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어떻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는가?
전 세계 화폐의 역사를 조망한 책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왜 돈을 만들었으며
그 돈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변해왔으며
돈이 인간의 정신과 생활방식,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다.
모두 아홉 장에 걸쳐서 돈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역사와 지역적 형태를 포함하며, 유럽과 미국의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 모든 지역의 돈을 객관적이고도 폭넓게 탐구했다.
돈의 발생처인(인류 문화의 발생지인 곳이기도 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돈의 역사를 시작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돈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중세의 유럽을 살피고, 많은 지역에 영향을 끼친 이슬람 세계의 화폐,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화폐를 해설했다. 나아가 근대기 이전까지 동양의 역사에서 큰 몫을 차지한 중국의 화폐와 그의 영향을 받은 주변국가의 화폐(한국의 해동통보 등)를 설명했다. 또한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넘어온 시기의 화폐와 사회적 상황,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특이하고도 기이한 화폐들,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돈의 특별한 형태(조개껍데기, 식물의 변형 등)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화폐의 변화상을 살피고 미래 화폐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측했다.
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이 책은 1997년 대영박물관 내 HSBC 화폐전시관의 개관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개정판이 간행되었다. 이 개정판을 통해 돈의 지역적/역사적 범위를 확대하여 전 세계의 돈의 형태를 추적했다. (HSBC 화폐전시관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화폐(그리고 주화)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제공한다. 최초에 글씨로 적어 사용했던 화폐의 등장에서부터 2007년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화폐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다양한 시대에 존재했던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도 되새길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전통에 따른 화폐의 문화적 맥락과 진화 과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기원전 2000년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화폐의 형태 변화 등을 볼 수 있다. 화폐의 형태와 기능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화폐에 대한 문화적 사고방식 또한 진화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현재까지의 화폐의 역사를 들려주고 돈에 대한 이야기에 다양한 요소를 추가했다.
이 책이 갖는 목표는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돈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류의 삶에서 돈의 위치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거래를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돈은 우리가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회적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가진 돈의 액수는 행복 또는 성공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화폐의 역사는 최초의 문자 기록이 이루어졌던 시점부터 인간의 역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돈의 정치적ㆍ사회적ㆍ경제학적ㆍ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구조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돈은 삶을 넘어선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며 영적 세계와 사후세계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는 중국인들이 시체를 묻을 때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함께 묻어주는 오래된 전통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돈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 상태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역사의 가장 극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 세계의 화폐제도와 돈의 역할을 꼽을 수 있다. 아테네제국의 4드라크마 은화에서부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국 달러에 이르기까지 돈은 역사 속에서 중대한 요소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
귀한 금속을 돈으로 사용했던 역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천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돈의 사용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중동과 남아시아로 전해지면서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후 서양의 식민 정책과 근대 산업사회의 발전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돈의 역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었다고 해서 이를 화폐의 기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고대 근동 지역과 이집트
고대 사회의 경제생활에서 중앙 집중적 권력이 확연히 드러났어도 은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폐의 기능을 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법과 정의를 기록한 왕실 및 신전 고문서와 여러 도시의 유적 점토판과 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귀한 금속이 돈으로 사용되었던 사회적 구조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실행되는 법규가 아닌 정의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왕의 성명서인 ‘법전’에는 은의 무게에 따른 광범위한 지불방식이 문서화되어 있다.
주화와 도시 국가
기원전 6세기 동안 그리스에서 퍼져나간 은 주화는 도시국가들의 동전을 만드는 당국을 의미하는 도안과 명각을 포함했다. 당국의 표시는 동전의 품질과 가치를 보증했고 위조로부터 동전을 보호하기도 했다.
주화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도안들이 주로 선정되었으며 종교적인 숭배와 신화, 당국의 이름을 재미있게 표현하거나 도시의 이름을 명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식은 최초의 그리스 동전부터 시작해서 -동전의 모양과 예술적 스타일은 많이 달라졌어도- 500년 이후에 헬레니즘 세계에서 만들어진 최후의 동전까지 그 특성으로 남았다.
로마의 탄생과 소멸
역사가들은 로마의 최초 화폐는 양과 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되었다. 라틴어로 ‘돈’을 뜻하는 페쿠니아pecunia는 ‘소’를 뜻하는 페쿠스pecus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무언가의 가치를 소의 머릿수로 환산하여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던 반면, 고대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소가 지불수단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에트루리아인을 포함한 이탈리아 토착 주민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초기의 로마인들 사이에서도 청동 막대의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통화의 기준을 정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청동은 비교적 값싼 금속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양이 필요했다. 역사가 리비우스Livy(기원전 1세기)는 로마의 조상들이 초기 공화정 시대부터 재산을 수레에 실어 가지고 다녀야 했던 전통을 언급하고 있다.
