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전쟁에는 실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전쟁 그 자체이다.
독소전쟁,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인도 · 파키스탄 전쟁,
중동전쟁, 걸프전, 미국·이라크 전쟁, 르완다 내전, 다르푸르 사태.
우리가 피할 수 있었던 전쟁들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중동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2008년 12월 2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치안군이 거주하는 건물을 목표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공습을 시작한 지 여드레 만에 이스라엘 지상군 수천 명이 팔레스타인 북부 가자지구로 국경을 넘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문제는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나, 왜 이스라엘은 건국과 함께 이어져온 그 지긋지긋한 전쟁의 역사를 끝내지 못하고 또다시 앞장서서 반복하고 있는가? 전쟁을 통해 인간 본성과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KODEF 세계전쟁사와 세계의 전쟁 시리즈를 발간한 플래닛미디어에서 현대 전쟁들의 실례를 분석하며 전쟁의 원인을 전쟁의 주체인 인간 중심으로 탐구한 『전쟁의 탄생-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가 출간되었다.
과연 국가는 왜 전쟁을 하는가?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휴전안도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국내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지상전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분석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이스라엘 군의 강경 입장이 누그러지지 않는 것은 하마스와의 오랜 갈등관계 외에 정치 수뇌부의 ‘적전분열’ 탓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저자 존 G. 스토신저는 국제외교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로 어린 시절에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난민이 되었다가 미국에 정착했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는 유엔의 정치국에서 국장으로 일했으며 외교관계위원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전쟁의 탄생-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는 평면적으로 볼 수 없는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사람, 즉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하에 운명적인 결정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현실을 진단한다.
이 책은 오늘날의 국제정세의 지도를 그린 20~21세기 큰 전쟁들의 전황과 정치적 상황, 당시 운명을 결정짓던 지도자들의 성향과 심리상태까지 분석하는 역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파괴력에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애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믿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가 직접 쓴, 평화가 요원한 시대에 평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희망가이다.
인류가 있는 곳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다는 말처럼 인간은 전쟁과 더불어 존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을 방지하고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그 일환으로 전쟁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동안 전쟁은 이데올로기나 국제 관계, 경제적 요인 또는 다른 ‘근본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되었으나 과연 인간이 저질러온 어떤 전쟁이 ‘불가피’했을까? 전통적인 분석들은 항상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를 놓치고 있었고, 인간이 명백하게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동안의 전쟁 관련 서적에서는 이러한 인간성의 차원이 좀처럼 무게가 실리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인간의 좌절감, 왜곡된 인식이 전쟁을 유발하게 되며 정책결정자가 자국의 능력 또는 상대국의 의도, 능력을 잘못 인지하게 되면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세기에 발생한 10개의 주요 전쟁과 현 세기에 발발한 2개의 전쟁 사례를 제시했다. 각각의 사례에서 저자는 지도자들이 전쟁의 문턱을 넘어설 때의 ‘진실의 순간’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운명의 순간을 확대해 그것의 두렵고 비극적인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항상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했다. 어떤 순간이 전쟁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는가? 누가 전쟁 발발의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의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전쟁에 관한 종래의 역사 서적이나 정치학 서적과는 달리 전쟁의 원인을 인간적 차원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즉, 저자는 전쟁이 인간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오히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물리적인 힘을 근본 원인으로 규정하려는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전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전쟁사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전쟁의 ?인을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는 왜 전쟁을 하는가?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 지도자의 성격이 사실상 전쟁의 발발과 평화의 유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모든 사례를 통해 전쟁 발발을 촉진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지도자의 잘못된 지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한 잘못된 지각은 지도자가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 적의 성격을 보는 지도자의 관점, 자신을 향한 적의 의도에 대한 지도자의 관점, 그리고 지도자가 적의 능력과 힘을 보는 관점 등 네 가지의 상이한 방법으로 나타났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강력하고 길게 이어지면 그 인식은 결국 사실이 된다. 독일 황제 빌헬름은 피해망상에 빠져 영국이 독일에 대항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 오스트리아를 제지하는 중재자 역할을 계속하지 못했으며,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의 독단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자들을 상투적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고 히틀러의 잔인한 의도에 대한 처칠의 진실된 경고를 믿지 않아 러시아는 거의 패망할 뻔했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는 중국이 맥아더의 유엔군에 대항해 움직였던 것처럼 인도차이나의 프랑스군에 대해서도 움직이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베트남에 첫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사실상 중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함정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랍과 이스라엘,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상대방에게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고 이러한 예상은 종종 전쟁으로 향했다. 그리고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들이 세르비아인들을 추방하려 한다는 밀로셰비치의 믿음은 유고슬라비아, 특히 알바니아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정복전쟁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전쟁을 회피하는 반면 잘못된 인식은 전쟁을 서두르게 한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의 저항을 과소평가했다. 이러한 과소평가로 말미암아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리라는 부시 대통령이 약속은 전쟁기간 동안이 아니라 전쟁 이후에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고 미국은 자신들이 생각한 전쟁 이후에 또다른 전쟁을 겪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의 경우 미국은 김정일에 대한 ‘혐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김정일의 핵무기와 그의 100만 명에 이르는 상비군은 북한에 대한 부시의 선제공격에 제동을 걸기에 충분했다. 이와 같이 각각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적어도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힘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는 현실을 인식했을 때 조성된다. 전쟁의 발발과 평화의 도래는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현실에 이르는 길목에서 갈라진다.
