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양들의 침묵 - 스크래피
18세기 전 유럽에는 양의 몹쓸 질병인 스크래피가 확산된다. 스크래피란 양의 뇌질환으로 이 병에 걸린 양들은 몸을 긁어대고, 바보처럼 변하면서,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다가 결국에는 죽었다. 이들 스크래피는 양의 품종을 개량시키기 위해 양의 동종교배를 시작한 이후 더욱 확산되었다. 목양 산업은 그 당시 유럽사회에서 중요한 경제적 근간이었기 때문에 스크래피에 대한 연구가 여러 곳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연구를 통해 알려진 것은 스크래피가 감염이 가능한 질병이라는 것(건강한 양에게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 조직을 주사하면 건강한 양이 스크래피에 걸린다), 스크래피의 잠복기가 길다는 것, 병원체가 그때까지 알려진 그 어떤 것보다도 작다는 것, 병원체가 각종 화학처리, 자외선에도 죽지 않는 감염력을 지닌다는 것 등이다. 심지어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를 말려 2년 동안 보관한 후에 다시 이 뇌를 건강한 양에게 주입했을 때도 건강한 양이 스크래피에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장 크로이츠펠트와 야코프
신경학자 크로이츠펠트는 퇴행성 신경질환을 앓은 한 여성 환자의 뇌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 환자의 뇌는 아무런 염증 없이 뇌가 손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염증없이 회백질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은 이전에 보고된 적이 없었다. 우리의 몸은 외부의 병원체가 침입했다고 판단하면 면역반응을 일으켜 병원체와 전투를 벌이고 이로 인해 염증이 생기는데, 이 경우는 염증 없이 아군이 몰살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신경학자 야코프도 뇌에 아무런 염증도 없이 뇌조직과 신경조직이 손상되는 질병을 발견하였다. 이 질병에 걸리면 근육운동, 언어, 감정 표현에 문제가 생기며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와 기억 쇠퇴 증상을 보이다가 결국 몸이 완전히 마비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망에 이른다. 발터 스필마이어는 이 두 명의 학자가 발견한 질병은 동일한 질병이라고 보고 이 질병을 ‘크로이츠펠츠야코프병’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인 이 질병은 비교적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발병 평균연령은 58세였다.
3장 쿠루와 식인 습관
파푸아뉴기니 섬의 포레족에게 쿠루라는 이상한 질병이 번진다. 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보행에 장애를 겪다가 몸 떨림 현상을 보이고, 말더듬증이 심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음식을 넘길 수도 마실 수도 없게 되고, 결국에는 사망했다. 칼턴 가이듀섹, 지가스 등 과학자들이 이 쿠루를 질병으로 보면서 연구하기 전까지, 이 질병은 마법이나 악령에 의한 것이라고 여겨졌었다. 쿠루의 실마리는 인류학자 린덴바움과 글라스가 족내 식인풍습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그들에 따르면 포레족의 여성과 아이들은 고기가 귀해서 쿠루로 죽은 환자들의 뇌를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더욱이 호주 정부가 포레족의 식인 풍습을 금지하자 피해자들이 급격히 줄었던 것이다. 그러나 식인 풍습이 쿠루와 연관될 것이라는 추정은 추정이었을 뿐,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4장 실험실로 간 스크래피
스크래피는 잠복기가 길어서 양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 연구는 수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짧게는 8개월, 길게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스크래피 병원체를 실험쥐에 이식시키는 데 성공하자 실험실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에든버러의 모어던연구소를 이끌던 앨런 디킨슨 연구 팀은 스크래피 병원체의 유전적 병리학적 성격을 알아내는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 연구 팀은 각기 다른 양의 뇌 추출물을 실험쥐에 주입해서 잠복기와 증상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연구했으며, 적어도 여덟 가지의 스크래피 질병 계통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단일한 질병이라도 하더라도 증상이나 잠복기 등이 다르게 나타났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이 병원체의 유전자 구성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해준다고 생각했다. 또 이들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스크래피 병원체의 감염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뇌조직의 추출물을 희석하면 희석할수록 잠복 기간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조그만 숟가락 한 개 정도의 뇌조직 추출물을 147만 리터(올림픽 경기용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물의 양)에 희석해 건강한 쥐에 주입해도 스크래피에 걸렸다.
