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 읽은이의 말
“그동안 낭송할 기회가 있어 몇 번 해보니 낭송이야말로 이치를 깨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물론 외우는 과정이 좀 힘들긴 하다. 오히려 첫날엔 잘 외워진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나면 뒤죽박죽 섞이고 더러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도 있다. 그래도 다시 떠올리며 외우고, 잊어버리고 다시 외우기를 사나흘 반복하면 어느덧 입에서 술술 나온다. 조사 하나, 어미 하나까지도 그대로 외워 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하!” 하고 감이 온다.
이렇게 해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잊어먹는다. 하지만 지혜로운 소리에는 기운이 있다. 한의학에 따르면 목소리는 오장육부 중 신장이 주관하고 신장은 뼈와 연결되어 있다. 낭송을 하면 내용은 사라져도 소리의 기운은 뼈에, 근육에 새겨진다. 이는 무의식에 새겨진다는 말이다. 그랬다가 어느 절실한 순간이 되면 다시 살아나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맺어 주고 말하는 자신을 치유한다.
흔히들 제주 사투리는 외국어 같다고 한다. 다른 지역 말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낯설어 한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에서
제주 설화들을 엮으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들려주었더니 재미있다고 야단이었다. 제주 사투리가 정겹다며 금방 따라했고 그 어색하고 서투른 억양 때문에 한바탕 웃곤 했다. 제주 사람이 따로 없었다. 공부방에서든 산책할 때든 밥을 먹을 때든 언제 어디서나 말할 수 있었다. 서울과 지방, 중심과 주변, 표준어와 사투리,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장이었다.”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이번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제주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1월쯤인 것 같다. 우응순 선생님께서 제주도 설화를 풀어 보는 작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제주도 토박이니까 사투리를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해서 권하시는 것 같았다. 사투리라면 알아듣는 데 문제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자리에서 선뜻 응낙했다. 하지만 꼭 사투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설화 자체가 나에겐 낯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주대학 국문과에서 제주신화나 설화를 연구하고 발표하고 행사를 집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제주대에 갔으면 이런 걸 공부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설화라면 나도 친근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자주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밤에 잠잘 때면 나를 꼭 안고 여기저기를 만지면서 설문대 할망이야기와 수수께끼를 참 많이 말씀하셨다. 알고 보면 수수께끼의 답이 너무 시시한 것이라서 어머니도 히익하고 어린애처럼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마흔셋에 낳은 막내이고 할머니와도 살았으니까 오리지널 사투리를 많이 듣고 쓰며 자란 셈이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인 어린 시절, 밤이면 멀리서 들려오는 우상우상 굿소리를 종종 들었고 또 우리 집은 오빠가 10년 이상 병을 앓았기 때문 큰 굿을 서너 번 치렀던 기억이 있다. 교회와 순경이 와서 굿판을 엎었던 적도 있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냇가에 있는 큰 나무에 오색 천을 걸어 놓고 무당이 굿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것을 ‘당’이라고 하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딸이 세 살이었을 때 홍역을 앓았는데 목숨이 위험했었다.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친정어머니는 옆집 삼촌을 데려왔고 이를 본 삼촌은 이 지경이 되도록 병원만 믿었느냐며 당장 심방(무당)을 불러왔다. 교회를 믿는 남편이 직장에 간 틈을 타서 뜨거운 밥을 해 놓고 무조건 빌고 또 빌었다. 신기하게도 그날 애기는 쏘근쏘근 잠을 자고 서서히 말끔히 낳았다. 그로부터 그 심방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설화를 푼 것은 이처럼 오랜 세월과 어머니, 할머니, 옆집 삼촌, 심방할머니 등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우응순 선생님에게 연결되지 않았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또 내가 제주대를 가지 않았는데도 먼 서울에서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또 무슨 인연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2.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각 지역의 사투리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일 텐데요. 사투리로 옛이야기들을 낭송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또 사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요?
