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 생태전문가 차윤정이 찾아간 생명이 있는 우리 숲 기행
: 틈만 나면 나무를 만나고 숲을 거닐었던 여정의 기록이자, 숲에 바치는 정겨운 헌사
숲에 대한 전문성과 감성적인 글쓰기로 생태교양서의 지평을 넓힌 숲 생태전문가 차윤정이 『다시 걷고 싶은 우리 숲』에서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대한민국의 특색 있는 숲을 이야기한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완도 갈문리 숲에서부터 북쪽 끝 장백산에 이르기까지 숲을 따라 여행한 수천 킬로의 여정이다. 그 지역의 특색 있는 나무와 야생화는 물론 숲과 어울려 고즈넉이 서있는 산사, 여행객의 지친 몸을 다독여주는 산장, 바다의 숲이라 할 수 있는 습지 등 인간 세상과 어울려 지내는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이 책은 2002년 출간된『차윤정의 우리 숲 산책』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재출간한 것이다. 한층 시원해진 사진과 여유 있는 지면구성으로 더 많은 독자들이 손쉽게 책에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계절별로 목차를 재구성해 그 계절만의 특색 있는 숲의 풍광을 담아냈고, 수치와 지명에 관한 몇몇 오류를 수정했다. 또한 20여 컷의 사진을 새롭게 추가하여 볼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의 여정을 담은 것이 아니라 숲 생태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로 숲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함께 전달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지형과 환경을 읽어주고 그 나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게 되었는지, 주위 식물들과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지 등등을 말해준다. 저자가 직접 찍은 130여 장의 사진은 저자의 여정을 따라 그 숲을 함께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주며, 이제껏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생명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전문가의 머리와 시인의 가슴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숲을 찾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숲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강렬한 에너지와 무수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숲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 12개 숲의 12가지 색깔이 있는 우리 숲의 재발견
: 선운사 동백 숲, 완도 갈문리 숲, 담양 대나무 숲, 지리산 노고단, 장백산 원시림 …
우리 자연만큼 역동적인 곳도 없다. 어디를 가든지 독특한 지형과 특성이 있다. 『다시 걷고 싶은 우리 숲』은 대한민국에 있는 11개 산과 숲, 그리고 중국을 통해서만 갈 수 있었던 북쪽 땅 끝에 있는 장백산을 찾아 그 숲이 형성된 과정과 숲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윤정이 찾은 숲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숲은 울창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완도 갈문리 숲이나 대부도 갈대밭, 유명산 억새밭과 같이 조금은 스산하고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드는 곳을 찾았다. 이는 저자가 인간의 관점이 아닌 생태적 입장에서 숲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간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숲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전 지구의 생태 속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곳이야 말로 비로소 ‘숲’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건강에 대한 욕망으로, 혹은 자연에 대한 지나친 탐미로 숲을 찾는 이들을 경계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자연 속에서 본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나무들에 관한 설명은 더욱 흥미롭다. 유명산의 일본이깔이나무는 추운 지역을 좋아하는 성질 때문에 주로 함경도 지방에서 자라고 있는데, 이 일본이깔이나무가 유명산 중턱에 시원스레 자리 잡고 있다. 열매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목재가 자원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 나무는 지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가뭄이나 홍수에 취약했던 숲을 유지시켜주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고맙고 반가움을 느끼며 발길을 돌린다. 전남 완도의 해안가를 따라 100여 그루가 갈문리 숲을 이루고 있는 모감주나무 역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나무다. 마을 주민들은 무관심하지만 이러한 모감주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 모습은 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떠한 이유로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군락을 형성해왔는지를 밝혀내는 데 이 숲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96년 산불로 참사를 겪은 강원도 고성 숲을 다시 찾아 검은 무덤에서 피어난 생명의 위대함을 읽어내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산불이 진압되고 현장을 찾은 저자는 ‘나무들의 무덤’, ‘집단 학살장’이라는 표현으로 폐허가 된 숲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시커먼 흙을 뚫고 올라오는 노랑제비꽃과 소나무 싹을 발견하고 그 생명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고 인간의 이기(利己)를 반성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최근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다각적인 치유책으로 식생이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며 숲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것임을 말한다.
숲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은 남다르다. 고산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지리산 야생화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읽어내고, 죽어서까지 인간에게 유용한 자원을 남기는 덕유산 주목에서는 자연의 한없는 희생의 자세를 발견한다. 이름만큼이나 다정한 완도의 다정큼나무, 성탄절의 성스러움을 보여준다 하여 ‘홀리 트리’라 불리는 변산 호랑가시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 122호), 묵정밭의 풀섶에서 이슬로 목을 축이는 줄장지뱀 등 하나의 커다란 숲을 이루는 수많은 작은 생명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동적이고 감동적인 모습들이 숲을 찾는 이들에게 더 큰 힘과 감동을 선물함을 보여준다.
■ 원시의 기운과 생명의 보고인 장백산 답사의 기록
: 천지, 장백폭포, 지하삼림, 금강대협곡, 원지 …
백두산은 민족의 기운이 서려있는 우리 산이지만 아직까지 그 땅을 밟는 방법은 없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중국을 통해 백두산의 반쪽인 장백산을 오르는 것이다. 장백산 지역은 유네스코 산하 인간과 생물권(MAB) 계획에 의해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생태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자 차윤정이 이 생태조서에 동행했다. 그 여정을 담은 것이 이 책의 3부에 실린 장백산 이야기다. 천지는 물론 물과 세월이 만들어낸 금강대협곡, 장백산 원시림의 압권인 지하삼림의 풍광을 담았다.
장백산은 우리 땅의 다른 숲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느낌은 없지만, 숲은 울창하고 원시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흰 거품을 토해내며 구르고 있는 장백폭포의 물줄기 앞에서는 미약한 인간이 갖게 되는 원초적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지고, 곳곳에 자리 잡은 화산 호수는 그 아담함과 잔잔함에 따뜻함까지 느껴진다. 강함과 약함, 웅장함과 아담함이 짝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원시의 날것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곳곳에서 펼쳐진다. 장백산 남서쪽에 있는 왕지를 올라가는 길에 물을 먹기 위해 내려온 말사슴 한 마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물과 시간의 흐름으로만 빚어진 회벽색의 암석 기둥이 아무렇게나 솟아 있는 금강대협곡 앞에서는 냉기마저 느낀다. 천지를 보기 위해 올라가는 천문봉을 향하는 길은 수많은 야생화로 가득하다. 넓은 초원을 붉게 물들이는 좀참꽃 군락, 장백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두메양귀비, 6월이면 노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는 노랑만병초 등 장백산의 커다란 기운을 받고 자란 꽃들이 곳곳에서 그 생명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힘겹게 올라 멀리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천문봉 위에서 저 멀리 진짜 백운봉우리와 푸른 천지와 높은 하늘과 드넓은 초원을 마음껏 안아본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밟을 수 있는 곳은 장백산 뿐임을 민족의 이름으로 가슴 아파한다. 하루빨리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의 숲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저자는 기도하며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