으로 구분했다. 이 구분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다. 독자들이 더 쉽게 테마 사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 비슷한 테마별로 묶은 것이다.
기본 훈련에서는 사진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매우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이 요소들을 사진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요소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테마 사진을 찍기 위해 소화해야 할 하나의 훈련 과정으로 여긴다. 이 기본 요소들을 이해하고 사진 속에 담으면 주목도가 높아지며 재치 있는 사진 찍기가 되며, 사진에 깊이가 더해진다고 말한다.
※<기본 훈련>에서는 ‘선, 면, 대비, 패턴, 프레임 속 프레임, 전체 대신 부분’을 제시한다.
밤 열한 시가 넘어가면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저녁 굶은 사람 클릭 금지’라는 제목으로 사진들이 앞다투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사진들은 대부분 음식 사진들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족발, 팔팔 끓는 부대찌개, 고소한 크림 스파게티……. 유독 늦은 밤이 되어서야 올라오기 시작하는 음식 사진들은 한밤의 식욕을 자극하고, 언제나 다이어트 최대의 적이 된다. 사진에는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차단되지만, 사진을 통해서 충분히 그 외의 감각, 즉 청각과 촉각, 미각과 후각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각 테마 훈련을 통해 ‘사진에는 시각만을 담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사진에 테마를 담아낼 수 있다.
※<감각 테마 훈련>에서는 ‘공감각이란 무엇인가, 청각, 촉각, 미각과 후각’을 제시한다.
월드컵 시즌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2002년 광화문 앞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국가대표 축구단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였던 수천, 수만 명의 시민들은 모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냈던 빨강의 물결! 우리나라의 축구 응원단은 그 이름부터 ‘붉은 악마’다. 응원 도구 역시 빨간색이다. ‘Be the Reds’라는 응원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빨간색은 그 자체로 열정적인 존재로 비친다. 붉은색은 다른 색보다 눈에 잘 띄고, 자극성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에 정열과 흥분의 상징이 된다. 이 붉은 티셔츠는 이제 무료했던 일상을 잊고 소리쳤던 순간의 기억, 모두 함께 즐겼던 축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빨간색에 정치적인 관념을 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국민들의 인식을 단번에 깨뜨렸다. 붉은 응원의 물결을 찍으면, 우리는 정열과 흥분의 메시지를 사진에 심을 수 있다. 상징 테마 훈련을 통해 상징의 사례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사진 속에 상징이 전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다.
※<상징 테마 훈련>에서는 ‘상징, 파랑, 빨강, 노랑, 보라와 회색’을 제시한다.
한때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의 발에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수많은 상처와 굳은살이 가득하다. 세계적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노고를 상처투성이 발에서 그대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체는 삶의 자세를 표현해 낸다고 한다. 일상 테마 훈련에서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테마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사진가의 생각을 넓히고 시야를 확장하여, 일상 테마를 각자 기발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일상 테마 훈련>에서는 ‘길, 벽, 의자, 자전거, 고양이, 얼굴, 손’을 일상 테마의 예로 제시한다.
평생을 함께한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300만 관객의 가슴을 울렸던 독립영화 <워낭소리>.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은, 늙은 소가 할아버지를 태운 달구지를 끌며 논둑을 걷는 장면이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요한 가운데 소의 턱 밑에 늘여져 있는 워낭 소리만 울려 퍼진다. 어떤 대사나 암시가 없음에도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둘 사이의 믿음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생살이의 숭고함을 전해 받는다. 믿음, 숭고함과 같은 추상적인 느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 이것을 담는 것이 가능할까? 추상 테마 훈련에서는 추상적인 느낌을 놓고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하면 실마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사진가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추상 테마 훈련>에서는 ‘추상이란 무엇인가, 계절, 고독, 느림 그리고 빠름, 상승’을 추상 테마의 예로 제시한다.
테마 사진은 대가들의 전유물이다?!
이 책은 먼저, ‘더 이상은 남들과 똑같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나만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생활사진가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였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생활사진가들이 유명한 프로 사진가의 사진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이러한 강의는 대체로 프로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을 보고, 그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수강생들의 사진과 관점도 프로 사진가의 그것을 이리저리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프로 사진가의 일방적인 사진 강의를 수강하려는 생활사진가들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오히려 소규모 동호회로 모여 서로의 사진을 평가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활사진가들에게 사진 찍는 이의 관점과 메시지를 담은 ‘테마 사진’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동안 테마 사진은 유명한 사진작가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엘리엇 어윗Elliot Erwit, 마틴 파Martin Parr 등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MAGNUM의 쟁쟁한 사진가들의 테마 사진 작업처럼 말이다. 그러나 테마 사진은 사진가의 관점과 메시지를 사진에 담는 것이면 충분하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생활사진가들에게 테마 사진을 권하지 않았다. 생활사진가들 가까이에서 그들과 충분히 소통해 온 곽윤섭이기에 가능한 제안이다.
테마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작가들만의 것도 아닙니다. 집에서 가족을 찍든 공원이나 거리에서 경치를 찍든 테마를 잡아서 작업해 나가야 사진이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여러분에게 사진에 의미를 불어 넣는 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만의 테마를 갖고 사진을 찍어 사진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7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어느새 나만의 테마 사진이 만들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테마 강의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테마 사진이 만들어진다. 각 테마 강의가 끝나는 부분에 마련된 <찍어 봅시다>는 본문의 내용을 넘어서서,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테마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미션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직접 사진을 찍기 위한 행동을 제시하기도 하고, 사고의 발상 혹은 확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사진 작업을 이끌어 낼 수 있게 하기 위한 저자의 배려다.
또한 각 훈련이 끝나는 부분의 <심화강의>는, 각 훈련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추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해설로, 독자가 얽매이지 않고 더욱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
각 테마 강의의 도입 부분에는 그 테마에 해당하는 문구가 제시되어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 등 사진 대가들의 명언에서부터, 이상의 <산촌여정> 등 문학 속 문장까지, 테마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문구들은 읽는 재미를 쏠쏠히 주는 동시에 테마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사진은 풍부한 설명을 위해 포함된 다른 작가의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자 본인이 찍은 것이다. 보도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는다고 평가받는 곽윤섭 기자가 그간의 사진 작업을 테마별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제는 사진에도 테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