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지방의 어느 시골 마을. 마흔 넘은 한국 남자가 정육점에 들어갔다. 간만에 삼겹살로 목에 기름칠이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주도면밀하게 사전조사를 했다. 옳거니, 삼겹살을 프랑스 사람들은 ‘가슴살’이라고 부르렷다! 그는 정육점에 가서 당당히 외쳤다. “가슴을 주세요!”
그러나 정육점 주인 안토니의 대답 한 마디에, 프로방스에서 은밀히 꿈꾸던 그의 독립 계획은 난관에 봉착했다. “누구 가슴이요? 얘요? 쟤요?” 그는 이역만리 타국까지 가서야 ‘이 나이 먹도록 처먹을 줄만 알았지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생김새도 구분하지 못하는 반거들충이’로 살아온 자기 맨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뿐이면 좋았을 텐데, 궁상스럽고 쪽팔린 경험은 줄줄이 이어졌다. 일방통행로에서 200미터나 역주행을 하질 않나, 화장실을 못 찾아 수시로 노상방뇨를 해대질 않나……. 앉아서 천리를 보는 아버지는 그 모습이 다 보이시는지 안부전화를 넣을 때면 말씀하셨다. “웬만하면 그만하고 돌아오지 그러냐?”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방스는 10년 동안이나 마음속에 품어온 ‘낙원’이었으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어디에 있나요?
이 책 『아름다운 시절』은 ‘내 생애 가장 청명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자’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떠난 한 40대 남자의 이야기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이대로 쪼글쪼글 늙어갈 수는 없다 싶어 아내와 자식들까지 팽개치고 혼자 떠난 프로방스. 책에는 ‘에귀’라는 시골 마을에 둥지를 튼 저자가 100일 동안 프로방스를 헤집고 다니면서 맞닥뜨리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들이 때론 능청스러운 수다로, 때론 재기 번득이는 시적 비유로 그려지고 있다.
프로방스를 마음에 품은 지 10년. ‘프로방스에서 해야 할 일들’이라는 리스트까지 만들었을 만큼 치밀하게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말과 풍습이 서툰 탓에 그의 생활은 처음부터 말썽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관광안내원에게 영어로 된 자료 좀 달라고 칭얼대다 무시당하고, 전차길을 나 홀로 주행하다가 마주오는 육중한 전차에 깔려 죽을 뻔하고…. 그렇게 좌충우돌 아름다웠던 100일 간의 체류 경험을 저자는 마치 잘 짜여진 콩트 속 주인공인 된 듯 유쾌하고 맛깔스러운 이야기 솜씨로 버무려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거기에 영화?미술?출판 등 문화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그의 문화적 소양과 내공이 어우러져, 경쾌하고 섹시하며 품위 있고 교양미 넘치는 여행 에세이가 만들어졌다.
아저씨, 로망을 실현하다!
기자로 줄잡아 20년을 보내온 저자 김태수는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글 써서 먹고사는 일이 때로 버거웠지만 현실이 자신에게만 유독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게 누구의 것이든, 가정을 가진 대한민국 직장인의 삶이 이 정도 고달프다는 것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자꾸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헤이! 이봐, 끝끝내 이렇게 살다 갈 거야? 쫀쫀하게 사는 인생 억울하지도 않아?” 때론 키득거리고 때론 서글프게 충동질하던 그 목소리에 그는 조금씩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용하고도 야심차게 모반을 계획했다. 더 늦기 전에, 삶이 나를 배반했다는 걸 깨닫기 전에, 그동안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로망을 한 가지쯤은 실현시켜봐야 했다. 그래야 억울하다는 마음 없이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타고 세계일주(하다못해 강남 대로만이라도)를 한다든가, 청바지를 입고(어울릴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밴드에서 뒤늦은 음악 혼을 불태운다든가, 날씨 좋고 공기 맑은 곳으로 훌쩍 떠나 우연히 만난 금발 머리 아가씨(아줌마일지도 모르지만)와 사랑에 빠진다든가 하는 일들. 타인 눈엔 ‘한갓 노망’에 불과할지라도 버거운 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위대한 로망’ 같은 것!