표준어를 쓸 때 지방 사람들은 언어의 빈곤을 느낄 때가 있다. 사투리에는 대상을 표현함에 생생함과 딱 들어맞는 절묘함이 있다. 예를 들어서 백일을 지나 이제 막 젖살이 올라 통통해지고 방긋방긋 웃는 아가를 제주인들은 애기가 ‘아깝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이 말을 어색해 한다. ‘예쁘다’고 해야 맞다고 한다. 나는 ‘예쁘다’는 말로는 아가의 예쁨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이, 예뻐’ 보다는 ‘아이고, 아깝다’ 해야 성에 찬다.
또한 사투리는 개인에 따라서도 독특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아방’은 보통 비속어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친근한 말이기도 하다. 또 개인에 따라서도 쓰임이 다르다. 우리 딸은 아빠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빠’라고 부르지만 기분이 좋은 것 같으면 독특한 뉘앙스를 섞어 ‘아방’이라고 한다. 그러면 훨씬 친근감이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는 개인 간, 지역 간의 짙은 감정이 배어 있어 소통이 잘 되고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타지방에 대해 배타적이 될 우려는 없다. 자신들의 말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다른 지역 말들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일부러 쓰려고 한 것이 아니고 태어나 보니 쓰고 있는 말이라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진 것이므로 좋고 나쁨이나 우열로 평가할 우려가 없다. 오히려 그 지역 말의 매력을 실감하며 존중하고 재미있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차이와 공존을 가능케 하는 풍요로운 문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3.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제주도?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창세 설화가 다른 지역에는 없고 제주에만 있다. 또 여신 창세 설화로도 유일하다. 설문대 할망이 제주만을 만든 게 아니고 우주까지 열었다는 창세 이야기가 육지부가 아닌 조그만 섬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점이 특이하다.
요즘 들어 제주 섬은 작은 섬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서울보다 크다. 섬 가운데 감히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은 한라산이 버티어서 온갖 신비로운 형상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사방으로 수많은 깊은 골짜기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 밑으로 초원이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우뚝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을 보노라면 제주가 우주의 전부라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더구나 육지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제주는 망망대해에 홀로 있고 해안가는 절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바다는 거칠어 배를 띄우기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전기가 없어 밤에는 섬의 신비가 더 엄습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창세설화를 만들어 냈음 직하다.
제주는 12세기 고려 숙종 무렵에야 고려로 편입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그전까지는 국가를 이루지 않고 살아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역사가 훨씬 길다. 유교 문화가 비교적 늦게 들어왔기 때문 오랜 모계사회의 흔적이 설문대 할망의 창세설화로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주몽신화나 박혁거세 설화 같은 남성중심의 건국설화가 없는 게 아닌가 한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주인들이 명주 1필이 부족해서 설문대 할망의 속옷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할망이 육지로 가는 다리를 놓지 않았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을 이런 멋진 문학적 서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제주인들의 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었다.
신과 인간이 거래한다는 점도 흥미롭고 다리를 못 놓은 것이 아니라 놓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설문대 할망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우리가 태어나는 곳도 그중 하나이다. 그곳이 척박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인간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말해 주는 건 아닐까? 제주도민 모두가 힘을 합쳐 명주를 짜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명주 1필의 부족이 오히려 하나를 더 생산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 건 아닐까?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죽지 않기 위해 셰헤라자데가 하나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처럼 제주인도 삶이 절박했기에 길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삶이 절박해야 말도 글쓰기도 풍성해지고 재미있게 다듬어진다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제주설화가 풍요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한 명주 한 필은 결핍이 아니요, 100필을 채우기 위해 완성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생산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무형의 유산이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네스코는 2010년 12월 제주어를 소멸위기의 언어로 등록했다. 소멸위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이에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도정의 후원 아래 제주 전역에서 제주어를 채록하고 기록한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 8월 ’제주어연구소‘가 발족하기도 했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 문화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독특한 삶의 방식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삶의 다양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제주어 혹은 제주문화는 설화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서 기억하기 쉽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좋겠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짜여진 각 부에 따라 테마 여행을 해도 좋을 것이다. 가령 설문대 할망의 자취가 있는 곳만 가 본다든지, 제주신앙의 본거지인 당만을 골라서 가보든지, 물이 나왔던 샘을 찾아 가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