5장 불사조 스크래피
에든버러의 디킨슨 연구 팀은 10여 년간의 광범위한 스크래피 실험실 연구를 근거로 해서 ‘바이리노 이론’을 제안한다. 전통적인 바이러스와 달리 유전물질을 상대적으로 적게 지닌 스크래피 병원체는 숙주의 유전자가 만들어낸 단밸질로 자신을 둘러싸고 보호막을 형성해 면역 세포의 감시망을 뚫는다는 이론이었다. 한편 잉글랜드 콤튼의 동물질병연구소의 틱바 알퍼 연구 팀은 자외선 노출 실험을 수행한다. 특정한 파장의 자외선에 스크래피 병원체를 노출시켰을 때 병원체가 활동성을 잃는지의 여부를 실험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알려진 생명체는 강력한 자외선에 노출되면 모두 핵산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실험결과 스크래피 병원체는 아무리 강한 자외선에도 파괴되지 않았다. 이는 스크래피 병원체에 유전물질인 핵산이 없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실험 결과였다. 이에 이들 연구 팀은 에든버러의 디킨슨 팀과 전혀 다르게 “아마도 DNA를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구조의 병원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연구 팀의 주장은 유전학의 중심가설, 즉 핵산의 유전정보는 핵산에서 리보핵산으로 그리고 단백질로 전달된다는 중심가설을 뒤집는 주장이었다.
6장 첫 번째 노벨상 - 칼턴 가이듀섹
쿠루와 스크래피에 걸린 뇌가 유사하다는 것에 주목한 의학자 가이듀섹은 바이러스학자 조지프 기브스와 함께 쿠루 질환을 침팬지에 전이시켰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지, 그 질병의 형태는 어떠한지 확인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가이듀섹은 쿠루 환자의 뇌 샘플을 침팬지의 뇌에 직접 주사했다. 2년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침팬지 조지트는 어느날 쿠루 질환 환자들과 동일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실험은 쿠루가 동물에게 전이되는 전염성 질환이라는 것, 쿠루가 식인 습관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가이듀섹은 이 실험 후에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의 뇌 샘플을 침팬지에 주입하는 실험도 수행한다. 이 침팬지 또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걸렸다. 가이듀섹의 뛰어난 점은 스크래피와 쿠루,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을 한 데 묶었다는 점이었다. 즉 염증 없이 신경조직을 파괴하는 전염성 질환을 한 곳에 모아 하나의 분과로 통합하는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가이듀섹은 이 질병들을 ‘슬로 바이러스 질환’이라 분류했으며, 1976년 노벨의학상 선정위원회는 이 연구 업적을 높이 평가해 가이듀섹에게 노벨의학상을 수여했다.
7장 프리온 - 감염성 단백질
의학자 스탠리 프루지너는 스크래피 병원체의 구조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스크래피 연구에 뛰어든다. 프루지너는 반복적인 원심분리를 이용해 병원체를 분리하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분리된 병원체 샘플을 대상으로 화학반응 실험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화학반응 실험을 통해, 스크래피 병원체에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며, 핵산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스크래피 병원체는 단백질을 파괴하는 실험에서는 감염력을 잃었지만, 핵산을 파괴하는 실험에서는 감염력을 잃지 않았다. 이에 프루지너는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논문에 병원체에 ‘프리온’이라는 명칭을 제안하며, 병원체 프리온은 단백질로 이루어진 감염성 입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논문은 향후 25년간 학계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프리온 논쟁’을 촉발시켰다.