그에게는 프로방스에서의 삶이 그런 것이었다. 허나 20대의 배낭여행도 아니고, 최소한 100일 이상은 프로방스에 머물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무모한 것이었다. 굳었던 다짐은 통장 잔고와 부족한 배짱과 주위의 반대에 시시때때로 부딪혔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근심이 팥죽 끓듯’ 했다.
낙원으로 가다
프랑스어가 유창하기는커녕 아는 단어 합쳐봐야 스무 개 남짓한 그가 애초에 프로방스를 유토피아로 점찍어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고 들은 눈과 귀는 있어서 까다롭기가 맏며느리 보는 시어머니 못지않았던 그에게, 유명 대도시는 시끄럽고 삭막해보였고 온갖 좋다는 곳에 세워진 고급 리조트 역시 돈 받고 휴식을 파는 것 같아 마뜩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알게 된 프로방스는 단번에 그를 사로잡았다.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풍성한 대지, 짙푸른 바다, 차고 넘치는 음식, 작고 어여쁜 마을, 고색창연한 유적, 여유로운 사람들…. 10여 년 전, 칸 영화제 취재차 처음 들렀던 프로방스의 어느 언덕에서 그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이제 그에겐 100일이란 시간이 있었다. 저자는 장기 임대한 소형차를 끌고 원 없이 프로방스를 쏘다녔다. 그가 머물렀던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에귀에서부터 마르세유, 칸, 니스, 고르드, 오랑주, 님, 아를, 아비뇽, 망통, 생트로페, 카시스, 모나코… 죄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달력 사진이 찍혀 나오는 곳들이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그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펑펑 시간을 ‘낭비’했다. 길가에 착착 몸을 들이미는 노천카페들을 옮겨다니며 하루 종일 ‘멍 때리기’ 훈련을 하거나, 자그마한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다 예쁜 창문에 대고 ‘용감하고도 무례하게’ 셔터를 눌러대거나. 할 일 없이 방안에 들어앉아 와인을 홀짝거리며 ‘북한군 장성의 가슴팍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처럼’ 늘어난 와인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빠 돈보다 시간 쓰기가 더 어려웠던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였다.
지중해에 가면 꼭 몸을 담가봐야 한다는 ‘지중해성 강박’에 시달리다 쌀쌀한 가을 트렁크만 입은 채 입수했다가 5분도 안 돼 도망쳐 나왔고, 꿈에도 그리던 니스 해변의 ‘영국인 산책로’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리다 걷다 앉았다 섰다 하며’ 완주했다. 형형색색의 먹을거리들이 자태를 뽐내는 시장에선 ‘토끼 사냥이라도 다녀온’ 듯 양 팔에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걸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왔다. 한국에서 적어온, 소박하다 못해 쪼잔한 미션들을 차례차례 수행하는 동안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빛과 색에 무릎 꿇다
프로방스에서 그를 기쁘게 했던 건 또 있었다. 그곳은, 발 딛는 길목마다 예술의 향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풍광도 날씨도 좋다며 온갖 예술가들이 짐을 싸들고 내려와 눌러 앉았기 때문이다. 미술을 제대로 못 배운 게 늘 한이었던 그는 살풀이라도 하듯 고흐와 세잔을 필두로 하여 마티스,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 샤갈 등 예술가들의 뒤를 밟았다. 니스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생트로페의 아농시아드 미술관, 마르티그의 펠릭스 짐 미술관 등등 크고 작은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잔이 수십 번이나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에 직접 올랐고, 산이 보이는 레 로브의 아틀리에에 가서 그가 화폭에 담은 앵글대로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왔다. 고흐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입원했던 생폴드모졸 수도원과 그가 그려 유명해진 카페에도 갔다.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리는 생폴드방스에 가서는 샤갈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수색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꼼꼼히 공동묘지를 뒤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라 민망해졌다. ‘샤갈 무덤을 찾아서 뭘 어쩌자는 거지?’
이곳에 뼈를 묻은 예술가들이 많다보니, 그들이 줄줄이 남겨놓은 작품에 눈이 멀어 아트 포스터를 충동구매하기 일쑤였다. 그걸 다 걸려면 재벌 회장님 집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지만, 지갑을 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갑뿐이 아니었다. 상상 속에선 이미 아파트까지 팔린 참이었다. “아파트 팔아서 고향으로 내려갈까?” “아파트 팔아서 구멍가게나 하나 내고 살자.”며 찧고 까불었던 꼴난 30평대 아파트는 아직 대출금도 다 못 갚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집요하게 아파트와 바꿀 만한 집을 찾아다녔다. 혹시 집값에 ‘0’을 하나 덜 붙여 내놓은 게 있으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잽싸게 낚아챌 기회가 올까 싶어서.
