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월든』, 첨단 산업사회에서 생태주의를 실천한다는 것
19세기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숲으로 들어간 것처럼 20세기에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 숲으로 들어간 것처럼, 저자 에르베 르네 마르탱은 풍요롭고 자유로운 프랑스 사회가 제공하는 편리를 모두 물리치고 피레네 산맥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곳 피레네 산맥 오드 고원지대에서 저자는 소로와 니어링 부부가 그랬듯이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실천한다. 인류 역사상 더 많을 것을 누린 적 없는 21세기 최첨단 산업사회에 저자는 무엇 때문에 산으로 들어간 것일까? 『흙과 밀짚으로 지은 집』은 저자의 고민과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정리한 책으로, 특히 흙과 밀짚으로 집을 짓는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현대의 산업화된 사회구조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구실을 내세우지만 사실 인간을 궁지로 내몰 뿐이고, 공권력은 부엌의 콘센트 개수까지 참견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시장경제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21세기 도시 문명은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물질세계를 안겨주었지만, 그 대가로 유일한 터전인 지구는 파멸로 치닫는 형국이다. 현실은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은폐되기 일쑤다. 산업화된 사회구조는 계속해서 소비하라고만 명령하고 인간 소외와 생태계 파괴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난국을 극복하려면 우선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 결국, 소외에서 완전하게 해방되는 길은 수공업 시대로 돌아가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오늘날 동료의 뒤통수를 치는 일에 쓰이던 손을 이제는 다른 곳에 써보는 것은 어떨까.(본문 72쪽)
저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포기했지만 지구를 살리는 작은 실천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성장은 외부 물질세계와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산속에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물질세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저자의 문제의식은 소비를 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세상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체제가 아닌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페달을 쉬지 않고 밟아야 하는 자전거처럼 자본주의 체제 또한 소비와 경제성장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사람, 경제성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시대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과시하기 위해 또는 공허함을 잊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비한다.
그렇다면 체제가 유혹하는 것처럼 더 많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물질세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욕망에 더욱 종속되기 때문에 진정한 ‘성장’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에 중독된 사람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일하지만 산업화된 사회구조는 인간 소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삶을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산업사회의 혜택만 취하고 있으며, 생산과 소비로 분명히 양분된 ‘정신분열증적인 사회’에 종속되어 있다.
- 이제는 자연이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위적으로 우리에게 극단적인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즉,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벨소리에 무감각해지기, 유독 성분이 들어 있는 공기 마시기, 교통 혼잡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 감당하기, 유해한 화학 성분이 잔뜩 들어 있는 음식물 먹기, 전자파에 노출되기, 외부에 끊임없이 통제되기 등등. 우리는 독약을 한 숟갈씩 삼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항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독약을 요청할수록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는 커질 뿐이다.(본문 51쪽)
그러는 사이에 생명의 모태인 지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런 지구의 위기는 저자로 하여금 과잉 소비 사회에 저항하게끔 만들었다.
- 기차는 최고 속도로 절벽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를 알아챈 사람들만이라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각심을 느껴야만 한다.(본문 237쪽)
- 활발한 경제활동이 거꾸로 인류가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무대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산업 활동으로 생산해낸 제품을 소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대안들을 점점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역설적인 세상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본문 20쪽)
단순한 삶을 위해 맞서야 했던 복잡한 규제들
- 내가 쓴 책 『악마를 만드는 공장』의 마지막 장을 보면, 주인공이 목수 일을 배우는 부분이 나온다. 언행일치를 보여주려는 의미도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이 걸어간 길을 따라 내 집을 직접 짓기로 결심했다. 주인공은 피레네 산맥의 동부 지역인 오드 고지대에 있는 계곡으로 나를 인도했다.(본문 72쪽)
저자는 아름다운 프로방스 생활을 정리하고 피레네 산맥 오드 고원지대로 터전을 옮긴다. 친구에게 캠핑카를 빌려 지내며 흙과 밀짚과 쇠똥으로 친환경적인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엿새를, 하루에 열두 시간을 집을 짓는 데 쓴다. 그렇게 2년 동안 집을 짓는다. 고된 노동에 녹초가 되어 흐느적거릴 정도였지만 자신의 생체 시계에 온전히 순응하며 살 수 있었다. 저자는 마치 교황이 된 것처럼 행복해했다.
- 이곳은 내가 누리는 낮과 밤을 채우기에 알맞은 곳이다. 과거의 나를 회상해보면, 걸음도 빨랐고 차도 빨리 몰았다. 게다가 책도 빨리 읽었고, 사랑도 급하게 했다. …… 지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비로소 느림의 미학을 배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깨달았던 것들을 몸으로 느꼈다.(본문 266쪽)
그러나 집을 짓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규격화된 건축물이 아닌 흙과 밀짚으로 짓는 집이었으므로 믿고 맡길 건축업자를 선택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도무지 진척되지 않는 작업은 의욕을 꺾어놓기 일쑤였고, 그 와중 애써 쌓은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오드 지방의 돌풍도 골칫덩어리였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관공서였다.
- 처음에는 민원인의 요구를 구청에서 들어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함정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민원인이 물어보면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 우리는 빗물을 저장하고 땅 밑에 있는 수맥을 찾는 등 사전 준비를 했지만 구청이 실제로 도와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본문 100쪽)
전기를 공급받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 전력공사의 규정 ‘NFC 15-100’을 보면, 한 가정에 설치되는 최소 콘센트 개수는 스물일곱 개로 정해져 있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콩수엘(CONSUEL, 국립전기사용안전관리협회)에서 전기 공급을 허가하지 않는다. 열두 개밖에 요청하지 않은 저자는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필요 없는 콘센트를 설치하고 쓰지 않을 가전제품을 사야 하는 처지로 몰린다(본문 139쪽). 개인을 옭아매는 규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사과만으로 주스를 만들었는데 협동조합에서는 유럽연합 규정을 들어 ‘천연 주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지 못하게 막는다(본문 172쪽). 아이를 낳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낳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공무원은 바로 검사에게 신고했다. 이윽고 경찰이 출동해 남자네 집을 수색했다. 경찰은 아내와 아기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시민이 지켜야 할 질서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갓난아기는 온갖 예방접종을 맞아야 했지만, 부모는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다.(본문 298쪽)
심지어 에리크 프티오라는 사람은 벌까지 받았다. 그는 약초 추출물로 인체에 무해한 농약을 만들어 판매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형과 벌금 7만 5000유로를 선고받았다(본문 278쪽). 저자는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삶이 자유주의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쉽지 않은 일임을 고발한다.
마르탱의 용감한 실천
- 인류가 자연과 멀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중심에서 떨어져나가고 있다. 동시에 자연의 구심력은 인류에게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회귀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반동에 놓이도록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좌로도 우로도 다 움직일 수 있다. …… 어쨌거나 자연으로 회귀하고 환경오염에 투쟁하는 것은 인류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본문 161쪽)
저자 에르베 르네 마르탱은 멀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한 장 자크 루소를, 가깝게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스코트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흙과 밀짚으로 지은 집』은 21세기판 『월든』과 『조화로운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21세기, 그만큼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노동에 얽매이게 된 21세기이기 때문에 그 구조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더 용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간섭이라는 울타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현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동안 감내한 고통보다 새롭게 직면하게 될 어려움이 더 가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저자의 실천은 용감하고도 단호하다.
- 생활 방식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하는 데는 깨달음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서 생활 방식과 당신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이 일치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로 이 길의 입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포기했지만,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을 기다리며 이 길을 단호하게 걸어갈 생각이다.(본문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