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인간에 대한 의문과 회의와 불만으로 밤을 새우며 고민했던 20대 초에 Bernard Shaw의 유쾌한 독설과 겁 없는 불경(不敬)은 영혼의 청량음료 같은 것이었다. 쇼는 한 사회의 도덕률이나 인습이나 관념은 전부 당대 사람들의 편견과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인간의 미망(迷妄)이 만들어 낸 기존가치를 파괴하고 진정한 가치를 수립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인류사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이 초라하고 추악한 자신의 진실을 직시할 수가 없어서 만들어 낸 환상과 가면을 가차없이 찢어버리는 것이 자신의 작가적 역할이라면서 쇼는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니고--즉, 사람들에게 문학적인 감동이나 예술적인 만족을 선사하기 위해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작품을 쓰는 선전가(propagandist)라고 규정했다. 많은 비평가들도 그의 그런 자기평가에 동조했지만, 나는 그의 희곡에서 지적인 자극 뿐 아니라 문학적인 즐거움과 감동도 풍성히 맛보았다.

그는 독자, 관객들이 그의 달갑지 않은 골치 아픈 메시지를 기꺼이 경청하게 하기 위해서 그의 천재적인 재치와 독설의 옷을 입혔는데, 어떤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독자들이 그의 통쾌하고 짜릿한 재치와 독설의 껍질만 빨아먹고 알맹이인 그의 메시지는 내 버렸다. ‘Candida’, ‘The Man of Destiny’, ‘Captain Brassbound's Conversion’, ‘Casesar and Cleopatra’, ‘Devil's Disciple’, ‘Saint Joan’, ‘Captain Barbara’ 기타 수많은 희곡에 지적인 펜싱경기가 펼쳐지는데, 『Man and Superman 인간과 초인』의 주제는 결혼이다. 쇼는 결혼이라는 것이 낭만적인 사랑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고 그 목적이 행복이라는 미신을 격파하려고 한다. 이 극의 주인공인 죤.태너는, 예쁘고 영리하고 자기의 목표를 관철하는 수완이 뛰어난 앤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자 그녀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하려고 영국에서 시에라.네바다까지 줄행랑을 친다. 그러나 그를 포획하기로 마음먹은 앤의 추적을 피할 길은 없다. 죤 역시 재치있고 매력적인 앤에게 끌리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결혼해서 한 여자의 밥이 되기보다는 인간이 초인(超人)으로 진화하는 길을 열기 위한 지적인 모색에 정진하고 싶기 때문에 앤에게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자기가 거미줄에 걸린 벌 만큼이나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결국 항복하고 만다.

쇼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의지가 인류의 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작업인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는 사명을 여자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여자는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기 자식들에게 우성인자를 전해주고 좋은 양육조건을 제공해 줄 남자를 야수가 먹이를 사냥하듯이 찾는 것이다. 반면에 남자는 후손을 남기는데 일생의 지극히 적은 부분 이상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정의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런데 비겁한 인간은 결혼이라는 것이 사실은 살벌한 사냥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사랑이라는 환상을 지어내어 그것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희곡의 주인공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투박한 인물은 아니다. 반대로 그들의 사냥감이 되고 싶어 질 정도로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인물들이다.

버너드 쇼의 모든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의 관념 속의 모순을 예리하고 현란한 말솜씨로 가차없이 폭로해 간다. Man and Superman에서 바이올렛이라는 젊은 여성이 비밀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누군지 밝히려하지를 않는다고 하자, 모두들 즉각 그녀가 남자에게 속아서 임신을 하고 버림받은 것으로 단정한다. 그래서 그 악당이 누군지 밝혀내서 그녀와 결혼을 하도록 만들어야한다고들 하자, 주인공 태너는 그녀가 악당에게 한 번 피해를 본 것도 불쌍한데 일생을 악당과 살아서야 되겠느냐면서 그녀가 혼자 아기를 낳고 살아가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여주인공 앤은 그녀를 경배하고 그녀를 위해서는 죽을 각오도 되어있는 순진무구한 옥타비우스 보다는 그녀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고 그녀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며 잔뜩 경계하는 죤.태너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자기를 여신처럼 우러러보는 남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언제 그녀가 보통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할지 모르지만, 자기의 결점을 잘 아는 남자와 결혼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그의 사랑을 얻어내는 즐거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극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실상과 허상을 비교한 것은 결혼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제도이고 그 실상과 허상의 간격이 가장 큰 제도이기 때문이다. 쇼의 희곡은 모두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예리한 입씨름이 주 메뉴인데, 이 극에는 특히 극의 전개와 무관한 제 3장 지옥에서의 대화 장면이 있어서 인간의 삶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주의 섭리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그 섭리의 실현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토론의 장이 있다. 인간이 육신의 눈을 가짐으로서 주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다가오는 위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자신과 주변생물, 그리고 우주와의 관계를 의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눈인 두뇌를 발달시킴으로서 더 고차적인 자아 인식은 물론 자기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쇼는 인간은 이제 지혜롭게, 그리고 도덕적인 용기를 갖고 고차적인 생명체로의 진화에 매진할 것을 촉구한다. 작품의 말미에 첨부된, 주인공이 저술했다는 혁명주의자를 위한 지침서와 혁명주의자를 위한 교훈은 논쟁가, 독설가로서의 쇼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상극 (drama of ideas)으로 불리는 쇼의 희곡에는 생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쇼의 작중인물들은 탐욕이나 아집이나 권력욕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고 주위를 황폐화시키는 그런 악인은 없다. 세속적인 인물, 열등감으로 삐뚤어진 인물은 등장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결점이나 모순을 지적 당하면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서 인간의 고질적인 내적 모순이나 비극적 심리에 대한 처절한 탐구는 없다. 그러나 스릴 만점의 지적인 펜싱경기인 그의 희곡들은 사상에 목말랐던 나의 젊은 날의 지적(知的)향연이었고, 그의 눈부신 펜싱기법을 터득할 능력은 없었지만 그 신나는 관전경험이 나의 무딘 두뇌를 조금은 벼려주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