로마의 멸망과 함께 로마의 주화도 사라져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국 내에 여러 갈래로 존재하던 통화제도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국가 차원의 제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량의 값비싼 금속들이 정복에 대한 전리품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세금으로 속주에서 로마로 흘러들어간 결과였다.
중세의 유럽
중세 세계는 로마제국의 긴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특히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뀐 서유럽은 더더욱 그랬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화폐제도를 비롯해 생산과 유통 양면에서 보유하고 있던 정부 재정의 소실을 포함했다. 양분된 로마제국의 서쪽 반을 차지한 게르만 왕들은 고가의 사회 제반 시설과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로마가 의지했던 복잡한 조세제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귀금속은 로마 다음 세계의 왕과 귀족들에게도 최고의 가치로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 취한 정치적 통일체를 통한 유통이 이루어지는 대신 왕과 주교 개인의 보물 저장고에 금과 은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로마 통화제도의 중앙집권화된 섬세함에 근접한 무언가가 유럽에 다시 나타나기까지는 많은 세기가 걸려야 했다.
비잔틴 제국
몇 세기 동안 비잔틴제국은 중세 유럽과 이슬람세계 사이에 놓여, 그들만의 권리였던 위대한 문명을 퍼뜨렸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영향력과 변화를 행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잔틴제국의 주조화폐는 이웃 나라들과 계승자들에게 최초로 독립적인 통화를 구축하기 위한 모델을 제공하였다. 한편,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솔리두스 금화와 노미스마nomisma(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만든 통화)는 통화제도의 근본이 되었고, ‘중세시대의 달러’로 불릴 만큼 지중해세계에서 무역을 주도하는 최고의 주화로 군림하였다.
서유럽의 중세 후기
12세기에 이르자 주화 형태의 화폐 발행은 대부분의 유럽에서 일상화가 되었고, 화폐 주조는 더욱 중앙집권화되어갔다.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의 왕국들을 비롯해 주조화폐의 도입이 늦은 나라들은, 사실상 왕의 독점과 함께 화폐의 공급에 대해 상대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접근법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랍 세력을 몰아내며 영토를 확장해가던 스페인의 기독교 왕국에도 적용되었다. 주조화폐에 대해 왕의 관리 감독이 줄곧 유지되었던 영국에서는 화폐를 발행하는 주조소의 수가 점차 줄어들어 런던에 집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과거 영향력이 미미했던 왕의 주조화폐가, 발행자의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쓰였던 봉건 영주들의 화폐를 누르고 국가의 통화로 그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의 영토에서는 화폐 발행자의 수가 계속 증가했으나 가장 눈에 띄고 영향력 있는 몇몇이 이미 정해진 상황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돈
이슬람문화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조직이었다. 계속되는 세기 동안 제국들이 건설되고 무너지면서 여러 가지의 이슬람교 분파와 유파가 설립되었는데, 이슬람교 메시지의 정수인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그의 사자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세우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제공하였다. 우선적으로 이슬람교의 칼리프라는 직위는, 신의 요구와 현세적 관심, 즉, 돈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태도와 화폐 그 자체 사이의 긴장 상태를 조화시켜야 했다. 이슬람문명 하에서 성립된 윤리 체계는, 세속 공동체의 요구와 함께 세금의 효율적인 징수, 영리 활동의 성공적인 편성 등과 같은 국가의 경제적 요구를 조화시킬 수 있어야 했다.
다양한 종교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도들은 여러 가지 금융제도들을 개발했고, 이자 수익을 금지하는 것이 교역과 은행업 전반에 방해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금융거래에 있어 도덕성을 고려하는 것은 주요 이슬람 도시들에 무흐타시브muhtasib를 두는 것으로 발전했다. 무흐타시브는 지역의 관리로, 적어도 학설에 의하면 높은 도덕적 청렴성과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에 대한 지식을 덕목으로 하여 임명되었다. 그의 역할은 모든 상업 분야에서 샤리아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화의 무게와 치수를 측정하고, 위조품을 검사하는 일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인들이 이자를 물리지 못하게 하고 지나치게 축재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화폐 이야기는 3,000년 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인도 북부의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둔 자체적인 통화의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은 이란, 그리스-로마 세계, 이슬람 그리고 유럽의 식민 세력 등 많은 외부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체의 차별화된 특징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반대로, 인도의 화폐와 통화 풍습들이 남아시아 지역을 거쳐 인도공화국을 둘러싼 주변 영토들로 퍼져나갔고, 과거에 그들의 영향력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까지도 이르렀다.
