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브랜드’를 만든 오 시장 3년의 업무일지
지난 3년여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활동을 A부터 Z까지 낱낱이 담고 있는 『이노베이터 오세훈의 조용한 혁명』(김미라 지음,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이 출간되었다. 매스컴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소리 없이 큰일을 해내는 오 시장, 그가 공개적으로 재선에 도전할 의사를 밝힌 터라 임기 8개월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그의 생각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오 시장이 임기 동안 펼쳐온 핵심 사안들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은 오세훈 시장의 자서전이 아니다. 저자는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시절 진행자와 방송작가로 인연을 맺은 김미라 교수. 그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연설문을 맡았고, 시장 당선 후에 연설문 기획 비서관으로 서울시에 몸담으며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오 시장을 보좌해왔다. 마흔다섯에 천만 서울시민을 대표하게 된 젊은 시장이 복마전이라 불리는 서울시를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이노베이터가 되고자 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이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저자는 현재 본업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개장 일주일 만에 백만 명이 다녀간 오세훈의 히트작이라는 광화문광장부터 지난 17일 개장한 265만 강북 시민을 위한 초대형 공원인 ‘북서울 꿈의 숲’ 등 책에는 달라지고 있는 서울의 이모저모가 실려 있다.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272쪽 분량의 소프트한 책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서울시장의 솔직담백한 면모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짊어진 한 젊은 정치인의 냉정한 전망이 담겨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인간 오세훈’을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베스트드레서로도 뽑힌 적이 있는 오세훈 시장이 외국 방문 중에 낡은 양복바지가 터져 엉덩이가 드러날 뻔한 이야기, 버스로 출근하는 첫날 그를 알아보고 시민들이 쑥덕거려도 고개를 못 돌릴 만큼 부끄럼을 많이 타는 오 시장의 이야기 등을 측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들려준다.
시티 이노베이터 오세훈, Seoul에 Soul을 붙어넣다
“과연 임기 4년을 넘길 수 있을까?”
오세훈 시장이 사석에서 저자에게 밝힌 심경 고백이다. 민선 시장으로서 디자인, 문화, 창의 시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주력해온 그에게 “서울시장이 보이지 않는다”, “오세훈 브랜드가 없다” 말이 많았지만, 그것은 일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일한다는 원칙을 지켜온 그의 스타일일 뿐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호우로 안양천 제방이 유실되면서 양평동 일대가 침수되는 재해가 발생했다. 오 시장으로서는 취임 후 처음 치르는 호된 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덤프트럭으로 아무리 흙을 쏟아 붓고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책임질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때 이후 오늘 물러날지 내일 그만둘지 모르는 자리니 하루를 하더라도 원칙대로, 하는 것처럼 제대로 하고 나가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원칙대로 하자.” 그 원칙이 제대로 먹혔다.
가장 큰 변화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180도 달라지고 민원서비스가 진화한 것이다. 오 시장이 공직사회의 철밥통 신화를 깬 이른바 ‘3% 퇴출제’를 들고 나오자 서울시공무원노조가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에 들어갈 만큼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일 안 하는 공무원이 계속 월급 받고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걸 좋아할 리 없다는 원칙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와 더불어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시가 이룬 ‘청렴도 1위’라는 타이틀 역시 “업무에 관계된 사람과는 점심은 물론, 커피 한 잔도 마셔선 안 된다”는 오 시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이룬 승리다.
오세훈 시장은 또 일찍부터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론으로 이른바 ‘문화시정’ ‘컬처노믹스Culture+Economics’의 기치를 내걸고 스스로 문화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당장 모두가 동의하고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문화를 원천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만이 제조업 기반이 불과 13%, 서비스산업이 전체의 87%를 차지하는 서울이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오 시장에게는 일단 서울을 제대로 알려서 직접 와서 보도록 하면 관광객 1200만 시대도 가능하다는 비전이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오 시장과 서울시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2008년 11월 세계적 리서치 기관인 AC닐슨에 의뢰해 중국·일본·태국 현지인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개국 응답자 모두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로 서울을 1위로 꼽았다. 불과 몇 달 전인 5월 조사에서 중국에서는 4위를, 일본에서는 2위를 차지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이었다. 2008년 말, 일본 관광객이 물밀듯 밀려든 것을 언론에서는 ‘엔고 효과’라고 표현했지만 알고 보면 서울시의 공도 적지 않았다.
‘창의 DNA’를 이끈 조용하지만 과감한 혁명
오세훈 시장이 시장에 취임하기 전 미스터리 쇼퍼가 되어 신분을 숨기고 서울시에 민원 전화를 해봤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아니나 다를까 성질 급한 사람은 제풀에 꺾여 끊어버릴 정도로 무려 1분 반 동안 뭐는 1번, 뭐는 2번 같은 기계음만 흘러 나왔다. 그나마 어렵게 직원과 연결이 됐는데, 이번엔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핑퐁식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떠넘기더란다. 그때 오 시장은 취임하면 시민들의 편의와 행정서비스에 대한 만족과 가장 직결되는 민원서비스부터 획기적으로 디자인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15초 안에 무조건 사람 목소리가 들리고, 무슨 질문이든 2분 안에 시민들이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A부터 Z까지 다 바꾸세요.”
이렇게 해서 ‘120다산콜센터’가 생겼다. 2007년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되며, 하루 2만 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온다. 한 주간지 기자는 오 시장처럼 일종의 미스터리 쇼퍼가 되어 ‘120다산콜센터’에 직접 전화를 해보고 “서울시에 전화를 해봐라. 삼성전자 AS센터에 전화를 한 줄 알았다”는 기사를 썼다. 삼성전자 AS센터의 친절한 응대와 신속한 처리방식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극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전임 이명박 시장이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사업을 통해 유력한 대선주자로 비상하면서 이른바 ‘청계천 신드롬’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그때, 세간의 관전 포인트는 새로운 시장이 무엇으로 전임 시장과 차별화를 하며 MB 브랜드를 뛰어넘을 것인가에 모아졌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임기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에 현란한 구호와 정책을 쏟아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차분히 원칙을 가지고 10년, 20년 후 시민의 행복과 서울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 기초부터 시스템을 바꾸고 구축해나가고자 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창의 시정’.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 직원들에게 ‘창의 시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시민 입장에서 생각하기’ 단 열 글자로 명확하게 대답을 할 만큼 ‘창의 시정’은 서울시 조직의 유전자로 체화됐다.
지금 조용한 행정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오세훈 시장은 서울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 조직문화를 통째로 바꾸고,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초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조용하지만 과감한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의 이런 노력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네버 엔딩 스토리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