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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0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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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16쪽 | 1,040g | 153*210*44mm |
ISBN13 | 9791186712207 |
ISBN10 | 1186712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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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두 읽고 비로소 시작되는 <조국과 민족>. 만화라고 하기에는 작가의 탄탄한 고증에 기반한 표현들로 가득한 책이기에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읽는 동안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간첩과 관련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였지만, 책을 다 읽고 작가의 집필 후기를 들여다보니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내용이 아니라 실제 사건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니 꽤 충격으로 다가온다. 비록 실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바꾸긴 하였지만, 그 외의 설정은 모두 우리가 겪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하면 만화라고 생각하면서 넘겨버린 내용들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내용들이 여전히 '~ing'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보기관에서 고문에 통달한 '기술자'로 불리우는 박도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정말 우리의 역사에 있었던 내용인가 싶을 정도로 끔찍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서울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생각해보니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의 전후 이야기이어서 오히려 나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이었기에 이러한 은밀한 역사는 내가 알 턱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대사에 대한 논란이 많은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당시의 역사를 정확히 접하기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많은 논란이 있기에 저자는 바로 만화라는 형식으로 가상 아닌 가상의 이야기로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각종 고문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수행하는 박도훈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자신이 하는 일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물이다. 그를 아들처럼 대하는 그의 상관인 장세훈 역시 그의 사무실에 걸려있던 액자의 내용을 '조국과 민족'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들의 행위는 모두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기에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평범한 사람을 순식간에 간첩으로 몰아세우고(실제 재일교포 함주명의 이야기), 간첩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가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재일교포를 고문으로 협박하여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모두 나라를 위한 일이었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건들이 박도훈과 장세훈, 그리고, 김대한에 의하여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탄탄한 연출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개인을 통하여 생동감있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특히 박도훈은 꽤 입체적으로 다뤄진다. 첩의 아들로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던 그가 장세훈의 교묘한 유도 심문으로 인하여 그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형을 간첩 사건의 가담자로 만들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대학 졸업 후 그대로 장세훈의 심복으로 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이중적이 아니라 그는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하는 와중에 몰래 일본에서 금을 밀수하면서 조금씩 사리사욕을 채우다가 결국에는 '광명산'이라는 남파 간첩의 거물과 협력하는 관계로 이르게 된다. 이는 결국 박도훈에게 있어서 이념은 허울에 지나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영달만을 추구하는 인물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장세훈은 정보 기관의 간부로서 모든 것을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박도훈을 자신의 심복으로 이요하거나 이중간첩과 접선하는 일, 그리고, 또 다른 부하인 김대한의 아버지인 김회장과 모종의 거래를 하는 것 모두가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박도훈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박도훈을 통하여 남몰래 처리하게 만들고, 실제 수지킴 사건을 다룬 매기킴 사건이 단순히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정국에 유리한 분우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간첩 사건으로 변질시켜 선전함으로써 기득권에 야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세훈은 자신의 아들의 살인을 처리한 박도훈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라는 부분은 어찌 보면 박도훈이 좀더 성장하면 결국 제2의 장세훈이 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러한 인물 사이에서 오히려 김대한은 직분에 충실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 친일 행적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반공을 부르짖는 아버지를 혐오하던 김대한은 정보기관에서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인물이었다. 또한 박도훈과 달리 사리사욕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매기킴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몰아가려는 장세훈에 대하여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원칙주의적이면서도 정의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장세훈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간첩에 대한 모진 고문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조국과 민족>의 내용들이 모두 80년대 우리의 역사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이러한 모습들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속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자꾸 서구 선진국들의 민주화 사례를 들먹이면서 나라를 들쑤시는데 민주화가 좋은 거 누가 몰라? 그런 식의 선진적인 민주화를 하기엔 지금의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왜 생각들을 안하는지. 쯧쯧...
국민이 정치에 관여해서 목소리 높이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공무는 나랏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믿고 맡겨놓고, 국민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할 때 그 나라의 미래가 있는 거야."
- 조국과 민족 上, p. 88~89 -
장세훈이 박도훈에게 이야기하는 이 대목은 읽으면서 동시에 섬찟하게 다가온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득권에서는 이와 같은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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