8장 프리온 논쟁(1982~1997)
프루지너의 논문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스크래피 연구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이론은 ‘단백질 단일감염체 이론’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지는 ‘극소 생명체 발견’이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단백질로만 이루어진 생명체는 유전학의 중심가설을 위반한 것이어서, 프리온 이론에 대한 학계의 반박이 줄을 이었다. 특히 에든버러 디킨슨 연구 팀이 제기한 ‘스크래피의 계통적 다양성’은 감염성 단백질 단일이론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프루지너에게 이 논쟁을 종결시키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이론을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는 실험뿐이었다. 또 다른 실험을 통해, 프루지너는 프리온 단백질은 외부의 병원체가 아니라 숙주의 유전자인 프리온 유전자의 산물이며, 정상적인 단백질이 갑자기 형태상의 변화를 일으켜 비정상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로 바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루지너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프리온 이론에 반하는 여러 실험결과들이 등장하자 학자들은 병원체가 딱딱한 단백질 껍데기에 둘러싸여 효소나 화학처리에도 견딜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논쟁은 격화되어 과학계의 대립은 해결될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9장 승자는 모든 것을 갖는다 - 두 번째 노벨의학상
계속되는 논쟁 속에서 프루지너는 새로운 실험 방법을 활용한다. 실험쥐에 햄스터 프리온 유전자를 삽입하는 등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실험을 토대로 프루지너는 프리온 단백질을 정상 형태에서 비정상 형태로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요소가 있으며, 이 가상의 물질을 ‘단백질 엑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프리온 가설에 또 다쎽 부가적인 ‘단백질 엑스’ 가설을 덧붙이는 설명방식은 비판적인 연구자들로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설명방식이었다. 학계의 냉혹한 비판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평행선을 긋던 학계의 논쟁은 영국의 광우병-인간광우병의 확산으로 갑작스레 이 연구에 대한 사회적인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프루지너에게 노벨의학상을 수상함에 따라 뜻하지 않게 마무리가 된다. 당시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결정에 많은 학자들은 스크래피-광우병 연구 방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모든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후 스크래피, 쿠루,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은 프루지너의 프리온 개념으로 집약하고 해석되었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는다.
10장 비극의 씨앗-광우병
1987년 영국 전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 이 병이 왜 갑자기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역학조사에 나선 영국의 윌스미스 연구 팀은 동물성 농축사료, 즉 육골분에 주목한다. 당시 축산업자들은 젖소의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죽은 동물의 지방을 녹여서 만든 농축사료를 소에게 먹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갑자기 문제를 일으킨 것일까? 이는 육골분 정제과정이 고온 가열 방식이 아니라 원리분리기를 이용한 저온 정제방식으로 바뀌어, 이전에 안전하게 제거될 수 있었던 병원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처 정부의 전반적인 규제완화 정책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당시에 식품가공 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많은 부분이 시장에 맡겨지자 식품 관련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곤 했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확산이 통제 불가능 상태에 이르자, 광우병에 걸리거나 의심되는 모든 소를 살처분 처리했으며, 국제사회는 영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영국은 광우병이 인간에 전이되지 않는다는 데에 안심하고 있었다.
11장 공포의 현실화-인간광우병
1993년 이후, 영국은 마침내 악몽과 마주하는 상황을 맞는다. 인간광우병이 발생한 것이다. 영국은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졌다. 나이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던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증상이 젊은이들에게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해 160여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영국은 인간광우병이 발생하자, 초등학교 급식에서 쇠고기를 제외시켰고, 반추동물의 특정물질이 동물 사료에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또 1996년 8월 1일 이전에 태어난 모든 소를 완전 폐기하는 정책을 단행했다. 이때 도살처분된 소는 541만 여 마리다. 더불어 2001년 12월부터 30개월 이상된 소를 도축할 경우에 의무적으로 소의 뇌에 광우병 증상이 있는지 조사하는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영국에서 키우는 모든 소에 대해 의무증명제도를 1996년 7월 1일부터 시행했으며, 동물여권을 발급해 동물의 이동 상황과 검역 여부를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했다.
12장 우리에게 광우병은 무엇인가?
지난 2008년 한국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으로 인한 광우병 파동으로 연일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영국의 예처럼 일단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 국가의 농업 분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영국의 쇠고기와 유제품은 최근까지도 수출금지 대상이며, 영국은 유럽 연합 내에서 정치적인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간과해선 안 되는 원칙은 (1) 지난 경험을 참고 삼을 것 (2) 사전예방 원칙에 기반해 대처해야 할 것 (3) 과학적 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것 등이다. 과학적 주장의 근거 자체가 대부분 논란의 대상이고 증명되지 않았을 때, 이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를 감안해 사전 예방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이유는 성장호르몬 처리된 미국산 쇠고기로 자국 국민의 먹을거리가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가 미국의 손을 들어주어도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무리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