왔노라! 보았노라! 졌노라!
‘늙은 유럽’ 중에서도 프로방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짬밥 있는 고참에 속했다. 하늘이 내린 자연조건을 탐낸 유럽인들이 시시때때로 군침을 삼키며 손을 뻗친 탓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아예 ‘프로빈키아’라는 이름으로 속주屬州를 삼아 지배했다. 프로방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이 고장 사람들이 프랑스 수도 파리를 늦둥이 취급하며 만만히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프로방스의 골목골목에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는 티나지 않게 잘 복원해놓은 중세 도시에 가서 ‘야동은커녕 야사(야한 사진)도 보기 어렵고 그 시절 최고의 성서性書’였던 『데카메론』을 집중 학습하던 추억을 되새기거나, 타라스콩의 육중한 성 안에서 왕의 화장실에 머리를 박고 ‘왕의 똥이 떨어지는 낙하지점’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를의 로마 원형경기장에선 남의 즐거움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했던 검투사들의 숙명을 가여워하다가도, 밤늦도록 손에 땀을 쥐며 이종격투기를 시청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서늘해졌다. 젊은 시절엔 ‘저게 다 광기와 착취의 산물이지’라며 개도 안 물어갈 심술을 부리던 유럽 성당에 뒤늦게 필이 꽂혀 ‘성당 숭배파’로 전향했다. 수많은 성당에 들락거리다, 작은 중세마을 레 보 드 프로방스에선 까딱하면 가톨릭 신자가 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프로방스에서 허물어지다
느리고 풍요로운 시간 속에서, 단단히 굳어 있던 삶에 대한 강박들이 느슨한 실오라기처럼 슬슬 풀려나갔다. 대학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혼자 밥 지어먹고 다니느라 의도치 않은 갖가지 사고를 치렀지만, 어느덧 휴양 도시 생트로페의 성벽에 남 몰래 벽화를 그려놓고 진저리치던 자신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길 정도가 됐다. ‘그래, 가끔 그렇게 망가져도 되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슬렁슬렁’ 살 권리를 부여해주는 동안, 서울에선 소중하면서도 일상의 무게처럼 느껴졌던 살붙이들이 생생한 촉감을 지닌 채 다가왔다.
드넓은 잔디구장에서 공을 차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자꾸 아이들 생각이 났고, 제 앞가림도 버거울 고3 주제에 “우리한테 말한 것처럼 아빠도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던 딸아이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해변 카페에서 3~4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툭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에 겨웠다가도 아내 생각이 간절해졌다. 커피 한 잔 시켜주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텐데, 싶었다. 프로방스는 그에게 평생 한 번쯤은 꼭 머물러 보고 싶었던 마음속 낙원인 동시에, 삶의 무늬를 새롭게 직조해주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앙코르 프로방스
그는 이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프로방스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현실 앞에 섰다. 프로방스에서의 시간들이 전부 환희로 넘쳤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순간순간 외로웠고, 순간순간 배고팠고, 순간순간 암담했고, 순간순간 분노했고, 순간순간 서글펐다.’ 하지만 인생의 숙제처럼 남아 있던 갈망을 해소했다는 사실이 그에겐 중요했다.
이 책 『아름다운 시절』은 삶의 중반 지점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꿈 한 조각을 실현하기 위해 홀로 떠난 40대 남자의 분투기다. 저자는 빌 브라이슨, 피터 메일,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걸출한 여행 작가들이 그렇듯 시간 순서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채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익살스럽고 기지 넘치는 문장으로 부려놓는다. 이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꾸러미는 물감이 묻어날 듯 선명한 색채의 사진들과 어울려 국내 저서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여행 에세이로 탄생했다.
저자는 앞으로 펼쳐질 현실 속에서 아프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다가올 때마다 ‘프로방스로 저벅저벅 들어가’ 에너지를 충전해오리라고 다짐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저자의 머릿속 어딘가에 ‘문신처럼’ 새겨진, 그래서 현실의 부침이 힘겨워질 때 무한한 위안을 주는 낙원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