저자 존 G. 스토신저는 어린 시절에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아버지와 외조부모님을 잃고 자신도 게토에 갇힌 경험이 있는 유대인이다. 그는 우연히 만난 일본 외교관들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피난할 수 있었으며, 영국인 학교에서 공부를 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 정착했다. 그는 국제외교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가 되었고, 1967년부터 1974년까지는 유엔의 정치국에서 국장으로 일했으며 외교관계위원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국제 관계의 전문가인 저자는 사적인 경험과 더불어 그의 실무적인 경험을 살려 국제문제에 대한 풍부한 자료로 비전문가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 직전 전쟁을 막기 위해 파키스탄 유엔 대표부에게 후세인을 범죄자로 지명하고 유엔 검열단이 검열 진행 속도를 높이도록 제안하기도 했다. 유엔과 함께 일한 7년 동안의 저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이 결의안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대신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미국은 나토와 유엔과의 불화를 피할 수도 있었다.
또한 2003년 11월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치닫기 직전, 레바논계 미국인 사업가인 이마드 하게가 세 가지 양보안을 들고 부시 행정부와 접촉하도록 후세인의 정보기관에 의해 파견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들이 내건 조건은 이라크 내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미국의 무기전문가 뿐만 아니라 2,000명의 FBI요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유엔의 감시 아래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라크는 1993년 국제무역센터를 공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원을 미국에 넘길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와 같이 국제외교의 실무 전문가이자 오랜 연구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한 저자가 다양한 신문과 언론자료, 정부 자료 등을 뒤져서 모은 풍부한 정보도 ??전쟁의 탄생-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의 빼놓을 수 없는 큰 매력이다.
전쟁의 원인에 관한 이론 중 일부는 전쟁이 인간의 심성 중 공격성향과 같이 근절시킬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존 G. 스토신저는 “공격성향은 선천적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학습된 행동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학습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 완전히 근절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때때로 과거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습관들도 버렸다. 예를 들면 인간이 소규모 집단생활을 하던 빙하시대에는 근친상간이 충분히 용인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금기시되었다. 비록 1세기 전만 해도 수백만 미국인들은 신이 백인은 자유인으로 흑인은 노예로 운명 지어 놓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때 ‘인간본성’의 일부로 생각되었던 노예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발전은 큰 고통을 겪은 후 서서히 이루어진다. ‘인간본성’도 변화되었다. 노예제도와 식인 풍습처럼 전쟁 또한 인간성의 공포의 창고로부터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큰 재난이 목전에 이르러야 그들의 악습을 버리게 된다. 지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동요와 혼란 후에야 변화한다. 중병은 그 위기를 넘겨야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인류멸망의 위험이 우리에게 있지만 이 지구상의 전 인류가 더 나은 생활을 할 기회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메두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 병을 진단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진단이 치료는 아니지만 첫 번째로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조치이다.
저자는 인류가 왜 값비싼 대가를 치루며 인간이 만들어낸 파국에 대해 느리게 배우는 것인지 이상하지만 여전히 인류가 스스로 만든 파국으로부터 배우는 인간의 능력에서 전쟁에 대한 답변을 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한 인류에겐 비록 느리긴 하지만 아직은 낙관론자가 될 수 있을 진전도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우리는 오스카 쉰들러를 기억하고 있고 르완다의 폴 루세사바기나가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자를 홀로코스트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 일본인 외교관들도 있다. 존 G. 스토신저는 말한다. “인류는 성당과 난민수용소 모두를 건설했다. 비록 우리가 우리 시대에 전례 없는 깊이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하늘로 기어오르고자 노력해왔다. 우리는 원죄의 짐만을 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원초적 순수함에 대한 선물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