오늘날의 인도와 그 주변국들에서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그렇듯이, 화폐가 주화와 지폐의 형태로 유통된다. 인도와 많은 이웃 나라들의 통화는 루피rupee(100파이사paise로 나누어진다)에 입각한 단위를 쓰는데, 루피라는 단어는 ‘은화’를 의미하는 인도(힌디)어 루피아rupya의 영어식 표현이다. 같은 단위 제도가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사용된다.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는 루피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한편, 다른 나라들에서는 지역마다 다르게 명명하기도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의 아프가니afghani, 방글라데시의 타카taka, 부탄의 눌트럼ngultrum, 몰디브의 루피야rufiyaa, 미얀마의 차트kyat가 그것이다. 루피는 또한 인도양의 두 도서 국가인 모리셔스와 세이셸의 기축통화이기도 하다. 루피아라고 불리는 루피의 또 다른 이름은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주변국가
중앙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 작고 동그란 청동주화가 동아시아의 화폐인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중국에서 비롯된 주조화폐 전통의 이러한 기본 형태는 중국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일본, 한국, 베트남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통틀어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화의 유적들은 또한 중동, 남아시아, 호주, 아프리카와의 무역 관계를 증명하듯 이 일대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진 가장 마지막 화폐는 20세기 초의 것들이며, 좀더 서구화된 형식이 받아들여지면서부터는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주화보다는 네모난 구멍 자리에 그림 도안이 들어가는 주화들이 주조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유통되는 동아시아의 주화들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발행되는 현대식의 주화와 모양이 같다. 그러나 중국의 작가들에 의해 ‘작은 형제들’로 일컬어지기도 했던 전통적인 동아시아 특유의 주화 형태는, 부적과 사원의 기념품에 흔히 적용되는 모양으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2,000년이 넘게 존속하였다.
근대 초기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유럽 화폐의 변동기는 세 가지 영향으로 활기를 띄었다. 첫째, 동전의 외관이 르네상스 동안 예술적 발전의 여파로 변화했다. 둘째, 금은의 새로운 공급원이 확보돼 통화공급이 늘어났고, 이와 함께 가격, 명칭, 분류 체계와 화폐 사용의 범위가 넓어지는 결과가 뒤따랐다. 세 번째, 유럽에 도래한 발견의 시대(새로운 금은 공급원의 상당수가 늘어난 데서 기인한)는 탐험, 투자, 개척의 시야를 거의 무제한으로 개방했고, 세계 경제의 초석을 깔았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오늘날까지 가장 특이한 형태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다양한 돈의 형태와 역사를 보여준다.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 맞닥뜨린 유럽의 여행자들은 돈과 유사하게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다양한 물건을 반드시 가지고 돌아왔다. 소금이 이 중 가장 흔했다. 1520~1526년까지 에티오피아(아비시니아)에 포르투갈 왕의 사절로 파견된 선교사 프란시스 알바레즈는 그곳에서 돈을 지불하기 위해 소금이 사용되는 것을 자세히 언급했다. 구리와 구리합금인 청동, 놋쇠는 ‘아프리카의 붉은 금’으로 일컬어졌다. 서아프리카는 19세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금 매장량을 지닌 곳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은 장식품, 지불수단으로서 구리와 놋쇠를 매우 중시했다. 그들은 거대한 바윗돌, 나무 조각, 깃털과 심지어 해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돈으로 여겨지리라고는 미처 예견하지 못한 많은 물체를 돈으로 사용했다.
근대후기와 현대
유럽과 미국이 18~19세기의 정치적, 산업적 혁명을 거치면서 이 변화는 사회 그리고 경제계에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새로운 긴장과 우려를 가져왔다. 임금지향적, 산업적, 도시적 사회의 부상은 적절한 질서와 작은 변화를 정비하는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로, 19세기 동안 거의 모든 산업국가가 소액화폐를 대신할 사설주화를 정기적으로 발행했고, 은본위제는 구리와 청동에 의해 완전히 빛이 가려졌다. 니켈 합금, 그리고 이후에는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철강 등 새로운 금속과 합금의 종류들이 주화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은, 금, 종이 그리고 기본 금속은 19세기 후반 좀더 관리하기 좋은 제도권 내에 한데 모아졌고 이는 모든 종류의 돈이 방대한 규모로 생산되는 것을 촉진했으며, 복잡하고 화폐를 주조하는 산업화된 서양세계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몇 차례의 전쟁을 거치고 문화의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화폐는 급격한 변모를 겪었고 강대국의 미국의 등장으로 달러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돈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어 다양한 플라스틱 돈이 나타나 세계인의 일상적인 삶을 바꾸었다. 이 장은 17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돈의 역사를 살폈다.